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아빠 - 신화와 장벽
로스 D.파크 & 아민 A. 브롯 지음, 박형신.이진희 옮김 / 이학사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이준익 감독의 즐거운 인생이라는 영화가 있다. 그 영화만큼 이 책의 내용을 잘 보여주는 영화도 드물 것이다. 록커를 꿈꾸던 젊은 날의 열정은 사라져버리고 그들은 남자라는 이유로, 아버지라는 이유로 삶의 최전선에서 고달픈 삶을 살아간다. 그 삶의 마지막이 행복이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는데 문제가 있다. 명퇴 후 경제력을 잃어버리고 눈치밥을 먹는 백수 기영, 안정된 직장에서 잘리고 부담스럽게 공부잘하는 아들 만난 덕에 낮에는 택배, 밤에는 대리운전으로 등골빠지는 성욱, 타국 땅에 마누라와 자식들을 유학 보낸 자신이 자랑스러운 기러기 아빠 혁수.  

  그들의 삶은 꿈이나 열정이 아닌 가족을 위한 경제적인 부양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경제적인 부양이 불가능해지자 눈치밥을 먹는 기영은 활화산의 리드보컬의 장례식을 계기로 기타를 메고 여기저기 잃어버린 꿈을 찾아 헤맨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가족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자식들에게 올인하는 부인, 그 부인의 치맛바람을 뒷받침하기 위해 가랑이 찢어지는 줄 모르고 달리는 성욱의 삶 또한 고달프기는 마찬가지다. 혁수 또한 그다지 다를 바가 없다. 자식에게 영어 몇마디 더 가르쳐 보겠다고 기러기 아빠가 되어서 자식들을 유학보내 놨더니 아내에게 다른 남자가 생겼다. 즐거운 인생이라는 제목처럼 즐겁지만은 않은 것이 그들의 인생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특별한 존재들이 아니라는데 있다. 주변에서 이러한 사람들을 찾는 것은 눈을 감고 10을 세는 것만큼 쉽다. 평생 직장에서 일하고 받은 퇴직금으로 노후 대책을 마련하려던 아버지에게 어느날 자식이 어학 연수를 보내달란다. 돈이 없다는 아빠에게 퇴직금이 있지 않냐고 대꾸한다. 어이없어 아내에게 이 말을 하자 당신은 왜 자기 자신 밖에 생각하지 않냐고 꾸지람을 듣는다. 어떤 이는 택시 운전하고 하루 세끼를 빵과 우유로 때우면서 나머지 전부를 자식들을 위해 해외로 송금한다. 이게 이 시대 평범하지 않은 아버지들의 현주소이다. 자식에 치이고, 아내에 치이고, 생활고에 치이고...아빠들이 끼어들 틈은 어디에도 없다. 가족을 위해 직장을 빠진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사회, 아빠들의 관심을 그저 불편한 개입 정도로만 생각하는 자녀들, 가족들의 생계 부양 능력을 남자의 능력을 평가하는 잣대는 남자들에게 자상한 아빠로서 노력하기 보다는 정신없이 앞을 향해 달려가게 만든다. 가족을 위해 가족 밖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만드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나쁜 아빠에서는 이러한 부분들을 현실적인 통계를 가지고 설명하고 있다. 

  내 삶을 돌아보니 맞는 말인 것도 같다. 두 아이의 아빠로서 아내에게 미안하다. 바쁘게, 정신없이, 모든 것을 아이들에게 쏟아붓는 아내에게 감사하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숨막힐 때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집, 직장을 맴도는 내 삶이 정말 가끔은 답답할 때가 있다. 누군가를 만나고 싶기도 하고, 어딘가에 가서 하염없이 앉아서 책이라도 읽다 오던지 무엇인가 끄적대다 오고 싶기도 하다. 그렇지만 집에서 기다리는 아내 때문에 바로 집으로 직행한다. 일이 있어서 조금이라도 늦으면 일 때문일줄 알면서도 불평하는 아내의 입장이 어떤지 충분히 이해는 되지만 야속할 때도 있다. 아이들이 노는 것을 바라 보고 있으면, 정말 보고만 있다고 말하는 모습이 솔직히 이해가 안 될 때도 있다. 언제라도 아이들이 필요하면 닿을 수 있는 위치에서 대기 중인데 그것이 아내에게는 노는 것으로 보였나 보다. 올해 목표가 좋은 아빠가 되기인데 좋은 아빠가 되는 것이 참 힘들다. 아이들에게 좋은 아빠가 아니라 아내가 보기에 놓은 아빠, 사회가 보기에 좋은 아빠, 다른 사람이 보기에 좋은 아빠가 되어야 하기 때문일까? 

  세상에는 참 나쁜 남자가 되게 하는 것도 많지만 나쁜 아빠가 되게 만드는 것들도 많다. 이래서 딸 딸을 낳으면 금메달, 딸 아들을 낳으면 은메달, 아들 딸을 낳으면 동메달, 아들 아들을 낳으면 목메달이라고 하나보다. 여자분들이 서운함을 느끼겠지만 남자들이 느끼는 서운함과 상처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주변에 있는 젋은 아빠들(물론 나를 포함하여) 삶이 참 고달프다.  

  마지막으로 우아한 세계의 마지막 엔딩 장면이 이 시대 아빠들의 보편적인 모습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행복한 가족을 위해 개같이, 나쁜 짓도 서슴지 않고 돈을 벌어 가족을 행복하게 하지만 정작 그 안에는 아빠가 설자리는 없다. 쓰린 속에도 라면을 먹으며 가족들이 보낸 비디오 테잎을 보면 즐거워 한다. 그 안에 담긴 가족의 삶은 더 없이 행복하기만 하다. 그게 화가 났는지 강인구는 먹던 라면을 집어 던진다. 잠시 정적이 흐른 후 집어 던졌던 라면 그릇을 치우는 그 뒷모습이 얼마나 서글펐는지 모른다. 그 장면을 보고 한참을 울었다. 저렇게 살 것이면 결혼을 안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이 책은 아버지의 자리를 다시 한번 묻는다. 가족 안에서 아버지가 차지하는 자리는 과연 어디인가 우리 모두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하는 질문이 아니겠는가? 이 시대 아이들을 키우는 어머니들에게, 그리고 아버지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마지막으로 현재 아빠의 자리를 경제적인 부양자로 한정짓는 세태와 잘못된 교육열을 비꼬는 신조어로 리뷰를 마치고자 한다. 여기에도 끼지 못하는 나는 무엇일까? 사는 곳이 잠실이나 경제력은 그에 걸맞지 않으니 참새나 갈매기 사이쯤 되려나? 

  • 기러기 아빠- 아내와 아이들을 외국으로 유학보내고 한국에 홀로 남아 뒷바라지하는 가장. 명절이나 휴가에 맞춰 1년에 한두 번 가족을 만나러 가는 아빠는 그야말로 기러기 아빠다. 그 모습이 겨울 철새 기러기를 닮았기 때문이다. 
  • 독수리 아빠- 재력이 든든해 가족이 보고 싶을 때면 언제든 바로 날아갈 수 있는 아빠 
  • 펭귄 아빠-등이 휘도록 일해도 외국에 있는 가족에게 송금하고 나면 비행기 삯도 남지 않아 인천공항에 홀로 남아 떠나는 가족들에게 손을 흔드는 모습을 날고 싶어도 날지 못하는 펭귄의 처지에 빗댄 것이다. 
  • 참새 아빠- 가족을 외국에 보낼 형편이 안되서 강남에 소형 오피스텔을 얻어 나애와 아이만 강남으로 유학보낸 아빠 
  • 갈매기 아빠- 자녀를 서울에 남겨두고 홀로 지방에서 근무하는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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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11-04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은 못 읽었고,이준익 감독의 즐거운 인생은 영화로도 연극으로도 보고 좋았던 것 같아요.

언젠가 어떤 TV프로였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남편이 맨날 퇴근 후 어떤 모텔로 출근을 해서 몇 시간씩 있다가 퇴근을 하는 거예요.
아내는 바람이 났는 줄 알고 뒤를 밟았는데 보니까,
남편은 책 읽고 DVD도 보고 라면 같은 것도 먹고 혼자 숨통 트일 곳이 필요했던 거예요.
극단적인 예이겠지만,그걸보고부터 전 달아날 쥐구멍의 여지는 주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살아요~

saint236 2010-11-04 12:07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아내들에게도 남편들에게도 쥐구멍은 필요하죠. 제 아내도 누굴 만나러 가겠다고 하면 처음에는 싫어하다가 미안한지 몇 시간 뒤에 전화화서 다녀오라고 하더라고요.

cyrus 2010-11-05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러기 아빠라는 단어만 있는것이 아니라 독수리, 참새, 펭귄도 있고,,,
갈매기와는 또 다른 뜻이 있었군요. 저도 결혼하면 자식들 앞에 부끄럽지
않은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지 내심 걱정도 해봅니다. 왠지 나쁜
아빠가 될 거 같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saint236 2010-11-06 18:58   좋아요 0 | URL
나쁜아빠라는 책은 아빠가 될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읽어볼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