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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조건 - 꽃게잡이 배에서 돼지 농장까지, 대한민국 워킹 푸어 잔혹사
한승태 지음 / 시대의창 / 2013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가난의 역사가 뿌리 깊다는 말일 것이며, 가난을 없애기 위해서 많은 정책들을 내놓았지만 그것들이 어느 것하나 유효하지 않았다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이 가난에 대한 더 적절하고 유효한 정책을 찾아내야 한다는 의미보다는 포기해야한다는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봤는데 가난이라는 것이 없어지지 않더라. 이런 것으로 보아 정책의 문제라기 보다는 개인의 문제일 것이다라는 것이 가난을 바라보는 우리의 일반적인 시선이며, 가난에 대한 뿌리깊은 고정관념이 아닌가?
그 결과 청년 실업을 외치는 이들에게 "바보야, 그것은 너희들이 제대로 일하지 못해서야, 너희들이 공부해야할 때 하지 않아서 그런 거야, 너희들이 게으른 거야."라는 말로 정죄하지 않았던가? 일자리를 찾지 못해서 알바를 전전하며 그렇지 않아도 힘들어하는 청춘들에게 좀더 열심히 해봐라 실력이 없으니까 그런거야 실력을 키워라는 김미경, 혹은 이지성 식의 호통을 치든지, 아니면 괜찮아 이러다가 나아질거야라는 김난도 식의 위로를 건네면서 우리는 할일을 다했다고 뒤짐을 지고 있는 것이 오늘날 청년 실업을 바라보는 모습이 아닌가? 물론 너희들 왜 그렇게 살아 힘들다고 짱돌이라도 집어던지면서 발악이라도 해봐라는 우석훈 식의 훈수도 있지만 모두다 공허한 이야기일뿐이다. 그 어떤 것도 청년들에게 위로도 되지 못하고, 그들의 지친 삶에 조금의 힘도 보태주지 못한다. 비단 청년뿐이겠는가? 열심히 살면 언젠가는 나아지겠지, 다시 재기할 수 있겠지, 쨍하고 해뜰날이 오겠지라는 희망을 품고 오늘도 일터로 나가지만 그 믿음에 배신당하는 수없이 많은 우리 친구들이 있고, 아버지들이 있지 않은가? 그들에게 우리는 어떤 위로를 주고 있는가? 우리 사회는 얼마나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언제부터인가 노동 유연성이라는 말이 경제계에서 성서가 되어 버렸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노동 유연성이 있어야 한다, 수출로 먹고 사는 한국 경제가 퇴보되지 않기 위해서는, 중국과 경쟁해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생산 단가를 낮추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인건비를 낮출 수 없다는 주장이 한국 경제의 황금율이 되어 버리지 않았는가? 그리고 그 황금율 아래에서 복지 혜택도 사라지고, 수당도 깎이고, 저임금 고강도의 노동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노동자들의 의무이자 책임이 되어버리지 않았는가?
그렇지만 그 결과가 무엇인가? 사상 최대의 무역 흑자를 냈다는 신문 기사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삶의 질은 낮아지지 않았는가? 누구의 말대로 살림살이 좀 나아졌는가? 사회 생활을 시작하기도 전에 수천만원의 빚을 지고 시작하는 사회 구조가 올바른 것이기나 한가? 능력도 없으면서 왜 대학가냐고 몰아붙이기 전에 대학을 나오지 않고는 왠만한 일자리조차 찾을 수 없는 사회를 탓하지 않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도대체 물건을 생산하는 현장직에서 일할 사람을 찾으면서 토익과 토플 점수를 보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그 물건을 생산해서 직접 외국에 나가서 팔고 오기라도 하나는 소리인가?
월가를 점령하라는 말을 마치 "김정일 장군 만세"인 것과 동일할 정도로 빨갛게 포장하는 것은 옳은 일인가? 기본급을 조금만 올려달라는 말이, 복직시켜달라는 말이 빨갱이들의 투정으로 둔갑하는 것은 옳은 일인가? 외국 사람의 노동의 배신이라는 책에 대해서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인간의 조건이라는 책에 대해서는 삐딱하게 생각하는 것은 과연 옳은 일인가?
곳곳에서 바겐세일이 성행한다. 1+1이 아니면 물건을 팔기도 힘들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자꾸 싼 것을 살 수밖에 없는 주머니 사정 때문이리라. 그렇지만 아무리 싸구려를 사려고 노력하고, 싸구려를 먹고 입을지라도 사람이 싸구려일 수는 없다. 사람은 사람이다. 세상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돈으로 살 수 없는 존재다. 이 사실이 부정되는 사회는 정상이 아닌 사회요, 시대에 역행하는 사회가 된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사회가 꼭 이렇다. 사람은 돈으로 부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참 때려놓고 돈으로 무마하는 사람들이나, 법을 위반해 놓고 사회에 재산을 기부하면 정상참작이 되고 용서받을 거라 생각하는 사회가 사람을 사람으로 보는 사회일리는 없다.(물론 그렇다고 해도 제대로 재산을 사회에 기부한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인간의 조건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딱 한가지다. 우리가 사는 세상 속에서 사람 값이 참 싸다는 것이다. 돼지보다 사람값이 싸고, 오이보다 사람값이 싸고, 편의점 물건보다 사람값이 싸다. 50원 올려주면서 대폭 임금을 인상했다는 말이 우습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현실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인간의 조건이 무엇일까?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이 무엇인가? 묘하게도 책 제목이 아렌트의 제목과 일치한다. 나치에게 유대인이 사람일리 없었던 것처럼, 이 사회 속에서 일용직이, 비정규직이 사람일리는 없다. 그러니 자꾸 높은 곳으로 올라간다. 나를 사람으로 봐달라고 절규하면서 말이다. 나꼽사리의 노래가 자꾸 떠오른다. 씁쓸한 마음으로 나꼽살 노래 가사를 적으면서 달래본다.
yeah 완벽하신 가카께
도둑적으로 완벽하신 가카를 위해서
밤잠까지 설쳐가며 용감한 넷이 뭉쳐
정치에겐 쫄지마 또 경제에겐 속지마
세상이 밝아질 때까지 끊임없이 외친다.
국민에겐 헛소리 다 들켜놓곤 큰소리
나꼽살이 밝혀내는 권모술수 눈속임
사람값이 싸구려인 물질만능 사회
빚더미에 파묻혀버린 희망은 어디에
당신이 골프장 룸싸롱에서 미소 짓고 있을 때
우리 아들들은 몇 년 지난 중국쌀로 밥을 져
세금으로 재테크를, MBC에서는 공화국
못살겠다 못참겠다 도대체 이게 뭐냐고
강자아들이 약자아들을 가지고 노는 게임
싸우고 부딪쳐봐도 처절히 정해져 있는 선택
모두가 원하는건 그저 작은 희망인데
이미 병든 나라는 우리를 씹어 뱉어 black Korea
지금은 위급함의 챕터
90%가 개털되는 미쳐버린 괴물
인생을 게임으로 바꾼 가카에게 외쳐
도둑적으로 완벽한 당신이 바로 챔피언 black Korea
지금은 위급함의 챕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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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게임으로 바꾼 가카에게 외쳐
도둑적으로 완벽한 당신이 바로 챔피언 black Korea
yo ha ha 나는 꼽사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