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의 반이 가고

또 반이 시작되었다.

한해 동안에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는 많다. 이를테면,

1월1일,

설날,

봄의 시작 또는 학년의 시작인 3월,

그리고 오늘 같은 날.

 

남은 반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올 한해가 자신에게 어떤 의민지

가늠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7월의 첫날, 저녁

비가 내린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서니데이 2017-07-01 1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도 절반 지났네요. 좋은 일들 앞으로 많이 남아있었으면 좋겠어요.
stella.k님 좋은 주말 보내세요.^^

stella.K 2017-07-01 19:53   좋아요 1 | URL
오,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도 남은 한 해 좋은 일들로
쌓여 가게 되길 바랍니다.^^

cyrus 2017-07-01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알라딘 18주년 기념 통계 구매 기록 공개했던데 확인해보셨어요? ^^

stella.K 2017-07-03 14:27   좋아요 0 | URL
컥, 그런 게 있었나?
뭐 재미라고는 하지만 늬들이 우리 책 얼마나 샀나
똑똑히 보고 있다는 뜻 아니겠니?
난 중고샵 주로 이용해서 말이지.ㅋ
중고샵이나 휑하니 다녀오면 좋겠는데
책 사면 읽게되지는 않아서 참고 있다.ㅠ

cyrus 2017-07-03 16:23   좋아요 0 | URL
그거 매년 이맘때쯤이면 나와요. 지금쯤이면 통계 자료를 공개하는 글들이 나와야 하는데 조용하네요. ^^
 

나는 여태껏 담배를 단 한대도 피워 본 적이 없어 사람들이 왜 담배를 피우는지 알지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백해무익하다는 것에 대해 내가 굳이 알아야 하는 건가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이다하지만 내가 그것에 대해 관심을 갖든 안 갖든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늘 존재해 왔다.

어느 날, 우연히 TV를 보다가 담배를 왜 피우는지 알게 되었다. 담배를 피우면 니코틴이 뇌의 해마와 반응해 정신이 맑아지고, 마음이 차분해지며, 집중력이 높아져 새로운 아이디어가 마구 떠오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그냥 평상시로 돌아가지만 담배를 피웠을 때 극대화된 자신을 경험한터라 그것을 안 하면 상대적으로 무기력 하다고 생각해 결국 중독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그래서 담배는 아예 시작도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

얼마 전, 나는 엄마와 식사를 하면서 무슨 말 끝에 그 말을 하게 되었다. 그러자 엄마는 당신이 어떻게 담배를 피우게 되었는가를 얘기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얘기라면 나도 그전부터 알고 있었던 터라 또 들어야 하나 시큰둥하고 있었는데 그때는 좀 다른 말을 한다.

물론 엄마는 오래 전에 담배를 끊긴 했지만, 내가 초등학교 시절 주방에서 일하다 말고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곤 했다그러니까 엄마는 어느 때부턴가 당신이 담배 피우는 것을 굳이 감추지 않았다는 말도 되는 것이다그때 엄마는 속이 메스꺼워서라고 했다. 분명 담배는 안 좋은 거긴 하지만 당신이 그런 이유 때문에 피우겠다는데 나는 그것을 말리지 못했다그리고 그 말을 꽤 오래도록 믿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사실 엄마는 담배에 관해서만큼은 그것을 끊지 못하는 동생에게 할 말이 없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동생이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잔소리를 해 대는 엄마의 입막음을 하려고 그랬는지도 모르고.
"옛날에 내가 동현(동생의 이름. 가명)이한테 담배 가지고 하도 뭐라고 그러니까 그러는 엄마는 왜 피웠냐고 그러더라. 그런데 지가 묻고 지가 답하는 거 있지. 하긴, 엄마는 아버지가 속을 썩여서 그런 거지 뭐. 그러면서 히히 웃더라고."

그런 거라면 당시 어린 나도 이미 알고 있었던 거다. 아버지의 외도 말이다. 하지만 엄마는 동생이 너무 어려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속이 메스꺼워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그렇다면 엄마는 그때 왜 아버지 때문에 담배를 피우는 거라고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던 걸까?

 

그때 엄마는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우리가 알게 되길 원치 않았는지도 모른다. 왜 그랬는지는 알 수가 없다. 비록 엄마한테는 원수 같은 남편이지만 아이들에겐 좋은 아버지가 되어주길 바라서 그랬는지도 모르고, 그때 우리가 너무 어려서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몰라 엄마가 느끼는 불행을 공감해 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아니면 어쨌든 외도라는 건 관계를 배신하는 일로 교육상 좋지 않은 것이니 우리가 외도의 외자도 알게 되길 바라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어디 그뿐인 줄 아니? 늬 할머니하고 고모들 속 싹이지, 너희들은 너희들대로 마땅치 않지."
그런 거라면 또 말하지 않아도 이미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말이다그때 엄마는 또 한 번 시월드 사람들의 만행을 떠올리는 것이다우리들은 우리들대로 별로 자랑하고 내세울 것 없었으니 결국 그래서 담배를 입에 대셨다는 말씀. 그런데 엄마는 새로운 해석 하나를 더 보탰다.

", 게다가 양쪽 할머니 그렇게 담배 피지, 큰 고모 피지. 씹할어디 그게 어떤 건가 피우고 싶더라구. 그런데 정말 마음이 편안해 지는 거야. , 이래서 담배들을 피우는구나 알겠더라구."
 
그 시절 나의 눈에도 양가 할머니와 고모가 담배를 피우는 건 너무도 당당했다. 지금도 그렇긴 하지만 나 자랄 때만해도 여자는 담배를 피우면 안 된다는 생각들이 있었다. 그러니까 담배는 남자들의 전유물 같은 것으로 여자가 담배를 피우면 남자에게 도전한다는 인식이 있었던 것이다그런데도 그들이 담배를 피우는 것에 스스럼이 없었던 건 나이가 많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여자가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그런 것들에 스스럼이 없어지고 남자들도 묵인해 주는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엄마는 그분들에 비해 나이가 젊었으니 그렇게 숨어서 피우는 거라고 생각했다. (사실 양가 할머니는 그렇다고 쳐도 엄마와 큰 고모의 나이는 많아야 4, 5살 정도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런데 양쪽 할머니, 고모가 담배 피우는 거 알겠더라구.
늬 할머니 재취로 시집 와 청상이 되었지, 외할머니는 그렇게 할아버지와 의가 좋지 않았지, 큰 고모도 그렇지뭔 낙이 있었겠니?"
나의 큰 고모가 그렇다는 건, 모전여전이라고 아버지뻘 되는 나이 많은 남자에게 시집을 간 것을 말하는 것이다. 큰 고모의 결혼생활이 불행했다고 들어보진 못했지만 아무래도 흠이 없는 결혼이라고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엄마가 그렇게 말하니 그도 그렇겠다 싶다. 지금 같이 결혼이 선택이 아닌 필수였던 시절 남편과 자식 바라보고 사는 것이 전부였을 텐데 엄마를 포함해서 그 시대 여자들은 결혼에 대한 회의와 외로움을 그렇게 담배로 달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나의 할머니와 고모는 나이가 많아서가 아니라 생각 보다 훨씬 이른 나이에 담배 피워왔을 것이고 그게 늦게까지도 계속 되어 온 것일 게다. 그에 비하면 엄마는 그분들 보다 오히려 늦거나 비슷한 나이에 담배를 피운 것이 되는 것이고. 또 그렇게 따진다면 담배는 남자보단 여자에게 더 필요한 기호품은 아니었을까아니 적어도 남자들만큼이나 여자들에게도 필요한 물건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다행인 건, 엄마의 흡연이 오래 가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엄마가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던 것이다. 성령 충만함을 받으니 흡연 욕구가 사라진 것이다. 무엇보다 교회는 사람의 몸은 성령께서 거하는 전이라고 해서 술과 담배를 금하고 있는데 예수님을 믿게 된 엄마는 기쁨이 충만해서 교회에서 금하는 것들을 하지 않았다.

 

더 다행인 건, 엄마가 교회를 나가고 얼마 있지 않아 아버지도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할렐루야! 그러면서 아버지는 망령된 행실(외도)을 끊고 착실한 신자로 거듭났고, 돌아가실 때까지 엄마에게 잘했다는 것이다. 하긴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유입이 되면서 가장 큰 성과중 하나는 축첩제도의 폐지 아니었던가.

 

아버지가 엄마에게 잘하니 엄마도 자연 아버지에게 잘했고 부부관계는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엄마의 입장에선 그런 좋은 부부관계를 좀 더 유지하고 싶었을 것이다. 결혼한 지 30. 이제 겨우 부부관계가 뭔지 알 것만 같은 시절이었을 것이다.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이제 다 거쳐 왔는데 하필 그 시점에서 영영 이별이라니. 그래도 서로 좋은 기억을 가지고 사별을 했으니 여자에게 담배 보다 좋은 건 신앙인 것 같다.

 

, 근데 우리 아버지 그 망령된 외도는 끊었지만 술과 담배는 완전히 끊지는 못하셨다. 뭐 심하게 하셨던 것은 아니니까 그냥 봐 드린다.

 

 

누구는 종교를 비판하기도 하는데 종교의 유익을 말하는 사람이 더 많다. 역사적으로도 봤을 때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유입되면서 축첩제도가 철폐되는 등 사회적으로 이로운 측면이 더 많았던 걸 알 수가 있다. 술과 담배를 끊는 것 역시 그중 하나일 것이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cyrus 2017-06-30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 아버지는 담배를 싫어하지만, 술은 엄청 좋아해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한테 담배 피지 말라는 소리를 많이 들어서 지금도 비흡연자로 살아가고 있어요. 군대에 있을 때도 담배를 입에 대지 않았어요. 맞선임이 흡연자라서 정말 힘들었습니다. ^^;;

stella.K 2017-07-01 18:16   좋아요 0 | URL
ㅎㅎ 그랬구나.
내가 담배를 안 피워서 그런지 몰라도
코가 담배 피우는 사람한테는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같아.
스치기만 해도 알겠더군.
담배가 옷에 베나봐.
그러니 너도 참 괴로웠겠어.
술 먹는 사람 보다 담배 피우는 사람이 더 위험하다고 하던데
내 동생은 술은 싫어하면서 담배는 피운다. 걱정이야.ㅠ

cyrus 2017-07-01 20:56   좋아요 0 | URL
술이 제일 해로워요. 술을 많이 마시면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그렇지 않는 사람도 있어요. 술이 몸에 맞지 않는 사람일수록 홍조 현상이 심해요. 몸이 우리에게 주는 경고인 거죠. 그런데 이 경고를 무시하고 술을 마셔요. 울 아버지가 그래요.. ^^;;
 
독재에서 민주주의로
진 샤프 지음, 백지은 옮김 / 현실문화 / 201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처음엔 얇은 책이라 금방 읽게될 줄 알았다.

그런데 읽기가 녹녹치 않다. 놀라운 건

이 책이 한때는 금서로 지정이 되서 지니고 있는 것만으로도

불법인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다.

 

한때 그런 때가 있기는 했다.

공산주의 불온서적이 그 대상이었다. 그런데

이 책이 그 대상이 될 줄은 몰랐다.

 

이 책은 한마디로 시위의 방법에 관한 책이다.

그것에 관해 꽤 자세하고 주도면밀하게 쓰여있는데

그것만으로도 불온서적이 될 수 있었다니 이 책가 가지는 위력 보단

새삼 독재가 불법은 불법이었나 보다 싶다.

이 책에 소개된 방법으로 민주화를 쟁취하면 독재 세력의

모가지가 날아가는 것이니 말이다.

 

저자가 소개하는 방법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간디의 무저항 비폭력주의를

모티브로 하고 있는데, 사실 저자가 간과한 게 하나가 있다.

간디의 무저항 비폭력주의도 알고 보면 우리나라의

3.1운동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것을.

그렇다면 저자는 우리나라의 3.1운동을 연구대상에 포함시켰어야 했다.

 

그런데 또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의 3.1운동이나 간디의 무저항 비폭력주의가

어떻게 성공한 시위가 될 수 있었는지에 관해선 우리 역시

아는 바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게 어느 날 갑자기 억압된 분노가 폭발하듯 이루어진 것이아니라는 것.

뭔가의 치밀한 계획과 방법에 의해 이루어진 성과물인텐데도 우린 그걸 너무

피상적으로 알고 있고, 역사의 한 장면으로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사실 우리나라만 해도 3.1운동만이 무저항 비폭력이었을까?

그 이전에도 있지 않았을까? 적어도 3.1운동으로부터 시작해서 진화의 진화를

거듭해서 지금의 촛불시위까지 발전된 것이 아니겠는가.

예전의 화염병과 최루탄이 난발하던 시절을 생각하면 이 촛불시위가

과연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의아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가능했음을 우린 또 얼마 전에 목도하지 않았는가?

세상을 바꾸는데 폭력이 가능하지 않음을 실증한 것이기도 하다.

 

그렇게 민주화를 이루었다고 해서 그것이 영원하지도 않다.

언제 어느 때 독재는 독버섯처럼 자라 우리를 위협하지 모른다.

그럴 때마다 우린 어떤 식으로 독재에 맞서고 항거할 것인가 생각해 보야한다.

 

놀라운 건 저자는 비폭력으로 행동할 수 있는 것들에 관해

무려 198가지나 소개해 놓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그다지 어렵거나 아주 대단한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용기만 가지면 몇 가지는 당장 어렵지 않게 해 볼 수 있는 것이다.

 

문득 읽다보니 얼마 전 종영한 드라미 <김과장>이 생각났다.

거기도 보면 주인공이 회사를 상대로 저항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드라마의 특성상 코믹하게 그려지기도 했지만 그것도 그냥 웃고 넘어갈

것은 아니란 생각도 들었다.

무저항 비폭력은 꼭 이마에 내천 자 그리고 해야 하는 건가?

그건 아니다. 그러면 지는 것이다.

 

누구는 말한다. 더 시끄러워져야 한다고.

조용하면 그건 주검이다. 독재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항의하고 항거하면 그게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물론 맞는 말이긴 하다.

사회 모든 체제가 올바르다면 그건 문제가 된다.

그러나 사회는 올바르지 않게 굴로갈 수 있다.

그런데도 조용하면 그건 잘못된 거다.

저항하려면 바로해야 하고 제대로 해야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도움이 될 것이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yamoo 2017-06-29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폭력, 하면 간디죠~!ㅎ 간디의 사티아그라하..

이 책을 보니 베링턴 무어의 독.민.기.원.이 생각나네요~
같이 읽으면 좋을 듯합니다.

cyrus 2017-06-29 13:39   좋아요 0 | URL
베링턴 무어의 책, 헌책방에서 본 적이 있는데 사야 겠군요. ^^

stella.K 2017-06-29 13:40   좋아요 0 | URL
독민기원...?!
저는 모르는 책이네요.
역시 야무님은 아는 것도 많으십니다.^^

cyrus 2017-06-29 13:47   좋아요 0 | URL
풀네임이 ‘독재와 민주주의의 사회적 기원‘입니다. ^^

stella.K 2017-06-29 14:30   좋아요 0 | URL
ㅎㅎ 그렇구나. 그럼 야무님 잘 못 알켜주신 거네.
독민사기였어.ㅋㅋ
 
한 줌의 모래 - 이시카와 다쿠보쿠 단카집
이시카와 다쿠보쿠 지음, 엄인경 옮김 / 필요한책 / 201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일본 시가 문학에 단카라는 게 있단다. 나로선 처음 듣는 것인데 57. 5. 7. 731자로 구성되는 일본의 전통 문학 방식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시조 같은 거라고나 할까? 이 단카가 있기 전 와카가 있었다고 한다. 이 와카는 주로 귀족과 승려 계층이 즐겼는데 메이지 유신 이후 국민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와카로부터 독립되어 사용됐다고 한다.

 

이런 말을 하면 좀 뭐하긴 하지만 시조든, 단카든 뭔가의 틀에 맞춘다는 게 과연 자연스러운 것인가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하지만 그것도 문학의 도구라면 도구고, 유희라면 유희가 아닐까.

 

단카하면 이시카와 다쿠보쿠를 말하지 않고선 논할 수 없고, 그는 우리나라의 백석이나 최승희의 영적 스승으로 추앙을 받는다고 하니 호기심이 발동했다. 도대체 그가 누구 길래 백석과 최승희가 무릎을 끓는단 말인가.

 

그는 1886년에 태어나 나이 27세에 요절한 시인이다. 집안 환경이 불우해 학력도 중졸이 전부다. 그 때문에 변변찮은 직장을 전전하기도 했지만 일찌감치 소설가의 꿈을 꾸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소설가로서 이렇다 할 문학적 성과 이루지 못하고, 그 후로도 꾸준히 소설을 쓰긴 했지만 당대에 인정 받을만한 작품은 없었다. 단카집 <한 줌의 모레>는 거듭되는 좌절 속에 실패를 고통스럽게 받아들인 시점에서 나온 작품이라고 한다.

 

그래서 일까? 언제나 그렇듯 문학 작품은 작가의 삶이 녹아져 있는 경우가 많다. 이 책 작가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져 있다. 특히 그는 가족들이 폐병으로 사망하기도 하고 그 자신도 같은 병을 앓으면서 늘 죽음에 대한 그림자를 느꼈다. 그래서 쓴 단카가 있다.

죽음에 관해

마치 평소의 지약(항상 지니고 다니며 먹는 약) 먹는 것처럼 나는 생각하노라

가슴이 아파지면

그뿐 아니라 그는 어렵게 얻은 아이가 한 달도 못돼 죽음을 지켜봐야 했으니 과연 죽음은 늘 그 가까이에 있었다.

 

작가의 아버지는 가출을 하기도 했는데, 그렇게 가출했다 돌아온 아버지에 대해 느끼는 감정을 덤덤하게 표현하기도 했다.

부모와 자식

제각각 동떨어진 마음 가지고 조용히 마주하는

서먹함은 왜일까

 

이렇게 그의 시는 삶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 삶에 대한 풍경과 느낌을 그때그때 단카로 옮겼던 것 같다. 그리고 살면서 행복해 본 적이 없어서일까 문장에서 전해지는 생생함이 결국 애잔함으로 남는다.

 

학력이 짧다고 해서 배움이 짧은 것은 아니다. 그는 단카 이후 리얼리즘-프롤레타리아 문학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도 했는데 이는 말년에 사상가로 거듭났던 계기가 되기도 했단다.

 

누군가 나를

피스톨 가지고서 쏴 주지 않으려나

얼마 전 이토처럼 죽어 보여주련다.

(이 단카는 조선총독부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가리킨다. 19091926일에 안중근에 의해 하얼빈에서 암살된 이토 히로부미의 사망 소식을 접한 다쿠보쿠는 <이와테 일보>에 추도문을 발표하는 한편, “한국인의 입장과 애처로움을 이해한다고 쓴다. 이는 후에 발표한 시 <한 스푼의 코코아>의 첫 구절 나는 안다. 테러리스트의 슬픈 마음을과 연계되어 그가 안중근을 시상의 제재로 삼았다는 근거로 제시된다. 89p)

모르긴 해도 그는 안중근의 죽음을 보면서 그런 문학 세계를 구축해 나가지 않았을까?

 

그의 작품은 대체로 고독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의 작품이 다 슬프고 고독한건 아니다. 어떤 작품은 나름의 위트를 가진 것도 있다. 삶이라는 게 그런 것 같긴 하다. 슬픈 것 같아도 즐거움이 있고, 즐거운 것에도 슬픔이 있다. 그런 것처럼 오래 살았다고 문학에 족적을 남기는 것도 아니고, 요절을 했다고 해서 문학을 못하는 것도 아니다. 비록 그는 자신이 원하던 소설을 이루지 못했지만 단카 하나로 문학사에 족적을 남겼으니 그 하나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훌륭한 문학가임에 틀림없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단카를 알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고 뿌듯한 독서가 됐다.

문학을 설핏 알기 시작했던 사춘기 시절엔 시가 좋았다.

그러다 어른이 되면서 시를 잊고 살았다.

나이 들고 다시 시가 좋아졌다.

나에게도 이런 날이 다시 올 줄이야.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7-06-27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카와 단카를 보면 절제미가 느껴져요. 비록 문장에 드러나지 않은 글쓴이의 감정을 정확히 맞출 수는 없지만, 독자는 단어와 문장만으로 글쓴이의 감정이 어떤 건지 얼추 이해하려고 해요. 그래서 시는 계속 봐야 합니다. ^^

stella.K 2017-06-27 18:40   좋아요 0 | URL
아, 맞아. 절제미! 그 단어를 빠트렸네.
그래서 일본문학이 좋은건데 말야. 큭 ㅠ

2017-06-27 18: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7-06-27 18:40   좋아요 0 | URL
앗, 고맙습니다.^^
 

 

 

밤에, 우렁각시가 다녀가듯

비가 왔다.

연일 때이른 폭염에 긴 가뭄까지

잠시 더위나 식히라고

위로하듯 왔다 간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비는 흔적도 없이

말라 있었다.

우렁각시는 또 언제 오려나?

 


댓글(2)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2017-06-25 2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25 20:4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