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의 역사: 이브, 그 이후의 기록 - 하이힐, 금발, 그리고 립스틱
잉겔로레 에버펠트 지음, 강희진 옮김 / 미래의창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유혹이라는 말을 사전은 "성적인 목적을 가지고 이성(異性)을 꾐"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 책은 그런 정의에 충실한 책이다. 유혹은 여자의 본성이라는 입장에 충실하게 여성의 모든 행동들을 남성을 꾀기위한 방편으로 이해한다. 여성의 옷차림도, 화장도, 헤어 스타일도, 심지어는 걸음걸이나 행동 하나하나도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니라 남성을 유혹하기 위해 고도로 치밀하게 계산된 행동이라는 말인데, 도대체 이렇게 하나하나 다 계산하면서 산다면 머리가 터지지 않을까 하는 유려는 해본다. 행여라도 페미니즘을 공부하거나 동의하는 사람이라면 결코 이 책을 추천해 주고 싶지는 않다. 아마도 책을 보다가 복장이 터져서 죽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도 이 책을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저 재미로 읽어야지 심각하게 "아하 그렇구나!" 감탄하면서 읽는다면 문제가 복잡해질 것이다.

 

  표지에 그려진 인물은 루이 15세의 애인인 퐁파두르 부인이다. 저자가 자기가 말한 모든 유혹의 결정체이자 이상형으로 보는 대상이 바로 이 여인인데 표지에서 보듯이 인형같은 외모를 가지고 있다. 인형같은 외모라는 말을 예쁘다는 말로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인형같다는 말은 말 그대로 인형같이 앉혀놓고, 인형처럼 내 맘대로 하기 좋다는 의미이다. 지은이가 생각하는 여인은 남성의 맘대로 하기 좋은, 남성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는 여인이지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서의 여인이 아니다. 즉 지은이는 여자는 인정하지만 여성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프랑수와 부셰의 캔버스 유화

 

  어떤가? 하나의 인형같지 않은가? 책꽂이나 선반에 그대로 앉혀놓고 바라보기에 좋은 서양 인형같지 않은가? 그 어디에도 성숙한 인격체로서의 모습은 느껴지지 않는다. 이 책의 성격을 규정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그림은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개인적으로 이 책을 지극히 마초적인 책으로 규정한다. 분명히 밝혀 두지만 그렇다고 내가 여성의 매력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마지막까지 책을 읽고 나서 생각나는 사람이 하나 있다. 참 괜찮은 녀석인데, 성격도 좋고, 자기 일도 열심히 하고, 신앙도 좋은 녀석인데 서른이 넘도록 혼자다. 그 녀석을 아끼는 마음에 몇몇의 사람들을 소개시켜 주었으나 대개가 한번 만나고 나면 연락이 없다. 이유가 무엇인지 짐작이 가는가? 이 책의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이 살아가기 때문이다. 사람은 참 괜찮은데 남성을 유혹하는 모습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화장도 안하고, 치마도 입지 않고 항상 맨 얼굴에 청바지, 운동화를 신고 다닌다. 보다 못한 내가 소위 말하는 갈굼을 시작했다. 평소에 일 때문에 청바지를 입는 것은 좋으나 교회 올 때는 일하러 오는 것이 아니니 여성스럽게 입고 와라, 자세는 구부정하게 하지 말고 꼿꼿하게 허리 세우고 어깨를 펴고 다녀라, 화장 좀 하고 다녀라 등등... 내가 여자친구에게 하는 말이 아니다. 내 아내에게 하는 말이 아니다. 그런데 그렇게 잔소리를 해댄다.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혹 이 책을 선물해 주면 조금은 더 나아지려나 하는 생각을 혼자서 해본다. 너무 모든 것을 유혹의 시선으로 해석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너무 유혹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것도 문제다. 적절하게 유혹의 기술을 행동으로 옮기는 지혜(?)가 그 녀석에 필요하지 않을까?

 

  이야기가 딴 길로 샜다. 남성성에 대해서, 여성성에 대해서 한마디로 해석하는 것은 지난한 일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 지난한 일을 유혹이라는 말 한마디로 해냈다. 거기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그 무모함과 용기에는 박수를 보낸다. 심심할 때 읽으면 꽤 재미있는 책이다. 단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말 것을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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