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운몽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2
김만중 지음, 송성욱 옮김 / 민음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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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시습의 금오신화를 읽은 후에 바로 집어든 책이 김만중의 구운몽이다. 고등학생이던 시절 시험을 위해서 머릿 속에 꾹꾹 눌러 넣었던 책들이다. 내용이야 간략하게 요약한 것으로 읽었으니 줄거리는 알고 있지만, 한번 읽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을 했다. 형식이 어디서 눈에 많이 익는다 했더니 구운몽에 대한 설명을 찾아보니 "홍루몽"와 비슷한 스토리 형식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구운몽은 읽지 않았지만 홍루몽은 찾아서 읽은 것을 보니 나도 평범한 남고학생의 성장과정을 겪어 온 것 같다. 아마 문학에 관심이 있는 남학생이 아니라고 해도, 홍루몽과 금병매, 채털리 부인의 사랑은 한번씩은 손에 들어봤을 것이다.


  금오신화와 구운몽을 따로 읽었으면 쉽게 눈치채지 못했을 테지만, 금오신화와 구운몽을 연달아 읽으니 그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소설의 저자가 처한 상황이 그 안에 그대로 담겨 있다고 할까? 금오신화가 은둔한 천재인 김시습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기 때문에 속세를 멀리하고, 세속적인 삶의 허무함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 구운몽은 철저하게 세속의 욕망을 투사하고 있다. 학생 시절에 책을 읽어 보지 않고 구운몽은 세속적인 삶의 허무함을 극복하는 갈망을 담고 있는 작품이라고 배웠는데, 책의 내용을 읽어보니 전혀 반대로 읽혀진다. 물론 내용이야 세상의 온갖 부귀 영화를 누리다가 미몽에서 깨어나 깨달음의 길을 갔다는 그러한 스토리 라인을 따라간다면 그렇게 이해할 수가 있지만, 행간에 담긴 마음은 전혀 그렇게 읽혀지지가 않는다. 뭐라 표현할 수 없어서 비속어를 사용하지만 "꼰대짓"이 아닐까?


  김만중은 세도가에서 자랐다. 배경도 지위도, 부와 권력도 다 가져본 사람이다. 그러다가 유배를 당하고, 방환되었다가 다시 유배를 당한다. 그리고 두번째 유배지에서 병사한다. 그 내용 때문에 과거에는 두번째 유배지인 남해에서 기록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나중에는 첫번재 유배지인 선천에 유배되었을 때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하여 지은 소설이라고 정정된다. 아마도 허무함을 극복하기 위한 소설이라는 입장에서 남해에서 지어진 소설로 이해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승려 성진이 스승의 명으로 용왕을 만나고 오다가 팔선녀를 만나고 이로 인하여 발생하는 이야기가 구운몽의 주된 줄거리이다. 다시 태어난 성진은 팔선녀가 환생한 미녀들을 만나는데, 그들은 매우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기생에서부터 공주, 시비, 심지어는 자객과 용왕의 딸까지.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들이 성진을 만나면서 금방 혹 한다는 것이다. 용모면 용모, 음악이면 음악, 무예면 무예 그 어느 것 하나 빠지 않는 이가 성진이 환생한 양소유이다. 내노라하는 모든 미녀들이 양소유만 만나면 한눈에 반하는 설정은 처음에는 고전이니까하고 넘어가지만 몇번 반복되면 "이건 뭐 장난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개연성이 없어진다. 양소유가 나라를 역적을 토벌하고 나라는 구하는 단계에 이르면 뻥도 적당히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나라에 양소유 외에 인물이 없단 말인가? 편지 한 장에 반란군들이 마음을 돌이켜 천자에게 충성을 맹세한다는 것은 아무리 소설이라고 해도 개연성이 많이 떨어진다. 아무리 어머니를 위해 지은 소설이라지만 정도껏 했어야...


  어머니를 위한 소설이라고 하지만 난 그 소설 안에 담겨 있는 김만중의 욕망이 느껴진다. 많은 미녀들과 더불어 높은 권력을 누리면서, 심지어는 조금의 부침도 없이 대를 이어 명문가를 만들어간다는 당시 권문세족들의 욕심이 그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러니 나중에 꿈에서 깨어난다는 일장춘몽의 설정도 민망해서 끼워 맞춘 것이 아닌가라는 의심이 들 정도이다. 불교에 대해서도, 그렇다고 장자에 대해서도 무시하는 정통 유학자가 그 사상을 가져다가 깊이 있게 다룬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이야기이다. 그러니 금오신화와 비슷한 소재임에도 느껴지는 분위기가 다를 수 밖에. 한바탕 꿈에서 깨어난 성진과 팔선녀가 깨달음을 얻어서 많은 이들에게 칭송을 받고 부처의 가르침을 전하고 극락으로 갔다는 이야기는 한국 불교식의 입신양명이 아니겠는가? 결국 구운몽의 몸통은 유교라는 체제 안에서의 성공을, 끝머리는 불교라는 체제 안에서의 성공을 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 책을 읽다가 문득 웃긴 생각이 떠올랐다. 윤석열 국민의 힘 경선 후보의 가난 발언 말이다. "고시원에서 고시생들과 생라면도 먹고..." 운운 했던 발언 말이다. 가난에 대해서 모른다, 그렇지만 무시하지 않겠다라고 말하면 되는데 자신이 가난했던 시절이 있었다는 점을 말하기 위해서 생라면 먹는 이야기를 운운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웃기는 짬뽕이다. 구운몽이 그렇다. 한껏 성공해본 사람, 유배에서 풀려나서 성공할 것을 꿈꾸던 사람의 이야기로 밖에 들려지지 않는다. 그러나 내겐 깨달음이 아니라, 성공해본 사람의 꼰대짓 내지는 욕망의 발산으로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고등학생 시절에 이런 생각을 했다면 입시에 상당히 불리했을 것이다. 그러니 고전을 읽히지 않고, 고전의 줄거리만 머릿 속에 주입시키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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