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병원 사용 설명서 - 병원이 우리에게 말하지 않는 불편한 진실
강주성 지음 / 프레시안북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의대생이 아니라서 모르겠지만 의대를 졸업할 때 히포크라테스 선서라는 것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남의 나라 사람이고 하도 오래전 사람이라 정확하게 알지 못하지만 내가 아는 수박 겉핥기 식의 지식에 의하면 서양 의학의 사조로 존경받는 사람이라더라. 그의 의술에 대한 정의랄까 가치관이랄까 이것을 받아들여서 의사로서의 본분을 지키겠다는 선서라고 한다. 지금 하는 선서는 원래 히포크라테스 선서와는 내용이 많이 다르다고 들었다. 제네바 협약을 통해 동의를 얻은 선언문을 가지고 선서를 한다고 하는데 그게 위의 사진에 나온 것이다. 모든 과정을 마치고 마지막에 엄숙하게 선언한다. "이제 의사로 살면서..." 의사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어느 책에서 보았다. 나는당최 남의 나라 사람이고 잘 모르는 히포크라테스라는 사라보다 허준이라는 분에게 관심이 더 간다. 고 이은성시의 소설 동의보감 중편 157페이지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 자기 아들에게 유의태가 질책하면서 던지는 말이다.

  "의원은 영달하는 길이 아니니라. 의원은 돈 버는 길이 아니니라. 영달을 꿈꾼다면 중국말 열심히 배워 역관이라도 될 것이요, 돈 버는 게 소원이거든 장사꾼으로 풀릴 일......의원은 병자를 보살피는 게 소임이다. 그것이 첫번째 소임이요 둘째도 셋째도 의원의 소임은 그것뿐!"

  "흙 파먹을 때 흙 파먹더라도 봐줘야 할 병자는 봐줘야 해. 그게 의원이랄밖에......"

  왠지 히포크라테스라는 고상한 사람의 고상한 말보다는 이은성씨가 그리고 있는 유의태란 의원의 투박한 말이 가슴에 더 와닿는 이유는 무엇일까? 꾸밈이 없기 때문일까?

  대한민국 병원 사용설명서! 프레시안의 책이라 선택했다. 의약분업을 이명박 정권이 밀어붙인다는 말을 듣고 선택했다. 강주성이란 사람을 알고 산 책이 아니다. 그만큼 의료 서비스라는 부분은 나와는 상관없는 영역이다. 그러나 이것만은 알고 있다. 의사들이 매우 거만하다는 것을 말이다. "닥터K, 노구찌, 테루"라는 만화를 보면서 이런 의사가 있겠지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내가 겪은 현실은 암담했다. 이 책을 읽기 전 읽은 TTB리뷰에 보니 손가락 끝에 날카로운 칼을 달고 달을 보라하니 칼이 두려워 손가락만 본다는 표현을 하시던 분이 있더라. 의사이신 것 같더라. 그 분의 입장에서야 의사라는 직업에 대하여 비판적으로 늘어놓으니 불만일 밖에. 그런데 실상 이 책에는 의사를 비판하는 내용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병원과 제도를 공격하고 있을 뿐이지.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빠졌는데, 내가 알고 있는 의사들, 내가 만난 의사들은 하나같이 거만했다. 행동이 투박하고 거친 것이 아니라 거만하다. 환자의 몸은 고치면서 환자의 마음에는 비수를 꽂는다. 간단한 예를 들어볼까? 최근의 일이다. 두달이 조금 못된 달을 데리고 변원에 갔다. 배에 가스가 차는지 우유를 자꾸 토하고 먹지를 못해서 말이다.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이 걱정하는 아내에게 그 대단하신 산부인과 의사 나으리는 왜 안먹이냐고 숟가락으로 떠서 억지로라도 먹이라고 혼을 내더라. 애가 먹지 못해서 왔는데, 이것저것 물어보지도 않고, 진찰하지도 않고 억지로라도 먹이라고, 토하더라도 억지로라도 먹이라고 하더라. 두달 된 딸을 데리고 말이다. 지금가지 내가 만난 의사는 이런 범주를 넘어가지 않더라. 이게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 촉망받는 전문직 의사의 현주소이다.

  이것만이 아니겠지? 이런저런 일로 병원 한번 더 오게 하고, 조금더 비싼 것을 권하고, 무뚝뚝하게 거만한 의사들의 모습을 보면서 환자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돈 잘버는 직업, 어느 정도 지위에 오른 직업, 사회적인 명망이 따라다니는 직업이기에 선호의 대상이 될 뿐이지, 그 안에는 유의태의 일갈은 없다. 이것이 대한민국 의료의 현주소이다. 거기에다 민간보험을 들어도 안심이 안되는 보험제도. 그런데 정부는 시장의 논리로 모든 것을 결정하려 한다. 서비스라는 말 때문이다. 언제 의료가 서비스고, 교육이 서비스가 되었던가? 오랜 세월 우리 나라에서 의료와 교육은 서비스가 아닌 천직이었다. 그런데 어느순간 돈 잘버는 서비스업이 되어 버렸다. 이제 이 서비스업을 더 잘 개발하기 위해 이명박 정부는 병원을 영리법인으로 만들 준비를 하고 있다. 그나마 있는 건보도 유명무실화 하려고 한다. 의료에도 무한 경쟁의 논리를 적용하려고 하고 있다.

  외과의사 봉다리? 종합병원? 내가 보기에 그것은 로맨스 소설이다. 현실은 오히려 하얀거탑에 가깝다. 정치와 돈과 이건이 잔뜩 끼어든 그래서 시장통 같은 곳 이곳이 병원이다. 궁금하면서도 두렵다. 이제 병원이 어디로 가려는가? 내가 상상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말 앞으로 치료받을 목적으로 범죄하는 사람이 생길지도 모른다. 감옥에 들어가면 밥 먹여주기에 범죄하던 시절이 있던 것처럼 감옥에 들어가면 무료로 치료해주는 것을 노리고 범죄를 기도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 목숨을 돈으로 사고 파는 시대, 사람의 가치를 그 사람의 재산으로 평가받는 시기가 도래할지도 모른다. 아니 이미 도래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는 것 자체가 슬픔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