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복종
에티엔느 드 라 보에티 지음, 박설호 옮김 / 울력 / 200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왜 인간은 독재자에게 자발적으로 복종하는가?"

  이 질문에서부터 이 책은 출발한다. 수많은 인민이 단 한사람의 독재자에게 복종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 그리 대중은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 것인가? 독재자가 강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힘으로 굴복시키기 때문인가? 아니다. 독재자가 강한 것은 인민이 자발적으로 복종하기 때문이다. 인민이 스스로에게 주어진 자유를 망각하고 자기의 눈과, 팔과, 몸과, 삶을 독재자에게 내어 주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독재자를 무너뜨릴 수 있는가? 총칼도 필요없다. 그저 자발적인 복종을 멈추면 된다. 독재가가 사용할 땔감을 모두 치워버리면 된다. 그러면 독재자는 스스로 넘어지고 말 것이다. 그러나 인민들이 자각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교육이다. 스스로 노예 상태에 머무는 것이 행복이라 착각하게 만드는 교육 때문이다. 교육은 때론 사회 시스템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사회적인 관습의 모습이나 신분제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교육을 깨버릴 때 우리는 진정 자유와 평등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과정은 어떻게 가능한가? 이성으로 가능하다. 인간의 이성은 자연으로부터 주어진 것으로 선한 것이다. 이 이성을 가지고 우리는 우리의 자유를 자각하게 된다. 이 책의 과정을 쉽게 이야기하자면 이성을 통하여 계몽하게 되고, 계몽된 상태는 우리에게 자유를 가르쳐 주고, 자유를 알게된 우리는 독재자에게 자발적인 복종을 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결국 이성이 문제인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인간이 억압받고, 이 땅에 독재자가 등장하고 그 위세를 떨쳐가는 이유가 단순히 이성의 부재이기 때문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인간의 이성이라는 것에 대한 희망이 얼마나 쉽게 절망으로 변하였는지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보지 않았는가?

  중세를 마치면서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을 맞으면서 신학의 대안으로 인문학이 대두외었다. 계시의 대안으로 이성이 대두되었다. 인간의 이성이 발현되기만 한다면, 인간의 이성을 억누르는 억압기재가 사라져버리고, 인간이 자유를 누리기만 한다면 이 땅에 독재자는 사라지에 될 것이고, 인간은 진정 자유하고 행복한 존재가 될 것이라는 행복한 망상이 이 땅에 가득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성은 인간을 구원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것들이 이 땅에 더 많은 분란을 가져왔으며, 이성이라는 것 조차도 독재자의 독재를 정당화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해 버리지 않았는가?

  르네상스를 끝으로 인간의 이성에 대한 낙관주의가 사라졌는가? 아니다. 인간의 이성으로 이 땅에 유토피아를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이 전 유럽에 팽배했던 시절이 있었다. 인간 개인이 선하고 윤리적으로 산다면 그 사회는 당연히 선해질 것이라는 순진무구한 생각이 전 유럽을 휩쓸었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떤가? 1차 세계대전과 2차세계대전이지 않는가?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출현이지 않는가?

  라 보에티와 인문학자들이 갖고 있던 인간의 이성에 대한 난관론은 그저 맹목적인 것으로밖에 비춰지지 않는다.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그런 순진한 생각이 오늘날에는 전혀 먹히지 않는다. 인간이 이성적이기만 하다면 독재자는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은 오늘날 구시대적인 발상이 되어 버렸다. 그렇다면 자발적인 복종을 멈추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인간의 이성이 자발적인 복종을 멈추는 대안이 아니라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직접행동에 나설 수 밖에 없다. 라 보에티는 말한다. 폭군을 무너뜨리기 위해 애쓸 필요 없다. 그저 복종하지 않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정말 이것으로 충분한가?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복종하지 않는다면 독재자의 폭정은 자연스럽게 멈추어져 버릴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성장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복종하지 않는 것, 그것은 그저 침묵하는 것일 뿐이다. 자기 위안일 뿐이다. 역사적인 일에 대한 책임회피일 뿐이다. 나에겐 오히려 이것이 자발적인 복종이다.

  얼마전 우리 사회에게는 심각한 분열이 있었다. 미국산 소 수입건으로 사회가 양쪽 진영으로 갈라져서 싸웠다. 수입 반대를 외치는 이들을 향하여 이명박 대통령이 했던 이야기가 무엇인가? "맘에 안들면 안사먹으면 그만"이 아니던가? 모든 것은 시장에서 조절이 된다는 시장만능주의가 아니던가? 그러니 시끄럽게 떠들지 말라는 것이 그 말의 이면에 감추어진 의미가 아니던가? 이런 사회에서 그저 침묵하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자발적인 복종이 아니던가?

  ps. 책이 난해하다. 번역도 매끄럽지 못하고. 더 실망한 것은 보론과 이에 대한 참고 자료가 본문보다 더 많다는 것이다. 아마도 책의 분량을 채우기 위해서인 것 같다. 보론을 읽고 나서 더 난해해졌다. 앞으로 이 책을 읽는 사람은 과감히 보론을 생략하는 것이 본문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