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김대중 4 - 시대의 한계를 넘어
백무현 글.그림 / 시대의창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삼국지연의에 보면 이호경식지계(二虎競食之計)라는 말이 나온다. “두 호랑이가 싸워 서로 잡아먹게 하는 계략”으로 조조가 유비와 여포를 무찌르기 위하여서 사용한 계책이다. 이 계책에 얽힌 에피소드는 이렇다.  

  한말 대 혼란기에 실권을 잡은 조조는 어가를 허도로 옮긴 뒤 궁궐을 다시 짖고 종묘와 사직을 옮겨 모셨으며 성대(省臺) 사원(司院)의 아문(衙門)도 새로 세웠다. 천도에 따른 큰 일을 대강 정한 뒤 후당에 큰 잔치를 열고 여러 모사들과 장수들을 불러 그동안 미뤄두었던 일을 다시 꺼냈다. 서주(徐州) 평정에 관한 의견을 수렴코자 한 것이다. 허저는 정병 5만만 주면 유비와 여포의 머리를 승상께 바치겠다고 호언을 하였다. 

  그때 순욱이 허저의 말을 가로 막고 나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게 한 계책이 있으니 ‘두 범이 한 먹이를 다투게 하는 계교라 합니다.’(二虎競食之計). 명공께서 폐하께 주청하여 유비를 정식으로 서주목(徐州牧)을 삼은 뒤 몰래 글을 보내 여포를 죽이도록 하십시오. 여포를 죽이면 그에게는 달리 도와 줄 힘 있는 자가 없으니 그 또한 멀지 않아 죽일 수 있습니다. 이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유비가 여포를 죽이지 못하면 이번에는 여포가 반드시 유비를 죽일 것이니 명공께서는 마찬가지로 유리합니다.” 서주란 먹이 하나를 두고 유비와 여포가 다투도록 하자는 계책이다.(이문열 삼국지 3권 참조) 

  만만치 않은 상대가 서로 연합하여 있을 때, 상대의 갈등과 알력을 이용하거나 또는 조장해서 목적한 바를 이루는 방법으로 일종의 차도살인 수법의 변형이다. 별다른 투자 없이 상대방을 무력화 시킬 수 있으며 만약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별다른 손해를 보지 않기 때문에 권력자들이 즐겨 쓰는 수법이다.  

  왜 4권에 대한 리뷰를 쓰면서 생뚱맞게 이호경식지계(二虎競食之計)라는 에피소드를 소개하는가? 이 책의 내용이 딱 이호경식지계(二虎競食之計)이기 때문이다. 조조를 전두환과 노태우의 신군부 세력으로, 허저를 군출신 강경파들로, 순욱을 공작정치의 달인 안기부로, 유비와 여포를 김대중과 김영삼으로, 서주를 민주당으로 치환하고 위의 글을 다시 읽는다면 4권의 대강적인 줄거리가 나온다. 이래서 역사를 돌도 돈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김대중의 귀국부터 시작하여 직선제 개헌 투쟁, 김대중, 김영삼의 연합, 그리고 분열, 노태우 당선과 민자당 창당, 5공비리 수사,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부천서 성고문 사건, 이한열 열사의 죽음, 김대중의 정계 은퇴와 영국 유학, 그리고 정계복귀라는 숨가쁜 80년대 중반에서 90년대 중반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국민들의 열망에 의하여 억지로 떠밀려 직선제 개헌을 해야 했던, 그렇지만 여전히 북괴의 침략이라는 케케묵은 수법을 사용하여 국민을 협박하며 정치 공작을 일삼던 신군부 세력, 진짜 민주주의 실현을 대의로 걸고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지만 막판에 가서 권력욕 때문에 신군부 세력에게 정권을 넘겨줘야 했던 김대중과 김영삼의 실망스러운 모습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으며 역사의 굴곡 속에서 피를 흘려 민주주의의 토양을 일구었던 무명의 국민들의 고귀한 희생 또한 사진과 함께 생생하게 실려 있다. 

  이 책은 김대중의 입장에서 그의 말과 인생을 조명한다. 그렇기 때문에 김대중에 대하여 좋게 포장하려고 노력하지만 그래도 한 가지 가시지 않는 의문이 있다. 대통령에 대한 그의 마음이다. 이호경식지계라는 것은 성인군자들 사이에서는 통하지 않는 계략이다. 능력도 비등비등해야 하지만 가지고 있는 욕심도 비등비등해야 가능한 계략이다. 유비가 아무리 인의를 내세우지만 그의 마음 속 깊은 곳에는 황제의 자리를 향한 권력욕이 자리잡고 있었다. 유비에 비하면 직설적으로 패권을 앞세우는 여포는 귀여운 정도이다. 조조와 순욱이 이호경식지계를 펼친 것은 인의로 포장된 유비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권력욕을 꿰뚫어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마찬가지로 전두환 노태우를 위시하여 신군부 세력이 김대중과 김영삼에게 이호경식지계를 걸 수 있었던 것도 양김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대통령이라는 자리를 향한 욕망을 꿰뚫어 볼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혹 꿰뚫어 보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본능적으로 자신들과 비슷한 권력욕의 냄새를 맡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차라리 권력에 대한 욕심을 직접적으로 표현한 전두환 노태우는 귀여운 수준이 아니겠는가?(그렇다고 그들의 행위를 정당화하자는 것은 아니다.) 마지막까지 본심을 숨기지 못하고 노태우와 손을 잡은 김영삼도 김대중의 단수에는 한참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 김대중을 정치 9단이라고 부르는지도 모른다. 이 글을 읽고 기분 나쁜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절대로 김대중을 폄하하기 위하여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너무 멋들어지게 포장하여 역사의 모든 영광을 다 가져간 사람처럼 비추어 지는 모습에 반감을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색깔론이라는 정치공작 때문에 평생을 고통받았으며 지금까지도 좌파라고 분류되는 억울함이 조금이나마 이해가 간다.(김대중, 노무현은 절대로 좌파가 아니다. 중도우파 아무리 많이 쳐도 중도 좌파 정도가 되지 않겠는가? 우리 나라가 너무 우향우 되어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좌파로 보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감정 유발, 불출마 선언과 번복, 정계 은퇴와 복귀같은 행보에 대한 책임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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