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대를 위한 세계사 편지 - 역사 교과서를 찢어버려라
임지현 지음 / 휴머니스트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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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기를 둬 본 일이 있는가?

 

  장기를 두다보면 이상한 일이 한가지 있다. 장기를 두는 사람도 모르는 수가 뻔히 보인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실력이 월등히 뛰어나서라는 말은 하지 말자. 내가 그 장기판에 앉는 순간 보이던 수들도 다 사라져 버린다는 현실 앞에서 그건 말도 안되는 이야기다. 여러가지 말은 하겠지만 난 그것을 옆으로 비켜선 자의 이점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자기의 이익 추구하면서 살아간다. 그것이 어떤 이익이냐, 공동체에 이익이 되느냐 자기에게만 이익이 되느냐는 논외의 문제로 하자. 일단 욕심에서 벗어난 순간 비로소 장기판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내가 장기판 앞에 서 있을 때에는 이렇게만 보이던 것도 잠시 옆으로 비켜서 보면 다르게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욕심이라는 것을 다른 말로 대체해보자. 어려운 말 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말을 빌리자면 그것은 체제 내에서 체제에 순응하는 가치관내지는 정체성이라는 말로 치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어려운 말은 쓰지 말고, 그냥 우리가 받아왔던 교육이라는 말을 사용하자.

 

  학교를 다니면서 역사가 재미있다고 느꼈던 사람이 있는가? 반대로 재미가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은 있는가? 역사가 재미가 있고 또 재미가 없는 이유가 무엇인가? 재미가 없다는 입장은 역사란 그저 외울 것 투성이라는 이유가 가장 클 것이고, 반대로 재미있다는 측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같은 과목을 두고 같은 교육을 받지만 어떤 사람은 재미가 있고, 어떤 사람은 재미가 없다. 어떤 사람은 이해는 필요없고 온통 외울것 투성이라 불평하지만 어떤 사람은 역사적인 사건을 외우기보다는 이해하는 과목이기에 좋아한다고 한다. 같은 과목을 두고 이렇게 정반대의 입장과 평가가 엇갈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비켜섬의 정도가 아니겠는가?

 

  개인적으로 난 역사가 정말 재미있다. 학생 때도 재미가 있었지만 지금도 재미있는 이유는 그것이 암기가 아닌 이해와 해석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많은 역사책들을 읽어왔지만 그것들을 자세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한 예를 들면 페르시아와 그리스의 전쟁의 자세한 양상은 모르겠다. 크세르크세스와 맞서 싸운 그리스의 장수가 테미스토클레스라는 사실도 자주 까먹는다. 그래서 글을 쓸 때마다 인터넷 자료를 검색한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누군가에게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전쟁이 재미없다고 말하지 않는다. 세계사를 공부하고 싶다면 난 반드시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전쟁을 살펴보라고 한다. 재미도 있고, 사료도 풍부하고, 해석의 여지도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사에 들어오면 약간 입장이 달라진다. 얼마전에 봤던 명량이라는 영화를 생각해 보면 이는 분명하다. 어릴 때부터 이순신 장군을 성웅이라고 교육을 받아왔었고, 내 고향이 아산이고, 외삼촌께서 현충사에서 정년퇴직을 하셨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해석이 쉽지 않다. 다르게 해석해 보려고 해도 이미 머리에 깊숙이 박힌 사고의 틀이 내 생각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나만 그러겠는가? 거의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에게는 해당이 되는 말이 아니겠는가? 이순신은 성웅이고, 원균은 나쁜 놈이며, 세종 대왕은 한글을 창제한 훌륭한 성군이며 광해군과 연산군은 할 수만 있다면 지우개로 박박 지워버리고 싶은 폭군이다.

 

  둘을 놓고 비교해 보면 이유는 분명하다. 전자는 내가 비켜서서 생각할 수 있지만 후자는 내가 비켜서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사 편지는 우리에게 비켜섬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역사를 공부하면서 지금까지 배워왔던 반쪽짜리 역사관에서 벗어나서 다르게 해석해 보자는 것이다. 그래서 일까? 이 책은 대부분의 분량을 좌파라고 불리는 사람들, 그래서 우리에게는 금기시 되었던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김일성, 맑스, 로자 룩셈부르크, 체게바라, 스탈린 등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또한 이 책은 우리가 대학 입시를 위해서 굳이 외우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에게 대해서도 말한다. 괴링, 사이드, 아렌트, 벤구리온, 무솔리니에 대해서 말한다.

 

  저자가 우리에게 이 사람들에 대한 편지 형식으로 글을 기록하고 있는 것은 그들에게 자기의 생각을 피력하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에게 이 사람들의 생애와 사고 방식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많이 낯설다. 비켜서려고 애써 노력하지 않으면 한번도 보지 못했을 수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새로운 시대를 향한 이라는 말은 타당하다. 그렇지만 편지라는 형식이 지니는 한계 때문일까 이 책의 내용을 중고등학생들이 이해하기는 힘들다. 역사적인 사건들을 줄줄이 꾀고 있지 않는 이상은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들도 있고, 그들의 사고 방식을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도 보인다. 가령 주체사상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김일성에 대한 편지라는 챕터를 얼마나 이해하겠는가? 저자도 이 부분이 신경이 쓰였는지 각주 형식으로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각주가 많으면 읽기 어렵다는 생각 때문에 선호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입시 지옥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현세대의 청소년들에게, 취업 전쟁을 겪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이 책을 읽고 내용을 찾아보는 것은 꽤나 희생을 요구하는 작업이리라.

 

  한편으로는 참신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아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저 이 책이 나에게 준 가장 큰 깨달음은 비켜서면 새로운 것이 보인다는 아주 평범한 진리이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난 이책에 별점 세개를 줬다. 읽어 볼만한 책이라는 뜻이다. 편지 형식이라는 참신한 도전이 이 책의 한계를 설정한 것 같아서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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