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를 팔다 - 우상파괴자 히친스의 마더 테레사 비판
크리스토퍼 히친스 지음, 김정환 옮김 / 모멘토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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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민의 어머니 테레사, 인도의 어머니 테레사 등 테레사에 관한 별명들은 참 많이 있다. 대다수의 이야기들은 테레사를 높이고 숭배하는 이야기들이다. 히친스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자비를 팔다"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그의 책에 다시 제목을 붙이자면 나는 당당히 "테레사를 팔다."라는 제목을 붙일 것이다.

  이 책을 읽어가면서 그의 집요함에 경탄을 했다. 이 정도로 다른 사람에 대하여 조사를 할 수 있으며, 이 정도로 비판을 가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의 말에 선뜻 동의를 구하기 어렵다.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스기 전에 많은 서평들을 읽어 보았다. 거의 대다수의 서평들이 "대단하다, 뛰어나다, 존경스럽다."라는 내용들이다. 물론 그 내용의 밑바탕에 갈린 이야기가 무엇인지 안다. 나는 이 책을 단순하게 기독교 때리기라는 의미로 무시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다. 물로 ㄴ내가 기독교인이기에 거부감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어느 정도의 사감은 들어갔겠으나(그러나 어쩌랴 책으로 나오고 난 다음 그것에 대한 비판은 작가의 몫이 아니라 독자의 몫인 것을) 최대한 사감을 배제하려고 노력하였다.

  언제부터인가 시중 서점의 베스트셀러에 꼭 기독교 비판에 관한 책들이 이름을 올리기 시작하였다. "만들어진 신(리처드 도킨스)" "추락하는 교회(이상성)" "신은 위대하지 않다.(히친스)" 등등 요즘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책들이다. 이에 대한 반대 급부로 기독교 서점에서는 이러한 서적들을 비판하는 책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까? 왜 기독교를 대리지 못해서 안달이고, 기독교는 왜 이것들에 대하여 하나하나 대응하고 있는까? 그것도 논리적인 모습이 아니라 결국은 서로의 약점을 물고 늘어지는 방향으로.

  기독교에 문제가 있음을 본인은 인정한다. 기독교의 정치화, 케케묵은 반공 이데올로기, 주먹 구구식의 선교 정책, 무지를 조장하는 믿음의 선포 등등 기독교에서 아직도 고쳐야 할 부분들이 많음을 인정한다. 지난 역사 가운데에서 회개하고 참회해야 할 부분들이 수두룩 함 또한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들이 아직가지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 또한 사실이다. 한 명의 기독교인으로서 상당히 안타깝고 마음에 걸리는 부분들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을 가지고 기독교는 위선이다, 거짓이다라고 말하는 히친스 식의 논리를 위험하지 않을가? 마치 생각하기 싫고 생각하기를 멈춘 사람만이 기독교를 옹호한다는 식의 이야기는 너무 편협한 생각이 아닐까? 그렇게도 편협한 구원론을 비판하는 이들의 모습이 자신들이 비판하는 편협함과 거기서 거기라는 사실을 왜 알아채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지난 역사의 과오 때문에 기독교의 긍정적인 역할들마저 부정되고 있는 현실을 바라보면서 한없이 답답할 따름이다. 자비를 팔아, 빈민을 팔아 개인적인 선교에 몰두했다 비판받는 테레사의 모습에는 분명 잘못이 있다. 히친스의 비판은 여기에서 큰 설득력을 얻는다. 정치에 개입하고, 자신의 논리에 갇혀서 다른 이들에게도 동일한 논리를 강제 주입하는 테레사, 기회를 이 대라 생각하면서 테레사를 선전 도구로 사용하는 가톨릭과 정치인들, 경제인들 이들은 모두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이러한 잘못들을 가지고 모든 것들이 다 위선이라 말하는 히친스의 주장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가 아닐까? 허물이 있음으로 인하여 공적이 모두 사라진다는 식의 이야기는 비판이 아닌 비난이 아닐까? 이런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막대한 부담감을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나에게 쏟아질 비난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한국에서, 적어도 인터넷 상에서 기독교에 대한 생각을 개진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외국에서 무신론자임을 선언하는 것 만큼이나.

  만일 테레사 수녀가 이만큼 유명하지 않았다면 히친스의 공격을 받았을가? 그냥 적당하게 유명해서 세계적인 명사가 아니었다면 히친스가 비판을 했을가? 결코 아닐 것이다. 히친스의 비판이 왠지 공허게 들릴 때도 있는 것은 그가 비판한 사람들이 굵직한 사람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굵직한 사람들을 비판함으로 인해 그가 얻는 반대급부 때문일 것이다. 우상 파괴자, 이 시대의 진정한 석학. 그러나 나는 묻고 싶다. 그러한 모습을 통하여 당신은 과연 무엇을 했는가? 그렇게 비탙하는 테레사만큼이라도 빈민들에게 다가갔었는가? 역사상 많은 지식인들의 이야기들이 현실에서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가 이것이 아닐까?

ps. 책을 사고 아깝다는 생각은 잘 안한다. 만일 그러한 생각을 하게 된다고 해도 대개 내용 때문이다. 그런데 이책을 사고서는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 내용 때문이 아니라 책의 부실함 때문이다. 글자가 쓸데없이 크다. 노인들을 위해 만들어낸 책인가? 아니면 지면을 늘려 돈을 더 벌기 위함인가? 만약 일반 책의 글씨 포인트에 촘촘함을 더했다라면 최소한 책값이 1천원에서 2천원은 더 낮게 책정되지 않았을까? 왠지 해리포터 쪼개 팔기식의 상업주의 냄새가 나서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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