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몽
황석영 지음 / 창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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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밥바라기별 이후로 황석영의 책은 읽지 않을 생각이었다. 작가의 이름 때문에 선택한 책이었으나 워낙 실망했던터라 똑같은 실망감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황석영의 책이 나왔다는 말에도 무심히 지나갔다. 그러다가 알라딘 중고 매장이란 곳이 오픈했다는 말을 들었다. 꼭 한번 가보고 싶었다. 벼르고 벼르다가 동생 생일을 맞아 안국동에 건너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잠시 들렀다. 한참을 고르고 고르던 중에 원하던 책은 얻지 못하고 그냥 이 책 하나 들고 나왔다. 그게 작년 10월 말의 일이었다. 사놓고 벌써 몇달이 흘렀지만 선뜻 손이 안가기는 마찬가지였다. 읽어야할까, 말아야 할까 고민에 고민을 하던 중에 며칠전부터 읽기 시작했다. 3일동안에 절반쯤 읽었나? 어제 잠을 자려고 자리에 누웠으나 잠이 오지 않는다. 새벽에 일찍 나가야하기에 엎치락뒤치락하던 끝에 잠이 안 오니 책이나 읽자고 읽던 책을 폈다. 그런데 참 묘하다. 강남몽이라는 책의 제목이 묘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은 강남이요, 뜬 눈으로 밤을 꼬박 새우고 있으니 정신이 몽롱하다. 말도 안되는 생각이지만 이게 강남몽인가 싶어 혼자 실실 웃어본다.

 

  강남!

 

  세련의 대명사다. 부의 대명사다. 이번 정권에 들어서는 권력의 대명사다. 오죽하면 강부자라는 말이 세간에 회자가 되었겠는가? 그뿐 아니다. 묘하게 강남은 진보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리버럴좌파, 캐비어좌파의 한국판 강남좌파라는 말이 강부자의 뒤를 이어 등장하지 않았는가? 나꼼수의 마초 김총수는 강남대 비강남의 구도를 한나라당에서 만들고 있다고 주장한다. 잠실에서 살기 시작한지 6년이 지났는데 그전만 해도 강남은 막연한 현대화의 상징이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6년을 살고 난 지금은 그저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이구나 하는 정도의 느낌 밖에는 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사람사는 이곳이 또 한강 이남이라는 의미 외에 복합적인 의미를 가지는 이유가 무엇인가? 왜 그렇게도 강남이라는 말 속에는 온갖 복잡다단한 의미가 숨어 있단 말인가?

 

  저자는 강남 형성사를 써보고 싶었다고 했다.

 

  삼십여년에 걸친 남한 자본주의 근대화의 숨가쁜 여전과 엄청난 에피쏘드를 단순화하고, 이를테면 꼭두각시, 덜머리집, 홍동지, 이심이 등등처럼 캐릭터화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인형 같은 캐릭터들은 남한사회의 욕망과 운명이라는 그물망 속에서 서로 얽혀서 돌아가고 그러면서 모르는 사이에 역사가 드러나게 하면 어떨까.(p376-377)

 

  아마 저자도 강남이라는 말 속에서 다른 의미를 느꼈나보다. 한국 사회의 자본주의의 근대화, 부동산 투기, 압축성장, 권력형 비리, 폭력조직, 물신주의 풍조를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려서 써내려 간다. 박선녀, 홍양태, 강은촌, 김진, 심남수 등등 소설의 등장 인물들은 다양한 모습들을 대표한다. 드라마틱한 인생,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하는 해방 1세대, 주먹하나로 조직의 구도를 재편하지만 역시 세월 앞에서 떠내려갈 수밖에 없는 주먹들, 꿈을 접고 부동산 투기에 올인한 인생, 부동산 투기에 몸담았던 자신의 과거를 부끄러워하는 지식인, 자기집 하나 마련해보겠다고 이리저리 등떠밀리는 인생, 하루하루 출근하며 더 나은 내일을 꿈꾸는 평범한 인생! 강남몽이라는 책 속에는 다양한 인생들의 이야기가 거미줄처럼 얽히고 섥혀있다. 삼풍백화점 붕괴라는 단순한 사건을 황석영은 부실공사라는 단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시대의 아픔과 모순적인 구조, 인간의 욕망으로 이해한다.

 

  그래서일까? 강남몽에는 피해가자 누구고 가해자가 누구인지 알수가 없다. 다들 강남이라는 개발지에서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게 살았고,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 그리고 그들이 그런 선택을 할수밖에 없었던 나름대로의 핑계도 있다. 절대 악인으로 보였던 이도 소설이 진행되면서 어느새 가해자에서 피해자로 바뀌어 있다. 김진은 사랑하는 이를 잃었고, 백화점 붕괴를 바라보며 과거를 지우고 싶어했던 심남수도, 사업이 부도가 난 박기섭도, 홍양태와 강은촌도 돌고돌고 돌아 어느새 피해자가 되고, 아픔을 곱씹고 있다. 강남이라는 개발지는 모두에게 지옥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夢이라는 말 속엔 그런 의미가 들어 있나보다. 남가일몽, 호접지몽, 구운몽, 홍루몽! 몽자가 들어간 많은 말처럼 그렇게 욕망을 좇아 살았지만 그들의 욕망은 한낮의 꿈처럼 깨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그런 꿈에 왜 그리 인생 전부를 쏟아부었던 것인지...

 

  강남몽! 소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현재 진행형이다. 가락시영아파트 재개발, 은마아파트 재개발, 8학군, 도곡동...강남은 아직 꿈에서 깨어나고 있지 못하다. 깨어나기는 커녕 더 많은 이들이 강남이라는 꿈속의 세계로 들어간다. 분명 그 안에서 어떤 이는 한밑천을 잡을 것이고, 어떤 이는 쪽박을 찰 것이며, 어떤 이는 성공을, 어떤 이는 실패를 경험할 것이다. 그러나 돌고돌고 돌아서 결국은 원점이다. 아니다. 원점보다 못하다. 모두가 가해자가 되고 동시에 모두가 피해자가 될 것이다. 황석영은 꿈꾸는 강남을 깨우기 위해서 돌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돌이 얼마나 아플지는 모르겠지만 무시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제 나갈 시간이 되어가는데, 잠에 취해 강남에서 몽롱하게 서평을 남기는 나는 강남몽으로부터 자유로운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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