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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표, 역사를 부치다
나이토 요스케 지음, 안은미 옮김 / 정은문고 / 2012년 6월
평점 :
나는 1978년 생이다. 내 나이 또래의 사람들 치고 초등학교 시절에 우표 수집을 안해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어릴 적 집으로 날라오는 우표들을 보는 족족 살살 뜯어 냈던 기억이 있다. 풀로 붙였기 때문에 살살 뜯어 내도 찢어지기 일쑤였다. 찢어진 우표를 보면서 얼마나 아까웠던지... 나중에 우표를 안찢어지게 잘 뜯어 내는 방법을 알애 내곤 얼마나 좋았던지 모른다. 우표가 붙어 있는 부위의 종이를 약간 크게 잘라내어 물에 약간 담궈두면 우표가 깨끗하게 떨어졌는데 이것을 가져다가 손수건 사이에 넣고 다리미로 다리면 정말 감쪽같이 수집용 우표가 탄생했다. 초등학생이라 우표를 수집하기 위해서 산다는 생각은 전혀 못했었고, 우표 수집은 집에 온 편지 봉투에서만 뜯어 내는 것이라 생각했다. 꽤 열심히 못았고, 1960년대 크리스마스 씰까지 모아진 우표 수집첩을 보면서 꽤나 만족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 그 우표수집첩은 앨범과 함께 박스에 고이 간직되어 있다. 요즘이야 우표 수집 취미가 많이 줄어들었지만 당시만 해도 취미의 3대 천왕은 음악감상, 우표수집, 독서였다. 요즘은 우표수집 대신에 영화 감상이 그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말이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어린 시절에 그렇게 애를 써서 떼어낸 우표보다 더 가치가 있는 것이 우표만 떼어내는 것이 아니라 소인이 찍힌 우표가 붙어 있는 봉투째 모으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되면서부터 소위 말하는 멘붕이라는 것을 겪었고, 우표 수집의 취미를 접게 되었다. 왜 그게 더 가치가 있는 것인지 이유를 몰랐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소인이라는 것은 그냥 사용된 우표입니다라는 의미가 아니라 그 안에 당시의 문화와 사회적인 흔적이 남겨지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흔적을 밟아가면서 당시 사회의 분위기를 재구성해 나가는 것이 소위 말하는 우편학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우편학에 관한 이야기이다. 반미라는 주제를 우표를 통해서 풀어나가는 모습이 꽤 흥미롭고, 쉽게 접하지 못했던 다른 나라의 우표에 대해서 알게 된 것 또한 소소한 재미이다. 거기에다 더하여서 내가 접해보지 못했던 우표들 중에는 통용이 금지된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 또한 꽤나 흥미로운 사실들이다.
이 책의 결론은 간단하다. 우표는 단순히 우편행정의 매개물이 아니라 정치 권력의 홍보 수단이 된다는 것이다. 더 간단히 말하자면 우표 또한 정치수단이라는 말이다. 우표를 발행하고 사용하는 것, 우표를 수집하는 것들이 모두 알게 모르게 그 안에 숨겨진 정치적인 의도를 소비하고 동조하는 행위이다. 이 사실을 깨닫고 우표 수집책들을 가만히 훑어 본다. 쉽게 접해보지 못했던 중국 우표가 어느 순간인가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는 것은 우리나라가 대만이 아니라 중국과 수교를 시작했다는 외교적인 단면을 보여준다. 보현산 천문대 준공 기념 우표는 우리나라의 천문 과학 기술이 얼마만큼 발전해 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며, 올림픽 우표는 자랑스러운 한국이라는 이미지를 담고 있다. 대통령 취임 기념 우표는 말할 것도 없고, 광복절과 삼일절 근처에 발행되던 유관순, 윤봉길, 광복기념 우표가 어떤 의도를 담고 있는지도 분명하다.
국가의 정책을 홍보하는 우표도 있다. 자녀정책, 독도우표, 자연보호 우표, 육영수 추모 우표 등등 각각의 우표가 담고 있는 정치적 의미는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너무나 섬뜻하다. 육영수 여사라는 영화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에 대해서 그렇게 촉각을 곤두세우던 사람들이 육영수 여사 추모 우표를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했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문득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우체국 홈페이지에 들어가 검색을 해본다. 아니나 다를까 걸리는 것이 하나 있다.
4대강 살리기 기념 우표다. 4대강에 비판적인 사람들도 간과하고 넘어갔던 사안이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정부는 우표를 통하여 4대강 사업을 4대강 살리기라는 말로 잘 포장을 했다. 우표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떤 스탠스를 취하든 간에 4대강 정책을 홍보하는 1인 미디어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고 있는 샘이다. 역시나 꼼꼼하다. 정치라는 것이 삶과 절대로 떨어질 수 없다는 말이 여기에서도 증명된다. 잠시라도 긴장을 늦춘다면 이런 식으로 치고 들어오니 당해낼 재간이 없다.
지금 당장 우편물을 살펴보시라. 혹은 우표 수집 책을 열어 보시라. 그리고 그 우표 안에 담겨진 의미들을 파악해 보라. 깜작 놀랄만한 내용들이 그 안에 담겨 있을 것이다. 한때 우표를 수집했던 사람들이라면, 현실에 대해서 조금더 꼼꼼하게 의심을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기를 권한다. 꽤나 흥미로운 시간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글솜씨가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니 지루함을 이겨낼 결심 또한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