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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보는 십자군 이야기 ㅣ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시오노 나나미 지음, 송태욱 옮김, 귀스타브 도레 그림, 차용구 감수 / 문학동네 / 2011년 7월
평점 :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가 출간된다는 소식에 주문해 놓고 손꼽아 기다렸다. 가벼운 마음으로 먼저 읽기 위해서 이 책을 먼저 폈다. "그림으로 보는"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서 다른 책보다 그림이 더 많다거나 혹은 그림이 많아도 다른 미술책들처럼 그림을 자세하게 설명하는 책일 거라 생각했는데 정말로 그림만 있다. 시오노 나나미의 글도 있기는 하지만 그 글이라는 것도 그저 구색을 맞추듯이 몇줄로 그림의 내용을 설명하고 있을 뿐이다. 그림이 주고 글이 거기에 보조로 달려 있다고 하면 정확할 것이다.
책을 열면 좌측 상단에 이 그림의 사건이 일어나는 도시를 동그라미로 표시해 놓고 있고, 좌측 하단에는 그림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그리고 우측 전면에는 귀스타포 도레의 그림이 전면을 차지하고 있다. 사진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
205페이지 밖에 안되는 책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이렇다. 귀스타포 도레의 그림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좋을 법도 하지만 솔직하게 나에게는 이런 종류의 책은 그저 돈이 아까울 뿐이다. 지도를 조금더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거나, 혹은 그림의 설명이 더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것도 아니다. 시오노 나나미는 이 책이 십자군 이야기의 서곡이라고 하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서곡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다. 서곡이라기보다는 부록이라고 하는 것이 더 솔직하고 정확한 것이 아니겠는가? 도레의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그냥 십자군 이야기에 흥미가 있는 사람이하면 이 책을 사는 것을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이 책을 보면서 기억에 남는 두 컷은 이것이다.
첫번째 그림은 조상들의 묘 앞에서 십자군 참가를 서약하는 그림이고, 두번째 그림은 출발을 앞두고 가족과의 이별을 담고 있는 그림이다. 십자군이 신의 이름으로 행하여 졌지만 얼마나 인간적이고 정치적인 행위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첫번째 그림에서 조상들의 묘 앞에서 서약을 하는 이들을 멀리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가 말없이 지켜보고 있다. 그림의 가장 스포트 라이트를 받는 부분에는 조상들의 조각과 기사들이 있지 십자가가 있는 것은 아니다. 십자가는 그저 장식일 뿐이다.
두번째 그림은 가족들과의 이별을 앞두고 성모 마리아에게 서약하는 장면이다. 그런데 서약을 받고 있는 성모 마리아가 죽은 아들 예수를 안고 있다. 만약 죽은 아들을 품에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의 슬픔을 안다면 성지 해방이라는 헛된 꿈에 사로 잡혀서 가족들과 이별을 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와 죽은 아들을 품에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가 십자군 전쟁을 봤다면 무엇이라 말했을까? 이 두 장의 그림은 십자군 전쟁이 안고 있는 위선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그림이라고 하겠다. 얼마전 이라크를 폭격하면서 십자군 운운했던 미국의 근본주의자들이 이 그림을 보면 뜨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