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의 눈물 - 아쿠타가와상 수상 작가 메도루마 슌이 전하는 오키나와 '전후'제로년
메도루마 슌 지음, 안행순 옮김 / 논형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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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학생 시절에 구리바야시 데루오의 책을 읽었던 적이 있다. "차별받는 그리스도"라는 책인데, 이 책을 통해서 일본의 또 다른 면을 보게 되었다. 구리바야시 데루오는 부라쿠민 출신이다. 일본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부라쿠민이 뭐야?"라고 의아해할지도 모른다. 나도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부라쿠민이 무엇인지 몰랐었다. 부라쿠민은 인도의 카스트 제도에서 말하는 수드라와 달리트의 중간 정도라고 하면 비슷하지 않을까? 물론 수드라보다는 달리트 쪽에 더 가깝겠지만 말이다. 우리 역사에 조금 밝은 사람은 과거 우리 나라에서 천민이라고 부르면서 인간 이하로 취급했던 무당, 백정, 노비와 비슷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우리나라에서는 근대화를 거치면서 사라졌던 이 천민이라는 신분이 일본에서는 아직까지도 존재한다는 점이다. 평등과 민주주의를 말하는 일본이지만 암암리에 신분제가 존재하고 있다. 2009년 구글 어스에서 현대 지도와 옛지도 겹쳐보기 서비스를 진행했었는데 이 때 과거 부라쿠민들이 살던 주소를 더러운 주소라면서 인터넷에 뿌려댔던 일이 있었다. 겉으로는 "그런거 없다."라는 말로 일관하지만 포털사이트에 부라쿠민이라는 단어만 검색해도 그 증거가 수도 없이 발견된다.

 

  그런데 일본에는 차별받는 대상이 부라쿠민만은 아니다. 부라쿠민은 일본 민족 내에서 일어나는 신분 상의 차별이다. 그렇지만 다른 차별의 대상들은 일본의 제국주의 때문에 발생한 민족적인 차별이다. 그 차별의 대상은 북쪽으로는 아이누, 남쪽으로는 오키나와, 서쪽으로는 조선이다. 이 세 민족은 여전히 차별을 받고는 있지만 그 처지와 형편은 다르다. 조선은 남과 북으로 갈라져 있기는 하지만 자신들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북한과 대한민국이 존재한다. 재일 조선인들이나 그들의 지인이라면 이의를 표할 수도 있지만 내가 보는 견지에서 세 민족 중에 가장 형편이 낫다. 비록 정치적으로 애매한 상황이기는 하지만 최소한 소통하고 비빌 언덕이라도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래봐야 일본 사람들에게 거기서 거기이지만 말이다. 일본의 가장 북쪽인 북해도와 사할린에 거주하는 아이누는 솔직하게 존재를 잘 모르겠다. 자기가 아이누이기를 밝히기를 꺼려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아이누의 인구가 정확하게 얼마나 되는지도 잘 모른다고 한다. 반대로 남쪽으로 내려오면 이 책의 주인공 오키나와가 있다.

 

  오키나와는 원래 류쿠국으로 불리던 독립국가였다. 류쿠국이라는 이름이 조선의 실록에도 분명하게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꽤 오랜 역사를 가진 나라임이 분명하다. 오키나와는 19세기 초에 일본에 합병된 아이누보다 조금 늦게 19세기 후반에 일본에 합병되었고 일본이 되기를 강제당했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온갖 차별을 받으면서 철저하게 일본인이 되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들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여전히 그들은 일본 내에서 이등시민이다. 전시에는 강제로 동원되어 총알받이가 되었고, 2차 대전이 끝난 후에는 주일 미군 기지에게 땅을 내어 주어야 했다. 어찌보면 일본의 평화 헌법과 번영은 저자의 주장대로 오키나와의 눈물을 전제로 이루어졌다고도 볼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나는 오키나와를 통하여 제주를 만나게 된다.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듯이 제주도는 처음부터 대한민국의 영토가 아니었다. 간간히 정부에서 관리를 파견하기도 했지만 꽤 오랜 시간 탐라라는 이름의 독립국가로 존재하다가 세종 대에 이르러 탐라의 귀족을 평민화하면서 완전하게 합병되었다. 이런 역사의 배경을 가져서일까 제주도는 한국의 오랜 역사 동안 많은 눈물을 흘려야 했다. 몽골의 지배를 받을 때에는 말을 생산하는 기지로, 조선 시대에는 유배지로 이용되었으며, 대한민국 건국 초기에는 순전히 정치적인 목적으로 핍박을 받았다. 제주도 인구 9명 중 1가 죽을 정도로 대량 학살이 일어났던 4.3 사건 말이다. 이것 때문에 오늘날에도 제주도에서는 한 마을에 제삿날이 같은 집들이 꽤 여러집이라고 한다. 이런 제주의 아픔 보듬고 치유하는 과정 없이 어느새 제주도는 오키나와처럼 환상의 섬, 남국의 섬으로 불리면서 관광지로 개발되었다. 관광 외에 다른 사업들은 설 자리를 잃게 되었고 그 결과 청년 실업이 가장 높은 곳의 하나가 되었다. 제주도의 시련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철저하게 오키나와가 걸었던 길을 따라간다. 제주도에 해군 기지 건설이 진행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제주도 원주민의 목소리는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다. 공권력으로 밀어 붙이고, 폭탄으로 제주도민들이 신성하게 여기던 구럼비를 깨버리면 될 뿐이다. 일등 국민과 이등 국민처럼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논리가 철저하게 강요된다. 물론 대한민국 본토인들의 관심은 희박하다. "멀리 제주도인데, 지금 나와 상관이 없는데, 나라를 위한다는데 저런 것쯤 못해주나?"라면서 그들에게 침묵으로 희생을 강조한다.

 

  어쩌면 그렇게 오키나와와 제주도가 닮아 있는지 모르겠다.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먹먹했던 까닭이 이것이다. 오키나와와 제주, 제주와 오키나와! 그 둘은 어쩜 그렇게도 슬픈 운명을 닮았는지...오키나와가 아직 전시이듯이 제주도 아직 전시이다. 그들의 전쟁이 끝나지 않아 지금도 흘리고 잇는 눈물을 닦아 주는 것은 그들의 희생으로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의 의무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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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ne_Hebuterne 2013-08-17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종으로 횡으로, 사람의 역사에는 종종 닮은 꼴이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어이없게 침략에 성공한 피사로나 아메리카 인디언을 악랄하게 눌러버린 유럽인들을 생각나게 하는 글. 사람들은 차별받아 고슴도치를 잡아먹는 집시나 소를 먹는 인도인, 쓸개나 못먹다 버린 내장을 먹는 부라쿠민으로 드러나곤 하는 것 같아요. 그러고보면, 많이들 잊고 살기도 하지요. 4.3 사건은 영화 지슬에서도 다루었다고 하던데 어쩐지 saint236님은 그 영화도 보셨을 듯한 느낌! (혹시나 안보셨으면 앞으로 보시면 좋아하실 듯한 느낌!-을, 복숭아 나무 있지?-없는데요-있었으면 큰일날 뻔 했어! 버전으로 덧붙입니다.)

saint236 2013-08-17 16:50   좋아요 0 | URL
소개만 받고 아직 보지는 못했는데 꼭 한번 봐야겠네요. 구리바야시 데루오라는 신학자를 통해서 부라쿠민에 대해 처음 접하고 얼마나 놀랍던지요. 전혀 생각도 못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