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로 떠난 조선의 지식인들 - 100년 전 그들은 세계를 어떻게 인식했을까?
이승원 지음 / 휴머니스트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촌놈들의 제국주의! 

  이 책을 보는 내내 전혀 생각하지 못하다가 책을 덮고 서평을 스는 순간 왜 이 책이 떠올랐을까? 우석훈씨의 책 촌놈들의 제국주의의 결론은 이거다. 한번도 식민지를 경영해보지도 못했던 한국이, 제국주의가 무엇인지를 경험해보지도 못한 한국이, 주제 넘게도 북한을 식민지로 삼아 제국주의를 펼쳐보려 한다는 것이다. 우석훈씨는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의 10년을 촌놈들이 주제 넘게 제국주의를 실행하려다가 실패했다고 평가한다. 게다가 이명박 정권은 이러한 촌스러운 짓을 거침없이 해내고 있다고 부연한다. 

  한번도 제국주의를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제국주의가 무엇인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만 뒤쳐지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발전의 원동력을 내부에서 찾지 못하기 때문에 외부에서, 그것도 말이 통하고 통일이라는 그럴듯한 포장지로 포장할 수 있는 북한을 식민지화해서 찾으려고 한다는 그의 말이 왜 그렇게 마음에 와닿았는지 모르겠다. 물론 그의 말 또한 이거다 저거다 구분짓는다는 촌스러움이 폴폴 뭍어나지만 말이다. 

  세계로 떠난 지식인이라는 제목을 보고 개화기에 사신들이 외국에서 문물을 배워오려고 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에피소드들을 엮어 놓은 것인줄 알았다. 그러나 책의 내용은 전혀 다른 것이다. 물론 이런 부분도 없지 않아 있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이 책은 순수하게 세계를 여행하던 조선의 관리들과 지식인들이 세상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는지에 대하여 기행문을 토대로 재구성하고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자유의 공간으로, 어떤 사람에게는 쌍것들의 모습으로, 어떤 사람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으로 다가온다. 서방 세계에 대하여 다양한 태도를 취하지만 그 근본은 힘이다. 제국의 대명사 러시아, 프랑스, 영국, 독일, 미국과 같은 서구의 국가들을 여행하면서 그 감회를 솔직하게 적어 놓았기 때문에 때로는 소름이 끼치기도 한다. 때로는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속내를 들킨 것 같아서 쥐구멍에 숨고 싶을 정도로 창피하다.  

  문명과 야만! 

  서방 세계를 여행한 조선의 지식인들은 세계를 철저하게 문명과 야만이라는 이분법적인 잣대로 평가한다. 어떤 이들은 조선은 아직 문명의 단계로 나아가지 못했기에 어떻게 하면 문명화 할 수 있을 것인가 고민하면서 세심하게 살핀다. 어떤 이들은 아직 문명화하지 못한 조국 조선이 창피해서 무시한다. 그런데 여기서 몇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져본다. 문명과 야만을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또 그들이 그렇게 문명의 세계로 나아가고 싶어 했던 이유가 무엇인가? 

  힘이다. 문명화 된다는 것은 강한 힘을 갖게 된다는 말이요, 조선이 문명이 아니라 야만의 세계에 있다함은 조선이 강대국이 아니라 약소국이라는 말이다. 조선의 지식인들이 그렇게도 조국을 문명화하고 싶고 서방을 본받고 싶었던 이유는 조선을 제국의 반열에 올려 놓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우석훈씨의 촌놈들의 제국주의를 떠올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힘을 가지고 있지만 정의에서 벗어난 제국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롭지 못할지라도 우리도 힘을 소유해서 한 세상 떵떵거리면서 살아보자는 것이 서방 세계를 우러러본 근대 조선의 먹물들의 속내이다. 힘을 가진 조선이 불가능해지자 지식인들이 그렇게도 쉽게 일제에 협력하게 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들에게 문명은 힘이었던 것이다. 그 힘을 소유할 수만 있다면, 소유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편승해서 갈 수만 있다면 대동아 공영이면 어떻하며 동남아 진출이라면 어떻단 말인가?  

  하지만 역사는 "제국주의=문명"의 등식이 성립하지 않음을 증언한다. 오히려 "제국주의=야만"이라는 등식이 옳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나보다. 위의 공식을 약간 바꾸어 신봉하고 있지 않은가? "자본주의=정의=문명, 공산주의=야만"이라는 등식을 신조처럼 신봉하고 있지 않은가? 

  "We belive God"이라는 문구가 씌여진 달러를 흔들어 보이면서 이러니 하나님이 미국을 축복하는 것이 아니겠는가라는 얼토당토한 말을 쏟아내는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초창기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이제 "We belive God"이라는 말은 "We belive Money"라는 말을 의미한다. 순진한 사람들은 God을 하나님으로 이해하지만 알만한 사람들은 God을 Money로 이해한다. 그리고 그 Money를 위해서 전력 투구한다. 얼마나 촌스럽고 천박한 짓인가? 반기독교적인 복음이 장로 대통령 시대에 기독교의 복음으로 둔갑한 것은 기독교가 본질에서부터 많이 벗어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미국을 다녀간 수많은 유학생들이 미국을 찬양하고, 시청 앞 광장에서 좌파 타도를 외치면서 영어로 기도할 때마다 내 손발은 오그라든다. 그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기독교로부터 돌아서게 만드는지 깨닫게 될 때마다 속에서 열불이 난다. 답답함을 느낀다. 국어도 제대로 못하면서 토플과 토익 점수에 목을 매는 젊은이들을 볼 때마다 솔직하게 말해서 쪽팔렸다. 한국 통일에 관한 박사 학위를, 민중신학 박사 학위를 미국에서 따가지고 자랑스럽게 돌아오는 사람을 볼 때마다 미쳤군 한 마디 날렸다. 영어를 잘하기 위하여 어릴 때 혀를 절개하는 수술을 시키는 부모를 볼 때마다, 원정 출산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부모를 볼 때마다 돌았다고 막말을 했다. 그렇지만 이제 그만하려고 한다. 그냥 촌스럽군이라면서 넘어가려고 한다. 이미 많은 말을 하기에는 한국 사회가 신봉하는 "자본주의=정의=문명=남한, 북한=야만"이라는 공식이 우리를 너무 쪽팔리게 하고 촌스럽게 하기 때문이다. 사회가 온통 촌스럽다. 정부도 촌스럽다. 문화부도 촌스럽다. 이런 젠장이다. 

  함께 읽을만한 책: 촌놈들의 제국주의(우석훈), 정치교회(김지방), 추락하는 한국교회(이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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