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오신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04
김시습 지음, 이지하 옮김 / 민음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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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종의 충신으로 꼽히는 사람들이 있다. 사육신과 생육신이 그들이다. 사육신은 단종의 복위를 시도하다가 죽임을 당한 대표적인 여섯 사람을 말하며, 생육신은 살아있지만, 세조의 세상에서는 벼슬을 하지 않겠다면서 은거한 사람들을 말한다. 물론 이들은 무능력하여 은거한 사람들이 아니라 능력이 있음에도 은거한 사람들이다. 그 중에 가장 처음으로 꼽는 사람이 "김시습"이다. 생육신 가운데 가장 첫 머리에 꼽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능력이 출중하며, 절대로 타협하지 않았던 사람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금오신화"라는 말은 금오산에서 유래한 말이다. 경주에 금오산이 있는데 김시습이 금오산에 있는 용장사에서 은거하면서 지은 이야기이기 때문에 금오신화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신화라는 말이 "神話"가 아니라 "新話"라는 점이다. 내용이 몽환적이고, 귀신과 맺어지는 이야기도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神話"로 오해할 소지가 충분하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김시습은 "新話"라는 제목을 택했다. 새로운 이야기라는 의미이다. 도대체 무엇이 새로운 이야기라는 말일까? "소설"이라는 의미의 장르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새로운 이야기일 것이고, 중국이 아닌 한국이 배경인 이야기이기 때문에 새롭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가장 새로운 것은 김시습의 인생이 꿈꾸는 방향이 당시의 시대와 전혀 달라졌다는 것이리라. 물론 그의 책 여기 저기에 여전히 유교의 가치관에 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지만, 전체적인 맥락에서는 유교적인 틀을 깨고 나가려는 시도가 눈에 보인다. 비록 충이라는 가치관 때문에 은거하였지만, 그 기간이 인생과 재능을 낭비하는 시간이 아니라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는 의미있는 시간이 되었다. 유교를 제일로 치던 모습에서 탈피하여 불교의 사상과 도교의 사상을 같이 이야기하면서 통합적인 사상의 틀을 이야기로 풀어낸 점이 흠이롭다.


  딱딱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금오신화를 보면서 한가지 발견하게 되는 재미있는 사실은 주인공들이 대체로 귀신에 홀려서 죽는다는 것이다. 애절한 사랑 때문이든지, 아니면 깨달음 때문이든지, 아니면 천명이든지 주인공들이 죽는다. 주인공이 죽는 것이 흥미로울 이유가 없지만, 그들의 죽음이 모두 귀신에 홀려서 죽는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렇게 귀신에 홀려서 죽으면 원한을 품는 것이 당연한 논리적인 흐름인데, 전혀 그렇지 않다. 귀신에 홀려 죽은 이들 가운데 어던 이는 신선이되고, 어떤 이는 염라대왕이 되기도 한다. 잠깐 옆으로 살짝 비껴나가지만 "신과 함께"에서 염라대왕이 되는 부분이 "남염부주지"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은 아닐까 싶다. 이와는 별개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또 이 부분이기도 하다. 삶과 죽음, 죽음 이후의 문제들에 대해서 유불선의 사상이 아주 적은 분량에 압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들의 죽음이 흥미로운 것은 죽음이 완전한 멸망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죽음 이후에 주인공들은 새로운 세계의 일원으로, 그것도 그 세계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존재가 된다. 그들을 통하여 사람들은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새로운 경지에 이르게 된다. 마치 김시습이 입신양명의 길을 버리고 은거하면서 새로운 지평을 연것 처럼 말이다. 만약 그에게 단종의 폐위와 죽음이라는 역사적인 비극이 없었다면, 잘 짜여진 입신양명의 길을 걸어가 편협한 유학자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최초의 한글 소설인 홍길동전의 저자인 허균과 상당히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고 할수 있다. 최초의 한문 소설의 저자 김시습, 최초의 한글 소설의 저자 허균, 최초와 최초가 통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들을 담지 못하는 현실 때문에 오히려 그들은 현실 너머를 보는 비범한 존재가 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PS. 썩 재미있지는 않다. 개인적으로는 삼국유사가 더 재미있게 느껴진다. "남염부주지" 편이 머릿 속에 꽤 많이 남고, 나중에 시간을 두고 몇번을 더 곱씹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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