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것의 의미

 

우리는 ‘보는 것’ 통해 사물을 새롭게 알기도 하지만

          ‘아는 것’ 통해 사물을 새롭게 보기도 한다.

 


어린이는 말을 하기 이전에 이미 보는 것으로써 모든 것을 이해하고 알아차린다. 이런 면에서 보면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 말도 있지만 사실은 말보다 보는 것이 훨씬 앞선다 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리들이 어떠한 사물이나 사실을 설명하는데 직접적으로 보는 것 보다 더 적절한 방법이 있을 수 없다.

 

아무리 말로 설명한들 그것의 모두를 완전하게 표현하기는 힘들다.

 

말을 하는 데 항시 손짓이나 몸짓 심지어 표정까지 동원되는 것도 알고 보면 보는 것의 필요에서 연유하는 것이다.

 

 

공중전화 박스나 휴대전화로 통화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라.

 

분명 상대방이 보이지 않는 데도 많은 몸짓과 표정을 혼자서 만들고 있지 아니한가. 이렇듯 보는 것은 우리들에게 눈이 있는 이상 필수불가결한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어린이들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때 보는 것을 그대로 그리느냐, 자기가 아는 것만 그리느냐 하는 문제는 아직껏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아무튼 우리는 ‘보는 것’을 통해 사물을 지각하기도 하고 ‘아는 것’을 통해 사물을 보기도 한다.

 

 


그림은 미국의 현대화가 재스퍼 존스(J. Johns)가 만든 석고 위에 금속물을 입힌 벽돌만한 크기의 조각 작품으로, 제명은 <비평가는 본다>이다.

 

- 이 작품은 현재의 우리들에게 보는 것의 의미를 새삼스럽게 반추하게 하는 흥미 있는 작품이다.

 

얼핏 보아 안경 속의 형체가 눈 모양 같지만 사실은 치아가 드러나 보이는 벌린 입술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안경하면 곧잘 눈만을 연상하는 우리의 타성을 담담하게 희롱한 듯하지만 한 번 더 생각하면 이 작품은 그 이상의 익살을 암시하고 있다.

 

우선 <비평가는 본다>는 제명에 의존해서 유추한다면, 보는 것을 문제 삼는 비평가는 '눈으로 보지 않고 입으로 본다'는 의미도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의미로 비평가는 '눈(안경)으로 본 것을 말한다(입술)' 고도 할 수 있다.

 

우리들이 보는 것은 반드시 눈으로만 끝나는 것일까.

 

갓난아기는 보이는 물건이면 일단은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그것으로 부족하면 입에 가져간다. 보는 것을 보다 분명히 느끼기 위해 만지작거리고 그것도 모자라면 입에 가져가서 씹어 보기까지 한다.

 

이런 의미에서 이 작품을 다시 보면 보는 것은 눈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입까지 간다는 비유적인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보는 것은 시각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손과 입술의 촉각까지 포괄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어린이가 모든 사물을 입으로 가져가게 되는 것을 멈추게 되는 것은 자라면서 이러한 사물에 갖가지 이름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난 뒤부터이다.

 

사물이 지니는 개념을 이름으로 알고 난 뒤부터 어린이는 입에 가져 갈 것과 그냥 두고 보는 것을 이름만으로 구별해낸다.

 

이러한 사실은 화가가 그림을 그릴 때 단순히 눈으로 본 것(감각)만을 그리느냐, 아는 것(개념)을 첨가해서 그리느냐 하는 문제까지 확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제명과 상관없이 이 작품을 하나의 사물을 보듯 유심히 본다면, 안경은 물론 입술, 치아까지 실제의 모양과는 똑같지 않은 유사하기만 한 애매모호한 모양을 하고 있다.

 

우뚝 솟은 코모양도 없이 면면한 평면에 약간 두툼하게 박힌 둥근 안경테가 오직 구멍 뚫린 공간을 만들어 안경테 속에 갇힌 입술모양 같은 입체적 형상에만 관심을 갖게 한다.

 

 

 

눈덩이 같기도 한 입술, 입술 같기도 한 눈덩이,

눈동자 같기도 한 치아, 치아 같기도 한 눈동자,

눈을 뜬 것 같기도 감은 것 같기도 한,

입술을 벌린 것 같기도 다문 것 같기도 한 애매모호한 현상은

보는 것 같기도 말하는 것 같기도 한 모호한 느낌을 준다.

 

본 것을 애매하게 말하고 있는지

말한 것을 애매하게 보고 있는지,

마치 '보는 것'(시각)이 '말하는 것'을 앞서고 있는지,

'말하는 것'(언어)이 '보는 것'을 앞서고 있는지,

 

아니면 '보는 것'과 '말하는 것'이 상호보완하고 있는지 ― 이 작품은 이토록 감상자로 하여금 곤경한 처지로 몰아넣는다.

 

정물을 조각화한 것인지 조각적인 정물을 그린 것인지 그림의 영역조차 모호한 이 작품에 재스퍼 존스 자신은 실물 그대로만 보길 원할 뿐이라는 담담한 말만 남기고 있다.

 

그는 관념에 결부되어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하찮은 대상(안경, 입술)을 생경한 모양으로 이렇듯 끝없는 수수께끼를 만들어 우리의 잠자는 시선을 예리하게 일깨우고 있다.

 

시인이 사용하는 언어도 하나하나 뜯어보면 일상적인 평범한 낡은 언어조각에 불과하지만, 그것을 꿰매는 방법이 특이하기 때문에 우리들에게 살아 있는 언어로 동시에 많은 의미를 던져두지 않는가.

 

이런 의미에서 보면 화가는 보는 것에 대한 관심을 그림으로 가르쳐 주는 사람이라 달리 말할 수도 있다.

 

화가들은 보는 것을 위해 갖가지 모양을 그리거나 만들어내지만 거기에 대한 화가나 보는 사람의 주된 관심은 역사적으로 보아 시대에 따라 다르기 마련이다.


우리들이 만약 하나의 작품을 앞에 두고 그것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면, 시대에 따라 다르기 마련인 이러한 보는 것에 관한 갖가지 관심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미술사(美術史)상 가장 오래된 그림으로 알려진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벽화나 남부 프랑스의 동굴벽화에 나타난 동물그림은 동굴 깊숙한 곳에 모두가 살아 있는 듯 생생하게 그려졌는데, 암벽 위에 그려진 동물그림은 대개 중첩되어 그려져 있다.

   

 

이것은 수렵을 일삼던 당시의 원시인들이 풍요로운 동물의 수확을 기원하는 주술적이고 마술적인 관심에서 그린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암벽 위에 그려진 동물은 하나의 수확을 뜻함과 동시에, 창살이 꽂힌 듯 그려진 동물은 이미 죽은 것으로 간주되어 그 위에 또 다른 살아 있는 동물을 겹쳐서 그리는 일이 많았었다.

 

그런가 하면 중세기 성당의 창문이나 벽면에 그려진 스테인드글라스나 모자이크의 그림들은 하느님의 절대적 위엄이나 말씀을 신자들에게 알리기 위한 관심에서 그려졌기 때문에 성경내용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그림이 압도적이다.

 

이러한 그림에는 원근과 명암이 없이 간단명료하게 도상(圖上)적으로 그린 것이 특징인데, 성경을 모르는 신자에게는 계몽적인 의미도 깃들여 있다.

 

이에 반해서 통치자 개인의 명예나 업적을 중시했던 로마시대에는 개선문이나 기념탑에다 업적의 내용을 그림으로 새기길 즐겨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모습까지 후손들에게 길이 남기길 원했기 때문에, 이 시대의 부조나 조각 작품은 기록화나 초상화의 성격을 지닌 사실적인 것이 대부분이었다.

 

화가가 이렇듯 특정한 집단의 도구적 관심에다 초점을 맞춰 그림을 그릴 때, 그 그림은 자연히 교화적. 기록적 경향의 설화성이 앞서게 되며, 관람자 또한 그림이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관심을 보인다.

 

이러한 화가의 도구적 관심과는 달리 그림을 현실의 이상화 내지 거울과 같은 반영의 관심으로 간주한 시대가 있었다. 그리스 시대에는 인체를 그리거나 조각하되 가능한 비례와 균형을 조화 있게 추구하려는 이상적인 아름다움(美)에 주된 관심을 보였다.

 

인체가 어떠할 때 가장 아름다운 것인가에 관심을 기울인 나머지, 화가들은 머리부분이 전신의 7등분 혹은 8등분되는 게 이상적이라는 캐논(법칙)을 만들기까지 했다.

 

가로, 세로의 이상적인 비율을 측정한 신비의 황금분할도 이 시대에 나온 것으로 건축은 물론 그림의 구도에도 이러한 법칙을 충분히 활용하였다.

 

오늘날까지 아름다움의 대명사로 불려지고 있는 작품 <밀로의 비너스>도 이때 것으로,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모작인 대리석의 이 작품을 보면, 지나치게 움푹 들어간 눈이라든지 수직으로 내려선 콧날, 너무나 둥근 가슴 등은 실제 여체와는 거리가 있는 것이지만, 당시 그리스인이 생각한 사랑과 미의 여신을 표상하는 작품임에 틀림이 없다.

 

이러한 그리스 시대의 아름다움이 시대를 불문하고 불변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태껏 논란이 많으나,

 

오늘날 우리들이 무의식중에 그림에서 찾으려드는 아름답다는 관념은 사실상 이 시대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것이야말로 그림에 있어 필수적이고 절대적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아직도 우리들 주위에 많은 게 사실이다.

 

이후 르네상스 시대에는 이러한 이상화된 현실의 반영을 보다 과학적으로 객관화시켜 보려고 애를 썼다.

 

그 결과 인체의 해부학적 탐구는 물론 인체에 국한되었던 묘사의 대상을 그 배경이 되는 풍경에까지 확대하여 삼차원의 자연공간에 놓여진 여러 인물들을 이차원의 평면인 화폭에다 묘사하는 방법까지 창안하게 되었다.

 

이른바 오늘날까지 풍경화를 그리는 데 있어 요체가 되어 왔던 소실점에 의한 명암과 원근법의 표현이 바로 이 시대에서 비롯된 것이다.

 

당시의 만능화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그의 스케치북에 해부도(解剖圖)를 능가하는 인체 여러 부분의 구조를 예리하게 관찰하여 그려 놓고 있었다.

 

 

  

 

그가 수도원의 식당 벽에 그린 <최후의 만찬>은 투시도법식의 원근법을 철저하게 적용한 대표적인 그림의 하나로 미술교과서에도 자주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 시대나 르네상스 시대에 있었던 현실의 이상화 내지 재현(再現)적 표현은 시대가 흐름에 따라 그것을 그리는 캐논이나 투시도법 같은 합리적인 묘법(描法)의 규범만 앞세우게 되어, 실제로 작품에 표현된 것은 우리가 흔히 보는 현실의 적나라한 반영이 못되었다.

 

그리하여 이 시기의 그림은 고귀하거나 우아하게, 장엄하거나 숭고하게 다루어져 그리는 대상도 자연히 제한되기 마련이었다.

 

더욱이 당시 대부분의 그림이 왕실 측근 내지 재력 있는 가문의 주문이나 후원에 응해서 그려진 것이 많아서, 엄밀히 말해서 화가의 역할과 관심은 이러한 후원자의 취향에 맞는 주제에 솜씨만 제공한 듯한 소극적인 한계에 머물러 있었다.

 

현실에서 생생하게 닮은 것을 만들어내려는 화가들 자신의 기술과 주제가 보다 자유롭게 그리는 화가 자신들에 의해 주장되기 시작한 것은 서민의식이 점차 부상되기 시작한 19세기 산업혁명 이후부터이다.

 

“보이는 것만 그리자”

 

사실주의 화가 쿠르베(Courbet)의 이러한 선언은 '천사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릴 수 없다'는 역설적인 의미가 함축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특정한 부류의 취향에만 통용되던 한정된 주제의 해방이자,

현실의 대상을 무턱대고 미화시키려 드는 관념에 대한 해방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었다.

 <쿠르베>

 

  <쿠르베>

 

  <쿠르베>

 

  <쿠르베>

 

식탁 위에 무심히 놓여 있는 주전자도, 낡고 헤어진 농부의 신발도, 매부리코를 가진 주름진 노파의 프로필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외면되어 오던 가난의 참상도, 그것이 보이는 것인 한 그대로 그려야 한다는 쿠르베의 주장은, 평범한 그대로 현실의 추함도 그릴 수 있다는 가능성과 그러한 것의 선택도 바로 화가 자신의 눈에 달려 있다는 점을 새롭게 깨닫게 한 것이었다.

    

 

보이는 것만 그리되 그 중에 어떤 것을 그릴 것인가.

이런 것에서 비로소 화가 자신을 향한 독자적인 물음이 시작된다.

 

그것은 그림을 도구적 관심, 현실의 반영으로 본 화가의 소극적인 관점에서 벗어난 화가 자신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에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보이는 그대로 그리는 데는 화가의 솜씨만 필요하지만, 어떤 것을 선택해서 어떻게 그리느냐 하는 것은 화가의 마음이자 생각이다.

 

화가의 솜씨보다 화가의 마음과 생각이 중요시되자 이제껏 팔짱만 끼고 화가의 솜씨만 지켜보던 관람객도 다소 어리둥절한 눈으로 화가의 생각을 헤아리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그것은 보는 것에 대한 새로운 의문이다.

 

이제껏 우리는 너무 눈만 비대하여 단순히 보이는 것만 본다고 믿고 있지 않았던가.

 

보는 것을 다시 보는 것 - 이러한 시점에서 화가는 아래와 같은 관람객의 투정을 듣게 된다.

 

- 도대체 이런 것을 그리다니, 아무리 화가가 보이는 것은 다 그릴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것도 그릴 수 있는 것인가.

 

현대미술에 있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보는 것에 대한 관심의 전환은 관람객의 이러한 투정에서 시작된다.

 

이것이야말로 그림을 보는 관심의 흔들림을 자각하는, 또 앞으로의 현대미술을 이해하는 희망적인 징후가 되는 것이기도 하다.

 

- 재스퍼 존스 그림 모음 -

 

 

 

 

    

 

출처:퍼포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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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4-10-29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하고 퍼갑니다

stella.K 2004-10-29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고마워요.^^

브리즈 2004-10-30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쿠르베의 가장 사실주의적인 작품은 "세상의 기원"이란 작품이지요. 오르셰 미술관에서 보았던 때가 기억이 나네요. 쿠르베에 대한 상식을 제법 깨주기도 할 뿐더러 숙연해지기도 했답니다.

stella.K 2004-10-30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오르셰 미술관 정말 다녀오셨어요? 참, 브리즈님은 알면 알수록 놀라우세요. 미술에 조예도 깊으시고...근데 미스테리맨이라는 거. 물론 알라딘 내에서 미스테리맨이 어디 한 둘 이어야 말이죠. 흐흐.

니르바나 2004-10-30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이요.
최후의 만찬이 식당벽에 그려진 벽화군요.
이 페이퍼를 보는 것에서 아는 것으로의 전환입니다.
 

최근 세간을 놀라게 한 유영철 사건으로 인해 사형제 폐지 운동을 벌이는 단체들이 난처한 입장에 처해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사형제도는 본디 범죄인의 생명을 인위적으로 박탈함으로써 사회 규범을 강제하려는 인간 권력이 내리는 최고의 극형으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인류의 형벌이기도 하다.  이같은 사형제도에 대해 현대에 와서야 비로소 많은 비판과 자각의 목소리가 있어 왔으며 현재까지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사형제를 폐지한 나라는 독일,프랑스 등 30여개국에 불과하고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많은 국가들이 아직 사형제를 존치하고 있다.

'죄와벌'이라는 TV프로그램을 보면서 가끔 인간이 내리는 사법적 심판의 한계를 가지고 과연 한 인간의 생명을 국가가 강제로 박탈할 수 있는가? 라는 의구심이 들때가 많다.

하지만 우리사회는 아직 사형제 폐지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지 못하다. 실제로 올해 한 조사에 의하면 국민 세명당 한 명 정도만이 사형제 폐지에 공감하고 있으며 나머지 국민들은 사회질서 유지를 위해 필요불가결 하거나 아직 시기상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인간과 인간이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에서 사회규범의 계약이행을 위한 억제력과 인과응보로서 사형제도의 존치 이유가 성립된다면 이에 따르는 사형제의 문제점도 만만찮게 나타나고 있다.

 

아래는 <국제생명운동 한국지부>에서 밝히는 사형제도의 문제점이다.

 

1. 비인간성

오늘날 사형제도는 다양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 첫번째로 비인간성을 들 수 있는데 인간의 합법적인 행위 중 가장 잔인한 행위이며 세상 어느 곳도 사형이 범죄율을 줄이고 정치적 권력 강화를 시켜 준다는 증거는 보고 되지 않고 있습니다.

사형이 집행되는 곳은 인종,민족,종교 및 소외집단에 대한 탄압의 수단으로 사형이 집행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래 전부터 사형은 비인간적이며 굴욕적인 처벌이기 때문에 세계 여러 단체에서 사형제도 폐지를 주장하고 있고 사실 인간적인 과실과 편견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법규에서 사형을 선고한다는 것을 정의로 이해하기보다 오히려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고 있다는 것이 필연적인 사실입니다.

사형제도의 폐지는 점점 더 강해지고 있으나 아직 그 속도가 충분하게 빠르지 못합니다. 민족의 이름으로 처단하고 집행하는 사형은 모든 이를 불행하게 하고 따라서 각자는 사형이 무엇을 의미하며 사형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또 사형이 무엇 때문에 그것과 관계하는지 그것이 어느 정도까지 인권을 침해하고 있는지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합니다.

 

2.인종차별과 사형

사형제도의 공포적이며 최종적인 형벌이 무방비한 사람들, 즉 가난한 이 , 정신장애자,또는 인종적, 종교적,윤리적 소수 집단에 속하는 이들에게서 가장 많이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미국 Amnesty International( 사형제도 폐지 주장 단체)의 보고에 의하면 미국 내 사형수들 중 백인보다 흑인이 5배이상 더 빈번하게 사형에 처해진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남 아프리카에서 사형은 거의 전적으로 백인으로 구성된 상원이 흑인들과 유색인종들을 편파적으로 부과하는 것으로 되어 있고 또한 사형심리가 전개되고 있는 법원에 배석한 배심원들은 언제나 백인들이며 만일 피해자가 백인이고 그를 살해한 가해자가 흑인일 때 사형언도는 거의 확실합니다.

따라서 1982년 6월부터 1983년 6월 사이에 백인 살해자로 기소된 81명의 흑인중에서 거의 반을 차지한 38명이 사형을 당했지만 반대로 흑인을 죽인 백인 기소자 52명중에서 단 1명만이 사형을 당했습니다.

남아공의 흑인 범죄자들은 변호사를 세울 엄두도 못낼 만큼 가난하고 법률 용어가 영어나 아프리카어인데 남아공 흑인들은 이 두 가지 말을 잘할 수 없기 때문에 별 수 없이 통역자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어 이로써 종종 큰 손해를 보게 됩니다.

자마이카에서 1979년 제정된 사형과 형법제정에 관한 위원회는 당시 사형이 구형된 81명의 죄수들 중 40명을 상대로 조사를 하였는데 대부분이 하류계층 출신들이었고 그들은 대부분 어릴 때부터 가난한 삶에 처해 있었으며 더욱이 불규칙한 생활과 교육이 부재 속에 지낸 사람들이었고 이들 중 1/4은 문맹이었습니다.

 

3.무죄한 이들에 대한 사형

사형판결은 최종적인 것이고 따라서 비록 소송을 통한 조치가 있을지라도 무죄한 이들에게 선고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로 인해 사형제도를 반대하는 주목할 만한 주장이 대두됩니다.

사형제도는 처벌의 남용이며 사람은 결코 완전히 무결할 수 없고 이상적인 완전한 정의는 불가능하며 사형제도가 존재하는 한 처벌의 남용은 계속 유지될 것입니다.

미국에서 무죄한 이가 유죄로 판결된 349건의 실례에 대한 명확한 연구(1900년-1985년사이)에서 사형제도와 관계된 살인문제로 사형당하거나 형무소로 보내진 이들의 경우에서 23명이나 무죄한 이들이 처형되었고 32건의 경우 피고인의 범행은 아예 나타나지도 않았으며 종종 피해자가 훗날 살아 있는 채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여러 나라에서 사형선고를 받은가 무죄로 석방된 경우를 보여주고 있고 그로 인해 법원은 재판의 오류에 의한 희생자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낙인 받게 되었습니다.

 

4.사형의 자의적 적용

사형의 자의적 적용에 대한 문제는 재판상의 오류와의 관계에서 살펴져야 합니다. 사형 적용이 확정 되면 한 사람의 삶이 종말을 고하는 것이므로 인간적 오류나 성급한 판단에서 면제되지 못하는 법정에서의 사형선고는 정의에 의거하기 보다는 화를 초래하는 결과를 불가피하게 안고 있습니다.

처벌에서 먼저 결정적인 것은 범인은 사형에의해 어떤 방향으로 위협을 당하느냐는 것입니다.살인은 죽어야 마땅한 죄로 전통적적으로 생각되어 왔으나 지난 2000년간 역사나 다른 여러나라들의 법률을 일별해 보면 살인과 단순한 고의적 살해사이의 경계가 모호하며 전혀 충분한 지침이 마련되 있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형으로 종결되는 모든 형사심리에서 또는 사면 가능성이 대두되는 상황에서 그 합리성은 파악되지도 않고 조절되지도 않아 다분히 자이적인 것으로 보이며 피고인의 운명은 그 사건에 있어서 어느 재판관이 재량권을 가지느냐에 달려 있어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무오류성 재판을 할 수가 없다고 봅니다.

 

5.사형제도의 무자비함

사형집행을 기다린다는 것은 극도의 공포심을 자아내고 삶에 대한 상념과 함께 사형이 집행되는 날까지 괴로움을 당합니다. 또 오랫동안의 격리와 외로움은 집행을 기다리는 이를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어 너무나 무자비하고 비인간적이라 여러나라에서 사형을 무조건 반대하고 있습니다.

사형제도의 문제점으로 무자비한 사형방법과 사형의식인데 오늘날 세계적으로 일곱가지 사형방법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 중 교수형과 총살이 보편적이며 78개국은 교수형이, 86개국은 총살이 주로 시행되고 이슬람법에 따르는 다섯나라는 참수로 형을 집행하고 , 일곱나라에서는 간음죄에 돌로 쳐 죽이는 방법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다른 인간을 처단하도록 권한을 부여하는 국가는 인간의 삶에 표해야 할 무주건 존경이라는 게명을 파괴하고 있으며 자의성이나 차별 또는 오류가 없는 사형체계를 만든다는 것이 불가능 하듯이 무자비하지 않고 비인간적이지도 않으며 비열하지도 않은 사형방법을 찾아내는 것도 역시 불가능합니다.

 

6.정치적 억압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사형제도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아프리카,아시아,라틴 아메리카 같은 나라에서 수십년 간 사형제도는 정치적 억압을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어 왔고 , 또 독재자나 독재체재에 의해 악용되었으며 , 쿠테타를 통해 얻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정치적 반대 그룹의 일원들을 정치적 목적이라는 미명아래 처형시키고 군사 쿠테타 이후 이전 체재의 동조자들이나 의혹이 가는 반란자들에게 집행되었는데 지난 10여년 동안 14개국에서 실행되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대단한 열성과 공정한 재판이라는 허위 아래 이루어져 왔으므로 더이상 이러한 살인은 합법성의 외관을 두면 안되고 , 살인은 살인을 낳을 뿐 이들은 점점더 정의로운 행위라는 표상을 드러낼 수 없습니다. 사형제도가 실행되지 않는 나라들에서도 법률가들은 사형이 여전히 하나의 위협으로 존재하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7.사형폐지국 및 존치국 현황
57개의 국가나 지역에서 모든 범죄에 대해 사형폐지
15개 국가에서 전쟁범죄를 제외한 일반 범죄에 대해 사형폐지
28개국이 실제적으로 사형을 폐지: 이들 국가는 지난 10년간 단 한번의 사형집행도 없었음
94개국이 여전히 사형제도를 존치하고 있지만 매년 점점 많은 국가들이 사형집행을 하지 않고 있음

 

아무튼 우리사회는 단순히 사형제도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의 논의 수준에서 조금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여론은 무고한 사형수의 이야기가 나오거나 유영철과 같은 세상을 경악시키는 연쇄 살인범이 나타날 때마다 찬성론과 반대론이 번갈아 가며목청을 높이고 있을 뿐이다.

이처럼 과연 인간이 인간을 사형시키는 것이 꼭 필요한지, 그것이 인간다운 삶을 우리에게 보장해 줄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갖게 하는 한 권의  책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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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의 형벌/스콧 터로/교양인>

 

‘법의 이름으로 살인’ 과연 정의로운가 [한겨레 안수찬 기자]
“이 책은 경험에 바탕을 둔 개인적 기록이므로 학술적인 책으로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극단의 형벌〉(도서출판 교양인) 지은이 스콧 터로는 책 꼬리에 이런 ‘단서’를 달았다. 수많은 ‘학술적 관심’이 이 책에 쏠릴 것을 진작에 예상한 듯하다. 그러나 비록 그것이 ‘오해’라 할지라도, 이 책이 사형에 대한 법학·사회학·철학적 논점들을 한꺼번에 거머쥐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힘들다. 최근 사형폐지특별법안 처리를 준비하고 있는 정치권의 움직임이나, 건국 이래 최악의 연쇄살인범의 등장이 이 책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부추기고 있는 것도 그 학술적 의미를 더한다. 사형은 2004년 한국 사회가 다뤄야 할 ‘극단의 화두’로 떠올랐다.

그러나 사형 폐지론과 존치론 사이의 넓고 깊은 ‘해자’는 아직 좁혀지지 않았다. 더 심각한 것은 사회적 공감대 형성을 위해 필수적인 ‘공론화’의 조짐이 학계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본격화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극단의 형벌〉은 사형이라는 화두를 안고 끙끙 앓고 있는 한국 사회에 ‘하나의 대안’을 던진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 자리잡은 균형감은 미국 연방검사 출신 변호사인 스콧 터로의 독특한 경험에서 비롯됐다. 공화당 출신 미국 일리노이 주지사 조지 라이언은 지난 2000년 3월 사형집행의 일시 중지를 선언하고 사형제도 개혁을 위한 ‘사형 위원회’를 설치했다. 당시 2년여에 걸친 위원회 활동의 한 주역이 스콧 터로다.

그는 연방 검사 시절 살인혐의자의 사형선고를 기쁘게 받아들였고, 형사소송 변호사 시절엔 사형 선고 사건의 오류 앞에 경악한 ‘사형 불가지론자’다. “경찰의 살인 무기 사용 등의 국가 폭력은 필요하다”고 믿는 그는 미국 보수주의자의 전형이기도 하다.

바로 이 점이 각 학문 분과를 넘나들며 존치론과 폐지론의 경계를 실증적으로 허무는 지은이의 연구에 ‘매혹’당하는 이유다. 그는 사형 존치론의 함의에 대한 기대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지루하고 복잡한 논란의 가닥을 잡아가며 사형제도 폐지를 향해 한 걸음 내딛는다. 그가 보기에 “사형 논쟁은 한 나라의 정신을 형성하기 위한 투쟁”이다. “민주주의에서 권력의 궁극적 원천이 시민이라면, 정부가 자신보다 우월한 권력을 가진 시민을 죽이는 것이 허용될 수 있을까”라는 게 그가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이다.

여러 논점 가운데 사형이 범죄억제의 효과가 있다거나 반대로 살인을 부추긴다는 주장을 ‘실증적’으로 논파하는 대목은 이 책이 갖는 미덕을 그대로 웅변한다. 철학적 논쟁을 그대로 보여주고, 이를 정책의 관점에서 대안 중심으로 재편한 것이다.

살인과 사형을 ‘온몸으로’ 체득한 그의 탁월함이 가장 돋보이는 것은 ‘복수의 도구로서의 사형’에 대한 논증 부분이다. 그는 “일관되게 사형을 지지하는 집단이 피살자의 유족”이라며 “사랑하는 사람을 살인으로 잃는 것은 이 잔인한 인생에서 우리가 받는 다른 어떤 타격과도 다르며, 이런 상실은 이성과 규칙에 따르는 법치에 대한 ‘특별한 도전’”이라고 말한다. “살인범이 여전히 존재의 작은 기쁨을 누린다는 것의 불합리”에 대한 지은이의 ‘공감’은 그러나 “전체 공동체 역시 피해자의 잠재력을 뺏긴 것이므로 처벌은 ‘유족의 이름으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름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짚었다.



이밖에도 무죄가 입증된 사형수, 경찰과 검찰의 직권남용, 사형제도의 사회적 비용, 공동체의 도덕적 균형, 법률시스템의 우연성과 편파성, 사형논란의 역사적 맥락 등이 이 책에 등장한다. 사형제도를 둘러싼 사실상의 모든 논점을 망라한 것이다.

스콧 터로가 속한 ‘사형위원회’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미국 일리노이주는 2003년 1월 167명의 사형수를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 또는 40년형으로 감형하고, 제도 전반에 대한 폭넓은 개혁작업에 돌입했다. 사형폐지까지 이르지는 못했지만, ‘사형국가’인 미국에서는 가히 혁명적인 변화였다.

지은이는 “법의 예리한 규칙들은 결코 도덕적 모호성이라는 어둠을 베어내지 못하며, 처벌만으로는 세상을 우리가 살고 싶어하는 곳으로 만들 수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를 그 길로 이끌 것인가. 이제 ‘한국적 해답’을 내놓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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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구두 2004-10-29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저도 가지고 있는데, 아직 읽지 못하고 있지요.

stella.K 2004-10-29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 보면서 구두님 생각했어요. 역시...!^^

니르바나 2004-10-29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사형제도를 생각할 적마다 사형집행인들이 집형 행위의 모순에 대해 헤아려봅니다.
그 행위도 사람의 목숨을 끊는 살인행위가 아닐까요.
다만 적법성에서 타당성을 인정받았을 뿐.
이들의 정신세계를 그린 영화에서 고통받는 모습을 보고
이 제도는 개정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stella.K 2004-10-29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그렇군요.

릴케 현상 2004-10-29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세계에서 가장 사형을 많이 하는 나라가 미국과 중국이라는 말을 들었어요... 그 분야에서는 한국이 1위하기 힘들 듯^^

stella.K 2004-10-29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3위쯤은 하겠군요.

릴케 현상 2004-10-30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대중 정부 안에서는 어쨌든 집행한 적이 없대요. 노무현은 모르겠네^^ 부시가 텍사스 주지사 할 때 미국의 사형수 대부분이 그 주에서 사형되었다는 소문이...

stella.K 2004-10-30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전출처 : 바람구두 > 논쟁사 100년으로 살펴 본 우리 역사

"논쟁으로 본 한국사회 100년"은 계간 역사비평이 통권 50호  기념별책으로 만든 책이다. 지난 1987년 9월 부정기간행물로 시작한 "역사비평"은 이듬 해 여름호부터 "역사종합계간지"로 새롭게 출범했다. "역사연구의 대중화와 새로운 역사인식의 정립"이라는 목표 아래 오늘날까지 우리 역사의 중요한 국면들을 점검하고, 시대와 호흡하는 계간지로 중요도는 날로 더해가고 있다. "역사비평"은 2004년 가을호, 현재 통권68호를 발간하고 있다. 통권 50호라를 맞이한 지난 2000년 "역사비평"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논쟁으로 본 한국사회 100년의 역사를 조망해보는 기획을 준비했고, 그 결과물로 나온 것이 이 책이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논쟁사는 일제 식민지 시기의 "개화파 사상과 근대국가 건설론"으로부터 시작해서 1970년대 이후 "박정희 신드롬"에 이르는 우리 사회의 논쟁들 가운데 주목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을 다룬다. 시대 구분에 의한 구분에 따르면 일제 식민지 시기, 해방 이후 1960년대, 1970년대 이후의 세 단계로 나누고 있다. 대충 헤아려 보니 56개 가량의 논쟁들이 각기 다른 필자들에 의해 다뤄지고 있는데, 한 논쟁당 할애하고 있는 지면이 200자 원고지 50매에서 60매 내외인 듯 싶다. 이 말은 이런 류의 책들이 지닌 기본적인 한계로부터 이 책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종종 한 명의 필자가 아닌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함께 작업한 공동저서의 수준이 한 명의 필자가 집필한 책의 수준을 능가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어떤 부류의 책이 보다 좋은 책인가 하는 문제는 최종적으로 어떤 기획자, 어떤 편집자를 만나는가에 따라 전적으로 달라지지만, 그 못지 않게 필자들의 고른 수준과 각기 다른 이야기가 어떻게 전체 기획 안에서 통합되는가에 따르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논쟁으로 본 한국 사회 100년" 역시 일반적인 수준에서의 문제점과 장점을 가지고 있다.

얼마전 헌재의 판결에 따라 신행정수도 이전이 위헌이란 판결이 났다. 이 판결은 몇 가지 점에서 논쟁거리를 안고 있다. 성문헌법 국가라 해서 관습헌법의 존재 자체를 전적으로 부정할 수는 없으나 어느 수준까지 관습헌법 혹은 불문헌법의 가치를 존중할 것인가를 놓고, 헌법재판소라는 사법부 기관이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와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의 권한을 어느 수준까지 견제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 등의 문제는 신행정수도 이전 논쟁(?)만큼이나 중요한 논쟁거리이다.

어떤 이들은 지금 우리 사회에는 논쟁이 없다고 말하고, 어떤 이는 지금 우리 사회가 과도한 논쟁으로 과열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런 판국에 나는 한가롭게 과거 100년의 논쟁사를 들척이고 있었다. 일제 관변 학자들의 주도 이래 조선시대의 당쟁사는 사색당쟁이니, 망국당쟁이니 해서 국론을 분열시키고 조선의 국력을 쇠망에 이르도록 한 원인으로 지탄받지만, 최근 국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논쟁 아닌 논쟁들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조선 시대의 당쟁이란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는 한탄이 절로 든다. 최소한 조선 시대의 당쟁은 밑바탕에 철학을 깔고 있으며, 비록 상대를 역적으로 몰아 죽일 지언정 상대의 논리(학문) 자체까지 전적으로 부정한 예는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최근 헌재의 판결과 그로 인해 불거진 논쟁들의 전개 과정을 살펴보면 지난 100년의 우리 논쟁사가 압축적으로 잘 드러나고 있다고 여겨진다. 책에서 다루고 있는 몇 가지 논쟁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이 책의 44쪽에 실린 "개신교와 전통사상의 충돌"에는 일제하인 1920년대 우리 사회에서 불거진 기독교 토착화 논쟁을 다룬다. 1885년 언더우드와 아펜젤러의 입국으로 시작된 개신교의 공식 선교 활동은 1900년에 신약이 1910년에 구약이 한글로 번역되면서 더욱 활기를 띠게 된다. 한글판 성서의 출현은 개신교가 한국 사회에 정착하는데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해 주었다. 그간 유교 경전에 부여되던 권위는 고스란히 성서를 대하는 신자들의 태도로 전이되고, 모든 신앙생활은 성서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성서와 기독교에서 강조하는 유일신 신앙은 이전까지 사용되던 신에 대한 전통 표기 방식인 "하느님"을 몰아내고, 숫자 "하나"에 "님"을 붙이는 우리 문법 체계에는 없는 말을 만들어내고, "돌아가시다"라는 "죽다"의 높임말이 "자연회귀"와 같은 전통 사상을 담은 뜻이라 하여 "죽으시다"와 같이 전례없는 새로운 말을 만들어내는데 이른다. 이와 같이 초기 개신교는 종례의 전통 사상과 대립하면서 발전하게 된다. 초기 개신교의 전례가 맞닥뜨린 여러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개신교는 한국 사회에 세력을 확장하기 위한 방편으로 의료와 교육사업을 강화하는 간접선교방식을 채택하고, 이전에 도입되어 있던 가톨릭과의 차별화를 위해 "우상숭배"니 "정교일치"와 같은 비판전략을 구사한다.

그러나 개신교의 주된 타깃은 샤머니즘과 같이 정교한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지 못한 토속 신앙에 대해 쏟아졌다. 유교나 불교와 같이 정교한 사상체계와 제도가 구비된 종교에 대한 공격은 상대적으로 조심스러웠던 반면, 전통 토속 신앙이었던 샤머니즘에 대한 공격은 무자비했고, 단호하게 실시되었다. "악마숭배"니, "우상숭배"니 하여 악마 척결을 당연시했다. 약한 상대에겐 철저히 강하고, 강한 상대에게는 그들의 철학적 기반, 사상 토대를 직접 공격하는 대신 의료와 교육과 같이 토착 종교 세력이 해줄 수 없는 것들을 대신하는 의료와 교육 등의 간접 선교 방식을 택한 것인데, 우리 논쟁사 100년에 두드러진 하나의 사례는 이렇듯 비타협적이고, 절대적 승부로 서로 양보할 수 없는 논쟁으로 진행된 것이 많았다는 것이다. 개신교는 특히 성서에 수록된 모든 것은 글자 한 자 한 자에 이르기 까지 모두 성령에 의한 것이기에 오류가 있을 수 없다는 축자영감설에 기반을 두고 배타적이고, 비타협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현재 우리의 논쟁들을 보노라면 이렇듯 상대의 논리에 철저히 배타적이고, 비타협적인 태도들을 엿볼 수 있다. 일방적 승리, 아니면 일방적인 패배만 있는 논쟁에서 논쟁을 통한 사회와 공동체의 통합을 생각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다음은 "1920년대 중반 프로문학 논쟁"과 "일제시기 단군논쟁"을 살펴보도록 하자. 1920년대 우리 문학은 카프로 대표되는 프로문학과 비프로문학 사이에서 문학논쟁이 벌어졌다. 이 논쟁은 프로문학진영과 비프로문학진영 그리고 이들을 통합해내려는 염상섭과 양주동의 소위 절충파 세 가지 입장이 충돌한 것이었다. 여기에서 주목해보야 할 것은 이들을 통합해내려 했던 염상섭과 양주동의 견해인데, 이런 논쟁은 마치 훗날 벌어질 "순수와 참여, NL과 CA"와 같은 우리의 모든 논쟁들을 예견이라도 하듯 많은 요소들을 담고 있다. 염상섭은 프로문학의 계급, 사회운동과 비프로문학의 민족운동이 서로 분열되어 있는 것은  옳지 않으며 양자를 통합할 수 있는 새로운 차원을 지향할 것을 주문한다. 그는 일찌기 민족을 초역사화한 존재로 규정하는 민족주의에 반대했고, 프로문학이 계급을 강조한 나머지 민족문제에 무지한 것에도 반대했다. 만약 이것을 80년대 초중반의 NL대 CA논쟁으로 옮겨 놓으면 이런 말이 된다. NL의 민족모순이 계급모순에 우선한다는 주장은 궁극적으로는 우경화와 개량화의 위험이 있으며, CA의 주장은 현실과 괴리된 공리공론의 한계에 머물고, 현실을 무시한 좌경화는 결국 소멸의 위험이 있다는 말이 된다. 염상섭의 주장이 이 양자 사이의 통합을 통한 새로운 경지에 이르는 것이 가능하다는 낙관론에 기댄 것이라면 양주동의 주장은 염상섭의 그것과는 다른 것이다. 이 양자간의 통합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니 이 둘은 각자 병행과 협조를 통해 서로의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1980년대 NL과 CA의 논쟁이 NL과 PD의 논쟁으로 전이되어 가면서도 끝끝내 타협점을 찾지 못한 끝에 1987년에 열린 잠깐의 틈에서 소멸되어 버리거나 급격히 우경화된 끝에 개량화된 비판적 지지라는 지리멸렬의 수순을 밟아 그들이 그렇게 목놓아 비판했던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방식으로 흡수되는 방식으로 끝을 맺는 것은 우리 논쟁의 한 방식이기도 하다. 즉, 논쟁의 중도 과정에서 끝을 보지 못하고, 어느 일방이 사라져버리거나 양측 모두 과거의 그런 논쟁을 추억으로 삼아 버리는 것으로 종료되는 것 말이다. 앞서의 프로문학 논쟁 역시 논쟁의 지속적인 결말을 보지 못하고, 해방 정국과 분단을 맞이하며 월북과 납북 등으로 소멸되어 버리고 말았다.

논쟁이 지속되지 못하고 지리멸렬해버리는데는 이렇듯 이념적인 차원의 문제, 이념을 실천으로 옮기는 과정의 지리멸렬만의 문제만이 아닌 "일제시기 단군논쟁"과 같이 그 주체들이 민족모순에 갇혀 소멸되어버리거나 왜곡된 전례도 있다. "단군논쟁"은 오늘날에도 그렇지만 서로 다른 여러 층위의 대결 속에서 결말을 보지 못하고 현재진행형의 미로에 갇힌 채 남아 있는 것이다. 우선 단군논쟁의 첫단계는 일제하 관변사학자들의 주장부터 살펴보자. 이들은 단군이 삼국사기에는 나타나지 않고, 삼국유사에만 등장하는 문제를 들어 단군이 실존인물이 아니라 후세에 새롭게 창조된 전설상의 인물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이에 대해 최남선은 여러 증거를 대며 이들의 주장을 무력화시키려 애썼고, 실제로 성공했다. 그러나 그는 중도에 친일로 돌아서버리고 말았다. 뒤이어 단군논쟁에 뛰어난 맑스주의 역사학자 백남운은 신채호와 최남선의 주장에 반대하며 단군신화는 문헌상 등장하는 가장 오래된 건국신화인 만큼 귀중한 사료이긴 하나 이를 실재화하거나 신비화하는 것은 계급을 합리화하고, 민족주의를 부각시키는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백남운은 1947년 월북하였다. 이후 논쟁은 과거의 수준을 넘지 못하는 선에서 반복되는 듯 보인다. 이렇듯 우리의 논쟁은 본의 아니게도 외부 여건의 변화와 논쟁 당사자들의 소멸 등과 같은 연유로 인해 중도에 멈춰버리고 마는 불철저한 것이기도 했다.

세 번째는 논쟁이 드러내고 있는 것과 그 이면이 다른 내용을 담고 있는 문제들이다. 예를 들어 "김윤식 사회장 파동","정비석의 <자유부인>을 둘러싼 공방"과 "이승만과 한글간소화 파동", "박정희 신드롬"과 같은 논쟁들이 그것이다. 1922년 1월 21일 88세의 일기로 숨진 운양 김윤식의 죽음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은 그의 죽음을 사회장으로 치르자고 주장한 동아일보와 이에 반대하는 이들의 입장이 엇갈리며 빚어진다. 3.1운동 이후 내부 분화되기 시작한 민족주의 세력과 사회주의 세력이 이 문제를 두고 표면적으로는 드러나지 않았으나 내부적으로는 서로의 입장이 갈리기 시작한 것이다. 정비석의 통속소설인 "자유부인"을 두고 벌어진 논쟁 역시 겉으로 드러난 것은 문학의 윤리이지만 그 이면에는 또 다른 이야기거리를 숨기고 있다. 평남 양덕 출신의 법학자 황산덕은 1954년 1월 1일부터 8월 6일까지 서울신문에 연재 중이던 "자유부인"을 대학신문에 비판하기 시작하면서 벌어진다. 한국전쟁이 끝나지 불과 5개월여 남짓한 시점에서 연재되기 시작한 "자유부인"은 당시 변화된 사회 분위기와 통속을 소설에 반영하면서 뜨거운 인기를 얻었다.

황산덕은 소설 속 한글학자인 장태연 교수가 양공주와 다를 바없는 은미(실제로는 양공주가 아니라 미군 부대 군속이었지만, 황산덕 교수는 구분 없이 모두 양공주라고 했다)에게 잠시나마 매혹당한 점과 그의 아내 오선영이 대학생의 품에 안겨 춤을 추는 것과 같은 사건 묘사에 대해 "대학교수를 양공주에 굴복시키고, 대학교수 부인을 대학생의 희생물로 삼으려"는 "스탈린의 흉내"를 내는 작가의 고집으로 "중공군 50만 명에 해당하는 조국의 적"이라고 공격한다. 1950년대 중반 무렵 한국사회의 이혼율은 0.27%, 댄스붐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70여 명의 여성을 농락한 박인수 사건이 터졌고, 부산 피난 국회에서 개정된 간통쌍벌죄 형법의 첫 고소사건이 있었다. 황산덕은 이런 윤리의 혼돈을 싸잡아 정비석의 "자유부인" 문제로 몰아부친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황산덕의 시선이다. 이에 비해 전 해병대 대위였던 박인수는 약혼녀가 자신을 배신하고 모 대령에게 시집가버린 일에 충격을 받아 비행을 저지른 박인수 사건은 당시 사건 판사였던 권순영의 판결 "인생의 청춘을 향락하기 위해 스스로 제공한 정조를 법은 보호할 수 없으며 거기에 간섭해서도 안된다"는 무죄 판결을 내렸다. 훗날 황산덕은 사법살인으로 불리는 인혁당 사건 때 법무부장관을 지냈고, 권순영은 판사직을 그만 둔 뒤 재야 법조인으로 시국사범들을 변호했다.

정비석의 "자유부인"이 통속소설인 것은 분명하나 "자유부인"은 또한 사회비판풍자소설이기도 했다. 정비석은 논쟁 중에도 꿋꿋하게 소설을 썼고, 공무원, 국회의원들을 모두 비판했다. 소설 속에서 가장 훌륭한 인물로 그려진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교수를 모욕했다고 황산덕을 발끈하게 만든 한글학자이자 교수 장태연이었다. 이선근 문교장관은 취임 2개월만인 1954년 4월 21일 느닷없이 "한글간소화방안"을 발의한다. 간소화방안의 내용인즉 '한글이 사용하기 너무 어려우니 복잡한 받침들은 열개로 통폐합하고, 어간을 무시하여 표기하도록 하자'는 것을 골자로 한 것이다. 그런데 이 간소화의 기본 골격은 이승만 대통령이 소싯적에 읽었던 한글번역본 "신구약성서"의 표기 체계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즉, 대통령이 오랫동안 외국 생활을 해온 탓에 우리 말과 글에 서투르니 대통령이 익숙한 한글 체계로 되돌아가는 것을 골자로 한 방안이었던 것이다.

정비석의 "자유부인"에서 그리고 있는 주인공 장태연 교수는 이에 맞서 국회 청문회에서 우리 한글을 사수하자는 취지의 발언을 하고, 그의 춤바람 난 아내는 이에 감동해 훌륭한 남편에게 되돌아온다고 결말을 맺고 있다. 정비석의 통쾌한 풍자가 빛을 발하고 있는 순간이다. 그러나 현실 속의 이승만 대통령은 끝끝내 자신의 고집을 꺽지 못하고, 정부만이라도 간소화된 한글을 사용하자는 주장을 펼친다. 1국가 2문법 체계를 갖추자는 웃지못할 제안은 결국 대중의 무관심과 반발 속에 8년만에 사그라들었지만 결국 그는 한글 신문을 잘 읽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통치가 말기로 갈수록 점차 귀머거리가 된 이유 역시 이와 무관하다 할 수 없을 것이다. "박정희 신드롬"에 대해서는 길게 말할 필요가 없을 지도 모르겠다. 박정희가 무덤 속에서 부활하게 된 것은 현재의 정치 시스템이 여전히 과거의 박정희식 모델을 극복하지 못하고, 경제 성장의 주동력을 여전히 과거의 성장모델에서 찾으려 하는 전근대적인 방식에 머물고 있는 탓에 그렇다면 차라리 예전의 박정희가 낫지 않은가 하는 시대착오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논쟁에는 그 이면에 다른 의미를 담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다시 현재의 문제로 돌아와 행정 수도 이전이란 어찌 보면 절차상 전혀 문제가 없는 이것이 헌재의 심판을 요구받고, 한쪽에서는 결사반대를 다른 한 쪽에서는 찬성을 주장하는 이면에는 행정 수도 이전이 단순히 행정수도이전만의 문제가 아니라 노무현 정부에 대한 감정적 반대, 한국사회의 보수주의자들이 느끼는 극단적인 위기감이 한데 결합하여 표출하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헌재의 문제점이나 절차상의 문제가 표면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논쟁의 핵심으로 보이나 그 이면에는 위와 같은 문제들이 결부되어 있다. 이렇듯 "논쟁으로 본 한국사회 100년"은 오늘의 우리 현실을 되돌아 살필 수 있는 좋은 계기이며, 과거의 논쟁이 현재에 와서는 어떤 모양새를 갖추고 있는지를 살필 수 있는 좋은 근거가 된다. 내용에 따라 읽기 쉬운 것들도 있고, 다소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것들도 있으나 두루 살피다보면 우리의 근 현대사의 면면을 보다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논쟁이 아니라 논쟁의 결과 도출된 합의와 그에 따른 승복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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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물만두 > 정확한 시간을 맞추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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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djuna.nkino.com

왕가위의 최신작 [2046]은 2046년의 미래를 무대로 한 SF를 쓰는 1960년대 홍콩 작가의 이야기입니다. 양조위가 연기한 이 작가는 아마 [화양연화]에서 양조위가 연기했던 무협 작가 선생과 동일인물일 겁니다. 같은 사람이라면 실연이 멀쩡한 사람을 망쳤다고 말할 수밖에 없군요. 이 영화의 느끼한 바람둥이 차우 선생은 [화양연화]의 순정파 유부남 아저씨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차우 선생은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네 사람의 여자들을 거칩니다. 검은 장갑을 낀 도박사인 수리첸, 이전에 알고 지낸 것이 분명한 미미, 같은 호텔의 이웃에 사는 바이 링, 호텔 주인의 딸인 왕진웬, 가끔 그는 그가 이전에 사랑했던 옛 여자의 이미지를 떠올리기도 합니다.

얼핏 보면 차우 선생의 이야기는 우디 앨런적인 패러독스에 대한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바이 링은 차우 선생을 사랑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는 그런 그녀를 외면합니다. 반대로 왕진웬은 그가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영감의 원천이 됩니다. 이 영화에서 차우 선생과 만나는 여자들은 모두 다양한 이유로 그와 엮여질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왕가위의 영화들이 대부분 그렇듯, [2046]은 시간과 기억에 대한 묵상입니다. 과거 시대를 사는 작가가 미래를 상상하며 소설을 쓴다는 설정부터 그런 주제를 위한 그럴싸한 골격을 만들어주죠. 물론 그렇다고 이 영화가 그 주제에 대해 엄청 깊이있는 사색을 끌어내는 건 아닙니다. 왕가위는 언제나처럼 주제에서 달짝지근하고 얄팍한 도회적 감상을 끌어내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가끔 꽤 깊이있는 심리 묘사와 같은 것이 나오기도 하지만 왕가위식 산만한 편집 속에서 의미를 잃어버리죠.

[2046]은 그 중 자아도취가 심한 영화인데, 그건 이 영화가 그의 이전 작품들에서 소스를 끌어내고 미완으로 남겨둔 이야기들을 마무리짓고 있기 때문입니다. [2046]은 두 시간 넘게 지속되는 영화적 자위 행위입니다. 물론 그도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연륜을 쌓았으니 자기가 20년 동안 벌려놓았던 세계를 정리하고 싶기도 했을 겁니다. 일종의 팬 서비스일 수도 있겠죠.

팬서비스이건, 자위 행위이건, 전 상관없습니다. 저에게 [2046]이 구체적인 메시지나 묵상인 척하고 내뱉은 중얼거림은 모두 60년대라는 시대를 배경으로 장쯔이, 왕비, 공리, 유가령, 장만옥과 같은 배우들을 근사하게 찍기 위한 핑계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영화는 그 목적을 거의 완벽하게 달성했습니다. 끝을 살짝 올린 아이라이너를 하고 장난스러운 유혹을 던지는 장쯔이에서부터 호텔 옥상에서 60년대 식으로 근사하게 담배를 피워대는 요정같은 모습의 왕비에 이르기까지, 이 영화의 '예쁜 여자 찍기'는 성공적입니다. 저처럼 예쁜 사람들을 많이 보기 위해 영화를 본 관객들은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했을 거예요. 하긴 그 이상을 기대하며 극장을 찾을 필요가 있을까요? (04/10/28)

DJUNA

          

**혹평에 가까운데,사실 어느정도는 맞는 말이기도 하다.이번 2046은 신규팬들을 위한 보여주기가 아니라 듀나의 말처럼 왕가위의 팬들을 위한 팬서비스가 맞다.왕가위의 전 작품들에 대한느낌이 조금씩 묻어있다.나는 그래서 무척 좋았다.그때의 영화들을 떠올릴 수 있었으니까.무엇보다 장만옥을 볼 수 있었으니까.그래도 화양연화의 장만옥보단 못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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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ika 2004-10-29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연이 멀쩡한 사람을 망쳤다. - ㅋㅋ 맞아요...이게 화영연화 의 2편 격인데, 그때의 양조위랑 많이 분위기가 틀리더군요...
예전 씨네21을 매주 사볼때는 관심있게 읽은 듀나의 글인데, 요샌 씨네21도 끊어서 오랫만에 듀냐의 글 읽었습니다.

stella.K 2004-10-29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말이어요. 듀나. 이 사람 할 말은 다하는 사람 같아요. 거침없이...^^

urblue 2004-10-29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만옥 나온 장면 너무 짧았다구요.
장만옥과 기무라 타쿠야가 칸에서 영화보고 화냈다는 말도 있습니다.
찍은 시간에 비해 나온 시간이 지나치게 짧아서요.
그나마 기무라 타쿠야는 새로 찍어서 이번에 더 들어가긴 했지만 장만옥은...흑..제가 사랑하는 장만옥은...

stella.K 2004-10-29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만옥을 좋아하시는군요. 블루님. 저도 좋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