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판토 해전 시오노 나나미의 저작들 4
시오노 나나미 지음, 최은석 옮김 / 한길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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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오노 나나미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았던 지중해 시대가 끝이 났다. 더이상 제피로스도 에우로스도, 노토스와 보레아스도 불지 않는다. 시로코고 바다의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오랜 세월 역사를 주름잡았던 갤리선도, 신무기 해상의 포탑 갈레아차도 투르크에서 불어오는 에우로스를 타고 멀리 사라져 버렸다. 마레 노스트룸의 주인이던 로마인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고, 로마로 통하던 모든 길도 끊겼는데 바다라고, 갤리선이라고 영생할 것인가? 

  로마이후 서유럽 vs 동유럽, 기독교 vs 투르크, 십자군 vs 예니체리의 격렬한 전투도 이젠 과거의 일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도 투르크와 베네치아가 목숨 걸고 싸웠던 지중해는 더 이상 역사의 한가운데에 위치할 수 없다. 역사의 중심은 대서양으로 옮겨졌다. 사람들이 이제 제피로스를 그리워 하지 않는다. 시로코를 무서워 하지 않는다. 울구 아리는 신화일뿐이다. 무역풍과 편서풍의 시대요, 유럽과 아프리카 그리고 아메리카를 잇는 삼각 무역의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다. 갤리선 대신 범선이 주축을 이루기 시작했다. 

  레판토 해전은 역사의 중심이 대서양으로 옮아가기 전, 범선이 갤리선을 대체하기전 지중해가 보여준 회광반조일 뿐이다. 역사의 거대한 흐름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전쟁의 양상은 이제 총력전으로 바귀어져 갔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의미의 총력전이다. 한번의 전투에서 우승해서 그것이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고대식 전투가 아니라 어느 한쪽이 멸망할 때까지 모든 것을 쏟아 붓는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투닥거리다가 적당한 수준에서 멈추는 용병식 전투가 아니라 프로끼리의 대전이 아니라 누군가 한쪽이 죽을 때까지 계속되는 막싸움의 시대가 시작 되었다. 자연스럽게 전쟁은 당면한 적을 물리치고 전투에서 승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전투 이후 얼마나 빨리 피해를 복구할 수 있는가 하는 국가의 회복력에 초점이 맞추어 지기 시작했다. 베네치아가 왜 그렇게도 십자군을 결성하려고 노력하였는가? 그렇게 화려하게 승리하고도 결국은 막대하 손해를 감수하면서 비굴하게 조약을 먖어야 했는가? 베네치아의 회복력이 투르크를 빠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쟁 3부작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해본다. 베네치아와 투르크의 싸움이 동네 구멍가게와 대형 마트의 싸움같아 보인다. 장기간 동네 사람들에게 파고 들어서 단골을 만들어 놓았는데 대형 마트가 이익을 깎아먹으면서까지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한다. 심정적으로는 아직도 동네 구멍가게에 친근함이 가지만 대형마트에는 소비자들의 마음을 잡아끌 때가지 버틸 수 있는 힘이 있으며, 그후 회복력 또한 빠르다. 유통업과 판매업도 질보다는 양, 인정이나 친절보다는 가격을 중요시하는 시대가 들어선 것이다. 얼마전부터 동네에서 수십년을 장사해온 구멍가게가 공산품을 20%세일해서 팔고 있다. 팔려나간 자리를 다른 물건이 채우지 않는 것으로 봐서는 조만간 정리할 것 같아 보인다. 기울어져가는 가세를 바라보는 그분들이 주로 하는 이야기는 10년 전만해도 저녁에는 밥 먹을 시간이 없었다는 말이다. 역사의 축이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옮아가는 현장을 바라보는 베네치아의 마음이 꼭 이렇지 않았겠는가? 

  한 시대가 가면 한 시대가 오는 것이 세상사일진대 왠지 서글픈 것은 무슨 이유일까? 

  재미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듯 오만한 시오노 나나미의 시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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