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傳 - 역사를 뒤흔든 개인들의 드라마 같은 이야기 한국사傳 1
KBS 한국사傳 제작팀 엮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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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눞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나는 역사를 참 좋아한다. 역사를 보면 사람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처음 역사를 접할 때 역사란 영웅들의 행적을 기록해 놓은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러나 오랜 세월 역사를 즐겨온 뒤 얻은 결론은 "역사는 민초들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수많은 민초들 가운데 몇몇이 대표로 이름을 올리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보게 되는 역사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한국사 傳이라는 책은 민초의 이야기를 그들의 대표자를 중심으로 풀어 놓은 책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서 울고 웃고, 가슴 아픈 감정을 느낀 것이리라.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위대한 왕족, 귀족, 영웅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소소한 사람들이지만 무시할 수 없는 이들의 삶을 통하여 한국사를 조명해 본다는 것은 무척이나 즐거운 일일 것이다. 이 작업을 수행하면서 이런 즐거움에 푹 빠졌을 한국사 傳 제작팀에 부러움과 질투의 마음을 동시에 담아 박수를 보낸다.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져 묻혀 버린 사람들을 한명씩 조심스럽게 발굴해 내는 작업은 가슴설레이는 작업이다. 더군다나 그 작업이 우리의 삶에 지혜의 빛을 던져 줄 수 있는 작업이라면 말해 무엇하랴.

  나는 이 책을 청와대에 보내고 싶다. 여의도 국회에 보내고 싶다. 한나라당 당사, 민주당 당사, 각 정당 당사에 보내고 싶다. 이 책을 읽고 조금이나마 느끼는 것이 있다면 지금과 같은 답답한 정국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거란 희망을 품어본다. 대한 민국 1%, 소위 말하는 지도층들은(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돈을 많이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스스로 지도층이라 자처하는) 자기들이 역사를 만들어 가는 주체라고 착각하고 살아간다. 그러나 이들은 역사의 주체가 아니다. 이들이 역사의 주체로 기록된다면 이들이 지도층이라서가 아니라 국민의 한 일원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사실을 기억한다면 지금처럼 함부로 말하지도 행동하지도 않을 것이다.

  신문을 보면 답답한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보수와 진보라 자처하지만 우리 나라엔 보수와 진도보는 없다. 극 수구 꼴통과 덜 수구 꼴통만이 있을 뿐이다. 국민이 촛불을 들면 빨갱이라 욕한다. 빨갱이는 어디 가서 맞아 죽어도 하소연할 수 없는 나라가 2008년의 대한민국이다. 3조 이상의 재산을 가지신 모 의원께서는 버스 요금 70원을 이야기하면서 서민경제를 살리겠단다. 민초란 말도 사라져 버리고 서민이라는 말이 넘쳐 난다. 서민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이들은 그럼 국민도 아닌가? 명박산성을 쌓아 국민과 의사소통하는 대통령, 한대 맞았다고 수백명 잡아 넣는 민중의 지팡이 경찰, 검찰의 중립성을 당당하게 외치던 5년전 기개를 아직도 간직하고 네티즌을 단속하는 검찰, 국민의 말을 자기들 입맛대로 요리하는 국민의 신문 조중동 이 현실을 100년 후 역사는 어떻게 기록할까?

  역사는 민초들의 이야기이다. 이 책에 기록된 시대에 살던 지도층들은 모두 사라져 버렸지만 민초는 살아 남았다. 바람불면 넘어지고, 울어버리지만 끊질기게 일어난다. 서슬퍼런 노론도, 청나라도, 일제도 모두 사라졌지만 이 땅의 민초들은 살아 남았다. 그리고 역사를 기록해 간다. 그러기에 촌놈들이 날 뛰는 대한민국에도 희망이 있다. 촛불이 꺼져버린다 할지라도 그 불씨는 민초들의 마음에 계속 남아 타오를테니. 오늘 밤 왠지 바람에 눕는 풀소리가 듣고 싶어진다.

PS. 역사 스페셜에 비하여 책이 고급스러워 졌다. 그러나 내용은 역사 스페셜이 훨씬 나은 것 같다. 내가 한국사 傳 프로그램을 못봐서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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