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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지난 16일 인수위에서 새정부의 조직에 대한 발표가 있었다. 세부적으로 여러가지 변화가 있었지만 그 골자는 작은 정부를 중심으로 하는 인력감축 및 혹독한 공직계의 구조조정이다. 지금까지 공직계의 무사안일주의, 사보타주가 국민들의 비난을 샀기 때문에 이명박 당선자를 비난하던 사람들도 여기에는 쌍수를 들어 환영을 하는 마당이다. 물론 나도 공직자들의 대충주의와 불친절, 철밥통이라 말하는 여러가지 관행에 대하여 불만을 가지고 있던터라 꼭 필요한 수순이라 생각을 한다. 그러나 나를 당황하게 만든 것은 인수위의 다음 말이다. 앞으로 우체국을 비롯해서 몇개의 공사를 민영화 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공무원들의 수를 줄여나갈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공무원 신분은 유지하여 줄 것이다. 무슨말인가? 내가 이해한 바로는 앞으로 공무원을 뽑을 문이 훨씬 줄어든다는 것인데, 지금가지 있던 사람들 정년 줄이는 방식으로 계속 줄여나가고 이와 동시에 새로운 공무원들을 등용하는 길을 줄여나간다는 말인데, 내가 제대로 이해했나 모르겠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당황스럽고 아연실색케 만든 이야기는 "작은 정부"이다. 지금가지 많은 규제들로 한국의 기업들이 경쟁력을 잃었다. 공무원을 줄이는 것도 정부의 역할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이다. 정부의 역할을 최소한도로만 주장하는 이명박 정권의 결론은 경찰국가, 즉 초기 자본주의가 활개를 치던 당시의 시절로 돌아가겠다는 것인가?
설마하는 마음에 기사를 검색하다가 모든 규제를 풀어주겠다는 기사를 발견했다. 기업의 규제, 자본을 억누르는 모든 규제를 풀어주겠다는 이명박 정권의 생각을 알게 되었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라는 책을 보면서 내 가슴을 내내 누르던 답답함과 불안함의 정체가 무엇이었는가? 여기에 있었다. 종종 뉴스로 보게되는 이명박 당선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알게모르게 가지고 있었던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이었던 것이다.
장 지글러는 세계의 많은 이들이 굶주리는 이유에 대하여 사막화, 전쟁, 부의 편중 등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어서 지적하고 있지만 그 가장 밑바탕에 흐르는 가장 큰 원인은 철저한 자본의 논리에 따르는 것임을 천명하고 있다. 시카고의 곡물 거래소를 장악하고 세계 곡물의 가격을 제맘대로 결정하는 다국적 기업, 세계 금융의 실체에 대하여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의 곡물은 지금 인구의 2배인 120억을 먹여살릴 수 있을만큼 많은데 왜 10세 미만의 어린이가 5초에 한명식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는가? 우리나라에서 먹기싫다고, 맛없다고 꼬마 녀석들이 투정하면서 버리는 그 음식들이 없어서 수없이 많은 국가에서 그와 같은 나이 또래의 꼬마들이 죽어간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먹기 싫어 버림과, 없어서 죽음 사이의 간극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할 것이며 받아들여야 하며, 메워야 하는 것인가? 정당한 가격을 주고 네슬레로부터 우유를 사서 칠레의 아동들에게 무상 지원하겠다건 아옌데 정권의 몰락이 누구의 술책인가? 네슬레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방법이었다. 과연 이것만일까?
코트디부아르의 상카라는 왜 몰락했는가? 왜 남미에서 민중들이 베네수엘라의 차베스에게 열광하는가? 그리고 그에게 당신은 "아옌데 같이 되지 않기 위해 조심하라."경고하며 걱정하는가? 그들은 막연하게나마 알기 때문이다. 다국적 기업과 세계 금융, 그리고 북반구의 잘 사는 국가들이 자신들이 기근에서 벗어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왜 좋아하지 않는가? 착취하고 뜯어낼 구석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들이 기근에 처해 있어야 먹을 것으로 달래고 위협하지만 이들에게 식량이 주어진다면 이들은 꼼짝도 않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직적으로 세계의 절반을 굶주림에 처해서 죽어가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의 이익과 자본의 증대를 위해서. 그리고 이것을 위해서 그냥 굶주림에 처하게 놔두는 것이 아니라 기근의 상황을 만들어 버리는 것이며 학교에서 이러한 것들을 가르치지오 언급하지도 않는 것이다. 이들은 세계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면서 동시에 나머지 세계의 절반으로부터 격리된 존재들이다.
지글러는 이러한 오늘날 기근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지적하고 있다. 그러면서 기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간성의 회복이 필요하다 말한다. 인간성의 회복이란 멜서스 주의의 종말을 말한다. 멜서스 주의는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신봉되어지고 있는 비인간적인 이론이다. 지금 수없이 많은 기근과 이로 인한 사망은 자연이 인구를 조절하기 위한 자동적인 방어기재라는 것이다. 이말을 좀더 따라 들어가면 그렇기에 우리는 기근에 있는 사람들을 도와주면 안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을 도와주는 것은, 이들을 기근에서 탈출하게 도와주는 것은 환경을 고갈시키는 일이며 지구를 파괴하는 행동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멜서스 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우리에게 말한다. "기근에 대하여 눈멀고 귀먹고 모르는체 하라." 그리고 그 사이에 그들은 기근에 빠진 사람들을 쥐어짠다.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우리 나라는 북반구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나라를 선진국이라 착각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다른 절반에 속해 있다. 철저하게 쥐어짜임을 당하고 가난을 대물림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다만 그들보다는 더 교묘하게 그러한 상황에 청해 있다는 것이다. 김영삼 정권 이래 역대 정부들은 문민-국민-참여라는 정부 이름으로 자신들을 포장하고 국민들로 하여금 집중과 선택이라는 그럴싸한 논리로 포장한 신자유주의에 빠지게 만들었다. IMF와 이것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변명은 하지만 그래도 미사여구라는 가면은 쓰고 있었다. 그러나 이젠 눈치볼 것이 없어졌는지 이명박 정권은 규제 철폐를 자신들의 사명으로 천명하였다.
어제 장례식장을 갔다가 매제를 만나 이야기를 했다. 한전에 말단 사원으로 있는데 한전 분위기가 말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조만간 매각된다는 이야기가 인수위에서 발표되었기 때문이다. 비단 매제의 문제만도 아니고 한전의 문제만도 아니다. 이젠 규제와 첼폐가 없는 완전 자유의 시대가 도래하는 것이다. 살아남을 사람들은 살아남고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연 도태될 뿐이다. 국가는 남아 있는 사람들을 이용하여 세금을 거두기만 하면 된다. 국가의 역할은 사후 수습일뿐이지 적극적인 개입은 아니라는 것이 인수위의 논리인 것이다. 그러나 알다가도 모를 일은 그렇게 대단한 학문을 닦으신 분들께서 왜 장자크 루소의 "약자와 강자 사이에서는 자유가 억압이며 법이 해방이다."는 사회계약론의 구절을 떠올리지 못하시는 것들일까?
그렇게도 천명하던 신자유주의(Neo-liberalism)의 선두주자인 대처리즘도, 닉스노믹스도, 레이거노믹스도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의 바이블인 애덤 스미스의 자유주의 경제 모형은 이미 문제점이 드러나 수정의 수정을 거듭하여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화했다는 것을 왜 떠올리지 못하는 것일까? 인수위에서 주위를 둘러봤으면 한다. 신자유주의로 무장한 많은 국가들이 실은 자신들부터 자유주의가 아닌 규제와 통제를 통하여 그 정책을 유지하고 있음을 말이다. 이미 그네들의 나라에서는 죽어버린 신자유주의가 우리나라에서는 진리로 받아들여지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20:80의 법칙(인구의 20%가 소득의 80%를 차지하는 기현상)을 강화하는 인수위의 모습이 이내 마음에 걸린다. 신자유주의의 그 높은 파고를 어찌 넘을지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