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과 칼집
한홍 지음 / 두란노 / 200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거합도라는 검술이 있다. 검술의 한 분파로 쉽게 말해서 발도술이라고도 불리운다. 검집에 들어 있는 검을 뽑음과 동시에 공격을 가하는 초스피드의 검술이다. 이 발도술이 가능하려면 가장 중요한 요건은 검이 검집 안에 들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발도술의 요체이다. 만일 발도술의 대가와 겨루기를 할 때에 검이 이미 검집 밖으로 나와 있다면 최소 30%는 이기고 들어간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거합도에 있어서 검집이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검이 더 위력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정말 잘 벼려진 칼이란 칼집 밖으로 나와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칼집 안에 들어 있다는 것이다. 칼집의 역할이란 단순하게 칼을 가지고 다니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칼을 보관하고, 보호하며, 제어하는 역할을 한다. 칼에 칼집이 없다는 것은 둘 중의 하나이다. 칼로서의 가치가 그리 크지 않다든지, 칼을 사용하는 사람이 목숨을 버릴 정도로 막장을 생각한다든지. 어느쪽이 되든간에 칼집이 없다는 것은 그리 유쾌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사람을 칼에 비유해 본다면 마찬가지로 사람이 가장 빛나는 것은 그 사람에게 정말 제대로 된 칼집이 있을 때이다. 사람에게 잘 맞는 칼집이라 함은 절제력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아무리 대단한 실력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절제력이 없다면 이미 그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헤픈 사람, 실없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렇다. 고수들은 함부로 자신의 실력을 남에게 보여 주지 않는다. 어설프게 초단을 딴 입문자들이나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실력을 내 보이고 싶을 뿐이지, 진정한 실력자들은 결코 그렇지 않다. 친구들 가운데에도 그런 친구가 있다. 태권도가 4단이다. 승단 심사에서 5단으로 승단한 친구이다. 나중에 밥벌어 먹고 살 것이 없다면 태권도장 차린다고 농담할 정도로 실력이 있는 친구인데 도장을 제외한 다른 곳에서 자신의 실력을 자랑하지 않는다. 시비가 붙고 화가 날 때에도 함부로 주먹을 휘두르지 않는다. 겁이 난다고 하더라. 잘못 때리면 어떻게 될까봐 겁이 난다고 하더라. 이게 진정한 실력자들의 모습이다.

  진짜 리더는, 진짜 실력이 있는 사람은 자기에 대하여 끔찍할 정도로 엄격하다. 다른 사람에게는 관대하지만 자신에게 대해서만은 엄격하다. 자신을 한자루의 잘 벼려진 칼로 만들고 있지만 결코 함부로 내보이지 않는다. 자기 절제라는 칼집안에 자신을 담아 두고 있다. 그러다가 꼭 필요한 순간에 자신을 드러내서 그 문제를 해결한다. 이것이 진짜 리더의 모습이요, 진짜 실력자의 모습일 것이다.

  세상에서 진짜가 많이 사라지고 있다. 음식도 진짜로 만드는 음식점은 망해가고 있다. 명품도 이미 짝퉁이 판을 치는 시대이다. 사람 또한 마찬가지이다. 진짜 실력자들이 대접받지 못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빈수레가 판을 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빈수레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굴러가고 있는 시대에 조용히 자신을 갈고 닦으며 절제라는 칼집 안에 조용히 때를 기다리는 진짜배기들은 어디에 있을가? 언제나 진짜 배기들이 대접받는 시대가 올까? 실력 지상 주의 시대에 성품과 절제라는 아름다운 칼집을 가진 사람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도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