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 계신 하나님 - 영화 밀양을 통해 성찰한 용서, 사랑 그리고 구원
김영봉 지음 / IVP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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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이청준 선생님의 소설 벌레이야기를 토대로 만들어진 이창동 감독의 밀양이라는 영화는 우리 사회에 많은 파문을 던졌다. 특히 기독교계에서는 이창동 감독의 밀양에 대하여 반발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그렇지만 저자의 말마따나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을 기독교를 폄하시키는 반기독교적인 영화가 아니다. 최대한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기독교의 모습을 그리기 위해 세세한 부분까지 노력한 영화이다. 이 영화에 대하여 많은 토론이 있었고, 해설도 있었으니 나는 이 영화에 대하여 굳이 설명하고 싶지 않다. 궁금하신 분들은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는 것이 훨씬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은 밀양이라는 영화를 보고 김영봉 목사가 했던 설교를 토대로 하여 만들어진 책이다. 익히 참된 기독교에 대하여 고민해왔던 저자인지라 저자의 이름값만으로도 충분히 살만한 책이다. 물론 내용도 책값이 아깝지 않다. 기독교의 본질, 특히 예기치 못한 불행과 회개에 대하여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꼭 사서 볼만한 책이다. 

  이 책에서 핵심이 되는 부분은 신애가 용서하기 위해 도섭을 찾아가는 장면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p46~48 인용) 

  면회실 장면

  면회실 문을 열고 박도섭이 들어옵니다. 그는 신애를 보고 약간 놀라는 표정을 짓고는 면회실 의자에 앉습니다. 신애는 복잡한 표정을 짓다가 말문을 엽니다.
 

  신  애: 얼굴이 좋아보이네요.
  박도섭: 죄송합니다.
  신  애: 아니에요. 건강해야지요. 아무리 큰 죄를 지은 죄인이래도 하나님은 건강을 주시잖아요.

  도섭은 의아스러운 듯, 놀랍다는 듯, 신애를 잠시 바라봅니다. 신애가 안개꽃으로 만든 꽃다발을 보이며 말을 잇습니다.

  신  애: 이 꽃…오다가 길가에 핀 걸 꺾어 왔어요. 이 안에선 꽃 보기 힘들잖아요. 예쁘죠? 이 예쁜 꽃도 하나님이 우리한테 주시는 선물이에요. 내가 오늘 여기 찾아온 건요…하나님 은혜와 사랑을 전해 주러 왔어요. 나도 전에는 몰랐어요. 하나님 계시다는 것도 절대 안 믿었어요. 내 눈에 안 보이니까요 안 믿었지요. 그런데 우리 준이 때문에…

  도섭은 말 없이 고개를 숙인 채 눈길을 아래로 향하고, 신애는 한숨을 쉬고는 말을 잇습니다.

신  애: 하나님 사랑을 알고 비로소 마음의 평화를 얻고 새 생명을 얻었어요. 그분의 사랑과 은혜를 느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지 몰라요. 그래서 내가 이곳에 찾아온 거예요…. 그분의 사랑을 전해 주기 위해서요.

  그런데 신애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도섭이 이렇게 답합니다.

  박도섭: 고맙습니다. 정말로 고맙습니다. 준이 어머니한테 우리 하나님 아버지 이야기를 듣게 되니…참말로 감사합니다.

  신애의 얼굴이 갑자기 굳어집니다.

  박도섭: 저도 믿음을 가지게 되었거든예. 여, 교도소에 들어온 뒤로…하나님을 가슴에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하나님이 이 죄 많은 인간한테 찾아와 주신 거지예.

  신애는 표정이 일그러진 채, 감정을 참아가며 입을 엽니다.

  신  애: 그래요?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니 다행이네요.
  박도섭: 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하나님이 저한테, 이 죄 많은 놈한테 손 내밀어 주시고, 그 앞에 엎드리가 지은 죄를 회개하도록 하고, 제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신  애: 하나님이…죄를 용서해 주셨다고요?

  순간, 신애의 눈에서 증오의 빛이 발산되어 나옵니다. 도섭은 편안한 표정으로 말을 잇습니다.

박도섭: 예! 눈물로 회개하고 용서받았습니다. 그리고 나서부터 마음의 평화를 얻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기도하고, 하루하루가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하나님한테 회개하고 용서받으니 이래 편합니다. 내 마음이.
신  애: ….
박도섭: 요새는 기도로 눈 뜨고 기도로 눈 감습니다. 준이 어머니를 위해서도 항상 기도합니다. 죽을 때까지 할 겁니다. 그런데 앉아 이래 직접 만나고 보니, 하나님이 역시 제 기도를 들어 주시는 것 같습니다.

  저자는 이 장면을 처음 보았을 때 수치심을 느꼈다고 했다. 나도 이 부분을 보는 순간 얼굴이 빨개져서 어디라도 숨고 싶었다. 이런 무책임한 말이 어디 있는가? 잘못은 사람에게 하고 회개는 하나님에게 한단 말인가? 그런데 실제로 이런 기독교인들이 너무 많다. 잘못을 하고도 그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줄 아는 무책임함이 그리스도인의 특징이 아닌가? 이런 무책임함이 기독교에 대한 반발감을 불러오는줄 모르고 무조건 기도하면 장땡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마치 박도섭처럼 말이다. 그런데 그게 진짜 회개일까? 물론 모든 죄라도 용서해주신 하나님께서 박도섭의 죄를 용서해 주지 않으셨을리 없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 용서를 받아도 그가 형법상으로 책임을 지고 처벌받아야 할 부분은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진실하게 회개한 사람이라면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준 상처의 아픔에 대하여 더 민감하게 느끼는 법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사실을 쉽게 잊는다. 아니 외면한다는 말이 더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진정한 회개가 아니다. 진정한 회개에 대하여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나도 저자의 이 말에 100% 공감한다.

  정통 기독교 신학에서는 온전한 용서가 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고 가르칩니다. 그것을 회개의 3R이라고 부르는데, 첫째가 회개(Repentance), 둘째가 보상(Restiution), 셋째가 개혁(Reformation)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눈물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것이 회개이며, 자신이 끼친 잘못에 대해 어떻게든 갚는 것이 보상이고, 다시는 그런 잘못이 없도록 자신을 고치는 것이 개혁입니다. 이 세 가지를 갖추어야 온전한 회개가 됩니다.(P.56)

  그저 회개라는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으면서 보상과 개혁의 단계로 나아기지 못해서 뻔뻔스럽게 느껴지는 박도섭의 모습이 나의 모습이 아닐까 두렵다. 온전한 회개의 완성을 위하여 3R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기독교는 편히 면죄를 받고 싶어하는 후안무치만을 양산하게 될 것이다. 매 순간 “하나님은 저 위에서 도대체 무얼 하시는가?”라고 원망하며 책임을 하나님에게 전가하는 우리들에게 정작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묻고 계시다. “너희는 도대체 그 아래에서 무얼 하고 있는가?” 이 물음에 진지하게 대답하는 것이 참된 기독교인이 되는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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