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웃의 탄식에 귀를 기울이라
랍 벨 & 던 골든 지음, 양혜원 옮김 / 포이에마 / 2011년 2월
평점 :
절판


  먼저 이 책을 읽기 전에 궁금한 것 한 가지! 

  Jesus Wants to Save Christians이라는 원제가 어떻게 "네 이웃의 탄식에 귀를 기울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을까 하는 것이다. 분명히 번역자가 책을 읽고 그 핵심을 가지고 제목을 의역한 것이라고 보지만 직역과 의역 사이의 거리가 너무 먼 것이 아쉬우면서도 황당할 뿐이다. 과도한 의역이 자칫 저자의 논점을 흐리는 것 같아서 아쉬울 뿐이다. 

  리뷰를 작성하기 전에 먼저 읽은 다른 사람들의 리뷰를 한번씩 읽어본다. 이 책에 대한 과도한 칭찬도 있고, 적나라한 비판도 있다. 그런데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은 어떤 분의 공격적인 리뷰이다.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는 상당히 불쾌한 수준의 원색적인 리뷰이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니 한가지 의문이 든다. 이 리뷰를 작성한 분은 과연 이 책을 읽고나 작성한 것일까? 내 판단에는, 그리고 그분의 서재를 검색한 결과(일단 그분의 구입 목록을 검색해 보았으나 없었다.) 이 책을 구입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이 된다. 구입하지 않았다고 해서 읽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겠으나 이렇게 공공격적인 분이 구입하지도 않은 책을 빌려서 읽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는 생각이 든다. 본인이 기독교에 관심이 없거나 불만이 있다는 것을 내가 뭐라 할 처지는 아니지만 다만 그분이 그 글을 굳이 리뷰로 작성했다는 사실에는 이의를 제기하고 싶다. 리뷰는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고 난 다음에 거기에 대한 감상을 적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지도 않고, 영화를 보지도 않고 리뷰를 작성하는 것은 내 생각에는 사기라고 생각이 든다. 만약 책을 읽지 않고 이 책에 대한 느낌이나 선입견을 적고 싶다면 페이퍼를 통해서 작성해야 하지 않을까? 그게 최소한 책을 다 읽고 성실히 리뷰를 작성하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요 예의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예수의 행적을 출애굽기를 통하여 설명한다. 이스라엘의 출애굽과 예수의 행적을 연결시켜 설명한 책이 없지는 않지만 이 책은 여러가지 지엽적인 부분들은 모두 생략하고 시내산 계약의 의미와 예수의 행적의 의미를 연결지어 오늘날 우리가 회복해야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기본에 대하여 직설적으로 설명한다. 

  억압받는 자의 부르짖음. 출애굽기는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로운 왕이 등장하였다는 말로 시작한다. 이러한 왕이 등장하여 이스라엘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견제하기 위하여 그들을 억압하였고, 억압당하는 그들은 울부짖으며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다. 하나님은 그 탄식을 들으시고 모세라는 지도자를 통하여 이들을 구원하셨다. 노예에서 자유인으로 신분이 변화된 그들은 시내산에서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기 위해 계약을 맺는다. 이제 그들은 이집트에서 그들을 구속하던 세상과 힘과 권력과 재물의 논리가 아니라 자유와 사랑의 논리를 인생의 기준으로 삼게 되었다. 그러나 어느새 힘을 얻게 된 그들은 재물을 축적하고 가지 말라 명한 이집트로 내려가는 길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계약이 파기되었고 다시 억압받고 탄식하던 그들에게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메시아를 보내주셨다. 예수는 골고다에서 새로운 계약을 맺게 되는데 그 계약은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 인류를 대상으로 하는 확장된 계약이다. 이 계약에 동의한 사람이 크리스천이다. 

  크리스천에게 주어진 책임은 무엇인가? 새 계약을 맺은 크리스천이 이행해야 하는 계약은 무엇인가? 이웃의 탄식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탄식에 무슨 방식으로든 반응하는 것이다. 이게 새로운 계약을 맺은 우리가 행해야 책임이자 의무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 또한 세상과 권력과 힘과 재물을 추구하게 되고, 이웃의 탄식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귀를 막고 눈 막고 쌓아올리기에 몰두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큰 교회를 세우고, 전 인구의 1/4~1/5이라는 기독교 인구를 자랑하고, 장로 대통령을 배출했다고 자랑하지만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심판하실 바벨탑을 쌓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렇게 획득한 힘으로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기보다는 666달란트의 재물을 쌓고 말과 병거를 얻기 위하여 이집트로 내려갔던 솔로몬의 뒤를 따라가지 않았는가? 교회의 문턱을 한없이 높이고 선별적으로 교회의 문을 열어주지는 않았는가?  

  너는 이웃의 탄식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가? 이 질문은 이렇게 열심히 제국을 형성하고 힘을 모으기에 집중하는 교회들에게, 특히 한국의 교회에게 던지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다. 이 질문 앞에서 한국 교회는, 그리고 그 구성원인 나는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교회가 안티들의 말처럼 개독이 될 것인가, 아니면 세상을 향해 열려 있는 개독(開督)이 될 것인가? 진지하게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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