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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20대, 말이 통하는 사람이 돼라
전미옥 지음 / 명진출판사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고집이 세며 완고하고 우둔하여 말이 도무지 통하지 아니하는 사람을 가리켜 벽창호라 한다.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벽창호와 일을 하면 미치고 팔짝 뛰게 된다. 아무리 날고 기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벽창호는 필연적으로 사회로부터 고립될 수밖에 없다. 지난 촛불집회 때 우리는 이러한 벽창호를 경험해봤다. 컨테이너로 광화문에 산성을 쌓고 말을 듣지 않으려고 하던 파란 기와집의 벽창호 양반들을 보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커뮤니케이션만큼 중요한 것은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방의 의견에 찬성하거나 반대를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 즉 의사소통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이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말은 단순히 의사소통이 아니라 상대방의 의견과 입장을 듣고 충분히 동의한다는 느낌이 들어 있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커뮤니케이션 기술에 취약하다. 상대방의 생각을 눈치채고 대충 넘겨집는 데에는 도가 텄지만 마음을 털어 놓고 토론과 토의를 통하여 결론을 도출해 낼라치면 곳곳에서 불협화음이 생기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이다. 왜 이런일이 일어나는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상대방을 대화로 설득하고 나의 의견을 개진하는 연습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릴 때에는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듣는 착한 아이로, 학생이 되어서는 상대방보다 한발이라도 앞서기 위해서 아둥바둥하면서, 취업 전선에 뛰어들면서는 온갖 스펙을 갖추기 위하여 시험에 지드러 살다보니 타인과 커뮤니케이션을 할 기회조차 없는 것이 오늘날 대한민국 20대의 현실이다. "취업 경쟁력과 신입사원 경쟁력 향상을 위한 커뮤니케이션 바이블"이라는 이 책의 부제는 "대한민국 20대, 말이 통하는 사람이 돼라"는 책의 제목보다 더 자극적이다. 필시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 신입 사원인 사람들이 혹하여 사볼만큼 자극적인 포장이다.
책장을 하나하나 넘겨가면서 내용을 살펴본다. 곳곳에 숨겨진 대화의 기술들이 정말 실용적이다. 교육부 공무원들이 말로만 실용실용하지 말고 이런 것은 좀 배웠으면 좋겠다. 실제로 직장생활을 하면서 어떻게 말을 해야 하는가, 어떻게 회식 자리에 참석해야 하며, 어떻게 집으로 돌아갈 것인가, 보고서는 어떻게 작성할 것인가 등등 세세하게 적힌 각 꼭지들은 신입사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은 분명하다. 비록 신입사원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사람을 만나는 직업을 가지는 사람들에게도 실제적인 도움이 될만한 책이다.
그런데 그 내용이 현실적임에도 불구하고 왠일인지 씁쓸하다. 책을 읽고 난 후에 느끼는 감동이나, 지적인 만족감은 찾아볼래야 찾아 볼 수가 없다. 그냥 이런 생각만 든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20대가 그렇게 말이 안통하는 사람들인가?" 이런 생각에 그저 쓴 웃음만 나온다.
상당히 현실적인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20대와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때문이리라. 저자는 20대들에게(실은 신입사원들이지만) 이런 사람이 되지 않으면 사회에서 도태되고 고립될 것이라는 공포감을 조장하면서 하나하나 가르침을 내려주고 있다. 커뮤니케이션의 기술이라고 하지만 정작 커뮤니케이션의 기술은 사라지고 그저 밋밋하지만 상당히 실용적인 강의를 하고 있는 것이다. 20대의 삶의 현장을 들여다 보려고 하지 않는다. 마치 명박산성을 두르고 뒷산에 올라가 겸허한 마음으로 아침이슬을 들었다는 어떤분처럼, 잘나가는 기업 강사라는 영역에서 기성세대의 가치관으로 중무장하고 마치 상대방을 이해해 주는 척하면서 이렇게 살면 안된다는 고귀한 가르침을 주고 있다고 할까?
간단한 예를 하나 들어보자. 머릿말에서 기원이 원하는스펙 5종과 20대가 생각하는 스펙 5종이 다르다고 말하면서 이렇게 지적한다.
20대들이 취업을 위해 '스팩'을 쌓는 데 들이는 노력은 대단하다. 문제는 어느 날부터 20대들이 매달리는 '스펙 5종 세트'와 그들의 존재를 인정해줘야 할 기업이 원하는 '스펙 5종 세트'가 서로 따로 노는 상황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20대들이 생각하는 '스펙 5종 세트'는 '학점', '자격증', '토익점수', '해외연수', '인턴경험'이다. 그렇다면 기업에서 원하는 '스펙 5종 세트'는 무엇일까? '커뮤니케이션 능력', '기획서 등 문서작성 능력', '프리젠테이션 능력', '대인관계와 비즈니스 예절', '회사 업무와 관련된 상식적 지식'이다.(5~6p)
그런데 말이다. 정말 기업이 원하는 스펙 5종 세트가 학점, 자격증, 토익점수, 해외연수, 인턴경험이 아닐까? 만약 저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엄청난 착각이다. 기업이 원하는 스펙 5종 세트가 저자의 말대로 커뮤니케이션 능력, 기획서 등 문서 작성 능력, 프리젠테이션 능력, 대인관계와 비즈니스 예절, 회사 업무와 관련된 상식적 지식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20대가 생각하는 스펙은 헛다리일까? 아니다. 그것은 기본이다. 20대가 목숨걸고 매달리는 스펙을 기본으로 깔고 기업이 원하는 스펙을 찾는다는 말이다. 제조업 현장에서 일한 사람을 찾는데도 토익점수를 보는 이상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제 나라에 찾아온 외국 사람들에게 영어로 설명하지 못해서 도망가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오로지 좋은 학교 들어가는데 목숨걸고 박터지게 싸우는 곳이 대한민국이다. 그런 대한민국에서 20대들에게 스펙 5종을 다 무시하고 저자가 말하는 스펙 5종을 키우라 말할 수 있을까? 설령 그렇게 따른다고 해서 그들이 취업할 수 있을까? 아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그들은 꽤 오랜 시간 동안, 어쩌면 영원히 샐러리맨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또 이런 말도 하더라. 안정을 버리고 도전하라. 왜 20대들은 패기를 잃어버리고 도전하지 못하는가? 레드 오션보다는 블루 오션에 뛰어들라는 말 같은데, 20대들 중 30%정도만 안정을 버리고 도전한다면 그곳도 레드 오션이 될 것은 분명하다.
딴지 거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말이 통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취업을 해야 한다. 저자도 신입 사원은 어떠해야 한다는 말을 계속하지 않는가? 만약 취업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그는 말이 통하는 사람이 아니라 말할 가치도 없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은 아니겠는가?
커뮤니케이션을 가르치는 사람이 정작 20대와 커뮤니케이션이 되지 않는다는 아이러니한 현실이 이 책의 뒷맛을 쓰게 하는 것이리라. 먼저 저자, 20대와 말이 통하는 사람이 돼라. 가르침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사람이 돼라.
ps. 절반을 읽었을 때까지만 해도 청년들에게 사주려고 했으나 마지막까지 읽고 나서는 망설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