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 교양강의 돌베개 동양고전강의 9
가이즈카 시게키 지음, 이목 옮김 / 돌베개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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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이 한비자 열품에 휩싸여 있다. 기껏해야 한길 그레이트 북스의 한비자밖에 모르던 내가 돌베개에서 한비자 교양강의가 나오면서 한비자에 관한 책들을 검색해보다 말 그대로 깜놀했다.

 

  "한비자/인간사랑, 글항하리, 베이직북스, 한길사, 북팜, 풀빛, 신원문화사, 새벽이슬, 홍신문화원" "한비자의 관계술" "한비자의 권력기술" "한비자 피도 눈물도 없는 생존전략" "노자와 한비자의 제황학 후흑학" "세상의 이치를 담은 한비자" "만화 한비자" "한비자의 인간경영" "한비자가 나라를 살린다" "성공하는 CEO" "한비자가 들려주는 상과 벌 이야기" "왜 원하는대로 살지 않는가" 대충 뽑은 것이 이 정도이다.

 

  이 책들의 면면을 살펴보면서 깨닫는 놀라운 사실은 한비자를 주로 다루는 곳은 처세술 혹은 자기계발 분야이다. 이들은 한비자를 통하여 세상에서 성공하는 방법에 대해서 무언가 대단한 것을 가르쳐 주는 것처럼 책을 찍어낸다. "왜 원하는 대로 살지 않는가, 성공하는 CEO"처럼 제목만 봐도 자극적인 책들이 넘쳐난다. 이런 책들은 한비자를 동양의 마키아밸리라고 정의내린다. 어떤 책에서는 마키아밸리보다 한비자가 앞서니 한비자를 동양의 마키아밸리라고 부르는 것은 옳지 않다 오히려 마키아밸리를 서양의 한비자로 부르는 것이 옳다고 주장한다. 엎어치나 메치나, 하얀 말 엉덩이나 White Horse' hip이나 매한가지다.

 

  한비자를 권력을 얻기 위한 냉혹한 지침서 혹은 마키아밸리즘의 연장선에서 읽는다면 한비자를 제대로 오해하게 된다. 요즘 대한민국의 한비자 열풍을 바라보면서 이건 아닌데라면서 걱정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마키아밸리즘의 연장선에서 한비자를 읽고, 그것을 장려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한줌의 권력을 얻기 위하여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장려하고 있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한비자 교양 강의는 한비자에게서 음습한 마키아밸리즘을 걷어내기 위해 노력한다.

 

  한비자를 일컬어 법가의 철학을 집대성한 사람이라 한다. 사마천의 사기를 통하여 한비자는 순자의 문하요, 이사와 동문수학한 사람으로 이해하지만, 이 책에서는 이 부분에 대하여 의문을 표하면서 그들이 동문수학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한비자는 순자의 문하라기 보다는 노자에게서 더 큰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한비자 사상의 핵심은 법과 술과 세라고 하겠다. 한비자는 상앙으로부터 법철학을, 신불해로부터 법을 운용하는 술의 철학을, 신도로부터 법과 술을 유지하는 세의 철학을 배웠고 발전시켰다. 법이란 원칙을 말하며, 술이란 원칙을 운영하는 기술을 의미하고, 세란 법과 술을 유지하고 운용하는 권세와 권력을 뜻한다. 법과 술과 세라는 것이 따로 독립된 것이 아니라 적절하게 균형을 이루고 집행이 되어야 국가가 강대국이 될 수 있다는 것이 한비가 한비자를 통하여 하고 싶은 말이다. 흔히 한비가 말했던 신하를 다스리는 방법, 국가를 부강하게 하는 방법같은 것들은 술에 속하는 것으로 법을 바로 세우기 위한 단편적인 방편일뿐이다.

 

  한국에서 한비자가 열광적으로 읽히는 이유가 무엇인가 생각해 본다. 개인적으로 판단하기엔 두 가지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첫번째는 우리 사회가 무한경쟁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홉스가 이야기했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그리고 그 안에서 승리하는 것이 미덕이 되는 사회 속에서 남보다 한발 앞서기 위해서 한비자만한 것이 없다. 한비자의 술이라는 부분, 특히 군주가 신하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라는 부분에 집중하게 되면 이보다 더 효과적인 처세술은 없다. 나의 마음을 숨기고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다면 상대방을 조종하고 이용하기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비자에 대해 오해하는 사람들이 주로 이 부류에 속한다. 아마 한비자를 열독하는 사람들 가운데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 부류에 속할 것이다.

 

  두번째는 현실의 문제에 대한 대안을 한비자에게서 찾는 것이다. 한비는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약해져만 가는 조국 한나라를 강대국으로 만들기 위한 대안으로 법치를 주장한다. 한비의 법치는 위에서 이야기한대로 법과 술과 세가 균형을 이루는 고도의 정치적인 행위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비의 법철학을 따라가다보면 도라는 종착점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법과 술과 세, 즉 원칙과 운용 기술과 이를 뒷받침하는 권력, 이것이 어우러질 때 국가는 비로소 국민을 편안하게 하고 순리에 맞게 통치가 된다. 한비의 이야기가 너무 이상적이니 비현실적이니 하는 이야기는 뒤로 미뤄두자. 원래 학자들의 이야기는 이상적인 것이 당연하니 말이다. 한비의 법치라는 것을 오늘 한국에 가져와보자. 법을 강조하지만 세만 있는 새누리, 법도 술도 없고 세만 있는 민주당, 법만 있는 통진당, 진보 정의당, 진보신당, 법도 술도 세도 없는 안철수(이제 막 정치에 입문한 그이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기에 판단을 잠시 유보한다.)! 어디에 대안이 있을까? 도대체 우리는 어디에서 대안을 찾아야 하는가? 소수의 사람들은 아마도 이런 고민으로 한비자를 열독하는 것이리라.

 

  한비자가, 고전이 대중들에게 많이 읽힌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마냥 좋아할 수만 없어서 몇자 끄적여 본다. 한비자의 내용에 대해서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기 전에 먼저 한비자를 읽을 것을(개인적으로는 한길사의 한비자를 선호한다.)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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