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어떻게 말할까 - 아버지와 함께한 마지막 한 해
윌리 오스발트 지음, 김희상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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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이 다소 자극적이긴 하다. 뭘 이렇게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가 생각하겠지만, 제목만으로 책의 내용을 평가하는 것은 너무 성급한 일이 아닐까? 제목을 보고 너무 성급하게 판단하는 것이야 어쩔 수 없겠지만, 난 이 리뷰를 통하여 존엄사에 대해서 이야기를 끄집어 내보고자 한다.

 

  존엄사!

 

  1.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너도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
     살기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2. 초가집도 없에고 마을길도 넓히고 푸른 동산 만들어 알뜰살뜰 다듬세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3. 서로서로 도와서 땀 흘려서 일하고 소득 증대 힘써서 부자 마을 만드세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4. 우리 모두 굳세게 싸우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싸워서 새조국을 만드세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비교적 연식이 오래된 사람들이라면 이 노래가 무슨 노래인지 알 것이다. 새마을 노래다. 박정희 대통령이 작사 작곡한 노래라고 한다.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분명히 밝혀 두고 싶은 것은 이 노래를 통하여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고자 함이 아니다. 나는 이 노래를 통하여 한국의 70-80년대를 사로잡은 정신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나는 78년 생이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이 노래를 삶의 가치관으로 삼았던 세대는 아니다. 다만 내가 어릴 때 살던 동네가 촌동네였기 때문에 이 노래를 듣고 자랐을 뿐이다. 일요일 아침이면 애향단 활동이라는 것을 했다. 당시 초등학교 아이들은 토요일에 학교를 마치고 돌아갈 때 자기 마음대로 돌아가지 못했다. 동네별로 모여서 마을 회관까지 행진을 했고, 그곳에서 헤어졌다. 아내처럼 학교가 있는 동네 아이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일요일 아침이면 함께 모여서 동네 청소를 했다. 나오지 않는 아이들은 마을의 최고 학년인 애향단장이 기록해서 선생님께 제출했고, 참석하지 않은 나는 불려가서 혼이 나곤 했다. 정식으로 혼이 나지는 않더라도 지나가는 말로 안 좋은 소리를 듣기도 했다. 내가 애향단 활동에 참석하지 않은 이유는 내가 마을을 사랑하지 않아서(지금 생각해 보면 참 웃기는 이야기다.)가 아니라 순전히 종교적인 이유이다. 그 시간에 나는 교회에 가야했기 때문이다. 가끔 일찍 모이는 날이면 동네 청소에 참여했다. 아침마다 새마을 운동 노래가 울려퍼지고, 조금 있으면 "아!아! 이장입니다."라는 말로 마을의 중요한 사안들에 대해서 전파하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것이 다 군대문화인데 그 당시에는 그것이 당연하게 생각되었다.

 

  새마을 운동 노래와 함께 마을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노래는 "잘 살아보세"였다. 새마을 운동이나 잘 살아보세나 공통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잘 살아보자는 것이다. 모든 것은 이 가치를 중심으로 움직였다. 학교 교육의 최고 목표도 인적자원 육성이었다. 사람을 자원으로 보는 것은 잘 살아보자는 사회적인 가치관이 교육에서 발현된 결과일 것이다. 이렇게 잘 살아보세를 외치던 시대 가장 중요했던 것은 보다 나은 삶의 조건이었다. 민주주의도, 경제정의도, 개인의 꿈의 실현도 잘 살아보자는 가치관 앞에 후순위일 수밖에 없었다. 86아시안게임, 88올림픽은 잘 살아보세라는 사회적인 가치관이 어느 정도 실현된 척도로 인정되어 미술시간에 호돌이를 줄기차게 그렸던 기억도 난다.

 

  이렇게 70-80년대가 지났다. 그러다가 IMF와 구조조정이라는 90년대를 만났다. 97학번인 내 동기 중에도 학비 문제 때문에 일찍 군에 가던 친구들도 있었다. 곳곳에서 실업자가 넘쳐나면서 잘 살아보세라는 가치관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사회는 여전히 웰빙에 관한 화두가 전부였다. 그러다가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웰빙이 전부가 아니라 웰다일 또한 중요한 인간적인 가치관이라는 생각이 대두되었다. 아직까지 한국에서 웰다잉은 배부른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웰다잉은 부정할 수 없는 시대의 가치관이 되었다. 존엄사에 관한 이야기들, 자녀들에게 물질적인 피해를 주지 않고 미리 장례를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상조회사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기 시작했다.

 

  웰다잉에 대해서 전혀 생각하지 않던 내가 웰다인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2001년 경이다. 비교적 일찍 웰다잉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는데 이것은 순전히 내 대학원 전공 때문이다. 대학원에서 나는 인기가 없었던 윤리학을 전공했다. 사회학과 정치학 분야를 전공할 것인가, 윤리학을 전공할 것인가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하다가 좀더 삶에 밀착되어 있는 윤리를 전공하기로 하고 대학원을 진학했는데 내용이 상상을 초월했다. 지금이야 논란은 되지만 많은 논의가 진전된 동성애 문제, 젠더 문제, 의료 윤리 문제 같은 내용들을 공부했고, 그 중에 가장 충격적인 것은 존엄사였다. 그 당시만해도 기독교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고, 이 가치관에 입각해서 죽음이란 인간에게 주어진 마지막 과정이고, 이를 인간이 함부로 결정하는 것은 인간의 월권 행위라고 생각했다. 물론 이 생각이 아직까지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내 친구들의 평가와는 달리 나는 보수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음을 이를 통하여 알게 된다.) 리뷰를 작성하는 이 순간에도 그들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것을 권장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 책은 저자가 자기 아버지가 죽음을 선택하기 1년 전의 기록들을 충실하게 기록한 책이다. 이 책을 통하여 존엄사에 대한 논리적인 근거를 찾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읽어보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헛수고이기에 하는 말이다. 이 책은 논리적인 내용도, 초지일관된 주장도 없다. 다만 저자가 아버지의 선택 앞에서 얼마나 고민하고, 반대했고, 존중했는지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흔들리고, 아버지를 원망한 이야기도 그대로 기록되어 있다. 다만 저자는 이 책을 통하여 아버지의 죽음을 앞두고 아버지와의 관계가 어느 정도는 회복되어 가고 있었기에 감사하다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본다. "인간에게 존엄하게 죽을 권리가 있는가? 그 권리를 사회에서는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존엄사에 대한 이해와 역사가 비교적 오래된 서유럽에서도 이 문제는 쉽지 않다. 저자가 말한대로 판사가 어떤 사람인가에 따라서 판결이 달라진다. 존엄사를 어느 정도 이해하는 판사를 만난다면 법적인 절차가 비교적 쉽게 이루어지지만, 혹 판사가 이 문제에 대해서 보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유족들은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낸 아픔에다가 법적으로 살인죄, 혹은 살인 방조죄까지 감당해야 하는 어려움을 떠 안게 된다. 저자도 이 부분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하고, 심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기록하고 있다.(명확하게 이렇게 기록한 것은 아니지만 문맥 속에 담긴 이야기를 관심만 기울이면 충분히 캐치할 수 있다.)

 

  사람이 태어나는 것이 자기의 권리가 아닐진대, 사람이 죽는 것 또한 자기가 선택할 수 있는 권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문제는 간단해진다. 그렇지만 그들이 평생을 통해 이룩해 놓은 삶의 지위와 가치관들이 마지막 죽음의 몇 년을 통하여 부정되거나 허물어지는 모습을 보면 이것은 그렇게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어떻게 보면 존엄사를 택한 사람은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 삶의 마무리를 직접 선택한 용기있는 사람일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이 생각에 동의하고 싶지 않다. 남겨진 사람 때문이다.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낸 남겨진 가족들은 그 빈자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반려 동물을 안락사 시킨 후에도 슬퍼하며 우울증에 빠진 사람들도 있는데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그 슬픔을 무엇으로 이야기할 것인가? 더군다나 사인을 자살이라는 단 두 글자로 기록하는 사회 속에서 그들이 떠 안아야할 고통은 또 어떻게 위로할 것인가? 가족들을 위해서라면 마지막까지 용기있게 삶을 살아주는 것이 떠나가는 자의 마지막 책임이 아닐까? 물론 뇌사나 혼수 상태라는 특별한 경우는 논외로 하자. 그것까지 이야기를 하자면 이 리뷰는 리뷰가 아니라 한편의 논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리뷰에 대해서 여러가지 댓글이 달릴 수도 있을 것이다. 내 생각을 비난하는 사람이 많을 수도 있다. 비판은 받아들이겠지만 비난은 사양하고 싶다. 다만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고 내 생각을 인정해 준다면, 그리고 좀 더 진지한 논의를 이끌어 간다면 언제든지 환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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