오끼나와, 구조적 차별과 저항의 현장
아라사키 모리테루 지음, 백영서 외 옮김 / 창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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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이다. 내가 즐겨 듣는 팟캐스트 중에 그알싫이 있다. 그동안 듣지 않아서 밀려있던 방송을 운전을 하면서 들었다. 5번에 걸쳐서 몇번씩 나눠 들었는데 그 노래의 마지막에 이 노래가 소개되어 있다. 노래의 분위기는 정말 발랄하다. 내용도 그렇게 어둡지 않다. 오히려 목가적인 분위기를 풍기기 때문에 아련히 추억에 젖을만하다. 그렇지만 이 노래가 만들어진 배경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마음이 먹먹해지고, 울컥했다. 노래의 내용은 이렇다.

 

  노래를 만든 키나 쇼키치가 어린 시절에 자기 옆집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옆집 아저씨의 부인은 오키나와 전쟁으로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같이 살면서 부부싸움이 잦았다고 한다. 어느날 부인이 자기 딸의 목을 자르고 머리를 냄비에 넣고 끓인 일이 있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부인은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아저씨는 동네에서 따돌림을 당했다고 한다. 이 아저씨는 매일 옆집의 키나씨에게 술을 달라고 왔다고 한다. 아저씨와 이야기를 하면서 이 아저씨가 힘을 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 노래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노래도 그렇게 발랄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 노래의 배경을 아는 사람에게 이 노래를 발랄하고 기분 좋은 노래는 아니다. 오히려 너무나 슬프고 속상한 노래이다.

 

  한때 디스코텍과 롤러장에서 신나는 분위기를 위해서 틀었던 노래 가운데 보니엠의 "바이 더 리버 오브 바빌론"이 있다. 이 또한 그렇게 경쾌한 CCM이지만 그 가사의 내용은 이스라엘의 슬픈 역사인 바벨론 유수를 담고 있다. 우리나라의 아리랑처럼 서글프지도 않고, 그렇다고 한오백년처럼 한을 밖으로 표출하고 있지 않지만 그 안에 담긴 슬픔과 비극은 너무나 처절하다. 이와 비교할만한 노래를 꼽자면 언뜻 생각은 안나지만 리쌍의 광대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하니사이라는 말은 오키나와 어로 안녕하세요란다. 오지상은 아저씨라는 말이다. 키나가 오지상에게 무슨 말을 했었을까? 오지상은 어린 키나에게 무슨 말을 했을까? 전쟁에 대해서 말은 하지 않지만 그 안에 담긴 비극과 슬픔은 나이를 넘어서 두 사람을 하나로 묶지 않았을까? 그런데 더 슬픈 것은 하이사이 오지상은 아직도 진행형이라는데 있다. 원래 일본과는 다른 류큐 왕국이 1609년 사쓰마번의 침입을 받아서 침탈을 당하다가 1879년 폐번치현이 조처로 일본에 강제 병합되었다. 일본의 태평양 전쟁 시에는 본토를 수비하고 천황제를 유지하기 위하여 많은 희생을 강요당했고, 패전 후에는 미국에 의해서 점령당하다가 1972년 일본에 반환은 되었지만 여전히 미국의 최전선 기지로 남아 있다. 미국의 수많은 기지들은 일본에 미군 기지를 두지 않기 위한 목적으로 이용되었고, 베트남전 당시 미군의 폭격기가 오키나와에서 출격했다. 베트남 사람들은 오키나와를 악귀들이 살고 있는 악귀도로 불렀다.

 

  일본의 방어를 위하여 끊임없이 침탈당하던 오키나와가 이제는 일본의 이국적인 관광지로 주목을 받고 있다. 사람들은 사탕수수와 이국적인 풍경에 눈을 빼앗기지만 오키나와의 역사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결코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아니다. 그것을 알면서도 이용하는 자본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끝모를 천박함에 가슴이 먹먹해 진다. 일본에 유행하는 것 중에 배드 트립이라는 것이 있단다. 역사적으로 비극적인 장소들을 여행하면서 역사의 교훈을 잊지 말자는 취지의 여행이지만 오키나와에 대한 조금의 사과도 없이 이루어지는 배드 트립은 그저 돈벌이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도 계속되는 오키나와의 슬픔을 보면서 제주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얼마전 휴가를 맞이하여 제주도에 다녀왔다. 아내가 나한테 어디 갈지 물어 보기에 나한테 묻지마라고 나한테 가자고 하면 강정마을에 갈 것이라고 말했다가 한 소리 들었다. 결국 제주도의 풍경 좋은 곳을 다녔지만 그러면서도 내 마음 한 구석에는 제주도의 슬픔과, 제주도에 대한 본토인으로서의 부채감이 자리잡고 있었다. 여전히 제주도에서는 차별이 진행되고 있고, 본토 방어를 위해서 제주도에 해군 기지를 만들고, 본토인들의 휴가를 위해 관광지로 개발되고 있다. 그 어떤 산업 기반도 없기 때문에 제주도는 여전히 관광 수입에 의존하게 된다. 특별 자치도라는 말도 내가 보기에는 그저 제주도민들을 위로하기 위한 꼼수일 뿐이다.

 

  오키나와의 슬픔, 제주의 슬픔은 다수를 위해 희생한 소수의 슬픔이고, 그 희생도 선택이 아닌 강요이기에 그 누구의 관심도 받지 않고 있다. 오키나와도 제주도 그냥 그런 곳이다. 원래부터 그렇게 되어 있는 곳이라 여길 뿐 이 문제에 대해서 인식조차 하고 있지 못하다. 그렇기 때문에 하이사이 오지상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것도 더 정교화되고, 고착화되어 가는 시스템에 의해서 말이다.

 

  ps. 하이사이 오지상에 대해서 더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포털검색에 하이사이만 치면 하이사이 오지상이라는 완성어가 검색되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관심이 없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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