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들 로드 - 3천 년을 살아남은 기묘한 음식, 국수의 길을 따라가다
이욱정 지음 / 예담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잔치 국수, 파스타, 우동, 메밀 소바, 막국수!

 

  잔치집에 가면 뷔페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음식이다. 이 음식들의 특징은 국수라는 형태를 가지고 있으며, 먹기가 매우 쉽다는 것이다. 맛또한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평타는 친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자. 국수는 과연 어디에서 먼저 시작했으며 언제부터 먹기 시작했을까? 잔치국수와 막국수는 한국 음식이고, 파스타는 이탈리아 음식이고, 우동과 메밀 소바는 일본 음식이다. 짜장면과 짬뽕은 중국음식이며, 신장을 비롯한 중앙 아시아에는 라그만이라는 국수가 있다. 이 중에서 도대체 어느 민족이 어떤 이유로 국수를 먹기 시작한 것일까? 그리고 한국에서는 밀가루는 꽤나 귀한 음식 재료인데(예전 대장금에서 아주 귀한 음식 재료로 소개되었던 적이 있음을 기억해보라.) 언제부터 국수를 먹기 시작했을까?

 

  이 책은 누들(국수)이라는 음식을 문명사적으로 접근해 가기 시작한다. 어떻게 이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게 되었는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 꽤 자세하고 재미있게 기록하고 있다. 잊혀지지 않는 것은 중국에서 국수는 자국의 음식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하여 조작의 냄새가 다분한 시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초의 국수 유물인 신장 지역의 국수 유물을 놓고도 그걸 몰라서 5천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그리고 그 유물을 보여달라는 요청에 발굴 후 얼마되지 않아서 사그라져 버렸다는 웃긴 변명을 늘어 놓고 있는 모습은 꽤나 재미있어서 이번 인사 청문회를 보는 듯 했다.

 

  지난 열흘간 키르기스스탄이라는 낯선 중앙 아시아에 여행을 다녀올 일이 있었다. 구 소련 연방에서 해체된 나라로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다. 이름은 물론이거니와 그 나라의 문화에 대해서도 거의 알려진바가 없는 나라였지만 어찌어찌하여 방문하게 되었다. 가볍게 읽을 책이라 생각하고 가지고간 책은 내게 꽤나 흥미로운 사실을 가르쳐 주었다. 책이 말하는 내용을 책으로만 읽는 것이 아니라 매일 몸으로 체험할 수 있게 해 준 것이다. 무슨 말이냐면 키르기스스탄에서 가장 흔하게 먹는 음식 가운데 라그만이라는 것이 있다. 볶음 짬뽕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나는 이 음식을 먹으면서도 이 음식이 무엇인지 잘 몰랐다. 그렇게 며칠을 지낸 후 7시간을 차를 타고 가면서 꺼내든 책에는 놀랍게도 신장에서 발견된 국수 유물과 국수 음식의 종류로 내가 방금전까지 먹었던 라그만이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 라그만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먹었던 음식이고, 조리법도 오랜 시간 동안 거의 변화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내용을 접하면서 책을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읽고 체험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

 

  차를 타고 먼 거리를 이동하면서 이 길을 따라서 서쪽으로 계속 이동하면 파스타의 나라 이탈리아가 있고, 동쪽으로 계속 이동하면 라그만의 신장, 다양한 면요리의 중국을 거쳐, 막국수와 잔치국수의 한국, 우동의 일본에 까지 이르게 된다. 시대적으로 보면 라그만이라는 오랫된 음식에서부터 인스턴트 라면이라는 초현대식 음식까지 이르게 되는데 우리가 매일 접하는 한 그릇의 음식 속에, 내가 방금전까지 먹고 즐겼던 그 음식 속에 인류 문명의 태동과 접촉, 변화와 발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국수 한 그릇에 담겨 있는 인류의 문명에 감탄하고, 도보로 이동하고, 차를 타고 이동하고,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면서 국수가 내가 걸은 그 길을 걸어서 전파되었을 것을 생각하니 경이롭고, 꽤나 재미있다. 국수를 조리해 먹던 사람들이 이 중앙 아시아의 실크로드를 따라 이동했을 상상을 하면서 마치 내가 그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된듯한 느낌을 갖는 것은 지금까지 내가 경험하지 못한 독서의 즐거움이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다큐멘터리를 책을 만든 것이라 그런지 삽입된 그림과 사진들이 선명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사진에 대한 설명이 그렇게 친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 부분이 보강이 된다면 이 책은 젊은 친구들도 비교적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문화사 책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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