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조 사코 지음, 함규진 옮김 / 글논그림밭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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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만약 당신이 투명인간이 된다면?"

 

  많이 들어 본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변 중 항상 빠지지 않는 것이 "여탕에 들어가 보겠다." "김태희(연예인의 이름만 바뀔뿐) 집 주소를 알아서 무조건 들어가겠다."라는 것이다. 할로우 맨이라는 영화에 이와 유사한 장면이 나온다. 투명인간이 된 남자 배우가 맞은편에 사는 여자(물론 외모와 몸매가 남다른)의 집에 들어가 화학적 거세가 필요한 행동을 한다. 흔히 투명인간이 된다는 것은 인간의 욕망을 제어하는 윤리라는 시스템으로부터 해방되는 초인처럼 취급된다. 폴 베호번 감독의 할로우맨에서는 다만 악역으로 나올 뿐이지 원래 투명인간도 슈퍼 히어로이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자기가 원해서, 혹은 인간 이상의 존재로 투명인간이 되는 경우에만 해당한다.

 

  반대의 경우로 투명인간이 되는 경우에는 투명인간이 된다는 것은 인간 이하의 존재가 된다는 것, 그 존재감이 공기보다 더 가벼운 존재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느 초등학생이 지은 시가 있다. 한번은 들어봤을 법한 시이다.

 

  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엄마가 있어 좋다. 나를 예버해 주셔서,

  냉장고가 있어 좋다. 나에게 먹을 것을 주어서.

  강아지가 있어 좋다. 나랑 놀아주어서,

  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내용이 씁쓸한 것은 둘째 치고 이 아이에게 아빠는 얼마만큼의 가치를 가지는 존재이냐를 따져보자. 엄마와 경쟁하는 것은 둘째치고, 강아지나 냉장고보다 못한 존재가 아빠인 것이다. 이 아이의 일상에서 아빠는 투명인간이 되어 버린 것이다. 아빠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왕따라는 현상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냥 한 아이를 다수의 사람들이 투명인간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그의 몸이 실제로 투명해 진 것이 아니라 그들의 모임 속에서 무시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존재하지만 그 존재를 인정맏지 못하는 존재! 이 얼마나 폭력적인 상황인가?

 

  이스라엘의 팔레스탄인에 대한 정책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투명인간 만들기"라고 하겠다. 분명히 오랜 세월 동안 그 땅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왔지만, 이스라엘 정부는 그들을 인정하지 않았다. "땅이 없는 민족에게 땅을, 민족이 없는 땅에게 민족을"이라는 슬로건은 이러한 이스라엘의 생각을 대변한다. 사람들이 살고 있을지라도 집을 허물어 뜨리고, 올리브 나무를 스스로 베어 버리게 만들고, 팔레스탄인의 역사를 전혀 가르칠 수 없게 만드는 것은 팔레스타인을 세상에서 지워버리려는 의도가 아닌가? 물론 그들이 완전히 지워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럴 수도 없다. 다만 그들과 직접적인 접촉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우리와 같이) 팔레스타인의 존재감을 아주 희박하게 만드는데에는 성공했다.

 

  이스라엘과 영토 분쟁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 외에, 실제로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들은 어떤 문화를 가지고 있는지, 왜 영토 분쟁을 일으키는지, 유엔은 그들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 등등 자세한 내용은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 것이 팔레스타인에 대한 우리의 모습이 아니던가? 그러면서도 교회에서는 이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이스라엘을 편들고 있으며, 미국이 편드는 이스라엘을 편드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를 고수하고 있지 않는가? 게다가 조갑제나 지만원 같은 이들에게 이스라엘은 한국이 닮고 싶고 닮아야 하는 국가로 예찬받지 않았는가? 작지만 주변 아랍국들을 앞도하는 전투력, 잘 정비된 예비군 제도, 국가를 위해 목숨까지 버리는 애국심 등 이스라엘에 대한 예찬은 그렇게 낯선 것들이 아니다. 거기다 더하여 탈무드가 자녀교육의 대안으로 대두되고 보니 이스라엘은 우리에게 절대 선이요, 닮고 싶은 존재가 되었다. 여기에 동의하지 않고 이스라엘을 절대 악으로 규정하면서 프리메이슨의 음모론을 외치는 이들에게 있어서도 이스라엘은 그렇게 낯선 존재는 아니다. 그렇지만 그 어디에도 팔레스타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영토 분쟁을 일으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팔레스타인은 투명인간이 되어 버렸다.

 

  존 사코는 이렇게 투명인간이 되어버린 팔레스타인의 존재감을 소환한다. 팔레스타인이라는 제목만 보고 존 사코가 팔레스타인을 일방적으로 편들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해다. 그의 책을 읽다보면 팔레스타인 소년들에게 삥 뜯기는 장면이라든지, 내가 봐도 한심스러운 팔레스타인 남자라든지, 무시되고 있는 팔레스타인의 여성 인권의 현주소가 있는 그대로 표현되고 있다. 그가 걷어다닌 팔레스타인 땅은 지저분하고, 초라하며 도로 한복판에 물 웅덩이가 생기기 일쑤이다. 가는 곳마다 대접하는 설탕 범벅 차는 보는 내 속도 니글거리게 만든다. 감옥 다녀온 사실을 자랑스럽게 말하면서 다른 이들을 우습게 보는 사람들의 오만과 편견, 떠벌림은 그저 웃음만 나오게 만든다. 그렇지만 바로 이런 부분들 때문에 나는 이 책을 꽤나 재미있게 읽었다. 그리고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상당 부분 신뢰하게 되었다. 왜? 존 사코는 이스라엘에 의하여 투명인간이 되어 버린 팔레스탄의 일상을 담담하게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분쟁지역, 그래서 사람들에게 아마겟돈이라고 불리는 이스라엘!

  분쟁과 갈등, 민족주의, 폭력, 인간의 존엄에 대한 무시 등등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악한 것들이 뒤범벅되어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평화의 성이라를 이름을 가진 예루살렘!

  과연 우리는 이곳에 대해서 얼마만큼 알고 있는가? 얼마나 알려고 노력하고 있는가?

  어느 한편을 편들기 전에 먼저 이곳을 알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특히 이스라엘을 편들고 싶은 사람이라면, 혹은 지금 이스라엘을 편들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노력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이스라엘의 논리에 빠져서 팔레스타인을 투명인간 취급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한번 살펴보자.그리고 난 후에 조심스럽게 판단해 보자. 이것이 동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이 지역에 대해 가져야할 최소한의 양심이 아니겠는가? 조금 더 자세히 알고 싶은 사람은 "울지마 팔레스타인(시대의창/홍미정,서정환)"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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