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역할 - 장하준이 제시하는 '우리 모두를 위한 발전과 진보의 경제학'
장하준 지음, 황해선, 이종태 옮김 / 부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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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때 도덕과 사회를 배우면서 배웠던 표어가 "요람에서 무덤까지"였다. 아마도 전두환 정권 시절이었던 것 같다. 그 당시 사회복지가 잘 된 유럽의 선진국들을 예로 들면서 궁극적으로 우리 나라는 "요람에서부터 무덤까지" 모든 것들을 국가가 책임지는 방향으로 나아가야할 것이라는 원대한 포부를 밝힌 적이 있다. 지금와서 생각해본다면 우리나라 경제 규모에 비하여 말도 안되는 이야기였고, 다분히 표를 의식한 포퓰리즘적인 성격이 강한 주먹구구식 정책이었지만 당시에 그 말이 참 멋있다고 느꼈다. 어린 나이였지만 국가가 나서서 국민의 삶을 책임진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바뀌어 가기 시작하더니 노무현 전대통령은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발언을 하셨고, 이명박 대통령께서는 프렌들리비지니스의 삶을 사시고 계시다. 초기 자본주의의 경찰 국가를 표방하면서 모든 것을 민영화하는 것이 세금을 줄이는 길이요, 효율적인 방안이라고 말한다. 국영기업은 부패의 온상이요, 이것을 바로 잡지 않으면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이밖에 안되니 빨리 민영화해야 한다는 요지의 발언과 정책들이 줄을 잇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수도와 건보까지 그 대상에 오르내리지 않았던가? 한전은 이미 국영기업인지 민영기업인지 헷갈리기 시작한 단계에 와있다. 세계화를 주장하면서 시장의 논리에 모든 것을 맡기면 합리적으로 사회가 돌아갈 것이라는 시장 지상주의를 연일 복음처럼 외쳐대고 있다. 

  그런데 과연 이말이 맞을까?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기면 합리적이 되는가? 이 책은 이 질문에 대하여 정면으로 반박하는 책이다.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기면 사회가 합리적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시장을 옹호하는 경제학자들 가운데에서도 극우의 사람들이나 주장하는 것이지 실제로 많은 경제학자들은 국가의 개입을 어느 정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장은 만능이 아니며 완전무결한 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장은 인간이 고안해낸 제도일 뿐이다.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기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친기업의 입장에 서서 국민의 이익을 기업의 사익으로 바꾸어 버리는 이들이라고 장하준 교수는 단적으로 말한다. 

  왜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기면 안되는가? 첫째 기업은 국가와 마찬가지로 인간이 고안해낸 제도이기 때문에 그 안에 모순과 문제점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로 시장 과열시 중복투자와 이로 인해 발생하는 매몰비용이라는 손실을 견제라는 기능은 시장 스스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셋째 시장만능주의는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며, 시장만능주의를 옹호하는 사람은 공익을 사익으로 훔쳐가는 좀도둑일뿐이다. 대체로 세 가지 이유를 들어 시장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어느 정도 용인해야 한다고 말한다. 세계화는 말도 안되는 논리이며 역사상 경제 발전을 이룩한 많은 국가들은 시장만능주의가 아니라 국가 개입주의를 채택했었음을 실례를 들어 설명한다. 아마 현재 기업가들이 싫어하는 경제학자 중에 장하준과 우석훈이 들어가지 않을까? 

  내가 보기에 장하준의 논리는 박정희 시대에 이미 우리가 겪어 본 논리이다. 우리나라 국민들 중 어느 정도 나이드신 분들은 박정희 대통령를 이 나라를 가난에서 구원해낸 구원자로 생각한다. 민주주의의 퇴보는 둘째치고 오늘날 한국의 경제의 기틀이 그 시기에 어느 정도 형성된 것은 사실이다. 그 당시 시장에 대한 국가의 역할이 무엇이었는가? 개입과 계획 경제가 아니었던가? 매번 기업이 도산될 위기에 국민의 혈세로 공적자금을 투자하여 기업을 살리는 것이 누구이던가? 시장인가? 국가인가? 위기의 순간에 기업이 매달리고 구조 요청을 외치는 곳이 어디인가? 시장인가? 국가인가? 국가가 시장에 개입해야 하는가, 하지 말아야 하는가는 아예 성립이 불가능한 주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국가의 개입을 부정하고 불공정한 것으로 몰아가는가? 공익을 도적질하여서라도 사익을 최대화하기 위해서이다. 제2 롯데 월드 건설, 민영화, 대운하 건설 등에서 공익과 사익이 부딪히는 순간 기업이 무엇을 택하는지 살펴보라. 그들이 무슨 주장을 하는지 살펴보라. 그러면서도 기간 시설 건설이나 돈을 내야 할 때가 오면 국가의 개입을 주장하는 것이 시장 옹호자들의 논리가 아니던가?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이 불온서적에 들어갔다는 기사를 보았다. 이 책은 나쁜 사마리아인보다 더 직설적이고 더 적나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불온 서적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는 제목이 점잖고 그 내용이 어렵기 때문이 아닐까? 친기업의 시대에 꼭 읽어볼 책이다. 그러나 쉽지 않다. 작심하고 읽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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