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인간아 > 1월 24일 - 커피와 담배 (Coffee And Cigarettes, 2003)

 

주연
로베르토 베니니 Roberto Benigni
케이트 블랑쉐 Cate Blanchett
신쿼 리 Cinque Lee
조이 리 Joie Lee
테일러 미드 Taylor Mead
알프리드 몰리나 Alfred Molina
빌 머레이 Bill Murray
이지 팝 Iggy Pop
윌리암 라이스 William Rice
RZA RZA
톰 웨이츠 Tom Waits
잭 화이트 Jack White
멕 화이트 Meg White
스티븐 라이트 Steven Wright
스티브 부세미 Steve Buscemi
스티브 쿠건 Steve Coogan
이삭 드 번콜 Isaach De Bankole
연출 부문
짐 자무시 Jim Jarmusch 감독
각본 부문
짐 자무시 Jim Jarmusch 각본
촬영 부문
톰 디칠로 Tom DiCillo 촬영
프레더릭 엘머스 Frederick Elmes 촬영
엘렌 쿠라스 Ellen Kuras 촬영
로비 물러 Robby Muller 촬영
제작 부문
그레첸 맥고원 Gretchen McGowan 제작부
스테이시 E. 스미스 Stacey E. Smith 제작부
제이슨 클라오트 Jason Kliot 제작
조안나 비센트 Joana Vicente 제작
프로덕션 디자인 부문
마크 프리드버그 Mark Friedberg 미술
편집 부문
제이 라비노위츠 Jay Rabinowitz 편집

 

커피와 담배가 만나듯, 사람은 무한히 만난다

짐 자무쉬의 능글거리며 고요한 유머를 또 한 번 경험합니다. 뭐랄까, 침묵을 사랑하는 악동 같기도 하고 여전히 뼛속부터 원래 언더였다는 듯한 이미지의 사내 같은 영화를 만들어내는 감독입니다. 동양의 참선의 이미지가 떠오르기도 하고요, 탕자가 돌아오는 길에서 느끼는 회개와 참회와 반성이 담긴 화면을 언뜻 본 것 같기도 합니다.

이 영화는, 커피와 담배에 대한 짐 자무쉬의 오마쥬입니다. 그가 커피와 담배를 통해 들려주는 깊이 있는 유머를 경험해보세요. 저는, 커피를 즐기는 사람도 아니고 흡연자도 아니기 때문에, 이 영화가 그다지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좀 아쉽기는 합니다. 담배를 배워볼까 하는 망상도 생기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통해, 커피와 담배의 마력과 매력에 대해 새삼 생각해보게 되었으니, 이 영화는 분명, 커피 매니아와 흡연자들에게는 잠언처럼 달콤하고 알싸하고 깊이있게 느껴질 것입니다.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엊나가는 대화와 말들의 파편들에 대해서, 커피와 담배를 마주하고 나누는 두 사람의 균형이 미묘하게 기울어지고 어떻게 다시 역전이 되는가에 대해서, 시시껄렁한 잡담으로 주고받는 말들 사이에서, 순간적으로 떨어져버리고 마는 유성의 아름다운 빛처럼 그의 유머는, 드러납니다. 웃기기는 하는데, 저는 여기에서 미국의 위선과 가식, 여러 사회적인 문제들에 대한 짐 자무쉬의 풍자도 보았습니다. 저만의 생각일런지 모르겠으나, 여하간 이 영화를 보고나면 카페인과 니코틴에 잘 절여진 영혼이 되어 몽롱하고 황홀해집니다.

 자네 여기 웬일인가/ 쌍둥이/ 캘리포니아 어디엔가/ 담배는 해로워/ 사촌/ 별일 없어/잭이 메기에게 테스라 코일을 선보이다/ 사촌 맞아?/ 사랑의 블랙홀/ 흥분/ 샴페인 의 열한 편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이 영화를 통해 짐 자무쉬의 뛰어난 각본 연출력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들려주는 하나하나의 대사들의 깊이는 대단합니다. 커피도 모르면서, 담배도 모르면서, <커피와 담배>는 재미나게 보았습니다.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이 <담배와 커피> (Cigarettes & Coffee, 1993)라는 작품으로 패러디하기도 했군요. 보고 싶네요. 유쾌하고 가볍게 즐기기에 적당합니다. 물론 단편마다 쪼개어봐도 무방합니다. 저는 커피 한 잔 하러 갑니다. 커피를 마시고 잠들면, 꿈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휙휙 지나간다고 하는군요. 다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당신의 점심이, 커피와 담배였던 적은 없습니까?

 

<짐 자무시의 모든 것> - 씨네21에서 옮깁니다.

짐 자무시는 우리에게 이름에 비해 영화의 실체가 덜 알려져 있는 감독이다. 그것은 아마 <브로큰 플라워> 이전까지 만든 8편의 장편영화 중 한국에서 개봉한 그의 영화가 <천국보다 낯선> <데드맨> <고스트 독> 세편뿐이라는 단순하고도 안타까운 사실 때문일 거다. 그러니 그동안 간과되어왔던 그의 나머지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를 덧붙이고 나서야, 간명하면서도 유쾌하고, 유쾌하면서도 탄식어린 자무시의 세계가 좀더 친절히 열릴 것이다. 우리는 지금 자무시에게서 <브로큰 플라워>라는 영화편지 한통을 받았다. 자무시의 전작(과거)을 되돌아보기를 독촉받는 이상한 영화의 아홉 번째 편지를. 그걸 계기로 ‘짐 자무시의 모든 것’을 살펴본다.


니콜라스 레이에게는 그를 따르는 많은 후대 감독들 중에서도 특히 유명한 두명의 후배가 있었다. 그의 마지막 생전의 모습을 담은 영화 <물 위의 번개>(1980)를 만들었던 빔 벤더스가 그 한명이고, 니콜라스 레이가 뉴욕대에서 강의할 무렵 그의 조교였으며, 그 인연으로 <물 위의 번개>의 스탭으로까지 참여한 짐 자무시가 나머지 한명이다. 자무시와 벤더스가 서로 알게 된 것도 이때쯤이다. 사실, 자무시의 첫 번째 장편영화 <영원한 휴가>(1980)도 니콜라스 레이 덕택에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어떤 이들은 <천국보다 낯선>을 자무시의 첫 번째 장편영화로 알고 있을지 모르지만, 엄밀히 말해 <천국보다 낯선>은 자무시의 ‘첫 번째 35mm 장편영화’다. 대학 시절 학기 제출용으로 작심하고 만든 77분짜리 16mm 작품 <영원한 휴가>가 그의 첫 번째 장편영화다). 자무시가 파리 시네마테크에 묻혀 일년 내내 영화를 본 뒤 다시 학교로 돌아왔을 때, 그는 학비가 없었다. 하지만 능력있는 그에게 학교는 니콜라스 레이의 조교로 일하라고 추천했고, 그 대가로 졸업 단편을 만들 수 있도록 학비 장학금을 지불했다. 그런데 그 돈으로 자무시는 냉큼 장편영화를 만들었고, 학교는 그가 학비를 내기로 약속하고 받은 장학금을 장편영화를 만드는 데에 유용(?)한 죄로, 게다가 “그 영화가 마음에 들지 않는 죄”로 학위를 수여하지 않았다. 그의 졸업장은 몇년 뒤에야 우송됐다.

벤더스가 졸업 작품으로 단편 대신 127분짜리 장편 <도시의 여름>을 만든 것처럼, 자무시도 10년 뒤 그런 사고를 똑같이 친 것이다. 여하간 그 이후 자무시는 수없이 많은 인터뷰에서 벤더스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냐고 질문받았고, 그때마다 그는 “그와 나는 친구이고, 그의 초창기 영화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에게서 받은 영향은 크게 없다”고 잘라 말하기를 반복해야 했다. 벤더스가 영화적 정점을 구가하고 있던 시절, <사물의 상태>를 만들고 나서 남은 40분 정도의 필름을 짐 자무시에게 주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천국보다 낯선>(1984)의 첫 번째 에피소드 ‘신세계’가 만들어졌다는 유명한 일화가 무엇보다도 그들의 계보를 규정하는 증거로 작용했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어쨌거나, 그뒤 짐 자무시는 보란 듯이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는데, 중요한 건 결코 ‘로드무비’라는 틀만큼은 벗어나질 않았다는 거다.

2005년 자무시와 벤더스는 <브로큰 플라워>와 <돈 컴 노킹>이라는 로드무비를 들고 똑같이 칸영화제를 찾았다. 그러나 여기서 자무시는 벤더스와 거의 반대의 결론에 도달해 있다. <돈 컴 노킹>에서 벤더스의 길은 자아를 찾는 길이고, 복구의 길이고, 의미의 길이다. 거기에 비해 자무시의 길은 방기의 길이고, 대상만이 있는 길이고, 해답이 없는 길이다. 의미가 끼어들 수도 없고, 그런다고 해봤자 뭔가 바뀔 것도 없는 아무것도 아닌 미정의 길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그의 영화적 길 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표지판들을 물끄러미 보며 그 무의미성과 미결(未決)을 넉넉하게 즐길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 처음부터 순서대로 가보자.

자무시의 영화에서 주인공은 여행자이거나, 유랑자이거나, 아웃사이더이거나, 이방인이거나, 이민자이거나, 실제 외국인이다. 짐을 꾸려 여행하는 사람들이고, 정서의 처소를 찾지 못해서 이질적으로 떠도는 사람들이고, 중심 문화로 들어서기를 거부하며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사람들이고, 내 땅이 아닌 남의 땅에서 남의 언어로 사는 사람들이고, 그래서인지 이제 막 어딘가에 도착했거나 지금 막 어딘가로 떠나는 사람들이다. 특히, 초창기 두편의 작품 <영원한 휴가>와 <천국보다 낯선>에서 그들의 모습은 황량함으로 그려져 있다.

“그는 기본적으로 방랑자예요.” 자무시는 <영원한 휴가>의 주인공 앨리를 그렇게 소개한다. 영화의 내용은 별 게 없다. 찰리 파커를 좋아하는 뉴욕 청년 앨리 파커가 빈민촌을 돌아다니며 별별 사람들을 차례로 만나 대화하며 다니는 게 전부다. 고다르식 구성을 염두에 두거나, 오즈를 경외하거나, 브레송 영화의 한 장면을 대놓고 인용하거나 하면서, 아직 시네필의 혈기를 매끈하게 내성화하지 못한 티가 역력하지만, 결국에는 떠돌던 앨리가 마지막 장면에서 무작정 배를 타고 뉴욕을 떠나 파리로 향하는 것으로 끝맺는다.

세편의 에피소드로 나눠져 있는 <천국보다 낯선>에서 그들의 모습은 더 황량하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이제 막 뉴욕에 도착한 에바와 이미 그전에 도착하여 반(半)미국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촌 윌리의 며칠간의 동거가 이 첫 번째 에피소드 ‘신세계’의 내용 전부다. 원래 단편은 에바가 클리블랜드로 떠나면서 끝난다. 그런데 자무시는 두편의 에피소드 ‘일년 후’와 ‘천국’을 덧붙여 장편으로 만든 것이다. 내용은 윌리와 그의 친구 에디가 에바를 찾아 클리블랜드로 향하고, 거기서 다시 셋이 플로리다로 충동적인 휴가를 떠나는 것이다. 영화는 그들의 무위도식하는 삶의 내용을 무미건조한 형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영화적으로 본다면 다소 과대평가받은 면이 있고, 벤더스의 영향을 의심할 만한 부분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이미 자무시의 표지판들이 군데군데 널려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영화의 첫 장면에 뉴욕에 도착한 에바는 황량한 비행장에 홀로 서 있다. <지상의 밤>에서도 영화는 비행장에서 시작하고, <미스테리 트레인> <데드 맨>에서는 기차가 들어서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브로큰 플라워>에 이르러서 에피소드 사이를 잇는 교량 역할로 이륙하는 하늘의 비행기를 연신 보여주는 것은 이런 일관성의 연장이다. 자무시의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그런 끊임없이 오고가는 임시성의 장면들을 거쳐야만 한다.

“내 집은 미국에 있는 것도 아니고, 미국 바깥에 있는 것도 아니에요”, “나는 외국인이고, 또한 미국인이에요”, “내 자리는 언제나 주변이에요. 만약 내가 어쩌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영화를 만든다면, 내가 뭔가 잘못한 건 아닌지 걱정하게 될지도 몰라요”라고 자무시는 말한다(실제로 그는 올해 칸영화제에서 <브로큰 플라워>에 쏟아진 만장일치에 가까운 찬사에 적잖이 불편해했다고 한다). 그러니 그 주인공들의 입지는 자무시의 개인적 성향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의 생각에 집은 하나일 수가 없다. 그래서 그의 인물들은 정착이 고착이 되기 전에 그 자리를 떠나 사이-공간을 맴돈다.

<영원한 휴가>의 주인공 앨리는 파리행 배를 타기 직전 항구에서 누군가를 만난다. 지금 막 파리에서 뉴욕으로 온 젊은이다. 꼭 파리에서 뉴욕의 앨리처럼 살았을 것 같은 인물이다. 그러니까 한명이 그 자리를 떠나는 ‘그 시각’, 다른 한명이 그 자리로 들어온다. <천국보다 낯선>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에바가 부다페스트행 비행기를 탔다고 착각한 윌리가 표를 끊고 출국장 너머로 그녀를 찾으러 들어간다. ‘그 시각’, 에바는 부다페스트는 고사하고 그냥 플로리다 해변 근처를 어슬렁거리다가 다시 모텔로 돌아온다. 영화는 거기서 끝나기 때문에 그뒤로 그들이 서로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여기서도 중심은 ‘그 시각’이다. 그들이 같은 시각에 그 행위를 우연히도 교차했다는 사실뿐이다. 자무시의 영화에 도시의 지명이 곧잘 지정되는 것은 그 자체로 로드무비의 요소인 탓도 있지만, 이런 우연의 행동이 시간적 필연성 안에서 어떻게 동시에 일어나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 시각, 여러 곳에서 그들은 뭔가 하고 있다. 하지만 그건 알 수 없는 제각각이다.’ 그게 바로 동시적인 삶에 대한 자무시의 관심이 표명되는 방식이다. 특히나 그 관심사를 풀어냄에 있어 자무시가 편하게 생각하는 것은 에피소드의 선택이다. <다운 바이 로>(1986), <미스테리 트레인>(1989), <지상의 밤>(1991)에서 바로 그 방식이 두드러져 드러난다.

자무시 스스로 “네오-비트-누아르-코미디”, 또는 “동화 같은 상상의 이야기”라고 말한 <다운 바이 로>에서는 이름이 비슷한 두 주인공 잭(Jack)과 잭(Zack)의 각각 따로 흘러가던 동시간대 에피소드가 그들이 함정에 빠져 죄를 뒤집어쓰고 루이지애나 감옥 같은 방으로 들어오면서 하나로 합쳐지고, 여기에 로베르토가 등장하면서 다시 다른 이야기로 전개된다. 이것이 유연하게 에피소드를 합친 예라면, <미스테리 트레인>과 <지상의 밤>은 처음부터 끝까지 에피소드 형식이다. <미스테리 트레인>은 멤피스의 어느 허름한 모텔에서 엘비스 프레슬리의 영혼 아래 접혀진 동시간대 세개의 이야기다. 엘비스를 찾아서 일본에서 건너온 남녀 한쌍, 비행기 사고로 어쩔 수 없이 하룻밤 묵어가야 하는 이탈리아 여자, 술김에 사고를 치고 모텔로 숨어든 세명의 남자가 그들이다. 영화는 같은 모텔을 빌려 이 세 이야기를 차례로 보여준다. 게다가 자무시는 아주 간단하면서도 재치있는 몇 가지 요소, 특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블루 문>으로 이것이 같은 시각에 겹쳐 일어난 사건임을 알려준다.

다음 영화 <지상의 밤>에서 그 시각, 그 장소의 그 행위는 다섯개로 나뉜다. LA, 뉴욕, 파리, 로마, 헬싱키에서 같은 시각 각각 승객들이 택시를 타고 택시 기사와 벌이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LA에서는 나이든 연예인 매니저와 나이 어린 소녀 기사가 만나고, 뉴욕에서는 운전에 미숙한 이민자 기사를 대신해 흑인 손님이 대신 운전하고, 파리에서는 맹인 여자와 흑인 기사의 짧은 교감이 오가고, 로마에서는 신부가 떠버리 기사의 차 안에서 숨지고, 헬싱키에서는 직장에서 쫓겨난 친구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다며 함께 술을 퍼마신 승객들에게 그보다 훨씬 더 슬픈 일은 얼마든지 있다는 교훈을 주기 위해 자신의 절절한 이야기를 기사가 들려준다.

<미스테리 트레인>과 <지상의 밤>을 만들고 난 뒤의 인터뷰에서 자무시는 한때 문학도였던 그 기질을 발휘해 “윌리엄 포크너의 <야생종려나무>와 제프리 초서의 <켄터베리 이야기> 등에서 이런 형식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고 했지만, 어쩌면 그건 질문을 위한 대답이다. 사이 공간에 대한 관심이 있는 자로서, 동시간 각기 다른 장소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관심은 당연해 보이고, 그들이 서로 영향받지 않고 독립적이기 위해서라도 각각의 에피소드는 적절해 보인다. 이쯤에서 자무시는 극중 인물이 한명이라면, 어떻게 그 에피소드 방식을 인물의 삶의 방향에 어울리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여 <데드 맨>과 <고스트 독>을 내놓는다.

 

2005-12-07 | 정한석 mapping@cine21.com | 씨네21

‘그 시각’이라는 횡적인 분산을 ‘그 시대’라는 시간의 종적 연속성 안에 끼워넣고 ‘문명 속의 고독’을 생각하는 것이 <데드 맨>(1995)과 <고스트 독>(1999)이다. “완전히 문화가 다른 시대, 다른 나라에서 후회없이 자신이 꿈꾸는 생활을 고집스레 끌어나가는 돈키호테를 떠올렸다 돈키호테처럼 고스트 독은 자신의 행보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자신의 신념을 전혀 존중하지 않는 세계에서 살아간다”고 자무시는 말한다. 그건 <데드 맨>의 주인공 윌리엄 블레이크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시대의 돈키호테다.

<데드 맨>과 <고스트 독>은 형제처럼 닮은 영화다. 일단 이 둘은 웨스턴 무비와 갱스터 무비라는 장르를 기점으로 우회한다. 하지만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볼 때 이 두 영화의 닮은꼴은 더 잘 보인다. 영화는 한명의 주인공을 따라 흘러간다. 그들이 만나는 인물들, 사건들은 에피소드처럼 다시금 새로운 국면의 이야기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거기에서 주인공 블레이크와 고스트 독은 이질적인 존재다. 윌리엄 블레이크는 처음에는 문명인이지만 뒤에는 원주민에 동화되어간다. 야만스러운 것은 원주민이 아니라 이곳을 차지한 문명인이라는 것을 블레이크는 느낀다. 야만적 문명의 개척시대에서 시인의 영혼으로 명명되어 환생한 블레이크(그의 친구 인디언 노바디는 그렇게 믿는다)는 본의 아니게 킬러가 되어 서부를 맴돈다. 그런가 하면 고스트 독은 유령 같은 존재다. 왜냐하면 그는 현대의 규율보다 고대의 규율을 존중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가 영혼의 지침으로 삼고 있는 것은 일본의 무사도 정신을 담은 책 <사무라이의 길>이다. 어떤 계기로 그가 사무라이가 되었는지에 대한 증언은 (일부러 영화 속에서) 엇갈리지만, 어쨌든 지금 그는 문명 속의 고대인이다. 그리고 서구인의 육체를 가진 정신적 일본인이다. 흑인 래퍼 차림의 그는 일본식 무사도의 방식으로 삶을 꾸린다. “스즈키 세이준과 장 피에르 멜빌을 참고했지만, 오마주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자무시의 말은 진짜 참고 정도만 했다는 말로 들으면 된다. <데드 맨>과 <고스트 독>에서 주인공들은 문화와 역사를 지시하는 이질적 탐구자의 모습으로 변모한다.

어쩔 수 없는 건 그들이 모두 고독하다는 사실이다. 물론 친구는 있다. 그것도 말이 통하지 않거나 완전히 반대의 자리에 있을 때에만 진짜 친구가 된다. 그래서 블레이크의 친구는 오직 인디언 노바디이고, 고스트 독의 친구는 말이 통하지 않는 프랑스 이민자 아이스크림 주인청년이다. 하지만 죽음을 옆에 매달고 사는 이들에게 인생은 결국 혼자가 아닌가. 절대의 고독, 도대체 이걸 어떻게 할 것인가? 과연 이 고독의 실체는 역사와 문화를 휘도는 형이상학적 영화로만 물을 수 있는 몫인가? 자무시는 형이상학의 신화적 세계에서 일상의 미니멀리즘적 세계로 돌아간다.

<커피와 담배>(2003)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 쇼>의 청탁으로 1986년에 단편을 만든 게 계기가 됐다. 자무시는 세편까지 뜸하게 만들더니 내처 작정한 듯 연달아 나머지를 만들어 장편으로 늘렸다. 말이 장편이지, 각기 다른 장소의 카페에서 둘셋씩 모여 커피 마시고 담배 피우며 한담하다가 끝나는 10분 내외 11개의 단편을 모은 것이다. 사랑스러운 소품이었지만 좀 의심스러웠다. 이거 일상으로 돌아가도 너무 돌아간 것 아닌가 싶었다. 그런 의심이 들 때쯤 들고 나타난 것이 <브로큰 플라워>(2005)다.

이 영화의 주인공을 맡은 빌 머레이는 <커피와 담배>의 에피소드 중 ‘Delirium’에서 우탕클랜의 RZA, GZA와 한담을 나누는 주방장으로 등장해 자무시 세계의 입문식을 거친 바 있다. 하지만 자무시와 빌 머레이가 <브로큰 플라워>에 합의한 건 그보다 더 오래전이다. 정확히 말하면 그전에 빌 머레이를 염두에 두고 쓰여진 다른 가상의 영화 <하늘에 뜬 세개의 달>(Three Moons in the Sky)의 각본이 먼저 있었다. 한 남자가 각각 세명의 부인과 가정을 따로 갖고 산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그 각본으로 제작비가 거의 모였을 때쯤 자무시는 생각을 바꿔 2주 반 만에 다른 내용으로 고쳤고, 그렇게 탄생한 것이 지금의 영화 <브로큰 플라워>의 내용이다.

자무시와 머레이는 4년 전 토크쇼에 게스트로 초대되어 서로를 처음 알게 됐는데, 그때의 느낌을 빌 머레이는 재치있게 표현한다. 얼마나 죽이 잘 맞았는지 “영화에 대한 생각을 나눴는데 꼭 그동안 있는 줄도 모르고 지냈던 사촌형제를 만난 것처럼 잘 통했다”고 말할 정도다. 그건 자무시도 마찬가지였다. 자무시는 실제 배우를 상정하고 나서야 각본을 쓰는 스타일이다. “내 영화에서 배우들은 항상 출발점을 제시한다. 빈칸이나 채우는 존재들이 아니다.” 어느 영화, 어떤 인터뷰를 봐도 그렇게 말한다. <영원한 휴가>는 크리스 파커를, <천국보다 낯선>은 존 루리를, <다운 바이 로>는 톰 웨이츠를, <데드 맨>은 조니 뎁을, <고스트 독>은 포레스트 휘태커를 염두에 두고 시작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번에는 “배우로서 고정되어 있는 빌 머레이의 이면을 보여주기를 원했다”고 한다.

영미권의 평단들이 <브로큰 플라워>를 계기로 ‘미국 독립영화의 기수 짐 자무시가 첫 번째 메인스트림 영화를 만들었다’는 쪽으로 분위기를 몰아가고 있는 이유도 배우들 때문이다. 빌 머레이를 위시하여, 제프리 라이트, 샤론 스톤, 제시카 랭, 프랜시스 콘로이, 틸다 스윈튼, 줄리 델피 등의 화려한 간판급 배역진이 그 증거로 손꼽힌다. 아니 그럼, 조니 뎁, 가브리엘 번, 빌리 밥 손튼, 존 허트, 로버트 미첨, 이기 팝이 나온 <데드 맨>은 간판이 덜 화려했던가. “도대체 왜 메인스트림 운운하는지 모르겠다”는 자무시의 반응은 그래서 이해가 간다. 비교를 하자면 자무시는 커트 코베인이 음악을 생각하듯 영화를 생각하는 인물이다. 자신에 대한 대중의 몰표를 절망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두 번째 이유를 찾자면 영화가 쉽고 재미있으며 곳곳에 유머가 넘치는 로맨틱코미디스럽다는 사실 때문이다. 특히 형이상학적 내러티브를 견지한 <데드 맨>과 <고스트 독>, 이 쌍둥이 같은 영화 이후에 나온 것이고, <커피와 담배>보다는 훨씬 더 대중적인 내러티브를 가졌기 때문에 그렇게 보인다. 하지만 이 영화가 자무시식 로맨틱코미디 정도로 치부되는 건 모함이다. “<데드 맨>에서는 웨스턴 장르를 일종의 틀로 썼다. <고스트 독>에서도 영화의 다른 장르들을 비유하는 인용이었을 뿐이다. 그 점에서 <브로큰 플라워>는 로맨틱코미디도 아니고, 침울하고 비극적인 영화도 아니다. 범주 그 사이의 무언가다.”

<브로큰 플라워>는 9편 장편을 통틀어 백인 중산층이 주인공인 첫 번째 자무시 영화다. 미국사회의 가장자리에서 그 중심부에 사는 인물로 넘어온 것이다. 메인스트림이라는 말은 그런 점에서만 의미가 있다. 굳이 <브로큰 플라워>의 명함을 만들어야 한다면, 실마리는 그 이전까지 반복되던 영화들의 요소가 어떻게 흡수, 변주되었는가이다. 자무시는 여전히 인생은 난감하고, 고독은 운명이라는 믿음을 저버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스포일러를 피하고자 한다면 이 대목은 영화를 본 뒤 읽으시길)

주인공은 돈(빌 머레이)이다. 그는 그 이름의 의미를 텔레비전 속에서 흘러나오는 흑백영화 <돈 주앙의 모험>을 망연자실 보는 것으로 대신한다. 그도 한때는 돈 주앙처럼 못 말리는 바람둥이였다. 그러나 지금은 동거녀 쉐리(줄리 델피)조차 가정의 미래에 대한 계획이 없는 그를 탓하며 기어이 짐을 싸서 나가는 중이다. 그녀는 문 앞에서 분홍색(분홍색이라는 점을 기억하자) 편지 한통을 주워 돈에게 건네주고는 떠나버린다. 20년 전 헤어진 누구인지도 알 길 없는 애인이 보낸 그 편지에는 돈 몰래 낳아서 기른 19살짜리 아들이 지금 그를 찾아 여행을 떠난 것 같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옆집에 사는 절친한 흑인 친구 윈스턴(제프리 라이트)은 편지를 보낸 사람을 찾아보라고 권한다. 강권에 못 이겨 돈은 그녀들을 찾아 나선다. 로리타라는 딸과 홀로 사는 로라(샤론 스톤), 잡초 같은 히피 처녀에서 부동산 중개업자의 화초 같은 아내가 된 도라(프랜시스 콘로이), 잘 나가는 변호사에서 동물의사 소통사로 변해 있는 카르멘(제시카 랭), 험상궂은 남정네들과 같이 사는 페니(틸다 스윈튼), 그리고 죽어 땅에 묻힌 미셸 페페의 무덤까지 돌아다닌 뒤 돈은 성과없이 집에 온다. 그런데 어느 날 정말 아들 같은 녀석이 그의 동네를 초조한 눈빛으로 어슬렁거린다. 돈은 그 소년에게 말을 건다. 분명 그 분홍색 편지에는 “그 애가 아버지를 찾아 떠난 게 확실하단 느낌이 들어”라고 적혀 있었다.

먼저 영화의 분위기만을 놓고 설명하자면, <브로큰 플라워>는 완만하고 편안하지만, 궁금증이 동력이 되어 굴러가는 미스터리다. 이 미스터리극을 자무시는 두개의 미니멀리즘 동선으로 그린다. 그 하나는 얼굴 자체가 미니멀리즘인 빌 머레이의 무표정이고, 그 빌 머레이의 무표정을 영화의 무표정한 미니멀리즘 형식이 감싸안고 있다. 여기에 자무시의 키워드들이 변형된 형태로 버팀목이 되고 있다. 돈은 말 그대로 여행자다. 그리고 그 시각, 그 시대에 대한 자무시의 관심은 현재라는 시제로 바뀌어 이 영화의 화두로 자리잡는다. (다른 영화에서도 종종 그렇지만) 이 영화에서 돈은 한번 만난 사람을 두 번째 만나는 일이 없다. 이미 이 여행길 자체가 다시 만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고, 그보다 더 큰 이유는 그 여행길에서 만난 옛 애인들은 말 그대로 이미 지나간 과거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두 과거의 현현이다. 그래서 돈은 또다시 고독한 현재로 돌아온다. 아들같이 생긴 녀석이 눈앞에 나타나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다음에 아들이라고 믿고 싶지 않은 아들 같은 녀석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자무시는 마지막에 다시 질문을 던진다. 정말 미소년이 돈의 아들일까요? 그렇다면, 차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돈과 눈이 맞은 못생기고 뚱뚱하고 멍청하게 생긴 저 아이는 돈의 아들이 아니고 누구인가요, 라고. 또다시 판단은 유보되고, 그 순간 카메라는 현기증을 일으키듯 하늘을 한 바퀴 돈다.

<브로큰 플라워>가 독특한 건 모든 정황이 다 펼쳐지는데 그중에서 진실을 밝히는 정황이란 아무것도 없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자무시는 <브로큰 플라워>를 ‘기표의 드라마’라는 구조로 만든다. 그 기표란 분홍색이고, 타자기이고, 복장이고, 개중에는 윈스턴이고, 농구대이다. 로라의 집을 방문했을 때 그녀와 그녀의 딸은 번갈아가며 분홍색 나이트 가운을 입고 있다. 도라를 찾았을 때 그녀는 자신을 소개하는 분홍색 명함을 건넨다. 동물의사 소통사 카르멘의 집 앞에는 농구대(열아홉살의 미국 소년이 즐기는 스포츠가 무엇이겠는가?)가 있고, 그녀의 인생을 결정적으로 바꾼 것은 사랑하는 개 윈스턴(이 여행을 강권한 돈의 흑인 친구 이름)이었고, 그녀는 분홍색 바지를 입고 있다. 네 번째 여자 페니의 집에서는 그보다 더 많은 정황들이 있다. 농구대가 있고, 분홍색 커버가 있는 오토바이(열아홉살의 소년이 가장 갖고 싶은 게 무엇이겠는가?)가 있고, 심지어 분홍색 타자기가 있다. 하지만 그뿐이다. 페니와 돈 사이의 아들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다. 돈은 분홍색 꽃을 한 다발 사들고 죽은 미셸 페페의 무덤을 방문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도 기표의 드라마는 끝날 줄을 모른다. 윈스턴은 아마 첫 장면에 등장했던 쉐리가 편지를 조작한 걸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그러고보니 그녀는 떠날 때 분홍색 옷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돈에게 영화 말미에 분홍색 편지를 보낸다. 점점 더 알 길이 없다. 이젠 더 심해진다. 아들처럼 생긴 미소년의 가방에는 분홍색 꼬리표가 달려 있다. 엄마가 부적처럼 붙여준 것이라고 한다. 그럼 이 녀석이 내 아들 아닌가? 게다가 돈과 그 소년은 생각도 비슷하고, 복장까지 똑같다. 하지만 그 순간 돈과 그 아들로 보이는 소년과 똑같은 복장을 입은 또 다른 소년이 눈앞을 지나간다.

<브로큰 플라워>의 기표들은 기의를 향해 있는 것이 아니다. 뭔가 있음을 밝히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아닌 것만이 있음을 증명하기 위한 맥거핀들이다. 자무시는 기표를 모아 뭔가 해보려 하지 않고, 그냥 기표 자체의 너저분한 널림으로 놓아둬버림으로써 만 가지 가능성을 갖게 한다. 그게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다. 돈의 여행은 끝없이 이 몇 가지 기표들을 따라 옮겨다니는 의식의 여행이다. 애타게 기표를 쫓아다닐 뿐이다.

짐 자무시의 로드무비가 해답이 없는 길이라는 것은 기표의 드라마로만 구축되어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영원한 휴가>의 파리가 그것이고, <천국보다 낯선>의 플로리다가 그것이고, <다운 바이 로>의 두 갈래 길이 그것이고, <미스테리 트레인>의 엘비스 프레슬리가 그것이고, <지상의 밤>의 시계가 그것이고, <데드 맨>의 담배가 그것이고, <고스트 독>의 <사무라이의 길>이라는 책이 그것이고, <커피와 담배>의 커피와 담배가 그것이다. “플롯을 먼저 가져야 한다는 생각은 나를 두렵게 합니다. 그보다는 과정 안에 뭔가 있다는 것이 나를 더 흥분시키죠. 내가 원하는 것은 이야기를 찾기보다 디테일을 첨가하고 모아서 퍼즐이나 그 이야기를 구성하려고 노력하는 겁니다.” 기표의 드라마는 이런 창작의 습성과도 관계가 있는 셈이다.

짐 자무시의 영화에 사실은 있지만 진실은 없다. 때문에 조급해하지 말아야 한다. 이 세계는 아예 정해져 있지 않은 것들로만 채워져 있다. 그래서 그의 영화를 감상하는 가장 좋은 방법을 소개하자면 그건 명상이다. 자무시는 ‘명상의 영화’를 만든다. 명상의 영화를 만들지, 성찰이나 통찰의 영화를 만들지 않는다. 가령 성찰의 영화를 만드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를 보고 나서는 무언가에 대해 열심히 반성해야 하는 책임

아닌 책임이 주어진다. 그러나 자무시의 영화는 잘 모르겠는 그 사실을 인정하고 깊이 그냥 거기에 생각을 적시면 된다. 옳고 그르고, 공감하고 아니고는 그 다음이다. 보고나서 아주아주 맑은 명상에 깊이 잠기면 되는 것이다. 그게 <브로큰 플라워>의 여행길이 인도하는 무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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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남자] '성공하는 남자의 옷차림'


매력男으로의 변신을 꿈꾼다

비즈니스맨들이 옷을 잘못! 입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다음 다섯 가지가 가장 흔하다고 합니다. 1. 아내나 여자 친구가 골라주는 옷을 입는다. 2.백화점 직원이 골라주는 옷을 입는다. 3. 디자이너가 골라주는 옷을 입는다. 4. 이미지 컨설턴트가 골라 주는 옷을 입는다. 5. 출신 배경에 따라 길들여진 옷을 입는다.

사실 근거 없는 사회통념이 가장 많이 스며있는 인간사 중 하나가 옷입기일 겁니다. 검소한 옷을 깨끗이 손질해 입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콩쥐 패션’ 같은 분도 있겠지요. 튀는 게 남는 거다, 라는 21세기형 ‘의상(衣裳)대사’ 철학을 가진 분도 있겠고요. 보기 좋고 입기 편하면 되지 무슨 설레발이냐고 하시는 분도 있겠죠. 그러나 ‘옷은 날개’고, 인류 문명사는 복식 발달사지요. ‘입성’은 우리 운명을 좌우할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존 T. 몰로이 씨가 쓴 ‘성공하는 남자의 옷차림’(Dress For Success)라는 책을 권해 드립니다.

이 책은 우선 사회통념에 따라 옷을 고르지 말라고 충고합니다. 대신 저자가 지난 26년 동안 종업원이 6만 명 이상인 분야의 기업에서 일하는 고위 간부들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라 옷을 입어 달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결론은 간단합니다. “속물적이고, 보수적이며, 고루하고, 체제 순응적으로, 그리고 기업체 중역들의 집단주의에 따라 옷을 입으라”는 것입니다. 쇼킹하세요? 저도 쇼킹합니다. 그래서 더 재미있습니다.

저자는 미국 최초의 과학적인 이미지 컨설턴트이자 옷 연구가로 활동해왔으며 제너럴모터스를 비롯한 초일류 기업의 복장 규정 자문을 맡아 왔다고 합니다. 그가 이런 주장을 펴는 이유는 “한 개인의 성공을 결정하는 요인이 사회 계급을 의식하고 적응하는 정도와 긴밀한 연관이 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저자는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한 회계 법인 회사를 사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회사는 연례회 강연에 한 ‘전문가’를 모셨습니다. 그 ‘전문가’는 그 회사의 고객 중 20퍼센트 이상이 영화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수트와 셔츠, 타이를 벗어 던지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답니다. 영화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캐주얼한 복장을 선호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거죠. 그 회사는 당장 전문가의 조언을 실천에 옮겼는데 고객들의 엄청난 불만에 부딪치게 됐습니다. 가장 정신을 번쩍 들게 했던 것은 어느 영화배우의 일침이었다고 하네요. 그는 세금 문제를 조언해줄 ‘진짜 회계사’를 원한다며 ‘배우’는 필요없다고 말했답니다.

저자는 여성들에게 충고합니다. 일부러 악처 노릇을 하는 여성은 없겠지만, “여성들은 오랜 세월 동안 패션 업계에 의해 새로운 것, 최신 유행, 파격적인 것, 어딘가 튀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길들여져 왔다는 겁니다. “여성들은 자신의 눈에 남편이 멋져 보이기를 원하고, 여성의 관점에 따른 세련된 옷차림을 추구하지만, 그러나 불행하게도 여성들의 취향은 기업체 중역들의 취향과 정면으로 대치된다”는 것입니다.

이건 서론에 불과합니다. 저자는 하얀색 드레스 셔츠와, 베이지색 레인코트와, 무지(無地·전체가 한 빛깔로 무늬가 없는) 타이가 왜 좋은지 같은 수십 가지 충고를 구체적인 통계와 사례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넥타이나 안경 그리고, 키 큰 사람, 키 작은 사람이 입어야 하는 옷 스타일에 대해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성공 어드바이스가 가득합니다. 마지막 충고! 새 옷을 살 때는 이왕에 자신이 갖고 있는 옷 중에 가장 좋은 옷을 입고 가라고 하네요.이 책 사서 읽으시면, 남는 장사일 겁니다.

김광일기자 kik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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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19 14: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에펠 - 상상의 힘으로 근대 유럽을 건설한 19세기의 공학 천재
데이비드 하비 지음, 이현주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8월
평점 :
품절


언제부턴가 나는 집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복부인이 되겠다는 말은 아니고, 인간이 살기 위한 기본 요건, 즉 의.식.주 중에 이 주(住)에 해당하는 건축이 어떻게 발전해 가는가를 알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자연 내가 '건축'이란 것에 무지하다는 것을 알게됐고, 건축과 인간과의 관계는 또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알고 싶어졌다.

건축과 인간과의 관계를 알려면 즉 인간이 건축물을 어떻게 생각하고 발전시켜 왔는가를 알필요가 있을 것 같고 그에 관련된 평전을 읽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인 것 같아 뽑아 든 것이 이 책이다.

무식함을 자랑하는 것 밖엔 되지 않되는 거겠지만, 난 이 책을 읽기 전까지 프랑스의 상징인 에펠탑이 이 구스타브 에펠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잊고 있었거나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굳이 뉴욕 맨하탄에 있다는 자유의 여신상을 보러 그 곳에 가지 않아도 그것이 어떻게 생겼고 어디에 있는지는 뻔히 알면서도 이것을 만든 사람이 동일 인물이라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새삼스럽게 알게 됐다면, 나는 도대체 무엇을 생각하며 살아 온 걸까 쓴웃음이 절로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분명 내가 별천지에 살았던 것도 아닌데 말이다.

좀 변명 같을지 모르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또 새삼스럽게 느낀 건 내가  이렇게 건축물에 무지를 드러낼 수 밖에 없는 건 건축물에 대한 서양의 사고방식과 동양의 사고 방식이 달라서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생각해 보라. 뭐든 '동양 최대' 내지는 '세계 최대'라는 수식어를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왜 탑에 대해서는 그리도 생각이 없는걸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탑이 다보탑 정도인데 그것은 저 프랑스의 에펠탑에 비하면 그 높이나 규모면에선 새발의 피도 안되 보인다. 더구나 불교의 융성기와 쇠퇴기를 반복해 오면서 그것은 역사의 유물이 된지 오래다.

차라리 정서상 가까운 건 돌탑이다. 누군가 오며 가며 소원을 비는 마음으로 하나씩 쌓아 올렸다던 이름없는 돌탑이 우리에겐 더 친근하게 다가온다.

세상에 누가 한 나라를 상징하고 그 이름에 개인의 이름을 붙이고, 그 탑으로 돈을 벌어 들일 생각을 했겠는가? 탑은 우리에겐 그저 하나의 소원이 이루어지기 바라는 정령(情靈)이 깃든 상징물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탑의 진정한 의미는 신화의 상징이고 인간 욕망의 상징은 아닐까? 구약성경을 보면,

여호와께서 인생들의 쌓는 성과 대를 보시려고 강림하셨더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 무리의 한 족속이오, 언어도 하나임으로 이 같이 시작하였으니 이후로는 그 경영하는 일을 금지할 수 없으리로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하여금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창세기 11:5~7)

이것은 인간의 오만함을 드러낸 바벨탑 사건을 묘사한 것인데 그만큼 탑엔 인간의 욕망이 함축되어 있었던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구스타브 에펠도 자신의 이름을 딴 탑을 세우기까지도 만만치 않은 난항이 있었다. 당대 지식층들은 노골적으로 탑 건설을 반대하기도 했고, 그에 못지 않게 찬성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 탑에 대한 애증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오죽했으면 잘 알려진 사실로, 소설가 서머셋 모옴은 에텔탑이 보기가 싫어 그 안에서 식사를 했다고 전해지고 있지 않는가. 그만큼 에펠탑은 프랑스 어딜가도 보일만큼 높이 세워져 있음이 분명한가 보다. 그러니 서머셋 모옴 그 성격에 식사인들 마음 편히 했겠는가?

신은 가장 높은 곳에서 인간을 내려다 보고 있다고 하는데 에펠의 눈도 탑 맨 꼭대기 위에 있었을 것이니 가히 신화적 존재가 아니었을까?

탑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복잡 미묘한가 보다. 사람은 탑에서 긍지와 자부심도 느끼지만 죽음의 욕망도 함께 느껴 에펠탑에서 공중으로 몸을 던짐으로 죽기를 서슴치 않는 자살자도 나왔다고 하니 말이다. 물론 지금은 자살방지를 위해 뭔가를 설치해 둔 모양이지만.

책을 읽다가 저자가 바르트의 <신화론>을 잠깐 인용한 것이 눈에 띄어 나 역시도 그 일부를 인용해 본다.

"...에펠은 예술가들의 항의서에 대한 답변에서, 자신의 사업을 보호하기 위해 미래의 탑의 모든 쓰임새를 꼼꼼하게 열거하였다. 그것들은 모두 우리가 공학자들에게 기대할 수 있는 과학적인 쓰임새들이다. 공기 역학 측정, 물체의 저항에 관한 연구, 전기 통신의 문제들, 기상학적 관측 등등. 이것들은 의심할 바 없이 명백하지만, 탑의 압도적인 신화 옆에선 우습게 보인다. 이미 탑은 그 신화의 인간적인 의미를 세상 도처에 알려준 상태인 것이다. 이는 실용적인 구실이 아무리 과학의 신화에 의해 고상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사람들을 엄밀히 인간적이게 해주는 그 위대한 상상의 기능에 비하면 보잘 것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건축물 하나를 세울 때 무조건 크고, 편하고, 아름답고를 뛰어넘어 이런 신화적 발상도 있어야 폼나는 것이 아닐까?

난 솔직히 이 책을 읽으면서 좀 지루했다. 대체로 평이하게 별 어려움 없이 읽히긴 했지만 평전을 대할 때는 그 사람의 남다른 삶을 알고 싶어서 읽는다고 생각했는데 그 배경을 이해하지 않으면 읽는 게 용이하지마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책을 고르는데 좀 신중해져야 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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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헬퍼 2006-01-19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펠탑도 도시 미관을 헤친다고 한 때 철거 논쟁이 있었다지요. 혹시 이 책이 지루하게 읽었다는 그 책인가요. 그래도 리뷰를 보니 책에 대한 관심이 생기는데요.

stella.K 2006-01-19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취향 나름이겠죠. 저 개인적으론 그랬다는 것입니다. 관심있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라주미힌 2006-01-19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어... 욕망의 탑, 신화적 상상의 탑이라...

2006-01-19 14: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만두 2006-01-19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구더라요? 에펠탑이 보기 싫어 안봤다던 문인이 있었죠?

stella.K 2006-01-19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주미힌님/제가 님을 아주 많이 좋아하게될 것 같습니다. 흐흐
물만두님/잘 인 읽으셨군요. 다시 읽으세요. 흥~!

검둥개 2006-01-20 0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읽고 싶어지는데요. ^^
어떻게 지루했다시면서 일케 읽고 싶게 리뷰를 쓰셨나요? :)

stella.K 2006-01-20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이런...지루하시면 어쩔려고. 그래도 관심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생리대 웰빙바람]‘마법 걸린 그 날’그녀가 웃는다

한방·쑥·숯 등 첨가한 제품 인기
피부질환 심하면 천 생리대 좋아

여성들의 생리대가 변신을 꾀하고 있다. 종이 생리대보다 흡수력과 방수력이 떨어지지만 친환경적이고 몸에도 좋은 천연 소재 생리대를 찾는 여성들 때문이다. 이들은 다소 불편하지만 천연 생리대를 쓰면 피부염이나 따가운 느낌 등이 없어지고 생리통도 좋아진다고 주장한다.

흡수력만 좋은 종이 생리대

한국여성민우회에서 여성 416명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8.3%(367명)가 종이 생리대를 쓰면서 “가려움이나 따가움 등의 피부 질환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민우회측은 생리대 제조에 사용된 화학물질들을 원인으로 꼽고 있다.

생리대는 표지, 흡수제, 방수층 등의 여러 겹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주재료는 폴리에틸렌 계열의 화학물질들인 경우가 많다. 이것들이 생리기간 중 피부염증, 가려움증, 불쾌한 냄새 등의 원인이 된다. 뿐만 아니라 염소 표백과정을 거치는 과정에서 발암성 다이옥신이 포함될 가능성도 여성단체들은 제기하고 있다.

복고풍 천 생리대 사용

건강과 환경을 생각하는 ‘로하스(LOHAS·Lifestyle Of Health And Sustainability)족’ 여성들이 늘어나면서 천으로 직접 생리대를 만들어 사용하는 여성도 덩달아 많아지고 있다. 그들은 이를 ‘대안 생리대’라 부른다. 천 생리대는 일회용이 아닌, 속옷의 개념에 더 가깝다. 단, 외출 시 사용한 생리대를 휴대하고 다녀야 한다는 점과 쓰고 난 생리대는 세탁 및 소독까지 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친환경 운동 단체인 ‘피자매연대(www.bloodsisters.or.kr)’에서는 흡수력이 좋은 융이나 타올지 같은 천과 똑딱이 단추 등을 이용해 집에서 직접 생리대를 만드는 법을 가르쳐 준다.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완제품’을 구입할 수도 있다. ‘이채몰’ ‘달이슬’ 등이 있으며, 수입품으로는 ‘내추럴패드’‘오가닉라이프’ 등이 있다.

사용된 소재와 제품 구성에 따라 가격대는 조금씩 차이가 있다. 몇 천원대로 저렴한 것도 있지만 유기농 면으로 제작된 제품은 1만~2만원 정도로 비싼 편이다. 삶아서 사용하면 6개월~1년까지도 쓸 수 있어 장기적으로는 일회용보다 더 경제적이다.


기능성 웰빙 생리대도 출시

㈜퓨어린은 인체에 좋은 한방성분을 첨가한 생리대 ‘예지미인’을 생산하고 있다. 한방성분이 몸에 이로울 뿐 아니라 나쁜 냄새도 없애 준다고 가수 옥주현은 광고한다. 대한펄프도 쑥, 숯, 황토 등의 한방 성분을 가미한 ‘매직스 한비’를 출시하여 뒤를 쫓고 있다.

고가의 수입품들도 있다. 옥수수 전분을 원료로 만든 재생 가능한 플라스틱과 저자극성 식물성 흡수제를 사용한 ‘러브앤’은 이탈리아 수입품으로 인터넷을 통해 판매되고 있다. 일동제약은 영국의 ‘나트라케어’를 직수입해 판매하고 있다. 영국 환경 운동가에 의해 개발된 나트라케어는 흡수층은 물론 방수막까지도 생분해되는 바이오 플라스틱을 사용한 것으로 미국과 유럽에서 인기다.

불편해도 건강을 생각한다

웰빙 생리대는 가격이 비싼 편이고, 똑딱이 단추로 속옷에 부착하는 천 생리대는 고정력이 약하다는 것이 단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생리통에 시달려왔거나, 피부가 예민하고 냄새에 민감한 여성들,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은 이들에게는 인기가 높다.

발진과 가려움증은 물론 오랫동안 생리통으로 시달려 왔다는 박지영(29)씨는 “천 생리대를 쓴 뒤론 따가운 느낌이 없어졌으며 생리통도 덜해졌다”며 “양이 많은 날에는 종이 생리대를 천 생리대 위에 한번 더 덧대어 주면 문제없다”고 말했다.

이대 목동병원 산부인과 주웅 교수는 “생리대로 인한 접촉성 피부염으로 병원을 찾는 환자들도 드물지 않다”며 “피부가 민감한 사람이나,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 접촉성 피부염이 있는 사람 등은 건강 생리대로 바꾸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주 교수는 “그러나 생리 기간에는 감염 위험이 크기 때문에 천 생리대는 세탁이나 소독 등 관리에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헬스조선기자 jooy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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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스 2006-01-18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정말로 천 생리대가 생리통을 완화시켜준다고요? 흠...
아무려나 전 그냥 탐폰을 쓰렵니다. ㅜ.ㅡ

stella.K 2006-01-18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그렇군요. 전 그건 좀 어렵던데...그나저나 한방재료 썼다고 비싸게 받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아직 안 사 봐서리...근처 편의점에도 없고.ㅜ.ㅜ

이매지 2006-01-18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지미인 샘플 받아놓은거 있는데 한번써봐야겠군요.
동네 슈퍼에서 봤는데 가격은 일반 생리대보다 좀 비쌌어요.

stella.K 2006-01-18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럴 줄 알았어요. 일반생리대도 싼 건 아닌데...>.<;;

stella.K 2006-01-18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지 않아도 이 기사 보면서 따우님 생각했어요.^^

oooiiilll 2006-01-18 2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자매연대의 친구에게서 면생리대 만드는 법을 배워 2년 전 부터 만들고는 있습니다만, 밤을 새고 거처를 자주 옮기는 직업인지라 늘 사용하지는 못하네요. 그렇지만 한 번 써보면 일회용 생리대는 다시 사용하고 싶지 않을 만큼 착용감이나 여러가지로 좋은 점이 많습니다. 저도 생리통이 무척 심한 편인데 몇 달 사용하는 동안 생리통도 현저히 줄었구요. 만드는 게 어렵지 않으니 한 번 써보세요.^^

stella.K 2006-01-18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디트님, 반갑습니다. 저의 서재에 처음 방문해 주신 것 같은데 주신 정보 감사해요. 그렇지 않아도 저도 재작년쯤 부터 종이 생리대 부작용이 있는 것 같더라구요. 남들에 비하면 심한 정도는 아닌데 어떻게 할까 고민 중입니다. 디트님 말씀들으니 혹합니다요.^^
 

 

[경력사원 성공 가이드] 직장 옮긴 그대 '친정'은 빨리 잊어라


기업들의 경력직 선호가 두드러지면서 직장을 옮기는 사례가 흔한 경우가 됐다. 그러나 새로운 환경(새직장) 적응에 실패하고 이직을 반복하는 경력사원 역시 늘고 있다.

LG경제연구원 강진구 책임연구원은 경력사원이 새로운 직장에 적응하고 조직에 기여할 수 있는 성공 가이드를 다음과 같이 지시했다.

◆과거를 빨리 잊어라=잘 포장된 전 직장의 기억으로 현 직장의 단점을 들추어 내는 언행은 금물이다. 문화적 충돌에서 빚어지는 가치관과 행동방식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전 직장의 문화를 버리는 폐기학습(unlearning)이 필요하다.

◆자존심을 버리고 사람을 얻어라=어떤 조직이든 적응의 핵심 요소는 인간관계다. 경력사원은 기존 사원에게 경쟁이 아닌 서로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관계로 만들 수 있음을 확신시켜 주어야 한다. 경력사원이 직급에 상관없이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가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경험을 창조적으로 활용하라=경력사원에게 중요하게 요구되는 덕목은 문제 해결 능력이다. 새로운 직무에 필요한 지식은 어렵지 않게 습득할 수 있지만 문제 해결 능력은 경험의 축적만으로는 얻을 수 없다. 따라서 경력사원의 경험은 새로운 직장에서 창조적으로 활용될 때 더 큰 의미를 지닌다.

◆진득한 자세를 가져라=경력사원은 작은 실패나 성과에 흔들리지 않는 진득한 자세를 가져야 조직에 적응하고 성공할 수 있다. 조급한 마음에 당장의 성과에만 신경을 쓰다 보면 성과 창출도 조직 적응도 모두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장기적인 전력과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박순욱기자 swpar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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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6-01-17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틀린 말은 아닌데, 진득한 자세를 가지긴 힘들어요. 경력으로 옮겼으니, 널 증명해봐라, 끊임없이 압박을 가하잖아요. ㅠ.ㅠ

바람돌이 2006-01-17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는 4년에 한 번씩 학교를 옮기니까 옮겨온 사람들 보면 꼭 그런사람들 있어요. 전에 학교에서는 이거 이렇게 했는데 저렇게 했는데... 하면서 하라는 일마다 트집잡는 사람요. 왕짜증이예요. ^^

stella.K 2006-01-17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휴~역시 직장 생활은 어렵군요.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