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은 이땅에서 '인생 역전'을 꿈꿨다

[주간한국 2006-05-09 16:27]    
식민지 조선의 일본인들 / 다카사키 소지 지음 / 이규수 옮김 / 역사비평사 발행 / 12,000원

국어사전을 펼쳐 ‘식민’(植民)의 뜻을 살펴 보자.

본국과 종속 관계에 있는 땅에 자국민을 영주의 목적으로 이주시켜 경제적 발전을 꾀하는 일, 또는 그 이주민을 의미한다.
즉 식민지는 한 국가의 주권을 빼앗아 확보한 영토에 제 나라 사람들을 대거 뿌리내리게 하는 일로 완성되는 셈이다.

1910년 일제에 강점된 이래 조선에도 최대 75만 명(당시 조선인 인구는 2,000만 명에 못 미쳤다)의 일본인이 건너와 식민통치의 실핏줄 노릇을 했다.

한국 근현대사 전문가 다카사키 소지 교수가 쓴 이 책은 개항 때 조선에 첫 발을 들인 후 2차대전 패배로 도망치듯 귀환할 때까지 일본인 식민들이 보인 72년간의 행태를 다루고 있다. 국내에서는 거의 연구되지 않은 분야라 더욱 흥미롭다.

일본인이지만 조선 식민지배를 바라보는 필자의 시선은 시종일관 냉정하고 비판적이다.

당시 작성된 통계·기록 등의 사료와 조선 내 일본인사(史)를 다룬 논문을 꼼꼼히 종합해 “일본 식민지 지배의 특색을 실증적으로” 밝히고자 한다면서 그는 집필의 최종 목적을 “조부모와 부모의 잘못을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한 담보를 획득”하는 데 둔다.

일본이 저지른 오욕의 역사에 대해 무거운 마음을 감추지 않는 글쓴이의 태도는 한국인 독자에게야 당연히 흡족한 것일 테지만 주제에 접근하는 방식이 다소간 도식적이라 아쉽다. 아무렴 같이 섞여 사는데 일본인은 늘 잔혹하기만 하고 조선인은 항상 당하기만 했으랴.

식민지로의 이민은 지배체제를 공고히 하려는 국가적 정책이었지만 개인에게는 본국에서 못다 이룬 ‘인생 역전’의 꿈을 실현시키려는 발버둥이기도 했다. 그래서 패배감의 콤플렉스를 떨쳐버리려고 바다 건너온 일본인들은 조선 땅에서 성공적 삶을 누리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1876년 강제 개항된 부산으로 잽싸게 몰려든 일본인 수백 명의 직업을 훑어보면 고리대금과 도매업자가 태반이다. 고리대업자는 이자 징수보다 담보로 잡은 토지를 점유하는 데 혈안이 됐고, 도매업자는 조선인과 맺은 약속보다 싸게 물건을 매입하는 식의 불법 거래에 거리낌이 없었다.

청·일전쟁이나 러·일전쟁의 혼란기에는 피난민의 빈 집을 헐값에 사들여 부동산 부자로 등극한 이들도 상당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물론 이주민들은 침략 전쟁을 벌이는 자국 군대에게 숙박을 비롯한 편의를 제공하는 등 본국의 기대에 여러모로 부응했다. 관(官)의 은근한 지원 하에 조선에 건너온 낭인 무리는 껄끄러운 민씨 정권을 전복하고자 동분서주하며 ‘정치 깡패’ 노릇을 톡톡히 했다.

1905년 을사늑약을 계기로 일본인 이민자의 수는 급격히 늘어난다. 조선과 지리적으로 인접한 후쿠오카·나가사키 등지에서 특히 많은 인구가 유입된다.

식민통치가 본격화된 후로는 도쿄의 엘리트들이 관리로 취직해 조선을 찾는다. 거주 지역도 부산·인천·원산 등 개항장에 머물지 않고 한성·평양을 비롯한 여러 도시로 급속히 늘어난다.

특기할 점은 조선에 온 일본인 중 직접 농사를 짓는 자가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다. 설령 그럴 생각으로 이주한 사람이더라도 식민지 당국이 내준 땅에서 조선인 소작농을 거느리는 지주로 금세 신분이 상승한다. 그리하여 일본인 식민들은 조선인의 위에 군림하거나 동족의 수하에서 일하면서 그들만의 특권적·배타적 영역을 구축한다.

이렇다 보니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킨 일제가 조선의 병참기지 역할을 강화하고자 독려한 ‘내선일체’는 조선인에게만 해당될 뿐, 일본인에게는 등한시되는 아이러니를 빚는다.

일례로 한 내선공학 여학교를 다녔던 일본인 가운데 조선인 친구를 사귄 이는 아무도 없었다. 낯선 조선 땅에서 성(性)을 팔았던 일본인 작부·창기의 숫자가 많았다는 사실은 여성의 권리에 무심했던 일본 식민주의의 뿌리깊은 야만성을 드러낸다.

일본 제국주의 역사의 종언은 결국 이런 미시적 균열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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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a95 2006-05-14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의 친일파들이 읽어봐야할 책이군요. 반성이 전혀 없는 그들...
 

 

思想은 식사를 위한 포크일 뿐…

메타피지컬 클럽
루이스 메넌드 지음|정주연 옮김|민음사|648쪽|2만2000원

▲ 왼쪽부터 윌리엄 제임스, 올리버 홈스, 찰스 퍼스, 존 듀이
 
 
 
 
 
 
 
역사란 끊임없는 시간의 연속일 뿐이지만, 그 흐름의 한 허리를 날카롭게 베어내면 우리가 몰랐던 역사의 무늬가 새롭게 떠오른다. 1872년 1월. 미국에서 남북전쟁이 끝나고 7년이 흐른 이때를 단면으로 잘라낸 역사가는 130년간 아무도 없었다. 그다지 특별한 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시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는 30대 초반 젊은 지식인들의 모임 하나가 결성되었는데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지식인들의 토론 모임은 이것 말고도 숱하게 많았고, 훗날 그 멤버들조차도 이 모임을 특별하게 기억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모임은 고작 아홉 달간 지속되었을 뿐이었다.

잊힐 뻔한 이 모임을 처음 언급한 사람은 멤버 중 한 사람인 찰스 샌더스 퍼스(1839~1914)였다. 그는 35년 뒤 자신의 미(未)출간 원고에서 “반(半)은 비꼬는 의미로, 또 반은 반항적인 의미로 모임에 이름을 붙였다”고 했다. 이름하여 ‘메타피지컬(Metaphysical·형이상학) 클럽’. ‘기호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퍼스는 “나의 철학은 이 클럽에서 이룬 성과였다”고 덧붙였다. ‘클럽’은 다시 100년 뒤 이 책의 저자(뉴욕시립대 교수)에 의해 “미국의 정신을 만든 지식인들의 모임”이라는 엄청난 의미를 갖게 되었다.

지나친 찬사는 아닐까? 대체 어떤 모임이었길래? 퍼스 외에 ‘클럽’의 핵심 멤버는 남북전쟁의 영웅이자 진보적인 법사상가로 훗날 연방대법관을 지낸 올리버 웬들 홈스(1841~1935)와 현대 미국심리학의 아버지인 윌리엄 제임스(1842~1910)였다. 이들은 이 클럽에서 “갖가지 생각과 표현으로 서로를 자극하는” 논쟁을 통해 ‘프래그머티즘(Pragmatism)’이란 철학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퍼스의 제자이자 제임스의 나이 어린 친구이며 홈스의 팬이었던 존 듀이(1859~1952)는 이들의 영향을 받아 이 실용의 철학을 완성했다.

미국이 세계에 내놓은 유일한 철학이라 할 프래그머티즘은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사상’이기보다는 사상을 대하는 하나의 ‘태도’이다. 관념적인 진리 추구에 몰두한 유럽 철학에 반기를 들고 궁극적인 원리가 갖는 권위에 도전한다. 사상이란 불변의 원칙이나 신념체계가 아니라 포크나 나이프처럼 사람들이 사용하는 ‘도구’일 뿐이다. 이 철학의 핵심은 “사상이 이데올로기가 되어선 안 된다”는 믿음이다.

프래그머티즘은 사상과 신념을 신성한 제단(祭壇)에서 인간의 세계로 끌어내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래서 유럽의 철학자들은 이를 철학의 체계를 갖추지 못한 것으로 폄하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류 역사에서 이념과 사상을 이유로 인간성을 유린한 경우가 얼마나 많았던가. 어쩌면 ‘유일한 진리’라는 미망(迷妄)을 부정하고,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해 관용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철학의 태도일지 모른다.

“의견 차이를 해소하기 위해 상대를 죽여도 좋다”는 끔찍한 남북전쟁을 겪은 ‘클럽’ 멤버들은 원칙과 신념이 쉽게 폭력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프래그머티즘을 고안했고, 이들의 사상은 미국의 저술가들과 사상가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해와 관용, 언론의 자유와 문화적 다원주의에 기초한 오늘의 미국을 만든 힘은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책의 구성은 독특하다. 홈스·제임스·퍼스의 전기를 병렬적으로 풀다가 ‘메타피지컬 클럽’에서 셋을 만나게 한 뒤 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듀이의 이야기로 옮아간다. 남북전쟁부터 다원주의와 자유의 문제까지 역사와 철학을 교묘하게 얽어 미국 사상의 거인(巨人) 4명의 종합전기이자 100년을 관통하는 오롯한 미국지성사가 되도록 했다. 조일 곳에서 조이고 풀 곳에서 푸는 저자의 역량이 감탄을 자아낸다. 2002년 퓰리처상(역사 부문) 수상작이다.

이한수기자 hs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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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 이야기, 절대 못 참아

눈을 뜨시오, 당신은 이미 죽었습니다
올가 토카르축 등 지음|최성은 등 옮김|도서출판 강|276쪽|1만원

이 소설집은 문학의 새로움 찾기를 위한 진지한 모색의 결과물이다. 7일부터 13일까지 서울과 경북 영주에서 열린 국제문학축전 ‘2006년 서울, 젊은 작가들’에 참가한 16개국 작가 가운데 올가 토카르축, 알레한드라 코스타마그나 등 한국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9명의 단편들을 모았다.

소설집 제목인 ‘눈을 뜨시오…’는 폴란드 소설가 올가 토카르축의 작품. 그녀는 구태의연함에 빠진 문학을 조롱하고 새로운 발상을 추구하는 자신의 소설쓰기를 추리소설 기법으로 절묘하게 설파한다. 주인공 C는 추리소설 애독자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살인, 수사, 가해자의 정체 폭로로 이어지는 그렇고 그런 뻔한 이야기에 싫증이 나기 시작했다. …범죄와 형벌에 관한 모든 규칙을 처음부터 알고 있는 유일한 인물은 오로지 작가뿐이다. …바로 그 점이 C에게는 진부하게 느껴졌다’.(9~10쪽)

C는 핏자국을 연상케 하는 기묘한 빛깔의 추리소설을 골라 읽는다. 소설 속 무대는 프랑스 북부 플랑드르의 한 고성. 추리소설 작가들이 모였다. 작가 토카르축이 한국의 국제 문학축천에 참가했듯, 그들은 세계 추리소설의 미래를 진지하게 논의하기 위해 모였다. 작가들은 살인자 알아맞히기 게임을 시작한다. C는 도입부에서 흥미를 느끼지만, ‘뻔한 긴장 구도’를 강요하는 소설에 식상한다. 소설의 매너리즘을 참을 수 없게 된 그녀는 직접 소설 속으로 들어가 소설의 등장인물인 추리작가들을 살해하기 시작한다. 추리작가들은 게임이 실제 살인사건으로 번지자 당황한다. 그들은 범인을 찾아 나서지만 사건은 미궁에 빠진다. 살인자는 소설 밖에 있는 독자 C이기 때문이다.


독자가 소설로 뛰어들어 살인을 저지르는 구도는 필연적으로 현실과 상상의 공간 사이의 경계를 지워버린다. 소설 말미에 C의 집으로 경찰이 들이닥친다. C는 어쩌면 실제 공간에서도 살인을 저질렀을 수 있지만 소설은 거기서 끝난다.

유태계 아르헨티나 작가인 마르셀로 비르마헤르는 수록작 ‘크리스마스 이야기’에서 바람난 유부남을 등장시켜 삶의 부조리를 우스꽝스럽게 풍자한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유대인 구역인 온세거리에 사는 40대 남자 하비에르는 늘씬하고 가슴이 풍만한 라켈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크리스마스날 밤, 그는 단티니스씨 집에서 파티를 하다가 그녀에게 달려간다. 그러나 그녀는 “전 단티니스 씨 집으로 갈 거예요. 당신은 거기서 왔지요?”라고 묻는다. 단티니스씨의 집에 그녀의 정부가 있었던 것이다.

이탈리아 소설가 마리오 데지아티는 단편 ‘눈꺼풀 너머’에서 신경증적이고 긴장감 넘치는 문체로 현대인의 모습을 그려낸다. 전복된 가치관, 평화를 향한 구호 이면에 전쟁을 선동하는 모순 등이 부각된다. 작가는 지진과 화산폭발로 문명이 파괴되고 오직 주인공만이 살아남는 장면을 통해 낡은 인류의 종말과 새로운 인류의 시작을 꿈꾼다. 그것은 새로운 문학에의 갈망이기도 하다.

김태훈기자 scoop87@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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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05-13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태훈 기자군요. 미녀에 약하다는^^ 믿든지 말든지^^

stella.K 2006-05-13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요? 호호. 새로 알았네요. ㅋㅋ

라주미힌 2006-05-13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걱.. 오늘 내 얘기 하는줄 알았네요...

stella.K 2006-05-13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서울영화제 15일 개막

인터넷·극장 함께 진행
어수웅기자 jan10@chosun.com
 

▲ 네덜란드 후거브뤼그 감독의‘호텔’
인터넷과 극장에서 함께 즐기는 영상축제, 제 7회 서울영화제(SeNef 2006)가 15일부터 9월 17일까지 온·오프라인에서 열린다. 지난해까지 ‘서울 넷페스티벌’이란 이름을 갖고 있던 이 영화제는 온라인에 한정된 듯한 인상을 벗어나기위해 올해부터 ‘서울영화제’로 명칭을 바꿨다. 하지만 디지털과 뉴미디어에 바탕을 둔 새로운 영상문화의 가능성에 주목하겠다는 취지는 변함없다. 영화제가 열리는 4개월 동안 온라인(www.senef.net)에서 작품을 볼 수 있고, 9월 8일부터 17일까지는 서울 종로 일대(극장은 추후 발표 예정)에서 오프라인 영화제가 열린다.

올해는 경쟁부문과 비경쟁부문을 합쳐 광고·영화 등 총 22개국 137편의 영상물을 준비했다.

비경쟁부문은 ‘플래시 인터랙티브 광고제작그룹 특별전’, 2006년 독일 월드컵의 열기를 먼저 느낄 수 있는 ‘축구 만세’, 인도문화를 소개하는 ‘디지트래픽 인도’, 에로·호러 등 잠 못 이루는 밤에 즐길 수 있는 ‘세네프의 잠 못 이루는 밤’ 등으로 구성됐다. 또 디지털 익스프레스(국제)와 넥스트 스트림(국내)으로 나뉜 경쟁부문은 모두 89편이 자웅을 겨룬다. 다니엘 헤니, 귀네스 펠트로가 출연하는 감성적인 광고 ‘빈폴’은 웹 작품 부문에 상영되고, 완벽한 도미 요리를 위해 처절한 망상에 사로잡히는 남자의 이야기 나홍진의 ‘완벽한 도미요리’는 영화 부문에서 수상을 노린다. 심사위원은 정지우 감독, SF작가 듀나 등 모두 다섯 명. (02)518-4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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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 투 렌트', 통쾌하게 '깬다'

멜로인줄 알았는데… 예술인줄 알았는데… 통쾌하게 ‘깬다’
류정기자 well@chosun.com
 

▲ 룸투렌트
남녀가 포개져 있는 포스터만 보면 ‘그저 그런 멜로’일 것 같다. 감독은 이집트 출신, 상영관은 씨네큐브. 여기까지 들으면 예술성 짙은 제3세계 영화겠지 싶다. 그런데 진짜 ‘깬다’.

시나리오작가가 되고 싶어 영국 런던에 온 이집트 청년 알리(사이드 타그마위)는 더빙·요리사·밸리 댄스 강사 등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성공을 꿈꾼다. 하지만 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 하숙집 여주인을 모델로 불륜이야기를 썼다가 쫓겨나고 비자 만료일은 점점 다가와 추방당할 위기에 처한다. 친구 아메드(카림 벨카드라)의 집에서 게이 사진작가 마크(루퍼트 그레이브스), 쇼걸 린다(줄리엣 루이스)의 집으로 옮겨 다니며 위장결혼에 필요한 돈을 모으지만 5000파운드가 어디 쉽나. 우여곡절, 작가로 데뷔할 기회를 잡지만 감독은 삼류 포르노를 찍고 있다. 싸게 위장결혼 해주겠다던 린다는 사실은 유부녀란다.

참 처량한 이주자의 초상이다. 그런데 영화는 내내 유쾌하다. 주인공이 자기연민에 빠지거나 비굴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슬픔을 억지로 감추거나 무작정 꿋꿋하기만 한 ‘바른생활 청년’도 아니다. 그래서 인간적이다. 마크의 방에서 자기 손에 얼떨결에 수갑을 채워버리는 알리, 제2의 마릴린 먼로를 꿈꾸는 린다의 흐느적거리는 말투, 마크를 질타하던 아버지의 성적취향 등 영화 곳곳에 유머가 배어 있다. 칼레드 알 하가르 감독은 영국 국립영화학교에서 유학하던 시절 겪은 에피소드와 이방인의 감정들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웬만하면 그냥 포기하고 고국으로 돌아갈 법도 한데 알리는 끝까지 버틴다. 웬만하면 버려도 괜찮을 ‘금붕어 어항’은 하숙집(room to rent)을 옮길 때마다 꼭 챙겨 다닌다. 알리에게 꿈은 타인에겐 하찮고 버리기 쉬워 보이지만 결코 버릴 수 없는 금붕어 어항 같은 것이다.

결국 알리는 정말 황당한 방법으로 영국인 아내도 얻고, 집도 얻고, 작가의 꿈도 이룬다. 영화가 이어가던 내러티브를 해치거나 관객에게 배신감을 주는 어이없는 결말은 아니다. 오히려 통쾌한 웃음을 주는, 그래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반전이다. ‘룸 투 렌트’는 사랑스러운 영화다. 11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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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져 2006-05-12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예고편 봤는데 재밌겠더라구요.
예고편 본 지 어언 몇 달짼데...이제사 개봉하다니!

stella.K 2006-05-12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정말요...?