촘스키 세상의 권력을 말하다 1
노암 촘스키 지음, 강주헌 옮김 / 시대의창 / 2004년 4월
평점 :
품절


  촘스키는 좌파다.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며 본인 스스로도 자신은 좌파라고 선언한다. 촘스키는 본인이 좌파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좌"라는 말에 자연스럽게 북한을 떠올리며 빨갱이 타도를 외치는 우리 나라에서는 감히 상상도 못하는 일이기에 부러울 뿐이다. MIT의 석좌 교수를 지내고 있을 정도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석학이요 어찌 보면 기득권자인데 그의 생각은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행동하길 원한다. 그리고 양심에 따라 행동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미국 정부에게 있어서 촘스키만큼 골치 아픈 존재는 없을 것이다. 존재감이면 존재감, 명예면 명예, 명성이면 명성 그 어느것하나 빠지지 않는 사람이 미행정부를 날카롭게 비판하니 말이다.  

  행동하는 양심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그의 책을 읽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이다. 인터뷰집이라 그렇게 딱딱하지 않다. 그렇다고 가볍지 않다. 세계의 모든 사건들을 다 망라하고 있어서 그의 생각과 말을 전부 이해하기 위하여서는 신문을 빠짐없이 읽어야 하며, 기업과 권력의 관계, 국제조직의 동향과 세계의 전쟁에가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렇게 힘들고 번잡스럽고 어려운 과정을 감내하고 난 다음 그의 책을 접하는 순간 우리는 신문 기사의 행간을 읽어낼 수 있게 된다. 조중동을 애독하며 오직 그것만이 진실이라고 착각하고 살아가는 한국의 많은 이들에게 나는 촘스키를 기꺼이 권해주고 싶다.  

  첫번째 인터뷰의 원제는 "The Common Good"이다. 공공선이라고 번역할 수 있으려나? 공공선이란 "개인이 아닌 국가나 민족, 인류를 위한 선"이락 사전에 정의 되어 있다. 공공선에 관한 촘스키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현재 사회에서는 공공의 선이라는 것은 말만 남아 있는 상황이란다. 실제 공공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그렇게 존재한다고 언론이 믿게 만들뿐이다. 우리는 언론의 말을 듣고 그저 공공선이 존재하는구나 착각하면서 살고 있을 뿐이란다. 이 사회에 남아 있는 것은 공공선이 아닌 기업이나 권력을 위한 선이라는 것이다. 권력과 기업이 결탁하여 자기들의 이익을 얻어내고 이렇게 얻어진 이익을 창출해내기 위한 결손은 국민들이 감당하고 있으며, 기업들은 언론을 통하여 이것을 은폐하고 있다는 것이 촘스키의 생각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내린 분석인데 묘하게도 이 분석이 한국에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얼마전 이슈가 되었던 종부세 환급에 관한 법률이 딱 그예이다. 

   노무현 정부가 어떤 정부였는지에 대하여 많은 이견들이 존재한다. 나는 노무현 정부가 흔히 이야기하는 좌파 정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노무현 정부는 철저하게 우익 정부이다. 어쩌다가 빨갱이 정부로 몰리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아마도 한나라당이 아니라서 그럴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해 왔던 정책들은 철저하게 기업의 이익을 보장하고, 민족주의적인 패권을 확립하는데 그 목표를 두고 있다. 이런 노무현 정부의 정책 중에 그래도 내가 생각하기에 공공선을 위하여 구색이나마 갖추었구나 생각하는 것이 바로 종부세이다. 종부세에 관해 반대하는 것은 참 이기적이란 생각이 든다. 종부세는 결국 형평성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종부세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폐지가 되었다. 그리고 과도하게 걷은 종부세를 환급해 주겠단다. 국민들의 세금으로 말이다. 그러면서도 미안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당하다. 국민적인 합의를 거치지 않은 세금을 걷는 것은 구시대적인 발상이란다. 그런데 말이다. 종부세 환급에 관하여 국민적인 합의를 본인들은 거쳤는지 묻고 싶다. 건설자본과 그렇게 밀착되어 있는 이명박 정부가, 고소영 강부자 내각이라 이름하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한나라당이 종부세를 환급해야 한다는 정책을 밀어 붙인 것이 도대체 수상쩍다. 누구를 위한 환급인가? 

  한나라당에서 환급받은 세금이 700만원이란다. 도무지 이 말을 우리더러 믿으란 말이가? 더군다나 그것을 불우이웃 돕기를 위하여 냈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종부세 환급이 한두푼도 아니고 국민의 세금으로 재원을 마련했다고 한다. 나라 살림 살이야 뻔한 것이고 분명히 환급을 위한 재원을 마련하려면 깎이는 부분도 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종부세 환급을 위하여 깍인 부분이 어디인지 아는가? 아동복지, 사회 복지를 위한 재정이다. 그럼 정리를 해보자. 재산이 6억이상인 사람이 냈던 종부세를 환급해 주기 위하여 밥 한끼 목먹는 아이들을 돕기 위한 기금을 없애버린다는 것이 과연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분명 아니라고 말하겠지만 결과가 그렇지 않는가? 우리나라가 민주주의 국가는 맞는가? 가연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은 공공선에 대한 개념은 가지고 있는가? 

  이 사태에 대하여 언론이 무엇이라 말하는가? 조중동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잘하는 짓이라고. 헌재의 판결도 난 것이고 적법한 절차를 통해서 지금까지 잘못되어 왔던 일들을 바로 잡은 것이라고 말한다. 일견 맞는 말 같다. 그러나 여기에서 촘스키가 말한 권력과 기업과 언론의 관계를 다시한번 생각해 보자. 촘스키는 펜타곤과 기업과 언론의 관계를 말한다. 펜타곤을 통하여 미국민의 세금으로 군수기업을 먹여살린다. 군수 물자를 만드는 기업의 주머니를 국민의 세금으로 채워준다. 언론은 이를 은폐한다. 사실을 100% 보여주지 않고 일부만 보여주면서 국민으로 하여금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게 만든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국민은 철저하게 배제된다. 이게 촘스키가 말하는 공공선이 결손되는 과정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를 들어보자. 군수물자를 생산하는 기업을 건설 기업으로 바꿔놓기만 하면 된다. 권력은 국민의 세금으로 건설기업 및 대기업의 주머니를 채워준다. 이들과 한편인 조중동의 재벌 언론들은 이 사실을 은폐한다. 물론 없는 말을 꾸며내지 않는다. 다만 진실을 100% 다 보여주지 않을 뿐이다. 국민은 언론에 속아 이 말을 그대로 믿는다. 이 과정에서 국민은 철저하게 배제된다. 무엇이 다른가? 전혀 다를 것이 없다. 

  결국 종부세 환원은 공공선이 아닌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정책일 뿐이다. 단지 우리는 이것이 공공선을 위한 일이라 속고 있을 뿐이다. 지금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대체로 이렇다. 이런 시선으로 사회를 살펴보라. 놀랍도록 날카로운 촘스키의 지적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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