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부 메타블로그 난장과 알라딘 서평단이 함께하는 12월 좋은 도서 증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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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철학한다 - 세계와 의식 세계와 나 바로보기
오모리 쇼조 지음, 이경덕 엮음 / 가인비엘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대학교 1학년 때로 기억된다. 책을 읽고 독후감을 제출해야 하기 때문에 아무 생각없이 읽었던 책이 있다. 마틴 부버의 “나와 너”이다. 인간은 하나님과 인간과 자연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데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가 가장 근본적인 관계이며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나와 너의 관계로 만들어 주는 힘이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나와 너 관계여야 하는데 자주 나와 그것(it)의 관계로 변질되어 버린다. 현대 사회에서 가장 쉽게 발견되는 비인간화 현상이 여기에 이유를 두고 있다.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도 나와 너의 관계이지만 너무나 자주 나와 그것의 관계로 변질되어 버린다. 나와 너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결국 잃어버린 인간성의 회복이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관계이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일상을 철학한다”는 책의 서평을 기록하면서 그 첫머리에 뜬금없이 마틴 부버의 “나와 너”를 언급하고 있냐면, 나는 이 책이 같은 맥락에서 쓰여진 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저자들이 독일과 일본, 20세기와 21세기, 신학과 철학이라는 너무나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책은 읽기가 쉽지 않다. “일상을 철학한다”는 제목을 통해서 일상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것들을 철학적으로 설명하고 분석하는 것이라 착각하면 크게 오해하는 것이다. 나도 같은 오해를 했었기 때문에 부담없이 책을 읽기 시작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내용이 매우 까다롭고 복잡하고 추상적이라는 것을 철저하게 깨닫게 되었다. 저자가 얼마나 심하게 말장난하고 있는지, 철학자병이 또 도졌구나하는 것을 깨닫게 될 즈음이면 “내가 읽는 게 읽는 게 아니야.”라는 노래가 내 입에 나도 모르게 나오고, “내가 난독증이 있는가?”라는 자괴감에 빠질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지금 다시 읽으라고 한다면 웬만하면 선택하고 싶지 않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책을 어느 정도 높게 평가한다. 위에서도 이야기한 나와 너의 관계, 그리고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 때문이다.
인생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주고 있는 부분을 인용해 보겠다.
인생을 거는 것은 단순히 예측하는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자기의 생활을 거는 것이다. 단지 미래를 방관자처럼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예측된 미래로 향하는 각오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 예측에 부가된 확률은 그 마음 자세의 표현이며 각오의 표현이다.(P.23)
인생을 살아가면서 많은 예측을 한다. 아침에 텔레비전에서는 오늘의 날씨 혹은 내일의 날씨를 예측해주고, 많은 책들은 한국의 경제상황에 대해서 주가에 대해서 예측해 준다. 많은 자기 계발서들이 인생의 어려움을 미리미리 준비하라면서 많은 조언들을 해준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만났을 때 그렇게 쉽게 무너지는가? 왜 그리 쉽게 목숨을 포기하는가? 그것은 예측이 부족했기 때문도 아니고 빗나갔기 때문도 아니다. 예측에 대한 잘못된 정의 때문이다. 저자는 예측이란 방관자처럼 가만히 다가올 일을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미래로 향하겠다는 굳은 각오라 정의한다. 그렇다. 예측은 위험의 확률을 따져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딛고 앞으로 나가려는 각오요, 의지의 표현이다. 지금 나는 각오가 되어 있는가? 의지를 표명하고 있는가? 나의 인생의 자세에 대해서 진지하게 묻게 만들어 주는 질문이 아닐 수 없다.
다음으로 인간관계에 대하여 저자의 통찰을 살펴보려고 한다. 가끔 텔레비전을 보면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충격적인 사건이 많이 일어난다.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 나영이 사건이고, 얼마전에 일어났던 10대 소년이 보험금을 노리고 자기 가족을 살해한 사건이 아닐까? 왜 천륜을 어기는 이런 사건이 발생하는가? You를 It으로 보는 사고 때문이 아니겠는가? 상대방을 있는 내가 말을 하고 존중해야하는 인격체가 아니라 나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서 사용해도 되는 대상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즉 상대방을 인간이 아닌 사물로 여기는 마음 자세가 문제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마음 불어 넣기를 멈추었기 때문에 상대방을 사물화해 버리는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저자는 마음을 불어 넣기 시작한다면 로봇도 인간처럼 존중할 수 있겠지만 마음 불어 넣기를 멈추어 버린다면 아무리 가족이라고 할지라도 함부로 대해도 되는 로봇처럼 사물화 되어 버린다고 주장하면서 과거보다 오늘날 물질적으로 더 풍요롭지만 인간성은 더 메말라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You를 It으로 바라보는 것은 존재의 유무가, 과학적인 증명이, 물질의 빈곤과 풍요에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자세에 그 원인이 있다.
목석이 되었든 인간이 되었든 또는 로봇이 되었든 그 자체는 마음이 있는 것도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다. 내가 그것들과 얼마나 교제하며 살았는가에 따라 마음이 있는 것이 되기도 하고 마음이 없는 것이 도기도 한다. 거기에 따라 나 또한 인간이 된다.(P.73)
그러니까 당신이 인간인 이상, 제정신을 가진 인간인 이상, 타인의 마음을 불어넣는 일을 그만 두어서는 안됩니다. 이 불어 넣기는 인간성의 핵심이다 때문입니다. 서로 불어넣기를 하기 때문에 인간의 생활이 시작되고 인간의 역사가 존재합니다. 그에 따라 서로의 인간이 서로를 인간으로 만듭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인간들끼리 서로 마음이 있는 존재로 보는 태도는 애니미즘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옛날 사람들은 관용적임 태도로 애니미즘을 수용하였습니다. 짐승, 물고기, 곤충 뿐만 아니라 산천초목 모두 마음이 있는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매우 인색한 애니미즘을 가지고 있습니다. 연고나 혈연관계를 주축으로 한 애니미즘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배타성이 사람들의 마음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에 내가 곤혹스럽습니다. 어째서 내게 마음을 불어 넣어 주지 않는 것입니까? 아니 이미 불어 넣어 주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까? 당신들의 마음을 조금 열고 당신들 사이의 애니미즘 속에 나를 넣어 주십시오. 그렇게 하면 당신들의 인간성도 보다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 17장 로봇의 변명 중에서(P.132)
인간성을 풍요롭게 하는 것,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결국 상대방을 It이 아니라 You로 바라볼 수 있는 사고의 전환이 아니겠는가? 더더군다나 상대방을 생사대적으로 바라보면서 찍어 누르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대한민국의 비정한 현실에서는, 점점 더 세련되어 가는 무한 경쟁의 체제에서는 이것 외에는 대안이 없지 않겠는가? 이 사실을 깨닫게 해 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다. 나와 그것이 아닌 나와 너의 관계가 다시 정립되는 그런 아름다운 세상을 고민하던 나에게 이 책은 사막 한 복판에서 만난 오아시스 같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