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중물 - 마음을 여는 신뢰의 물 위즈덤하우스 한국형 자기계발 시리즈 3
박현찬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어릴 때 내가 살던 동네는 깡촌이었다. 그래서일까? 남들이 하지 못한 경험을 많이 했다. 지금이야 아이들이 논다는 것은 생각도 못하겠지만 그 시절 정말 원없이 놀았던 것 같다. 동네에 오락실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롤러장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롤러장이나 오락실은 한 시간에 한대씩 있는 버스를 타고 30분식 나가야 하는 깡촌인지라 노는 것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 시절 주로 하고 놀던 놀이는 봄에는 산에 가서 칡뿌리 캐기, 머루 다래, 으름 같은 산열매 따먹기, 여름이면 아직 익지 않은 파란 대추 따먹고 갓 익은 호두 까먹기, 동네 개울에서 물장구 치기, 가을이면 이것저것 먹을 것들이 많으니 손에 잡히는 것은 따먹기만 하면 되니 패스, 겨울이면 구슬치기와 자치기이다. 사시사철 즐겨하던 놀이는 공기, 비석치기, 딱지치기, 고무줄이다. 그렇게 한참을 놀다가 마당에 있는 샘에 가서 수돗물로 목을 축이고 다시 논다. 그런데 동네에 모든 집이 수도가 놓여졌던 것은 아니다. 집 안이야 수도가 있겠지만 샘에는 펌프가 있는 집이 10에 5은 있었다. 무더운 여름 놀다가 물 한바가지를 펌프에 넣고 펌프질은 하면 시원한 물이 콸콸 나왔고, 이 물에 등목을 하는 기분은 어린 나에도 무척이나 좋았다. 펌프에서 물을 퍼 올리기 위하여 퍼붓는 한바가지의 물을 마중물이라고 한다. 나중에야 이것이 마중물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당시에는 전혀 몰랐다. 그렇지만 마중물이라는 용어를 몰랐을 뿐이지 마중물이 무엇인지, 그리고 마중무링 없으면 펌프에서 물을 퍼올릴 수 없다는 사실을 몸으로 체득했던 것이다. 

  이런 삶은 중학생이 되어서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어차피 중학교도 시골에 있는 중학교이니 그다지 다를 것이 무엇인가? 한시간 걸어가야 한다는 것만 빼고는 변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다가 고등학생이 되었고, 고등학교는 시내에 있는지라 버스를 타고 통학을 했다. 물론 나는 고등학교 기숙사에서 3년을 지냈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번 버스를 타고 통학하는 것이 전부였다. 아마 그때부터 내 삶이 바뀐 것 같다. 공부에 그다지 묙심이 없어서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고 놀았다. 33살의 젊은이가 세시풍속이라고 책에서 보던 거의 대부분의 것들을 해봤다면 요즘 누가 믿을 것인가? 같이 어울려 놀던 친구들은 어느새 경쟁의 대상이 되었고, 밤낮없이 기숙사에 박혀서 공부를 했다. 그래도 체육대회가 되면 잠시 경쟁을 멈추고 밤을 새면서 플랭카드를 만들기도 하고, 선도부로 있으면서 규율을 어기고 대들던 후배 때문에 고3이 수업도 째고 서넛이 둘러 앉아서 대책 마련에 골몰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내 얼굴에 금칠하는 것 같지만 성적이 좋았기 때문이다. 전교 10위 안에 드는 사람들이 모여서 수업 한 시간 제끼고 대책 회의를 한다고 누가 뭐라고 할 것인가? 우리는 그야말로 학교의 꿈나무였기 때문이다.(물론 그 당시 같이 놀던 친구들, 수업 배먹고 대책 회의를 했던 녀석들은 거의 대부분 서울의 상위권 학교에 진학했다.) 

  그래서일까 경쟁이 있었지만 아직도 내게 고등학교 시절의 추억은 즐겁고도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전교조 활동을 하시던 선생님을 중학생 대 만났고,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민족 사관이라는 새로운 것을 배웠고 물적 토대로 역사를 해석하는 방법도 배웠다. 국어 수업 시간에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쟁가와 민중가요를 배웠고, 노래마을 사람들, 노찾사의 노래를 접한 것이 이미 중학생 때였다. 당시 선생님들이 우리에게 가르쳤던 것은 물론 공부이기는 하지만 그것과 동시에 사회생활에 필요한 것은 경쟁이 아니라 상생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경쟁, 상생, 승자독식이라는 세련된 말을 배운 것은 아니지만 기본 사고는 여기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살아온 내가 교회에서 젊은이들을 가르치게 되었고 그들을 보면서 가장 아쉬운 것이 바로 이것이다. 그들은 나에 비하여 영어도 잘한다. 나는 그 흔한 토익 토플 시험을 본 일도 없고, 공부를 해본 적도 없다. 영어보다는 국어를 먼저 배워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국어가 문학이 더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랐어도 결코 도태되지 않았고, 지금은 사회에서 내가 맡은 일을 비교적 잘 해내고 있다. 그런데 지금 내가 가르치고 있는 청년들은 스펙이라는 것에 열중한다. 강남이라는 입지적인 조건 때문일까 그 경쟁은 더 치열하다. 그런데 그렇게 스펙 쌓기에 열중하는 그들이 나보다 좋은 학교에 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것도 아니다. 내가 맡고 있는 청년들이 다른 사람에 비하여 더 도덕적으로 살기 위해 애스고 있음에도 그들을 보면서 답답함을 느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의 폭을 넓히기 위하여 수시로 책을 선물하고 빌려 주면서 나도 책을 더 읽게 되었다. 최소한 무슨 내용인지는 알고 권하자는 생각 때문이다.  

  이 책은 그러던 차에 접하게 된 책이다. 경청과 배려를 워낙 재미있게 읽었고 얻은 것도 많았던지라 이 책이 그 시리즈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주저 없이 택했다. 제목이 마중물이라는 것도 냐게 큰 흥미를 불러 일으켰다. 책을 열심히 읽던 중 내 마음을 확 뚫어주는 대목을 접했다. 의사가 주인공에게 하는 대사로 여기에 그대로 옮겨본다.  

  "요즘은 모두 스펙 쌓기에 골몰하고 있죠.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려면 뒤질 수 없는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저는 색다른 의미에서 스펙 쌓기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협력을 통해 어떤 일들을 성취했는가? 나 자신의 이익보다 우리 모두의 이익을 위한 행동을 얼마나 해봤는가? 그런 경험의 축적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이현은 남과는 다른, 자기만의 모럴 스펙을 쌓아가고 있는 셈이지요"(P.141 ~ 142) 

  스펙이라는 말에 알러지를 일으키던 내가 스펙이라는 말을 이렇게도 사용할 수 있구나 하면서 고개를 그떡이게 만든 것은 모럴 스펙이라는 말이다. 여러가지 스펙을 쌓고 살지만 그것이 결국은 신외지물인 이유는 그 스펙이 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노력해서 샇았지만 그것이 내 영혼을 풍요롭게 만들고 내 삶을 더 나아지게 하지 못한다. 쌓으면 쌓을수록 삶을 더 불안하게 만든다. 개인간의 군비경쟁인 까닭이다.  

  나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이 여러가지 스펙을 쌓는 열정을 조금만 돌려서 모럴 스펙을 쌓는데 썼으면 좋겠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다. 마중물, 모럴 스펙도 결국은 상생의 의미가 아니던가? 사회는 더 치열해지고, 더 살벌해진다. 정글의 법칙이 난무한다. 그렇다고 해서 모럴 스펙, 상생을 포기해 버린다면 과연 무엇이 남을까? 사람의 이성이나 감성이 아닌 동물의 본능과 투쟁만이 남지 않을까? 그리고 언젠가는 그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지 않겠는가? 아니다. 어저면 지금 이미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중물의 정신을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체득하는 교육이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간만에 책 읽는 즐거움에 빠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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