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탈로니아 찬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6
조지 오웰 지음, 정영목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계문학 전집을 읽기 시작했다. 1권부터 쭉 읽어가다가 재미없는 방법인 것 같아서 방향을 바꿨다. 전집에 포함되어 있는 작가별로 읽어가면 더 재미있지 않을까 하면서, 첫번째 작가로 조지 오웰을 택했다. 동물농장, 1984, 그리고 카탈로니아 찬가! 이렇게 읽어보니 작가가 했던 "내 글은 정치적"이라는 말의 의미가 훨씬 분명하게 다가온다. 물론 이렇게 읽으면 어느 책을 읽었는지 나중에는 헷갈릴 수 있기 때문에 민음사에서 목록을 뽑아 놓았다. 엑셀파일로 제공해 주는데 읽고서 하나씩 지워서 시트 전체를 빈칸으로 만드는 그 날을 꿈꿔본다.


  스페인하면 축구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리고 스페인 축구하면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로셀로나의 라이벌 구도가 곧바로 이어진다. 두 클럽이 모두 축구를 잘하는 클럽이기는 하지만, 그 외에도 상위권에 있는 클럽들을 택하자면 몇 개를 더 뽑을 수 있지만 두 클럽의 경기는 그 어느 팀들의 경기보다 더 치열하고, 열정적이다. 호나우지뉴, 메시, 수아레스, 네이마르, 지단, 호날두, 벤제마 등등 두 팀의 스타플레어어들의 명단은 화려하다 못해 거짓말 같다. 그런 선수들이 뛰나 인기가 있을 수 밖에 없지만, 두 팀의 경기가 치열한 결정적인 이유는 역사와 지역에서 연유하는 것이다.  과거 한국 야구의 해태와 롯데의 경기와 비슷한 이유라고 볼 수 있다. 


  스페인 내전은 유럽의 모든 사상들이 격돌하던 전장이었다. 파시즘, 아나키즘, 공산주의, 민주주의 등 모든 사상들이 격돌했던 장소였으며, 파시즘에 맞서기 위하여 공존할 수 없는 아나키즘, 공산주의, 민주주의가 손을 잡았던 묘한 곳이기도 하다. 프랑코에 맞서기 위하여 당시 유럽의 많은 사람들이 스페인 내전에 참여했으며, 그 역사는 꽤 오랜 세월 동안 이어졌다. 1973년 FC 바르셀로나에 입단한 요한 크루이프가 밝힌 "프랑코 정권의 지원을 받는 클럽에서 뛰고 십지 않다"는 입단 소감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파시스트인 프랑코 정권과 싸워서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지키겠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머지않아 이들은 정치적 희생양이 되어버리고 만다. 전선에 투입되었지만 제대로 보급되지 않는 무기들, 실패한 작전과 이로 인한 희생, 그리고 이들의 무능력을 비판하는 많은 사람들. 이들은 머지않아 크로츠키 주의자라는 비판을 받고 전선에서 배제되고 체포되고, 심지어는 처형되기까지 한다. 어떤 이들은 자국으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이 또한 쉽지 않은 길이었고, 조지 오웰도 여러번의 위기 끝에 영국으로 돌아갔고, 고향에 돌아가서야 비로소 평안을 느끼며 책이 마무리 된다. 혁명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그들을 비난하고 공격했던 이들은 누구인가? 그들에 대한 오웰의 묘사는 이렇다.


  전쟁의 가장 끔찍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모든 전쟁 선전물, 모든 악다구니와 거짓말, 증오가 언제나 싸우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나온다는 점이다. 내가 전선에서 알게 된 통일사회당 의용군 병사들이나, 이따금씩 만나는 국제 여단의 공산주의자들은 나를 결코 트로츠키주의자나 배반자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런 일은 후방의 기자들이 담당했다.우리에게 반대하는 팸플릿을 쓰고 신문에서 우리를 헐뜯는 사람들은 모두 안전한 집에, 혹은 기껏해야 발렌시아의 신문사 사무실에 있었다. 총알과 진창으로부터 수백 킬로미터는 떨어진 곳이었다.(p88~89)


  안전한 곳에서, 평가하고, 비난하고, 헐뜯는 이들은 아마도 나중에 다들 더 안전한 자리에서 부와 권력을 누렸을 것이다. 오웰이 대신하여 싸웠던 사람들 가운데 이러한 사람들도 있다는 점은, 그리고 그들이 나중에 권력자가 된다는 점은 이 책에 붙은 "찬가"라는 제목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무엇을 위한 찬가인가? 찬가란 말보다 비가라는 말이 더 어울리지 않겠는가? 순수한, 그래서 더 어리석은 아마추어 혁명가와 혁명정신, 이들을 이용하는 기회주의자, 무자비한 파시스트, 전선의 뒤에서, 안전한 곳에서 병사들의 생명을 담보로 협상하고, 심지어는 담합하는 정치인들. 과연 이들에게 찬사를 보낼 수 있을까? 내용이야 어쨌든 결과는 혁명 정신에 대한 배반인데 무엇을 찬양할 것인가? 오웰이 고향에 돌아와 느꼈던 편안함이 그래서 더 씁쓸한지도 모르겠다.


  몇년 전부터 정치권에서, 언론에서 촛불 혁명에 대한 배반이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한다. 가장 최근에는 이재용 가석방을 두고 촛불 혁명에 대한 배신이라고 한다. 그런데 촛불 정신에 대한 배신 운운하는 사람, 공격하는 사람 가운데 조중동 같은 메이저 신문사와 국민의 힘, 또는 국민의 당 의원들이 있다. 2019년 9우러 윤상현 의원이 이낙연 국무총리에게 했던 질의는 코미디 중의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오웰이 느꼈던 답답함이 이런 것이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순수하지만 어리석은 모습으로 정권을 바꾸고 모든 것이 끝났다고 말했다. 진보 언론들도 이젠 됐다라고 승리의 함성을 외쳤다. 그러나 정말 됐는가? 자화자찬하고 손 놓는 동안 5년이 흘러간다. 그리고 다시 대선이 다가왔다. 바뀐 것이 없는 현 세태를 바라보면서 국민들은 벌써 피곤해진다.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도, 국민의 힘 대선후보 경선도 안봤으면 좋겠다. 봐야 뭐하나. 똑같은데. 국민들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언론들은 또 떠들어 대시 시작한다. 안전한 뒤에서 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다. 과거 모 인사의 "국민 개돼지 발언"이 직접적으로 나타나지는 않지만, 많은 지식인들이 이러한 입장에서 국민들을 계몽하겠다고 나선다. 그러나 그 누구도 직접 전선에 뛰어들지는 않는다. 


  여기에서 우리는 무슨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까? 지식인과 정치인들이 존경받는 날이 오기는 할 것인가? 카탈로니아 찬가가 더 씁쓸하게 읽히는 2021년의 한국 상황이 서글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