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의 무게 믿음의 글들 262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지음, 홍종락 옮김 / 홍성사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C.S. 루이스! 누가 뭐래도 그는 이 시대 최고의 기독교 변증가이다. 철저하게 무신론자였던 그였기에 이렇게 순도 높은 글을 쓸 수 있는 것이다. 그런면에서 어릴 적부터 기독교인이었던 나의 말은 그의 발꿈치도 따라가지 못함을 철저하게 통감한다.

  영광의 무게! 그에게 영광의 무게란 비천과 영광이라는 믿기 어려운 두 가능성 사이에서 칼날위를 걷듯이 조심스럽게 살아가는 치열함일 것이다. 이 시대 기독교는 영광의 신학을 이야기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하여 영광을 받는 것, 그것이 이 시대 교회의 최대의 메시지이고 최고의 가치일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영광이란 말로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루이스는 이 사실을 철저하게 직시했던 것이다. 당시 2차대전이라는 혼란스러운 사회 가운데에서 기독교인의 의무를 항상 기억하고 살았던 그이기에 그의 글에선 무게가 느껴진다. 전시라고 할지라도 매일 해야하는 학문의 길을 걸어가야 하고, 모든 사람들이 반전을 이야기할 때 사랑으로서의 전쟁을 선언할 수 있는 그의 입담은 단순히 이상이나 머릿 속의 사고가 아니라 전쟁에 참여했던 사람으로서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의 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기독교는 분명 사랑을 이야기하고 평화를 이야기하는 종교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한다. 기독교는 애국도 없고, 그저 다른 사람의 피에 무임승차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더군다나 집총 거부를 외치는 여호와의 증인들을 기독교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기독교는 철저하게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루이스가 이야기했듯이 철저한 개인적인 종교는 없는 것이다. 종교는 사회적인 규약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완전한 평화를 이루기 위하여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적극적인 평화를 외쳐야 한다. 광우병을 이야기하고, 미군 기지 철수를 외치는 기독교인들을 보면서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은 빨갱이라 말한다. 비기독교인들은 기독교인이란 쓸데없이 이런저런 일들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라고 오해한다. 말만 앞서는 사람들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루이스는 단호히 기독교란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내 동족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면 내가 지옥에 떨어져도 상관하지 않겠노라는 바울의 말을 다시 보는 것 같다. 이런 의미에서 루이스는 이 시대의 바울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사상은 나니아 연대기에 분명히 드러난다. 다른 아이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고 비천에 떨어지는 사자의 모습, 이것이 예수의 모습이고, 기독교의 나아갈 길일 것이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그러한 그의 사상이 한국에서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반지의 제왕에 열광하면서 영웅이 되기를 꿈꾸지만 사자와 같은 비천함을 통하여 다른 이를 사랑하는 나니아 연대기에는 시큰둥하다. 이것이 한국 교회의 현실이고, 한국 사회의 현실이다.

  부디 바라기는 한국 교회가 영광의 무게를 자각하기 바란다. 그렇지 않다면 한국 교회는 결코 영광의 자리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전반적으로 번역이 매끄럽지 못하여 무슨 말인가 어리둥절하게 만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곳곳에 스며있는 단편적인 그의 이야기는 충분히 숙고할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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