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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세간을 놀라게 한 유영철 사건으로 인해 사형제 폐지 운동을 벌이는 단체들이 난처한 입장에 처해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사형제도는 본디 범죄인의 생명을 인위적으로 박탈함으로써 사회 규범을 강제하려는 인간 권력이 내리는 최고의 극형으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인류의 형벌이기도 하다. 이같은 사형제도에 대해 현대에 와서야 비로소 많은 비판과 자각의 목소리가 있어 왔으며 현재까지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사형제를 폐지한 나라는 독일,프랑스 등 30여개국에 불과하고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많은 국가들이 아직 사형제를 존치하고 있다.
'죄와벌'이라는 TV프로그램을 보면서 가끔 인간이 내리는 사법적 심판의 한계를 가지고 과연 한 인간의 생명을 국가가 강제로 박탈할 수 있는가? 라는 의구심이 들때가 많다.
하지만 우리사회는 아직 사형제 폐지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지 못하다. 실제로 올해 한 조사에 의하면 국민 세명당 한 명 정도만이 사형제 폐지에 공감하고 있으며 나머지 국민들은 사회질서 유지를 위해 필요불가결 하거나 아직 시기상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인간과 인간이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에서 사회규범의 계약이행을 위한 억제력과 인과응보로서 사형제도의 존치 이유가 성립된다면 이에 따르는 사형제의 문제점도 만만찮게 나타나고 있다.
아래는 <국제생명운동 한국지부>에서 밝히는 사형제도의 문제점이다.
1. 비인간성
오늘날 사형제도는 다양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 첫번째로 비인간성을 들 수 있는데 인간의 합법적인 행위 중 가장 잔인한 행위이며 세상 어느 곳도 사형이 범죄율을 줄이고 정치적 권력 강화를 시켜 준다는 증거는 보고 되지 않고 있습니다.
사형이 집행되는 곳은 인종,민족,종교 및 소외집단에 대한 탄압의 수단으로 사형이 집행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래 전부터 사형은 비인간적이며 굴욕적인 처벌이기 때문에 세계 여러 단체에서 사형제도 폐지를 주장하고 있고 사실 인간적인 과실과 편견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법규에서 사형을 선고한다는 것을 정의로 이해하기보다 오히려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고 있다는 것이 필연적인 사실입니다.
사형제도의 폐지는 점점 더 강해지고 있으나 아직 그 속도가 충분하게 빠르지 못합니다. 민족의 이름으로 처단하고 집행하는 사형은 모든 이를 불행하게 하고 따라서 각자는 사형이 무엇을 의미하며 사형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또 사형이 무엇 때문에 그것과 관계하는지 그것이 어느 정도까지 인권을 침해하고 있는지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합니다.
2.인종차별과 사형
사형제도의 공포적이며 최종적인 형벌이 무방비한 사람들, 즉 가난한 이 , 정신장애자,또는 인종적, 종교적,윤리적 소수 집단에 속하는 이들에게서 가장 많이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미국 Amnesty International( 사형제도 폐지 주장 단체)의 보고에 의하면 미국 내 사형수들 중 백인보다 흑인이 5배이상 더 빈번하게 사형에 처해진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남 아프리카에서 사형은 거의 전적으로 백인으로 구성된 상원이 흑인들과 유색인종들을 편파적으로 부과하는 것으로 되어 있고 또한 사형심리가 전개되고 있는 법원에 배석한 배심원들은 언제나 백인들이며 만일 피해자가 백인이고 그를 살해한 가해자가 흑인일 때 사형언도는 거의 확실합니다.
따라서 1982년 6월부터 1983년 6월 사이에 백인 살해자로 기소된 81명의 흑인중에서 거의 반을 차지한 38명이 사형을 당했지만 반대로 흑인을 죽인 백인 기소자 52명중에서 단 1명만이 사형을 당했습니다.
남아공의 흑인 범죄자들은 변호사를 세울 엄두도 못낼 만큼 가난하고 법률 용어가 영어나 아프리카어인데 남아공 흑인들은 이 두 가지 말을 잘할 수 없기 때문에 별 수 없이 통역자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어 이로써 종종 큰 손해를 보게 됩니다.
자마이카에서 1979년 제정된 사형과 형법제정에 관한 위원회는 당시 사형이 구형된 81명의 죄수들 중 40명을 상대로 조사를 하였는데 대부분이 하류계층 출신들이었고 그들은 대부분 어릴 때부터 가난한 삶에 처해 있었으며 더욱이 불규칙한 생활과 교육이 부재 속에 지낸 사람들이었고 이들 중 1/4은 문맹이었습니다.
3.무죄한 이들에 대한 사형
사형판결은 최종적인 것이고 따라서 비록 소송을 통한 조치가 있을지라도 무죄한 이들에게 선고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로 인해 사형제도를 반대하는 주목할 만한 주장이 대두됩니다.
사형제도는 처벌의 남용이며 사람은 결코 완전히 무결할 수 없고 이상적인 완전한 정의는 불가능하며 사형제도가 존재하는 한 처벌의 남용은 계속 유지될 것입니다.
미국에서 무죄한 이가 유죄로 판결된 349건의 실례에 대한 명확한 연구(1900년-1985년사이)에서 사형제도와 관계된 살인문제로 사형당하거나 형무소로 보내진 이들의 경우에서 23명이나 무죄한 이들이 처형되었고 32건의 경우 피고인의 범행은 아예 나타나지도 않았으며 종종 피해자가 훗날 살아 있는 채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여러 나라에서 사형선고를 받은가 무죄로 석방된 경우를 보여주고 있고 그로 인해 법원은 재판의 오류에 의한 희생자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낙인 받게 되었습니다.
4.사형의 자의적 적용
사형의 자의적 적용에 대한 문제는 재판상의 오류와의 관계에서 살펴져야 합니다. 사형 적용이 확정 되면 한 사람의 삶이 종말을 고하는 것이므로 인간적 오류나 성급한 판단에서 면제되지 못하는 법정에서의 사형선고는 정의에 의거하기 보다는 화를 초래하는 결과를 불가피하게 안고 있습니다.
처벌에서 먼저 결정적인 것은 범인은 사형에의해 어떤 방향으로 위협을 당하느냐는 것입니다.살인은 죽어야 마땅한 죄로 전통적적으로 생각되어 왔으나 지난 2000년간 역사나 다른 여러나라들의 법률을 일별해 보면 살인과 단순한 고의적 살해사이의 경계가 모호하며 전혀 충분한 지침이 마련되 있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형으로 종결되는 모든 형사심리에서 또는 사면 가능성이 대두되는 상황에서 그 합리성은 파악되지도 않고 조절되지도 않아 다분히 자이적인 것으로 보이며 피고인의 운명은 그 사건에 있어서 어느 재판관이 재량권을 가지느냐에 달려 있어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무오류성 재판을 할 수가 없다고 봅니다.
5.사형제도의 무자비함
사형집행을 기다린다는 것은 극도의 공포심을 자아내고 삶에 대한 상념과 함께 사형이 집행되는 날까지 괴로움을 당합니다. 또 오랫동안의 격리와 외로움은 집행을 기다리는 이를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어 너무나 무자비하고 비인간적이라 여러나라에서 사형을 무조건 반대하고 있습니다.
사형제도의 문제점으로 무자비한 사형방법과 사형의식인데 오늘날 세계적으로 일곱가지 사형방법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 중 교수형과 총살이 보편적이며 78개국은 교수형이, 86개국은 총살이 주로 시행되고 이슬람법에 따르는 다섯나라는 참수로 형을 집행하고 , 일곱나라에서는 간음죄에 돌로 쳐 죽이는 방법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다른 인간을 처단하도록 권한을 부여하는 국가는 인간의 삶에 표해야 할 무주건 존경이라는 게명을 파괴하고 있으며 자의성이나 차별 또는 오류가 없는 사형체계를 만든다는 것이 불가능 하듯이 무자비하지 않고 비인간적이지도 않으며 비열하지도 않은 사형방법을 찾아내는 것도 역시 불가능합니다.
6.정치적 억압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사형제도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아프리카,아시아,라틴 아메리카 같은 나라에서 수십년 간 사형제도는 정치적 억압을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어 왔고 , 또 독재자나 독재체재에 의해 악용되었으며 , 쿠테타를 통해 얻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정치적 반대 그룹의 일원들을 정치적 목적이라는 미명아래 처형시키고 군사 쿠테타 이후 이전 체재의 동조자들이나 의혹이 가는 반란자들에게 집행되었는데 지난 10여년 동안 14개국에서 실행되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대단한 열성과 공정한 재판이라는 허위 아래 이루어져 왔으므로 더이상 이러한 살인은 합법성의 외관을 두면 안되고 , 살인은 살인을 낳을 뿐 이들은 점점더 정의로운 행위라는 표상을 드러낼 수 없습니다. 사형제도가 실행되지 않는 나라들에서도 법률가들은 사형이 여전히 하나의 위협으로 존재하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7.사형폐지국 및 존치국 현황
57개의 국가나 지역에서 모든 범죄에 대해 사형폐지
15개 국가에서 전쟁범죄를 제외한 일반 범죄에 대해 사형폐지
28개국이 실제적으로 사형을 폐지: 이들 국가는 지난 10년간 단 한번의 사형집행도 없었음
94개국이 여전히 사형제도를 존치하고 있지만 매년 점점 많은 국가들이 사형집행을 하지 않고 있음
아무튼 우리사회는 단순히 사형제도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의 논의 수준에서 조금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여론은 무고한 사형수의 이야기가 나오거나 유영철과 같은 세상을 경악시키는 연쇄 살인범이 나타날 때마다 찬성론과 반대론이 번갈아 가며목청을 높이고 있을 뿐이다.
이처럼 과연 인간이 인간을 사형시키는 것이 꼭 필요한지, 그것이 인간다운 삶을 우리에게 보장해 줄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갖게 하는 한 권의 책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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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의 형벌/스콧 터로/교양인>
| ‘법의 이름으로 살인’ 과연 정의로운가 [한겨레 안수찬 기자] |
“이 책은 경험에 바탕을 둔 개인적 기록이므로 학술적인 책으로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극단의 형벌〉(도서출판 교양인) 지은이 스콧 터로는 책 꼬리에 이런 ‘단서’를 달았다. 수많은 ‘학술적 관심’이 이 책에 쏠릴 것을 진작에 예상한 듯하다. 그러나 비록 그것이 ‘오해’라 할지라도, 이 책이 사형에 대한 법학·사회학·철학적 논점들을 한꺼번에 거머쥐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힘들다. 최근 사형폐지특별법안 처리를 준비하고 있는 정치권의 움직임이나, 건국 이래 최악의 연쇄살인범의 등장이 이 책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부추기고 있는 것도 그 학술적 의미를 더한다. 사형은 2004년 한국 사회가 다뤄야 할 ‘극단의 화두’로 떠올랐다.
그러나 사형 폐지론과 존치론 사이의 넓고 깊은 ‘해자’는 아직 좁혀지지 않았다. 더 심각한 것은 사회적 공감대 형성을 위해 필수적인 ‘공론화’의 조짐이 학계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본격화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극단의 형벌〉은 사형이라는 화두를 안고 끙끙 앓고 있는 한국 사회에 ‘하나의 대안’을 던진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 자리잡은 균형감은 미국 연방검사 출신 변호사인 스콧 터로의 독특한 경험에서 비롯됐다. 공화당 출신 미국 일리노이 주지사 조지 라이언은 지난 2000년 3월 사형집행의 일시 중지를 선언하고 사형제도 개혁을 위한 ‘사형 위원회’를 설치했다. 당시 2년여에 걸친 위원회 활동의 한 주역이 스콧 터로다.
그는 연방 검사 시절 살인혐의자의 사형선고를 기쁘게 받아들였고, 형사소송 변호사 시절엔 사형 선고 사건의 오류 앞에 경악한 ‘사형 불가지론자’다. “경찰의 살인 무기 사용 등의 국가 폭력은 필요하다”고 믿는 그는 미국 보수주의자의 전형이기도 하다.
바로 이 점이 각 학문 분과를 넘나들며 존치론과 폐지론의 경계를 실증적으로 허무는 지은이의 연구에 ‘매혹’당하는 이유다. 그는 사형 존치론의 함의에 대한 기대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지루하고 복잡한 논란의 가닥을 잡아가며 사형제도 폐지를 향해 한 걸음 내딛는다. 그가 보기에 “사형 논쟁은 한 나라의 정신을 형성하기 위한 투쟁”이다. “민주주의에서 권력의 궁극적 원천이 시민이라면, 정부가 자신보다 우월한 권력을 가진 시민을 죽이는 것이 허용될 수 있을까”라는 게 그가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이다.
여러 논점 가운데 사형이 범죄억제의 효과가 있다거나 반대로 살인을 부추긴다는 주장을 ‘실증적’으로 논파하는 대목은 이 책이 갖는 미덕을 그대로 웅변한다. 철학적 논쟁을 그대로 보여주고, 이를 정책의 관점에서 대안 중심으로 재편한 것이다.
살인과 사형을 ‘온몸으로’ 체득한 그의 탁월함이 가장 돋보이는 것은 ‘복수의 도구로서의 사형’에 대한 논증 부분이다. 그는 “일관되게 사형을 지지하는 집단이 피살자의 유족”이라며 “사랑하는 사람을 살인으로 잃는 것은 이 잔인한 인생에서 우리가 받는 다른 어떤 타격과도 다르며, 이런 상실은 이성과 규칙에 따르는 법치에 대한 ‘특별한 도전’”이라고 말한다. “살인범이 여전히 존재의 작은 기쁨을 누린다는 것의 불합리”에 대한 지은이의 ‘공감’은 그러나 “전체 공동체 역시 피해자의 잠재력을 뺏긴 것이므로 처벌은 ‘유족의 이름으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름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짚었다.
이밖에도 무죄가 입증된 사형수, 경찰과 검찰의 직권남용, 사형제도의 사회적 비용, 공동체의 도덕적 균형, 법률시스템의 우연성과 편파성, 사형논란의 역사적 맥락 등이 이 책에 등장한다. 사형제도를 둘러싼 사실상의 모든 논점을 망라한 것이다.
스콧 터로가 속한 ‘사형위원회’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미국 일리노이주는 2003년 1월 167명의 사형수를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 또는 40년형으로 감형하고, 제도 전반에 대한 폭넓은 개혁작업에 돌입했다. 사형폐지까지 이르지는 못했지만, ‘사형국가’인 미국에서는 가히 혁명적인 변화였다.
지은이는 “법의 예리한 규칙들은 결코 도덕적 모호성이라는 어둠을 베어내지 못하며, 처벌만으로는 세상을 우리가 살고 싶어하는 곳으로 만들 수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를 그 길로 이끌 것인가. 이제 ‘한국적 해답’을 내놓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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