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해도 괜찮아 - 법륜 스님의 청춘 멘토링
법륜 지음, 박승순 그림 / 지식채널 / 201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20대를 겨냥한 책이 인기를 끈다. 그런데 그런 책들이 대부분 괜찮다는 내용들이다. "방황해도 괜찮아", "아프니까 청춘이다", "건투를 빈다", "내가 걸은만큼만 내 인생이다", "자기혁명" 등등. 괜찮다, 새롭게 도전해보라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청춘콘서트라는 청년 대상 힐링캠프가 유명세를 타고 있다. 안철수, 박경철, 법륜스님이 청춘콘서트를 통해 대중 스타로 새롭게 거듭난 사람들이다. 삭막한 세상 속에서 지치고 상한 청춘 남녀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위로해 주기 때문이다. 이 시대 청년들의 멘토를 뽑자면 빠지지 않을 사람이 세 사람이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딴지를 하나 걸어본다. 청년들을 위로하기 위한 책들에 붙어 있는 수식어들이 오히려 청년들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아닐까? 아프니까 청춘이다? 오세훈 전 서울 시장은 이 말을 "아파야만 청춘이다"로 오해했다. 방황해도 괜찮아도 청년의 시기를 방황의 시기로 호도할 여지가 충분하다. 오세훈식 어법으로 방황해야만 청춘이다? 건투를 빈다에서는 청년은 목숨걸고 파이팅 하러 전쟁터로 나간다는 의미로, 나머지도 용기를 가지고 혁명을 하는 필사의 각오로 도전하고 깨지고, 또 도전하는 것이 당연한 청년의 삶으로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말이다. 중요한건 그들도 아프고 싶지 않고, 방황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녹록하지 않은 세상 속에서 청년이기 때문에 더 많이 아프고, 청춘이기 때문에 더 심하게 방황한다. 그렇게 심하게 다치고 깨지고, 아파하는 녀석들에게 아프니까 청춘이야, 방황해도 괜찮아라는 말을 위로의 말이라고 건넬 수 있을까? 솔직하게 난 못하겠다.

 

  올해 초의 일이다. 한 녀석이 편입 시험에 실패를 했다. 작년에 이어 두번의 실패를 겪고 난 다음에 그 녀석은 소위 말하는 멘붕 상태에 빠졌다. 나름대로 열심히 했기에 올해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일이 이상하게 꼬이는 바람에 편입 재수에 실패한 것이다. 시험 결과가 나오고 난 다음에 부모님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서 막막해 하더라. 내가 가지고 있던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가져다가 열심히 보더라. 곁에서 보기에도 꽤나 힘들어 보이기에 불러서 커피 한잔을 사주면서 "시험 결과가 어떻게 되었니? 삼수 확정이니?"라면서 약간은 장난스럽게 물어 봤다. 내가 무얼 묻고 싶어서 불렀는지 서로가 다 알고 있는 마당에 말을 빙빙 돌리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결론은 꽤 힘들다는 말이다. 삼수를 하자니 싫고, 휴학한 학교로 돌아가자니 그것은 더 싫다고 한다. 차라리 외국으로 유학을 갈까, 부모님에게 어떻게 말해야할까 등등 온갖 고민거리들이 튀어나온다. 한참을 듣고 있는데 내가 더 눈물이 나더라. 도대체 이 땅의 청춘들의 삶이라는 것이 이다지도 험난한 것인가? 나는 이 녀석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 것인가? 이런저런 많은 말을 했던 것 같다. 무슨 말을 했었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한가지 확실하게 기억하는 것은 나는 마지막까지도 이 녀석에게 "괜찮다!"라는 한 마디 말을 건네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지치고 상한 청춘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괜찮다!"라는 한마디 말이 아니다. 그저 마주 보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 지치고 힘든 자기 마음을 토로할 수 있는 사람, 자기의 아픈 마음을 공감해 주고 함께 눈물을 글썽여줄 사람이 필요하다. 방황해도 괜찮다는 말, 청춘은 원래 아픈 거야, 혹은 아프면서 크는 거야라는 말은 아파할만큼 아파하다가 스스로 몸을 추스르고 일어설 때 그때 해줘도 늦지 않다. 용기를 준다고 방황해도 괜찮다는 말을 성급하게 꺼내는 것은 이 시대의 청춘들에게 아파할 기회와 여유마저 빼앗아 가는 것이 아닐까? 지금 실패가 결코 마지막이 아니라는 사실은, 실패를 통해서 배운다는 사실은 이 시대의 청춘들이 더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어른들의 간섭, 꼰대들의 기우가 아닐까? 청춘들에게 멘토와 꼰대는 한끗차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법륜 스님의 책! 참 좋은 말들이 많이 들어 있다. 인생에 있어서 귀한 깨우침을 주는 평범하지만 귀중한 진리들이 가득 들어 있다. 그렇지만 그 진리들이 왠지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꼰대의 강요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 대단한 사람이 아닌 내가 이 시대 청춘들의 멘토라고 불리는 법륜스님에게 꼰대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불편할 수도 있지만 아프고 지친 청춘들에게, 실패했다는 절망 속에서 힘들어 하는 청춘들에게 "점잖게 방황해도 괜찮아!"라는 말을 강요하는 것은 꼰대 짓이다. 여러 가지 경험이 많으시겠지만 불경스럽게도 꼰대 짓을 하시는 이유는 간접 경험이 가지는 한계일 것이다. 인간의 희노애락애욕오란 공부한다고 그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하튼 나는 그 녀석에게 차마 "괜찮다! 괜찮다!" 이 한마디를 하지 못했다. 그저 함께 눈물을 글썽였을 뿐이다. 시간이 흐르고 난 다음 그 녀석은 툭툭 털고 일어나 복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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