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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레라 시대의 사랑 2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8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4년 2월
평점 :
코로나가 시작하면서 페스트를 읽었다. 이어서 콜레라 시대의 사랑을 읽었다. "콜레라 시대의 사랑"이라는 책도, 가르시아 마르케스도 모르고 그저 제목에 끌려서 시작을 했다. 아마도 콜레라 시대의 사랑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이유로 시작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이 책은 지독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 51년 9개월 4일을 기다려온 남자. 이렇게 긴 세월을 한 사람을 사랑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게다가 51년 9개월 4일이라는 날짜까지 정확하게 센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군 입대한 사람들이 제대 날짜를 바라는 정도의 간절함이 없다면 셀 수 없는 시간들이다. 아니다. 그 정도의 간절함을 가지고도 51년 9개월 4일이라는 어마어마한 시간들을 셀 수는 없으니, 이 정도면 사랑이라기보다는 집착이라고 부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사랑하는 여인과 헤어졌다. 젊은 시절의 뜨거운 열정도 시간이 지나가면서 셈에 밝아질 무렵에는 식어버리기 마련이다. 문제는 여자는 식었지만, 남자는 식지 않았다는 것이다. 셈법에 눈을 뜬 여인은 열정보다는 안정을 택했고, 열정을 버리지 못한 남자는 언젠가 올 그날을 위해서 안정을 마련하기 시작한다. 한 동네에 살면서도 아무일 없다는 듯이 살아가는 남자의 모습이나, 뻔히 알면서도 애써 무시했던 여인의 모습이나 정상적이지는 않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여인이 택한 남자는 죽었고, 기다리던 남자는 때를 얻었다. 지난 세월동안 이루어 놓은 것을 가지고, 여인 앞에 나타난 남자를 보면서 여인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그 남자가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만났던, 그러나 조금도 정을 주지 않았던 여자들은 그 남자를 바라보면서 또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작가는 이 사람들의 모습을 통하여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그렇게 오랜 세월동안 함께 해온 결혼 생활은 작가에게 어떤 모습일까? 결혼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보낸 그 오랜 세월보다 그 울타리를 벗어난 이후에 일어나는 노년의 짧은 사랑이 작가에게는 더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닐까? 자기 어머니의 사랑을 바라보는 자녀들의 상반된 모습은 또 무엇일까? 작가는 자기의 생각을 잘 내비치지 않는다. 그냥 담담하게, 담담하다 못해 지루할 정도로 자세하게 그 이야기를 풀어갈 따름이다. 그래서 이 책이 더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콜레라가 창궐하던 콜로비아의 도시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이기에 제목을 콜레라 시대의 사랑이라고 붙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51년 9개월 4일이라는 그 긴 시간이 오히려 콜레라와 같은 시대라고 느껴진다. 발열과 통증이라는 콜레라의 증세처럼, 남자가 사랑의 열정과 시련의 아픔, 기다림의 통증으로 지내온 그 긴 시간이 콜레라의 시간이기에 콜레라 시대의 사랑이라고 제목을 정한 것은 아닐까?
책을 덮으면서 문득 "죽어도 좋아"라는 영화와 "글루미 선데이"라는 영화가 떠오른 것은 무슨 이유일까? 지독한 사랑, 기나긴 인고, 그리고 누군가를 죽기를 기다리는 비인간적인 바람 등을 보면서 참 지독하다라는 한 마디 밖에 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