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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세상을 향해 주먹을 뻗다 - 천만 비정규직 시대의 희망선언
홍명교 지음 / 아고라 / 2011년 9월
평점 :
피켓에 씌인 "Lost My Job, Found an Occupation"이라는 문구가 너무 아프다!
Wallstreet!
자본주의의 중심, 자본주의의 대명사, 자본주의의 상징이다.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월가가 점령당했다. 그것도 루저, 찌질이로 불려도 손색이 없을 백수들에 의해서 말이다. 세계 각 국에서 반 월가 시위에 동조하는 연대 시위가 발생했다. 물론 한국에서도 일어났다. 당연하게 한국 보수 언론들의 물타기가 뒤따랐다. 월가의 시위는 인정하지만 한국의 시위는 인정할 수 없다. 월가의 상황과 한국의 상황은 다르기 때문이란다. 꼭 이럴 때만 미국과 한국의 상황은 다르다면서 차이점을 강조한다. 어찌되었던 자본주의의 상징 월가가 월가가 루저로 규정한 이들에게 점령 당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지금까지 자본주의의 의해 무시되었던 이들, 그저 수치상으로만 존재했던 이들이 세상 속에 그 존재감을 알린 것이다. 이 책의 제목대로 말하면 유령이 세상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온 것이다. 그 의미를 우리는 깊이 숙고해 보아야 할 것이다.
고려대 입학, 중퇴, 한예종 입학, 영화 공부!
김예슬과 더불어 홍명교는 꽤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이다. 28의 나이에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도 그렇고, 가카가 나오신 고대를 때려치우고 영화 공부를 하기 위하여 한예종에 입학한 것도 그렇고, 새로운 학교에 입학했으면서도 노동 운동판을 여전히 기웃거리는 것고 그렇다. 또한 그 나이에 책을, 그것도 사회과학 분야의 책, 그 중에서도 비정규직 노동문제를 다룬 책을 내는 것도 그렇다. 무한 경쟁의 시대에 올인해도 부족할 판에 남들의 삶의 현장에 기웃 거리는 것도 이상하다. 그 이상한 행동들을 통하여 홍명교는 자신의 존재감을 세상에 드러낸다. 그도 평범하게 수치상으로만 존재할 20대 대학생일 수도 있지만 자신의 삶의 고민과 이야기들을 통하여 세상 속으로 걸어들어 온다. 홍명교 또한 한 명의 유령이었지만 세상을 향해 주먹을 뻗은 것이다.
유령!
홍명교는 청소 노동자에 관한 글을 유령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존재! 존재하지만 그 존재를 부정당한 존재! 노동자이지만 노동자이길 부정당한 청소 노동자를 포함하여 비정규직을 홍명교는 유령이라고 표현하다. 그리고 그들이 유령이 아니라 한 명의 당당한 노동자로, 그리고 나아가 인간으로 대접받기 위하여 우리가 어떻게 연대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비정규직 문제는 남의 문제가 아니라 머지않아 우리가 직면하게 될 우리 모두의 문제임을 일깨운다.
매 분기마다 정부에서는 여러가지 수치들을 제공한다. 올해 실업율은 얼마이다, 경제 성장은 몇 %이며, 각 업의 고용 창출 능력은 얼마이다 등등. 우리는 정부에서 발표하는 온갖 수치 속에서 살아간다. 그런데 수치라는 것이 대개 그렇듯이 우리의 피부로 확 와닿지 않는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기 쉽상이다. 그런데 그렇게 그냥 넘어가는 그 수치 속에 내가 있고, 내 아내가 있고, 내 아이들이 포함되어 있다. 내가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정부가 발표하는 그 수치 속에 추상적으로 존재할 뿐이다. 이름도 없고, 성격도 없고, 꿈도 희망도 없다. 그저 아라비아 숫자만 있을 뿐이다. 그렇게 존재하는 숫자는 종종 그냥 넘어간다. 무시된다.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유령이 되는 것이다. 만약 정부가 실업율을 발표하면서 이렇게 하면 어떨까? 올해 대학 졸업자 중에 몇 몇의 고단한 삶을 심층적으로 조사하여,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는 사람의 숫자, 평균 임금, 불합리한 관행 등을 자세하게 발표하고, 이런 사람이 몇 명 중에 몇 명이라고 말한다면 어떨까? 노동 유연성이라는 관념적인 표현이 아니라 재고용 탈락의 불안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면 어떨까? 아마 세상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유령, 세상을 향해 주먹을 뻗다"는 이 책은 그렇게 수치와 관념 상으로만 존재하는 이들의 구체적인 삶의 이야기들을 우리 앞에 보여준다. 그리고 무엇을 느끼는지 우리에게 묻는다. 이런 현실에 순응하면서 넘어갈 것인지 묻는다. 그리고 유령이 될 것인가, 인간이 될 것인가를 묻는다. 비겁하게 타협할 것인가, 아니면 그들의 투쟁에 연대할 것인가 묻는다. 이 정도까지 보여주면서 진지하게 던지는 물음에 눈을 돌릴 만한 비정한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더군다나 그 유령이 내가, 내 가족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맞이하게 될 운명이라면 더 그렇지 않겠는가?
ps. 그를 통하여 희망을 본다. 그렇지만 동시에 한계를 보기도 한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아서 그러려니 넘어가지만 자칫 잘못하면 그들만의 리그로 흐를 수도 있겠다 싶다. 그의 논조가 전형적인 비운동권들에게는 잘못하면 방언으로 들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조금만 더 자신의 생각을 대중적인 언어로 풀어낼 수 있다면 유령에게 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월 스트리트 영화를 같이 보면 또 다른 재미와 고민이 더해지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