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신들 - 여신은 어떻게 우리에게 잊혔는가
조지프 캠벨 지음, 구학서 옮김 / 청아출판사 / 2016년 10월
평점 :
절판


  구라: 거짓말을 속되게 부르는 말, 이야기를 속되게 부르는 말, 거짓이나 가짜를 속되게 이르는 말


  구라에는 위의 세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우리가 흔히 거짓말쟁이를 "구라쟁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첫 번째 의미만을 담고 있는 말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말이기는 하지만 구라의 두 번째 의미에 기반해서 구라쟁이를 이해한다면 "이야기꾼"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일전에 한국의 3대 구라쟁이라는 사람을 꼽은 적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후자의 의미로 꼽힌 사람들이다. 유홍준 씨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나와서 한국의 3대 구라쟁이들 운운하면서 언급한 "백기완, 방동규, 황석영"을 이런 의미에서 구라쟁이라고 부른 것이다.


  캠벨은 이런 의미에서 세계적인 구라쟁이라고 할 수 있다. 신화에 대해서라면 세계에서 한수 접어주는 사람, 서양의 신화만이 아니라 동양의 신황에도 잡다하고 넓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 그래서 그가 쓴 책들은 재미가 있다.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신화의 힘"은 나도 학생 시절에 접했던 책이다. 신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통과 의례처럼 꼭 읽고 지나가는 책이 바로 이 두 가지이다. "여신들"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기대했던 것이 이것인데, 이 책은 내 기대를 생각보다 충족시켜 주지 못했다. 어떻게 여신들이 사라지는가, 어떻게 남신 문화가 여신 문화를 집어 삼키고 여신들을 지워나갔는가에 대한 그의 이야기를 기대했지만, 의외로 깊이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간은 두서 없다는 생각, 그래서 깊이가 딸린다는 생각을 책을 덮는 순간까지 지울 수가 없었다. 그리스의 만신전의 여신들과 남신들이라는 챕터는 여신들과 남신들이라는 장의 이름이 무색하게 거의 남신들로 채워져 있으며, 남신들로 그냥 지나가면서 맛만 보고 지나간다. "여신의 귀환"이라는 장에서는 귀환이라는 말이 무색하다. 여신이라는 주제, 어떻게 남신 문화가 여신 문화를 집어 삼켰는가를 강의의 주제로 삼았다면 조금은 더 깊이 들어가야 하지 않았을까?


  또한 눈에 거슬리는 것은 캠벨의 입장이 철저하게 서구 중심적이라는 점이다. 인도보다 유럽의 문화가 오래 되었다는 점에 대해서도 주장을 한다면 조금은 더 자세하게 기록해야 하는데, 뭘 이런 당연한 것을, 또는 내가 그렇다면 그런거야라는 식으로 살짝 지나간다. 셈족 계열의 유대인에게 사르곤, 함무라비가 영향을 받아서 메소포타미아의 여신들이 남성 중심적인 구약의 사상에 의해서 제거되었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신박하기까지 하다. 내가 잘못봤나 싶어서 유심히 살펴보니 곳곳에서 그러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상식적으로는 메소포타미아의 영향을 유대인들이 받았다고 말하지 않나? 그래서 심한 경우는 "구약은 메소포타미아 신화를 빌려다 쓴 구라다"라고 까지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은가? 정반대의 주장을 하는 캠벨의 모습을 보면서 번역이 잘못된 것인지, 만약 그것이 아니라면 그는 서양, 기독교 문명을 중심에 놓고 나머지를 생각하는 서구 중심적인 사고에 빠져있는 사람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오디세이아를 해석하면서 오디세우스라는 남성의 인생의 여정으로 이해하는 점이다. 고 이윤기 씨의 책 중에 그리스 로마 신화가 있는데, 5권 "아르고 원정대의 모험"을 비슷한 모티브로 해석했었다. 서로 다른 사건을 다루지만, 신화를 인생을 해석하는 열쇠로, 인생에 대한 은유로 해석하는 것이 꽤 신선해서 기억에 남았는데 캠벨에게서 그와 비슷한 해석을 보니 이윤기가 여기에 영향을 받지 않았는가라는 생각을 해봤다.


  분명 재미는 있다. 잡다한 이야기를 듣는 재미, 캠벨의 구라에 빨려 들어가는 재미는 있다. 그런데 그 구라가 약간 딸린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의 말이 구라는 아닐까 의심하면서 읽는다. 그래서일까?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책에 대해서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지만, 나는 "글쎄?"라는 말을 감히 던지는 것이다. 여러가지 단편적인 의견들을 두서없이 던져주는 불친철한 책, 그래도 삽화를 한번씩 보는 것, 그리고 다른 신화화의 관계성을 살펴보는 것은 이 책이 읽어볼만한 책이라는 평가를 내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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