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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지음, 김희정.안세민 옮김 / 부키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쉽게 들통이 날 거짓말을 하려면 100% 거짓을 말해라. 그렇지만 들통나지 않을 거짓말을 하려면 90%의 진실에 10%의 거짓을 섞어라.
어디서 본 이야기인지 정확히 생각이 나지 않아서 출처를 밝힐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몸으로 체득한 만고불변의 진리이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닌지 여러 사람을 통해서 듣기도 하고, 심지어는 무협지에도 자주 등장한다. 꼭 감추어야하는 불편한 것을 9개의 평범한 사실로 가려두는 것! 지금까지 자본주의라는 체제가 자신의 치부를 감추기 위하여 자주 사용했던 방법이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는 이런 방법들을 하나하나 파헤친다. 지금까지 사회에서 우리에게 해 왔던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90%의 이야기들을 먼저 들려주고 나서 그들이 말하지 않았던 10%의 불편한 진실을 까발린다. 저자의 이야기가 사실무근의 거짓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가 빨갱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자본주의 체제를 부정하는 것도 아니지만 보수를 자처하는 꼴통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하는 이유가 숨기고 싶은 10%의 불편한 진실을 까발리는 그의 무모함(나는 이것을 용기하고 부르고 싶다.)에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무모함이 그가, 그리고 그의 책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 아니겠는가?
23가지를 다 살펴볼 수 없지만 간단하게 기억에 남는 것을 몇 개 살펴보면 이렇다.
아프리카의 저개발은 민족분열, 잦은 무력 충돌, 투자자를 보호할 제도를 갖추지 못하였기 때문이며, 흑인들의 게으른 민족성 때문이다. 비단 아프리카 국가들 만이 아니라 동남아시아의 저개발 국가들을 싸잡아 이야기하면서 우리는 이 사람들과 달리 근면성실하기 때문에 이렇게 발전한 것이라는 말은 어린 시절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자주 들었던 이야기이다. 그분이 특별하게 보수적인 분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본주의를 신봉하는 신자유주의자도 아니었다. 그냥 지극히 평범한 보통 사람이었기 때문에 문제가 더 심각해 지는 것이다. 장하준 교수는 이렇게 우리가 자주 들어온 이야기를 먼저 거론하고 지금까지 이 사회가 말하지 않았던 그 뒤에 숨겨진 진실에 대하여 들려준다.
아프리카가 최근 들어 성장 실패를 경험한 주된 이유는 정책, 즉 구조 조정 프로그램이 강요한 자유 무역, 자유 시장 정책에 있다. 특정 자연 조건이나 역사적인 배경이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어느 나라가 겪는 문제가 정책 때문이라면 문제는 더욱 쉽게 해결할 수 있다. 아프리카의 진정한 비극은 만성적 성장 실패가 아니라 우리가 이런 사실을 지금까지 깨닫지 못했다는 사실이다.(P 169)
왜 아프리카의 이야기를 끌어내느냐? 규모만 다를 뿐이지 우리 사회 안에 존재하는 경제적으로 소외된 약자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소름이 끼치도록 동일하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가정 교육의 문제라든지, 혹은 개인적인 게으름이라든지, 혹 그것도 아니면 개인의 열등한 성품 탓이라고 생각하지 그것이 자본주의 체제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는다.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함께 안고 풀어야할 고민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복지 정책이나 세금 정책을 세우고 진행할 때도 마치 성은이라도 베푸는 양 으스대거나, 아까워서 어떻게든 삭감하려는 것이 소위 양식있는 보수라고 자처하는 분들의 행위가 아니던가?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할 수 없다는 호랑이 담배먹던 시절의 말을 가지고 지금은 복지보다는 파이키우기에 전념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분이 어디 한두분이던가? 이건희 회장(도대체 전회장인지 현회장인지...)의 국민소득 4만달러면 누구나 잘 살 수 있다는 허무맹랑한 말이라던지 이명박 대통령의 747정책이라는 꿈 또한 같은 말이 아니던가? 조금 유식한 말로 트리클 다운이론이라고 하던가? 장하준 교수는 이 또한 교묘한 거짓말, 구라라고 말한다.
단순히 부자들을 더 부자로 만들어 준다고 해서 나머지 사람들이 더 부유해지는 것은 아니다. 만약 부자들에게 주어지는 더 많은 부가 사회 전체의 혜택으로 파급되게 하려면 국가는 각종 정책 수단(예를 들어 부자와 기업의 감세를 허용하는 대신 투자를 조건으로 제시)을 통해 부자들로 하여금 더 높은 경제 성장을 이루어 낼 수 있도록 하며, 복지 국가 같은 매커니즘을 통해 전 사회 구성원들과 성장의 과실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P 197)
이렇게 같이 나누어 먹자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사회의 안정을 해치는 일이요, 북한의 지령을 받고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이적 행위로 몰아서 강제로 진압한 것이 한두번이 아니다. 여기에 더하여 체제에 순응한 사람들을 통하여 유포하는 이야기가 무엇인가? 애국심 고취가 아닌가? “우리가 남인가? 그래도 국산품을 애용해야지! 그 기업들이 국민 먹여 살려 주는 것이 아니냐?” 이러한 조금은 황당무계한 말로 부의 재분배를 뒤로 미루거나 무시하는 행위를 정당화한 것이 어디 한두번인가? 정부, 기업, 국민들도 이러한 논리가 과연 옳은지 그른지 확인도 하지 않고 덮어놓고 믿고 있지 않은가? 어떤 부류는 구라를 알면서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어떤 부류는 정말로 몰라서 사용하는 차이는 있겠지만 말이다.
요즘들어 뜨겁게 논란이 되는 아이폰과 갤럭시S, 아이패드와 갤럭시 탭의 대결구가 가장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둘 중 어느 것이 기계적으로, 소프트웨어적으로 나으냐라는 상식적인 토론도 있지만 “그래도 삼성인데, 국산품인데, 어떻게 외국 기업에게 부를 넘길 수 가 있는가?”라는 이상한 토론이 더 활발하다. 이런 토론이 활발한 이유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민간 기업이 부와 일자리, 세수입을 창출하는 데 장점들을 역할을 한다. 기업이 잘 되면 결국 경제도 좋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거론되는 기업이 1950년대의 GM처럼 규모도 크고 기술도 빠르게 발전하는 기업이라면 그 기업의 성패와 운명이 경제 전반에 끼치는 영향이 막대하다. 수많은 납품 업체, 업체에 고용된 노동자들, 그 기업에서 일하는 수십만 명에 달하는 고용인들이 구매를 상품의 생산 업체 등 거대 기업 하나가 미치는 경제적 영향을 꼽자면 한이 없다. 그래서 거대 기업의 경영 성적이 국민 경제 번영에 특히 중요하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P 254 ~ 255)
그래서 더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미지니스 프렌들리를 외치지만 그것이 진실인가? 만약 비즈니스 프렌들리한 환경을 만들어 주지 않는다면 자본은 미련없이 다른 나라로 발걸음을 돌릴 것인가? 공장을 이전하고, 자본을 이전하고, 그래서 국민 경제가 침체될 수밖에 없는 것인가? 국민 경제를 위해서 기업의 편의를 봐주어야 하는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규제를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규제가 많더라도 기업이 돈을 벌 수 있다는 확신, 합법적이기만 하다면 경영권이 위태하지 않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비즈니스 프렌들리라고 생각한다. 지금 돈이 없어서 국민 경제가 침체되는 것이 아니다. 돈이 없어서 사업하기 힘들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기업들이 대량의 현금을 금고에 넣어두고 유사시(가령 경영권 방어라든지) 사용하기 위하여 묶어 두기 때문이다. 어떻게 금고문을 열게 만들 것인가, 어떻게 제조 설비에 투자하여 고용을 창출하게 할 것인가가 지금 정부가 당면한 가장 시급한 문제가 아니겠는가? 기업 정책을 세우고 시행하는 고위 공무원들은 과거처럼 까라면 까라는 식으로는 도저히 기업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먼저 인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재미있게 읽었다. 그 후속편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 또한 재미는 있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쁜 사마리아인들만은 못한 것 같다. 370페이지 정도 되는 분량에 23가지를 넣자니 깊이 있게 다룰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만약 개정판을 낸다면 책의 내용을 도식화해서 한 눈에 알 수 있도록 표로 만들어 주는 것도 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가려진 10%의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고 불편함을 불편함으로 받아들이는 것, 여기에서부터 더 나은 자본주의가 시작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불편함을 솔직하게 까발려 준 장하준 교수에게 감사하며 그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다만 이 책으로 인하여 그가 또 공격을 받게 될 것 같아서 안타깝다. 누가 알겠는가? 이 책이 국방부 선정 불온도서 목록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릴지 말이다.
ps. 이상하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삼성이, 그리고 우리 나라의 재벌이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지금까지 그들이 해왔던 이야기들이 묘하게 이 책과 딱 맞아 떨어지는 것은 우연의 일치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