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퍼 이펙트 - 무엇이 선량한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가
필립 짐바르도 지음, 이충호.임지원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Must say "No!"

   If U don't say it, U R Lucifer already! 

  나에게 누군가 이 책의 논지를 단 두 문장으로 요약하라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아니라고 말해라.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이미 루시퍼(악을 행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 상황을 지지하는 공범자)이다."

  이 책에서는 스탠포드 대학 교도소의 모의 실험을 통하여 사람이 어떻게 악을 행하고 체제에 순응하는지에 대하여 끔찍할 정도로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 실험을 통하여 얻은 생각들을 가지고 세계 경찰을 자처하는 미국에 의해서 행해지는 온갖 수용소의 불의들에 대하여 평가를 하고 있다. 이 책을 접하면서 가장 처음에 놀란 것은 미국 사람이 자국의 이익을 위반하면서가지 당당하게 "아니다."라고 말하는 용기에 놀랐다. 저자는 자신은 아니라고 말할 것이지만 이것 하나만 가지고도 나는 그를 영웅이라 칭하고 싶다. 불의한 상황에 "No"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저자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올해로 서른 하나인 나는 국민학교 세대이다. 요즘은 한글에서 국민학교라고 치면 빨간 줄이 그어질 정도로 틀린 말이 되었지만 일제 교육의 잔재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국민학교를 지냈던 시대이다. 국민학교를 졸업하자 마자 교복을 다시 착용하는 세대가 되었다. 국민학교라는 말을 쓰면 너무 고리타분한 시대라 말하겠지만 그것은 결코 아니다. 불과 1~2년의 차이를 두고 초등학교라는 시스템에서부터 벗어나 있는 국민학교의 긑자락을 장식한 세대이다. 지금 20대 중후반들과 나이차이도 그리 많이 나지 않는, 아니 오히려 같은 세대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이러한 나이지만 그래도 군부독재시절의 끝자락을 지나온 사람이기에 아직도 내 가치관 속에는 국가라는 강력한 이미지가 틀어박혀 있다. 왜냐? 국민학교 시절에 그렇게 배워왔기 때문이다. 온갖 비리와 부정부패의 기사가 신문을 장식하던 시절에, 노태우 정권의 기만적인 분열 정책에(물론 그 가운데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력욕도 한 몫했지만) 사람들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좌절되었던 시기를 내 눈으로 보았던 세대의 사람이다. 국민학생인지라 무엇이 옳고 그른지 내 판단을 하지 못하던 시기에 선생님들이 가르쳐 주는 대로 배웠다. 아직도 기억 나는 것은 교과서의 가장 처음에는 국기에 대한 맹세가 기록되어 있고, 대통령 사진이 인쇄되어 있었던 것이다. 물론 교실 칠판 위에도 전두환 대통령과 노태우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 있던 것을 기억한다. 그러한 것들을 보면서도 북한의 김일성은 집에도 사진을 걸어놓게 시키는 독재자라는 명제를 배우며 자랐다. 가장 인기 있었던 만화는 "똘이 장군"이었으며, 일년에 한차례씩 반공 웅변대회가 열렸다. 평화의 댐 공사를 위해 피같은 내 용돈을 모금했던 기억도 난다.

  이러한 시대를 거쳐오면서 내가 끊임없이 배워왔던 것은 국가는 신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그러한 암묵적인 동의가 넘쳐 흐르던 시대였다. 사회 개혁을 부르짖는 사람들은 좌파요 빨갱이요, 살인자보다 더 무서운 범죄자였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지금에는 폐교가 될 정도로 시골 구석의 학교였다. 전교생이 백명이 안되는 학교였는데 그 학교 운동장에서도 최루탄 파편을 만져볼 정도로 시위가 빈번한 시기였다. 멋모르고 그 파편을 가지고 놀다가 눈을 만졌을 때의 그 쓰라림은 말로 할 수 없다. 그 후 "이래서 데모 하는 사람은 다 범죄자구나."라고 나만의 판단을 내리기도 했다. 데모라는 말은 내 또래의 아이들에게 있어서 데몬이라는 말만큼 무서운 단어요, 언급조차 해서는 안되는 말이었다. 시내에 나갔다가 데모하는 모습, 그들을 진압하던 전경의 폭력을 보면서 친구들에게 자랑스럽게 우리 편이 나쁜 놈들을 때려 잡았다 말하던 창피한 기억까지 생생하다. 내 어린 기억에 "청년 이한열"은, "청년 전태일"은 빨갱이요 죽어 마땅한 죄인이었다. 이렇게 살아오면서 나는 반공 글짓기에서 상도 받았고 주위 사람들에게 모범생이라 불려졌다.

  그런데 내가 20살이 되면서 많은 것이 달라졌다.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내가 지금까지 진리라 믿었던 것이 포장된 것들이요,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일들이 사실은 악에 가깝다는 것을 알고 얼마나 혼란스러웠는지? 고3때 96년 한총련의 연대 사건을 보면서 욕을 하던 내가 어느새 한총련을 지지하는 사람이 되었다. 처음으로 바른 생활에서 벗어나 데모에 참가하고 화염병을 들었고 쇠파이프를 들었다. 백골단을 조롱하면서 무서워 하기도 하였고 사회를 바꾸겠다는 일념으로 뛰어들었다. 모든 것은 이것으로 정당화가 되었다. 소위 말하는 선배들에 의한 의식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의식화라는 것 또한 주체만 바뀌었고 다를 뿐이지 지금까지 받아온 이데올로기화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 뒤로 맹목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거리를 두고 판단하는 모습으로 바뀌어 갔다. 어떤 사람들은 나를 변했다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여전하다 그런다. 변했다 함은 폭력적인 투쟁을 하지 않고 한총련에 동조하지 않는다는 의미요 여전하다 하는 말은 사회 개혁을 아직도 부르짖는다는 말이다.

  이런 나에게 참으로 흥미롭게 다가온 것이 이 책이다. 그 실험의 내용은 알고 있다. 그러나 무엇인가 다른 것이 있을까 하는 마음에 거금을 들여 700페이지짜리 책을 읽었다. 그리고 위의 두 문장을 결론으로 얻었다. 그리고 고민하던 부분에 대하여 약간이나마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이한열"은 왜 자신의 젊음을 바친 것일까? "전태일"은 왜 분신했을까? 왜 스없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생명을 바쳐가면서 그리 투쟁했던 것일까?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는 아닐 것이다. 가족의 이익과 명예를 위해서도 아니다. 그들은 단순히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불의가 보이는데, 악이 보이는데 참고 동조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동조까지는 아니더라고 침묵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랬기에 행동한 것이다. 이들의 희생을 무릅쓰며 행동한 이유는 정말 단순하다. "No"라고 말하는 것이 상식이기에 말한 것이다. 나는 어떨까? 내가 그 상황이라면 나는 어땠을까? 글쎄 뭐라 말하기 어렵다. 내가 그 시절에 안살아봐서 잘 모르겠다. 비겁한 변명일지도 모르지만 솔직한 내 생각이다.

  얼마 안있으면 총선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정치에 관심이 없다 말한다. 철저하게 느낀다. 연예인 이야기엔 거품을 물며 말하는 젊은이들이 정치 이야기만 나오면 얼굴을 찌푸린다. 왜 그런 쓸데 없는 이야기를 하냐 말한다. 그렇기에 "요즘 것들은"이라는 말로 질타 당한다. 그러나 시스템이 그렇게 만든다. 정치 이야기하고 투쟁하면서 혹은 놀면서도 좋은 직장에 가던 시기가 아니다. 직장을 잡기 위해서는, 내일을 위해서는 한 눈 팔지 말고 오직 공부하고 경쟁해야 한다. 이것이 젊은이들의 상황이다. 그러나 분명 이들이 정치에 관심이 없고, 투표를 하지 않는 것은 이들의 잘못이다. 그렇게 질타하는 시스템에 동조하며 침묵하는 것이다. 국민의 30%지지만 받고 대통령이 되는 현 시점은 이것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예일 뿐이다. 그러나 한번은 더 믿어보고 싶다. 젊은이들이 상식적으로 생각하기를 믿어본다.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방관자가 아니라, 시스템을 유지하는 공범자가 아니라 잘못된 것을 바꾸기 위해 일어서는 행동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한번 더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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