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을 건너는 여섯가지 방법
스티브 도나휴 지음, 고상숙 옮김 / 김영사 / 200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에 이혼한 선배 누나를 만났다. 부부가 모두 동아리 선배인지만 둘 모두 알고 있던 나에게 두 사람의 이혼은 상당히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둘 다 독실한 기독교인이었고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던 두 사람이었는데 이혼을 한다는 것도 충격이었지만, 들려온 이혼의 사유도 충격적이었다. 형이 도박을 했던 것이다. 그것도 장난으로 혹은 이제 막 시작을 하는 단계가 아니라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의 중증이었다. 쓴 소리를 하던 누나에게 같이 한번 가보면 자기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까지 말을 했다니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여자 문제면 자신에게도 원인이 있으니 고쳐보려고 했지만 도박이었기 때문에 더 이상 아이들이 힘들어지기 전에 결혼을 끝내기로 했다고 한다. 물론 그러한 결심을 하기까지는 여러 가지 비한인드 스토리들이 있었던 것을 나중에 누나를 만나서야 듣게 되었다. 둘 다 상당히 친했던지라 선배 형에게도, 그렇다고 선배 누나에게도 전화를 하지 못하고 망설이기를 몇 번이나 했을까? 몇 번의 망설임 끝에 누나가 더 힘들겠다 싶어서 전화를 했고 만나자는 약속을 했다. 꽤 먼 거리를 가서 만난 누나는 내 예상과는 달리 행복해 보였다. 지금까지 지고 왔던 짐들을 모두 훌훌 털어버렸기 때문일까? “좋아 보여요!”라는 말에 나쁘지는 않다는 말로 대답한다. 앉아서 이야기를 하던 가운데 어찌어찌하여 책 이야기로 넘어갔다. 요즘 들어 박노자의 책을 읽고 있는데 참 대단한 양반이라는 말에 맞장구를 치던 누나가 나에게 권한 책이 이 책이다. 제목은 들어 본 책이었는데 누나가 강력하게 권하는 책인지라 조만간 읽어봐야지 하다가 스스로에게 주는 생일선물 목록에 이 책을 얹었다.  

  그런데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기 때문일까? 생각보다 나에게는 와 닿지 않았다. 많은 자기 계발서 가운데 한 종류로 받아들여질 법한 그냥 그런 책이었다. 이런 책을 누나가 왜 권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던 중에 누나의 상황이 꼭 이런 상황이겠다 싶은 생각이 들자, 누나가 이 책을 그렇게 열심히 읽은 것이 이해가 됐다. 한편으로는 이 책이 나오지 좀 된 책인데 이 책을 그 동안 몇 번이나 읽었을까, 그러면서 얼마나 힘들어 했을까 라는 생각이 미치자 누나가 이 책을 나에게 권해 준 마음 씀씀이가 정말 고마웠다. 내가 뭐야라면서 읽은 책이 인생의 황량한 사막을 건너고 있을 누나에게 이 책은 마음의 나침반이요, 오아시스 같은 소중한 책이었던 것이다. 

  역자의 말대로 우리는 인생을 산으로 비유하는 것이 친숙한 문화권에 살고 있다. 목표를 정하고, 단계별로 진행하는 인생 설계서들이 주변에 얼마나 많은가? 언젠가 이병진씨가 방송에서 북한산을 오르면서 인생에 대해서 많은 것들을 깨달았다고 했었는데, 그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혹은 당연하게 들리는 문화권에서 살다보니 인생을 사막의 황량함에 빗대는 것이 낯설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다시한번 생각해 보면 인생은 목표를 정하고 단계를 밟아가는 산보다는 어디로 가야하나 방향도, 길도 잡지 못해서 막막해 하는 사막이 더 잘 어울린다. 때론 좌절도 하고, 어려움도 만나고, 그렇다고 뾰족한 수도, 확실한 돌파구도 없는 답답한 인생길. 그게 우리가 매일 걸어가고 있는 사막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사막을 건너면서 깨달았던 저자의 가르침이 전혀 엉뚱하지만은 않으리라. 혹 우리가 책을 읽다가 너무한다 싶은 생각이 든다면(가령 모래를 만나면 타이어의 공기를 빼라는 식의 이야기들) 그것은 전부 저자의 탓은 아니다. 사막이라는 것에 대해 무지한 우리들의 책임도 일정부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한다 싶은 내용이 곳곳에 눈에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책을 읽어가다가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내 눈을 확 잡아끄는 구절이 있었다. 같이 사막 여행을 했던, 이제는 암에 걸려 인생을 정리하고 있는 친구를 집에 데려다 주면서 느꼈던 감상을 글로 옮겨 놓은 부분이다.  

  계단을 내려오면서 나는 신기하게도 슬픔과 행복을 동시에 느꼈다. 나는 슬픔은 저쪽으로 몰아내고 행복에만 매달리고 싶었다. 차에 시동을 걸고 엔진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한동안 그냥 앉아있었다. 스티브 탤리스와 나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서로 가까워졌는데 그는 죽어가고 있었다. 나는 내가 해변과 사막에 동시에 떨어져 있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내가 원하는 곳에 있었고 동시에 내가 멀리 도망치고 싶은 그런 곳의 한가운데 서있었다.
  이런 게 살아 있다는 느낌일까? 이런 여정을 우리가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우린 이런 길을 걸어왔다. 나는 마음이 아팠지만 슬픔으로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무엇인가가 열리는 느낌이었다. 나는 내 감정으로부터 도망치지지도, 또 얽매이지도 않으리라 결심했다. 오히려 내 모든 것을 감싸 안기로 했다. 그렇다. 이것이 바로 살아 있는 느낌일지도 모른다.(P.212 ~ 213) 

  그렇다 우리는 살면서 슬픔은 멀리하고 행복을 추구하지만 이상하게도 행복한 그 자리에 슬픔이 자리를 잡고 있으며, 슬픔의 그 자리에 행복의 씨앗이 자라고 있다. 이것이 삶의 아이러니요, 그것을 있는 그대로 감싸 안는 것이 바로 충실하게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도망치고 싶고, 외면하고 싶은 삶의 그 자리를 도망치지도 않고 외면하지도 않으면서 당당하게 감싸 안고 살아가는 그 누나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누나의 그 용기가 한없이 부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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