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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례한 복음 - 이택광의 쾌도난마 한국문화 2008~2009
이택광 지음 / 난장 / 2009년 7월
평점 :
2007년 17대 대선은 몇가지 면에서 참 기묘한 대선이었다.
첫째, 정책의 실종과 경제 일변도.
대통령이라 함은 한 나라의 국정을 운영하는 최고의 책임자를 말한다. 즉 대통령이라는 말은 정치의 최고 정점을가리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2007년 17대 대선은 정치의 최고봉을 꼽는 자리이면서도 이상하리만치 비정치적인 대선이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정치에 신물이 나서 그런지 정치라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는 사람이 있다면 대중들의 공격을 받게 될 처지에 놓였었다. 그러다 보니 한나라당도, 민주당도, 민주노동당도, 창조한국당도, 심지어는 경제공화당도 북핵이니, 통일이니, 계급간의 갈등이니 하는 문제는 모두 쏙 뻬놓고 오로지 몇 %의 경제 성장율을 약속할 수 있는가, 실업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가하는 문제에만 변죽을 올리다가 대선이 끝나 버렸다. 외신들도 이 기묘한 대선을 황당한 시선으로 바라봤었고, 대서특필했었다.
둘째, 불변하는 지지도.
보통 선거를 치르면 그 사람의 병역 문제, 경제문제, 윤리적인 문제가 대선 주자의 지지율 변동에 큰 역할을 하기 마련이다. 익히 알다시피 당선을 거의 따놓은 이회창씨가 대선에서 두번 미끌어 진 것은 다름아닌 아들의 병역 문제가 아니던가? BBK라는 비윤리적인 메가톤급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당시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에는 변함이 없었다. 날이 갈수록 불리해져가는 정황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후보는 모른다고 잡아 떼었고, 결국 대한민국 검찰은 이명박 후보의 손을 들어 주었다. 검찰이야 그렇다고 쳐도 도무지 움직이지 않았던 국민들의 지지율은 사상초유의 것이었다.
셋째, 기독교의 약진.
더 정확하게 말하면 기독교를 뒤집어쓴 정치 세력의 약진이라고 할 수 있겠다. 금란교회, 여의도 순복음 교회, 소망 교회 등을 위시한 한국의 대형교회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명박 장로의 대통령 당선을 기도했고, 그를 뽑지 않는 것은 사탄의 짓거리라고 목에 핏대를 세워가면서 외쳤다. 마치 그의 당선이 곧 이 사회를 기독교적인 가치관으로 물들이는 것처럼 착각하면서 말이다. 또한 이명박 후보도 이러한 기독교 보수 세력을 자신의 정치적인 입장에 아주 적절하게 이용하였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이렇게 자기의 종교색을 거리낌없이 드러내는 사람도 드물었다는 사실을 떠올려보자.
이 세가지 현상은 대성을 거치면서뿐 아니라 1기 집행부가 들어서고 2008년 총선을 거치면서도 여실히 드러났던 현상들이다. 개헌선을 넘어서는 여당의 자리획득, 강부자 고소영 인사라는 신조어, 덩달아 뜨는 소망교회, 도대체 질줄 모르는 만수 형과 시중이 형의 부상. 국민과의 소통은 무시한채 밀어붙이는 한반도 대운하. 예상치 못한 반대에 부딪히자 말도 안되는 4대강 정비사업을 급조해서 눈가리고 아웅하기. 농업은 후진 산업이니 내어주고 대신 수출을 강화하자는 지극히 이해타산적인 행동들. 이미 사회의 곳곳에는 먹고 사는 문제가 깊숙이 개입해 있다.
이택광씨는 이러한 생각을 먹고사니즘이라 명명하고 있으며, 이것이 이 시대의 가장 무례한 복음이라 주장한다. 대중문화도, 정치도, 학문도 결국은 먹고사는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지만 한국은 먹고 사는 문제에만 올인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욕망의 평등을 외치는 이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오지만 욕망의 사유화, 공익의 사익화를 원하는 이들은 쾌락을 위해서 그들의 욕망 따위는 안중에도 두지 않는 것, 그리고 여기에서부터 발생하는 불협화음이 이시대의 특징이며, 이명박 정부의 소통방식이라고 지적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흥미로웠던 사실은 문화를 욕망이라는 코드로 읽어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저자가 말하는 욕망이라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이며, 발전적인 것들을 말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쾌락이 아닌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욕망의 평등화가 곧 바람직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가장 좋은 방법이며, 살놈만 살게하자는 지금의 먹고사니즘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워지지 않는다면 결국 우리 사회는 그 누구를 대통령으로 앉혀 놓는다고 할지라도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이러한 저자의 날카로운 진단에 십분 동의하면서 우리 사회가 먹고사니즘이라는 무례한 복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소망한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책을 읽는 내내 쓸데없는 지식인의 아는 척이 눈에 거슬린다는 것이다. 쉬운 말을 놔두고 어려운 말로 한참 썰(說)을 풀다가 쉽게 말해 이런 뜻이다로 정리하는 것은 아주 않좋은 버릇이 아닐까? 소위 말하는 비평가들의 안 좋은 습관이 바로 이것이 아니더란 말인가? 쉬운말로 어렵게 해야 왠지 있어 보이는 것 말이다. 특히 1~3부는 그 정도가 더 심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블로그의 글을 모아놓아서 그런지 왠지 매끄러운 글을 읽기보다는 학술 용어로 도배한 에세이를 읽는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더 저자의 문체가 눈에 거슬렸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