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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 레바이 - 십자가를 만든 어느 목수의 고백
E.K. 베일리 지음, 선경애 옮김 / 가치창조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벌써 8년이 지났다. 예기치 못한 고난 주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20대 시절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 모른다. 당시 사무실에 계시던 분들과 함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보러 갔다. 함께 일하시는 두 분 모두 기독교인이었고 어머니 연배였는데 "고난주간인데 영화 보러가시죠?"라는 말에 당황하시다가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라는 말에 두 말 않고 따라 나셔셨다.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은 잔인한 영화라고, 이런 걸보고 우는 걸 보니 기독교인들은 변태가 맞다는 상식 이하의 말을 하기도 했지만 내겐 꽤 큰 충격이었다. 예수의 고난을 성경에 충실하게 재현했기 때문이다. 물론 멜 깁슨이 가톨릭 신자라서 그런지 가톨릭 분위기가 풍기긴 했지만 그다지 큰 무리는 없다.
영화 속에서 나를 가장 아프게했던 장면이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인지, 누구를 위해서인지 모르지만 예수는 피투성이가 되어 무거운 십자가를 아주 소중하게 붙잡고 있었다. 마치 놓치기라도 하면 큰 일이라도 날듯이 자기 키보다 훨씬 큰 무거운 십자가를 휘청거리면서도 소중하게, 아주 소중하게 붙잡고 있었다. 왜? 도대체 왜?
"난, 오늘도 십자가를 만들었다."
아주 무미건조하고 담담한 고백으로 시작한다. 매일 아침 일어나 세수를 하고, 밥을 먹고, 출근하듯이 습관적으로 십자가를 만드는 일상이 시작된 것이다. 십자가가 어떤 의미인지, 어디에 사용되는지 뻔히 알면서도 레바이는 습관적으로 십자가를 만든다. 십자가를 만드는 자신과 십자가에 달리는 사람들은 별개라는, 자기는 가족을 부양해야 하고, 하루하루 먹고 살기에도 힘겨운 평범한 인생이라는 자기 방어의 변명과 함께 말이다. 그렇지만 자기 방어의 변명 너머에는, 그의 마음 한 켠 깊은 곳에서는 도저히 해소할 수 없는 자기 혐오가 똬리를 틀고 있을 것이다. 하루하루 버티며 힘겹게 살아가는 레바이의 인생, 물질의 여유와 더불어 굳건해지는 자기 방어의 변명, 마음 깊은 곳에서 함께 커져만 가는 자기 혐오! 레바이가 만든 십자가에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그래서 약하디 약한 레바이의 삶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예수는 자기가 지고 가는 십자가에 담겨진 이렇게 약하디 약한 레바이의 번민을 꿰뚫어 보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돌팔매를 당하면서도 예수는 그렇게도 소중하게 십자가를 그러쥐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십자가에 못박히는 장면보다도 십자가를 그러쥐는 예수의 손이 나를 한없이 아프게 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레바이의 욕망이 나의 욕망이고, 레바이의 번민이 나의 번민이며, 레바이의 인생이 나의 인생인 까닭이다.
"난, 오늘도 십자가를 만들었다." - 레바이
"난, 오늘도 나의 욕망에 충실했다. 그리함으로 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 saint236
부자되기를 갈망하는 시대에, 물질 만능 주의 시대에, 맘모니즘에 교회가 포로로 잡힌 시대에, 성공이 곧 하나님의 뜻으로 포장된 설교들이 수도없이 선포되는 시대에 난 오늘도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는다. 그러나 예수는 한마디 불평도 없이 나를 위하여 오늘도 소중하게 십자가를 그러쥐고 골고다를 오른다. 그 뒷모습이 너무 불쌍해서 눈물이 난다. 그리고 내일은 십자가를 만들지 않겠노라고 다짐을 하지만 나도 알고 그도 안다. 내일도 난 또 십자가를 만들 것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