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과 바다 - 바다에서 만들어진 근대
주경철 지음 / 산처럼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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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 쐐기를 박는다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쐐기는 나무 못을 의미한다. 나무와 나무를 연결할 때 못이 아니라 나무를 가지고 못을 만들어 박는다. 그러면 나무가 물에 불어도 나무 못이 같이 불기 때문에 풀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쐐기는 바위를 쪼갤 때도 사용한다. 고대 이집트에서 피라미드를 만들 때 돌을 깨기 위해서 쐐기를 박는 방법을 사용했다고 한다. 일정한 간격으로 바위에 구멍을 뚫고 여기에 쐐기를 박는다. 그리고 물을 뿌려 주면 나무가 물에 불면서 바위를 쪼갰다고 한다. 특별히 중국이나 우리나라처럼 계절의 변화가 있는 곳에서는 이러한 방법이 더 유용하게 사용되었다고 한다. 겨울이 되면서 쐐기가 물에 부는 것은 물론 단단하게 얼면서 팽창하기 때문이다. 아무런 힘도 없고 연약한 나무가 단단한 바위를 깨는 것은 경이롭기까지 하고, 이러한 방법을 고안한 고대 인류들의 지혜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문명과 바다라는 책을 읽으면서 내가 떠올린 것이 바로 이 쐐기이다. 우리는 대항해 시대라는 것을 상당히 낭만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왜 그럴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개인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코에이의 대항해 시대라는 게임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 대항해 시대를 해본 사람들이라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이 시기에 대한 낭만과 동경이 크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저자는 이 시기의 문명의 전파라는 것이 그렇게 대단한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천지가 개벽하는 역사의 변동이 일어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다만 대항해 시대가 전 지구적인 문명의 변화에 쐐기와 같은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다. 유럽에 의한 아메리카의 지배라는 것도 영토적인 개념보다는 항로의 개척, 혹은 거점을 중심으로 한 지배일 뿐이지 영토의 확장이라는 의미에서 식민지배는 근대에 발생했다는 저자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렇다고 대항해 시대의 영향에 대해서 과소평가하고 싶지는 않다. 


  대항해 시대가 가지는 중요한 의미가 무엇인가? 견고한 문명의 벽에 쐐기를 박아 균열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바다라는 문명의 벽을 건너서 다른 문명에 유렵의 문명이라는 쐐기를 박았다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세계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변화를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항해 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그리고 인류의 모험심으로 인하여, 또한 무엇보다도 금전적인 동력으로 인하여 시작된 움직임은 당시 강고하던 세계 질서에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이 책은 이러한 점에 대해서 다방면에서 다루고 있다. 물론 신문에 연재되었던 내용들을 책으로 모은 것이기 때문에 깊이에서는 부족하다는 느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던 내용들에 대해서, 그리고 간과했던 내용들에 대해서 알게 되는 것은 의외의 소득이고 즐거움이다. 은이 중국으로 빨려 들어간 이유에 대해서 환차익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은 매우 신선한 접근이었고, 고고려 인삼과 북아메리카의 인삼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것 또한 소소한 재미를 준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시기에 우리나라가 몇 걸음 뒤로 물러나 있다는 것이다. 쇄국 정책 때문이라면 그것대로, 기록을 남기지 않아서라면 그 또한 그것대로 아쉽고 안타까운 것은 매 한가지다. 


  이 책과 더불어 함께 읽으면 좋을 책이 페르낭 브로델의 지중해 시리즈이다. 1권을 읽고 아직 2권과 3권을 읽지 않았는데 이 책과 더불어 읽는다면 왜 그렇게 유럽에서 신대륙을 찾기에 목을 매었는지를 더 입체적으로 알게 된다. 여튼 저자는 개인적으로 판단하자면 바다덕후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사람과 한 시대를 살면서 그의 책을 지속적으로 접하는 것은 꽤나 유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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