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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을 이긴 사람들 - 하워드 진 새로운 역사에세이
하워드 진 지음, 문강형준 옮김 / 난장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1987년 6월은 뜨거웠다고 한다.
난 국민학교 3학년이었고, 6월 항쟁이 무엇인지,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매캐한 최루탄 냄새였다. 내가 살던 곳이 워낙 깡촌이라 그랬나? 실제로 최루탄을 그렇게 많이 맡아볼 일도 없었는데. 가끔 시내에 나가면 보던 전경들의 모습, 그리고 도망가는 사람들, 매캐한 향기. 당신에는 그것이 최루탄인지도 몰랐다.
어느날 학교를 갔다가 재미있는 물건을 발견했다. 당시 우리는 주머니에 자석을 하나식 넣고 다녔는데, 막대자석은 고가의 물건이었으므로, 버려진 텔레비전이나 오디오에서 뜯어낸 원형 자석 조각이 대부분이었다. 그나마도 없었던 우리는 어디 버려진 텔레비전이나 라디오가 없나 눈에 불을 켜고 다녔다. 그러다가 학교에서 원형 자석 조각같은 까만 조각을 발견했던 것이다. 우리는 아무 의심없이 그것을 자석으로 믿었고, 그것을 손에 쥐고 한참을 만지작거렸다. 그런데 이상했다. 철이 붙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손이 얼얼하고, 손으로 부빈 눈이 따가워지고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그렇다. 그것은 최루탄 조각이었던 것이다. 그것이 쵤탄이었다는 것도 한참 지나고 난 뒤에 겨우 알게 된 사실이었다. 나에게 6월은 딱 그정도의 기억이었다. 6월이 뜨거웠다면 손으로 부벼서 눈물이 날 정도로 따끔했던 그 정도였다.
나이를 먹고 대학생이 되어 최루탄이 무엇인지 구별할 즈음이 되어서야 나는 6월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메이데이가 5월의 축제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절을 가리키는 것임을 알게 되었고, 박종철 고문치사와, 이한열을 알게 되었다. 전태일을 알게 되었고, 왜 그때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는지, 광장으로 뛰어 나갔는지 알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지금가지 살면서 학교에서 단 한번도 배워본 적이 없었다. 여전히 국민학교 윤리 책에는 전두환 대통령과 노태우 대통령의 사진이 있었고, 내 오랜 기억에도 학교 교실 한 구석에 캐극기와 대통령 사진이 나란히 걸렸던 것 같다. 탁하고 치니 억하고 쓰러지게 만드는 서슬 퍼랬던 권력자들이었는데, 어느덧 그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다. 우리 사회는 그래도 어느 정도는 민주화를 향해서 전진했던 것이다.
누가 그것을 가능하게 했는가? 누가 국가를 민주화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가? 국민이다. 이름도 없이, 이름 석자 기억됨도 없이 국민이라는 일반 명사로 불려지는 그들이 그렇게 대단한 일을 해 냈던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 어디에서도 그들의 존재는 기념되지 않는다. 그저 민중으로, 국민으로, 때로는 폭도 등 정치적인 이익에 따라서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을 뿐이다.
작년 6월도 뜨거웠다. 광우병을 우려하며 많은 이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왔다. 국가의 오만가, 정부의 탈선을 지적하며 나왔다. 그러나 1년이 지났지만 아무도 그들을 기억하지 않는다. 그저 폭도로, 시위꾼으로, 때로는 빨갱이, 혹은 사탄의 자식들로 불려질 뿐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역사는 이들 대문에 발전한다는 것이다. 이름 한자 남기지 못하지만 그들의 용기와 행동은 분명히 역사를 발전시켰다. 우리가 살아 있음이 그들의 희생 때문이 아니던가?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그들을 추모하는 방법이 아니겠는가? 하워드 진이 "A Power Goverments cannot supress." 라고 채긔 우너제를 붙인 것도 그런 의미가 아닐까? 열심히 살아가는 이들이 있는 이상, 그리고 시대의 흐름에 민감하게 깨어 있는 이들이 있는 이상 역사의 새벽은 반드시 오고야 만다는 것, 이것이 하워드 진이 이 책을 통하여 하고 싶은 말이 아니겠는가?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오는 법이다. 독재 권력을 휘두른다고 할지라도 역사는 퇴보하지 않는다. 다만 잠시 주춤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