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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왼쪽에서 가장 아래쪽까지 - B급 좌파 김규항이 말하는 진보와 영성
김규항.지승호 지음 / 알마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예전에 써클실에 그려져 있던 벽화가 있다.(개인적으로 동아리라는 말이 잘 안나온다. 그래서 편하게 써클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예전에 한번 서평을 쓰면서 인용했던 기억이 있는데 정확하게 어디에다 사용했는지 잘 몰라서 대충 넘어간다. 아이들이 굴렁쇠를 굴리고 있는 그림 밑에 "멈추면 서는 것이 아니라 넘어집니다."라는 글이 적혀 있다. 스무살 대학 1학년이던 시절 고향 선배들이 밥 한번 사주고, 써클에 놀러 오라고 했다. 그렇게 찾아간 지하실에 위치했던 써클실의 분위기는 나로 하여금 절대로 이곳과 친해지면 안되겠다라는 생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이런 나의 생각을 돌려 놓은 것이 있으니 바로 벽에 그려져 있던 그림이다. "멈추면 서는 것이 아니라 넘어집니다."라는 글귀는 내 뇌리에 깊이 각인되었고, 이 써클에는 무엇인가 있다는 기대감을 주었다. 그렇게 시작한 써클에서 매일 선배들에게 아메바 취급을 당하면서 변유가 어떻고, 사유가 어떻고, 사구체가 어떻고 등등등... 그렇게 15년이 지났다. 그 당시 선배들의 소식이 들릴 때마다 씁쓸함을 감출 수 없던 적이 종종 있었다. 어떤 선배들은 배움과는 상관없는 직장 생활을 시작했고, 어떤 선배들은 김문수의 변신과 맞먹는 변신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씁쓸한 기억은 이런 것이다.
써클의 대선배와 같은 분이 있었다. 86학번이니 대선배이다. 나랑 11살 차이니 거의 우러러봐야 하는 대선배다. 그 선배 부인이 89학번이다. 87학번 선배와 고향이 같았고, 한때 같은 사무실에서 일했었기 때문에 종종 아이들을 대신 봐주면서 보모 노릇도 했다. 형, 누나로 부르면서 오랫동안 친분을 유지했다. 군 제대후 2년 쯤 지나서 전화 통화를 하다가 누나에게 참 씁쓸한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 촛불 집회가 한참이었는데 형이 뉴스를 통해 그 장면을 접하고 "우리나라는 종북좌파가 넘쳐나서 큰 일이다."라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설마 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후배들에게 변유, 사유, 맑시즘을 공부시키는 써클에서 촛불집회를 보면서 좌파 운운하는 것은 쉽게 납득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나도 깜작 놀라서 어떻게 그런 말을 하냐고 즉각 반문했지만 형의 생각은 확고했단다. 그 이후 여러가지 일을 겪으면서 둘은 이혼을 했고, 형과의 연락은 끊긴 상황이다. 연락처를 안다고 해도 선뜻 연락하기 힘든 상황이기에 굳이 연락처를 알아내려고 노력하고 있지는 않다.
한때는 실망감으로, 한때는 씁쓸함으로, 한때는 배신감으로 다가왔던 형의 변신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을 던졌다. 왜 그랬을까? 원래 보수적인 사람이라서? 그 사이에 많은 것을 가져서? 생가이 갑자기 확 바뀌어서? 일정 부분 맞는 대답이기는 하겠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그 형이 그렇게 급작스럽게 바뀌게 된 것은 멈추어 섰기 때문이다. 넘어지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고 달려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현실에 안주해 버렸기 때문이다. 사람은 나이를 들면서 자연스럽게 보수주의가 되는 성향이 있기 때문에 꼴통 보수가 되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사고를 유연화시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치적인 색깔이 약간 다를 뿐이지 행동에 있어서는 똑같이 독선적인 모습이 된다. 약간 다른 정치적인 색도 진보냐 보수냐를 나눌 정도가 아니라 급진이야, 약간 급진이냐, 극우냐 우냐를 나눌 정도로 차이가 거의 없다. 그것을 가지고 좌냐 우냐, 진보냐 보수냐 운운하는 것은 개미가 웃다가 허리 부러질 이야기이다.
지승호가 김규항을 인터뷰했다. 개인적으로 이런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왠지 그냥 날로 먹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다. 그럼에도 이 책을 사서 읽은 이유는 김규항과 지승호라는 인터뷰이와 인터뷰어 때문이다. 두 사람이 아니었다면 절대로 구매하지 않았을 것이고, 읽지도 않았을 책인데 여기에 더하여 50% 세일까지 해주시는 알라딘의 따뜻한 배려에 얼른 집어 오게 되었다.
김규항은 참 독특한 사람이다. 대한민국 사상지도에서 가장 좌편에 위치한다는 그이지만 그의 생각이 그렇게 폭력적이지도 않고 위험하지도 않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가장 좌편에 위치한 사람일까 생각이 들정도이다. 그런 그를 가장 좌편으로 밀어 붙인 이유는 그가 제시하는 좌와 우를 가르는 기준이 신자유주의이기 때문인 것 같다. 민주당을 보면서, 열린우리당을 보면서 좌파라고 부르는 한나라당의 공격과 스스로 진보라 부르는 민주당의 모습을 보면서 김규항은 "웃시고 자빠지네"라는 독설을 날린다. 물론 직접적으로 이런 워딩을 사용하지는 않지만 뉘앙스는 충분하다. 그의 기준에 의하면 노무현도, 김대중도 좌일 수 없고, 진보일 수 없다. 시장 자유주의자일 뿐이지 진보나 좌파가 될 수 없다는 그의 생각에 나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예전부터 노무현 대통령, 민주당을 보면서 진보라 부르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생각해 왔던 차에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나만이 아니구나라는 위안을 얻게 된 것도 이 책이 주는 하나의 위안거리다.
김규항의 또 다른 독특함은 그의 좌파관에 달려 있다. 그는 특이하게 한신대학교 출신이다. 한신대학교 출신이라는 것이 특이한 것이 아니라 좌파 진영에 남아서 운동을 하면서도 한신대학교라는 타이틀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흔히 좌파 운동과 진보 운동은 기독교 신앙과 어울릴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 정부 들어 이런 생각은 더 심해졌다. 아무리 대단한 일을 해 낸다고 할지라도 일단은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이 기독교에 대한 좌파의 태도인데 김규항은 이런 것에 전혀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자신은 기독교 신앙이 좌파 운동에 큰 에너지를 준다고 말한다. 자기를 끊임없이 성찰하지 않는 진보는 변질되는데 자기에 기독교 신앙은 자기를 성찰하게 만든단다. "하루에 30분도 기도하지 않는 혁명가가 만드는 세상은 위험하며 혁명을 도외시하는 영성가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제 심리적 평온뿐"이라는 김규항의 말은 우리가 곱씹어 봐야할 말이다.
요즘 통진당 문제가 시들해졌다. 문제가 해결되어서 시들한 것이 아니라,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상태에서 질질끌고, 해결될 기미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기대를 접어서 시들한 것이다. 이 모든 문제의 중심에는 이석기 의원과 김재연 의원이 있다. 한 사람은 문방위에, 다른 한 사람은 기재위에 배정이 되었다. 비례대표 선출 상의 부정 때문에 통진당 내부에 문제가 있었고, 폭력 사태까지 발생했다. 비례대표 전원이 사퇴하자는 의견에 대해서도 두 사람은 귀를 막고 있다. "개는 짖어라 기차는 간다"는 식으로 비례 대표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이러는 와중에 비례대표 1번 윤금순 의원이 사퇴하고 서기호 디례대표 후보가 의원직을 승계했다. 기쁘지만은 않다는 그의 인터뷰에서 복잡다단한 오늘의 현실이 읽힌다.
지난 선거에서 진보신당을 지지함에도 불구하고 여러가지 실제적인 이유를 들어 통합진보당을 찍은 내가 우습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고민을 했던 것이고, 최후의 최후까지 진보신당과 통합진보당 사이에서 갈등을 했던 것일까? 고작 이런 상황을 보기 위해서, 고작 이런 사람들을 국회에 보내기 위해서 그렇게 고민했던가 생각하니 우습다. 이석기 의원과 김재연 의원을 보면서 예전에 형에게 느꼈던 씁쓸함을 또 맛본다. 486이니, 운동권이니, 민주화 운동이니 말은 많이 했지만 결국 그들도 자기 성찰에 실패한 것이 아닐까? 그 결과가 통진당 사태가 아닌가?
김규항이 말하는 가장 왼쪽에서 가장 아래쪽까지라는 말은 어느 지점을 직어 놓고 거기까지라는 말이 아니다. 시대에 따라서 자기들이 처한 포지션이 바뀌게 되니 진보를 꿈꾸고, 좌파가 되기를 원한다면 가장 아래쪽, 즉 가장 낮은 계급의 사람들이 처한 자리까지, 그리고 가장 왼쪽 즉 가장 자본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자리까지 나아가려는 용기와 결단과 자기 성찰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용기와 결단과 자기 성찰이 사라지는 순간 그 사람은 과거의 삶이 어떠했든지 간에 보수로, 그리고 골통 보수로 휩쓸려 내려가게 될 것이다. 물고기가 항상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하여 끊임없이, 그리고 필사적으로 헤엄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않는다면 이 땅에 진보의 미래는 없고, 좌의 미래는 없다. 오른 날개로만 파닥거리다 지쳐 떨어지게 될 미래만이 우리 앞에 놓여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